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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北 신년사설' 어떻게 보나

"북-중-러 관계 중시, 남북관계에서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1-01-03 12:06:23 / 수정 2011-01-03 20:02:59
북한이 1일 노동신문(당보),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청년동맹 기관지) 3개지에 '올해에 다시 한 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는 제목의 신년 공동사설을 발표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등을 거친 후 나온 북의 신년사설에서 남북관계와 대외관계에 대한 언급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봤다.

◆신년사설의 특징= 신년사설은 남북관계와 관련, 2010년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외세와 야합하여 반공화국모략과 북침전쟁도발책동을 끊임없이 벌이면서 북남사이의 대화와 민족의 화합을 파탄시킨 남조선당국의 무분별한 광란"으로 돌렸다.

또 신년사설은 2011년 "북남사이의 대결상태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밝히고, 이를 위해 남측 당국이 "반통일적인 동족대결정책을 철회"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년사설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전쟁의 위험을 가시고 평화를 수호하여야 한다. 이 땅에서 전쟁의 불집이 터지면 핵참화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면서 "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엄중히 위협하는 내외호전세력의 북침전쟁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은 저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화와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시켜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각계각층의 자유로운 내왕과 교류를 보장하며 협력사업을 장려하여 북남관계개선과 통일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핵문제 등 동북아 정세와 관련, 신년사설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과 의지는 변함이 없다"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 밑에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며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올해 북 신년사설에서 남북관계와 대외관계 분야의 특징을 몇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010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에 비추어볼 때 남쪽 정부에 대한 비난의 톤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다른 특징은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신년사설에는 "오늘 조선반도의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서 나서는 근본문제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라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일관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은 남쪽이 대화를 하자고 하면 한다. 북은 소련 멸망 후부터 계속 '21세기 생존과 발전의 전략' 하에서 대외적으로 미국과 생존의 틀을 짜고, 남한과는 한반도 평화공존과 평화번영의 틀을 짜야 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 개막의 목표를 이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이러한 방향으로 추구해왔고, 우리도 장기적으로 민족의 이익에 맞다고 봤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뒤집어졌으니까, 북한으로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북은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대화를 하자 하면 어떻든 간에 환영을 하는 거다. 천안함 사건에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복잡한 문제가 있고 나서 국제사회가 평화, 긴장 해소에 합의를 하고 평화정착 문제와 더불어 비핵화를 논의하는 분위기로 가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남북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1월 19일 미중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방향을 정할 텐데, 국제사회는 6자회담 쪽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직접 대화하기는 싫고 국제적 압력이 있으니 다자 틀 내에서 보이콧을 할 수는 없고, 그러니 이런 기회에 남북대화로 나아가는 게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단기적으로 윈-윈하는 길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사고방식이 조지 부시의 '악의 축' 개념과 같다는 것이다. 양자회담이나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통일부가 신년 업무보고에서 조지 부시의 방식, 북한의 인민과 지도부를 구분하는 것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청와대 통일비서관 임명도 그렇고, 연초의 움직임을 보면 마음속에서 북한과의 대화 쪽으로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가면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국제관계가 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과 임기 말년의 레임덕 현상이 겹치면서 내년에 대북협력에 나서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신년사설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남북대화를 강조하는 기조는 계속 유지돼왔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올해 상반기 동안 대화 국면으로 갈 것 같다. 대화 국면의 가장 큰 분수령은 1월 미중정상회담이다. 여기에서 일정한 비전이 나와야 할 것 같고, 남쪽에도 정책전환이 요구되는 듯하다. 북은 그걸 보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하겠다는 것인데, 북이 얘기하는 몇 가지 조건에 맞는다면 남쪽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 이런 입장인 것 같다.

대외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이번에는 미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입장과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만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미국에 대한 기대는 강하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이 대화를 하겠다면 하지만 대화를 않겠다면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 이렇게 보인다.

그런 면에서 과거에 비해 북이 중국, 러시아쪽 외교에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말부터 조성된 북.중.러 관계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 우리가 자초한 건지, 북이 외교를 잘 한 건지 모르겠지만 90년대 노태우 정권 이후 삼각동맹은 사실상 붕괴됐다고 봐야 하는데, 최근 들어 완전한 복원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미.일 동맹의 대항마처럼 나타나게 됐다. 북으로서는 이 기조를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성해 나갈 것 같다.

신년사설에 자주, 평화, 친선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매년 언급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나 비동맹 국가들과의 외교에서 주로 얘기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이 노선이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과 더불어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중국, 러시아 등 우호 국가들에 좀 더 방점이 찍힌 것 같다.

북쪽 사람들이 미국과의 관계나 남북관계가 잘 안 될 것이라고 보는 듯 하다. 또 그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그러한 조건에서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북중관계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신년사설에서 남북 간 대화를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남북 간 조건이 워낙 차이가 있어서 쉽게 대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신년사설에서 남북관계 부분의 구조는 작년과 비슷하다. 다만 지난해 남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대화로 가면 대화를 하고 대결로 가게 되면 더 한 공격을 하겠다'는 투트랙이 더 강하게 표현된 것 같다.

남북관계 외에 미국 등 대외관계에 대해선 유동적으로 보는 것 같다. 작년 신년사설에는 평화협정 체결 등 구체적인 언급을 많이 했지만, 이번에 보면 대외관계에 있어서 의지는 있으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