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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지로 발화, '현-김' 정조준
<초점> 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폭로 파장
2011년 06월 02일 (목) 19:36:57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북한이 1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대답 형식으로 남북 정상회담 비밀접촉 사실을 폭로하고 나서자 그 배경과 파장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가진 뒤 1일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으로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북측이 폭로한 비밀접촉 참가자 등 구체적 사실에 대해서는 확인을 거부하며 파장이 확대되지 않도록 최대한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등을 강조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것은 북측의 기습 폭로에 뾰족한 대응책이 없을뿐더러 자칫 섣부른 해명에 나섰다가 국민적 의혹을 키우거나 북측의 추가 폭로가 이어질 경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정부 소식통은 “데미지(손상)가 클 것 같다”며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우리가 누려온 도덕적 우위가 무너지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3부자 표적지’가 발화점 됐나

북한이 이례적으로 정상회담 비밀접촉을 전격적으로 폭로하고 나서자 그 배경과 의도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북한의 이번 폭로가 30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 직후 나온 점이 주목된다. 성명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더 이상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해지구 군통신선 차단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성명에서 “괴뢰군부 호전광들은 지난 5월 23일부터 경기도 양주, 인천시의 화약내 풍기는 사격장에 숱한 괴뢰군을 내몰아 총포탄을 마구 쏘아대는 광기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한 대목은 양주의 한 예비군 사격훈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 사진이 찍힌 영점사격 표적지를 나눠줬고 인천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는 ‘3대 세습 종결짓자’ 등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는 <노컷뉴스> 보도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30일 국방위 성명은 이같은 사안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지만 정부는 통일부 관계자를 내세워 “정부로서는 진지한 자세로 북한이 대화에 나오도록 계속 노력을 하겠다”며 “후속조치는 북한 태도를 지켜보겠다”고 안이하게 대처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원인은 사격훈련 표적지 건이 직접적인 계기”라며 “국방위 대변인 성명의 문맥을 보면 남측의 책임있는 당국이 나름대로 사과를 하면 남북대화를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우리가 잘못 읽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탓”이라고 짚었다.

북 폭로, 특정인 겨냥한 것 아니냐

북한이 이례적으로 ‘통일부 정책실장 김천식, 정보원 국장 홍창화, 청와대비서실 대외전략비서관 김태효’의 실명을 거론하고 “이 비밀접촉을 주관하는 통일부장관 현인택, 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 그리고 현지에 파견된 사람들 외에는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으니...”라고 명기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 비밀접촉이 폭로되면 가장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 바로 북측이 실명을 거론한 이들이다.

당사자 중 유일하게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2일 국회본회의에 출석해 “비공개 접촉을 한 건 사실이지만, 접촉 목적은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인 및 사과, 재발방지 답변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북한은 앞서 언론 보도를 통해 현인택 장관과 김태효 비서관의 사퇴를 직접 여러 차례 촉구한 바 있다. 또한 재야 통일원로들은 지난 11일부터 통일부 앞에서 1인시위와 거리농성을 이어가며 현인택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현인택 장관과 김태효 비서관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북관계가 진전되기 어렵고 민간교류까지 사사건건 김태효 비서관이 틀고 있다는 원성이 높다”며 “북측이 이번 비밀접촉을 통해 김태효가 물러나지 않고 정상회담은 어렵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실제로 북측은 '5월 9일부터' 비밀접촉이 있었다고 폭로했고, 당시 김태효 비서관은 유럽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후 추가 접촉에서 김 비서관이 북측에 보다 강도높은 '원칙'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남북간에 합의한 내용을 남측 다른 라인이 뒤집는 과정이 서너 차례 반복돼 남측의 협상의지에 대한 의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격 표적지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북한 내부 복잡한 사정있나

통일부 관계자는 1일 배경설명에서 “이례적인 것은 분명하다”며 “북한이 이걸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방적으로 주장한 의도에 대해서 뭔가 복잡한 내부사정이 있는 게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올 연초부터 강력한 ‘대화 공세’를 펴다 백두산 화산과 동해 표기 남북접촉을 앞두고 갑자기 대화에 나서지 않은 채 이례적인 폭로가 나온 일련의 흐름으로 미루어 북한 내의 강온 기류가 맞부딪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으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올해 들어 북한의 통일전선부 등 대남라인이 대폭 물갈이 되는 등 북한 내부에서 협상파의 입지가 줄어드는 분위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30일 성명과 1일 대답이 모두 국방위원회 명의로 나온 점도 주목된다. 통상 남북관계에 관한 공식 입장은 통일전선부 산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군사적 사안이고 실제로 남북 간에 고위급 군사실무회담이 추진됐던 점에 비추어 국방위원회가 나서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5월 9일부터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비밀접촉의 북측 파트너가 국방위원회 인사였는지 통전부 인사였는지도 관심사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 대외정책 바뀌었나

북한의 이번 비밀접촉 폭로로 당분간 남북 정상회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현 정권의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가 냉각기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중 정상회담 결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비중이 북 내부에서 급격히 줄어든 것 같다”고 해석했다. 특히 “남북관계의 실효성이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봤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20-27일) 직후인 27일 미국인 전용수 씨를 석방하는 등 미국에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대남 강경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정 교수는 “남쪽이 기다리고 압박으로 간다면 북은 북중협력을 높여가면서 역시 기다리고 압박으로 가겠다는 뜻”이라며 남북관계 개선 전망을 낮게 보고, “북미대화 여부는 미국이 ‘선 남북대화’ 입장을 바꾸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양무진 교수는 “정상회담 관련 논의는 조금 어렵겠지만 적십자회담이나 민간교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표적지 문제에 대해 남측이 대응만 잘 한다면 오히려 대화국면으로 전환 시킬 수 있다”고 상대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다른 한 정부 소식통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다”며 “이 문제에 관한 한 청와대와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정부의 강경한 기류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