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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대책? 그냥 기다릴 뿐이고
북한 변수로 한반도 3월 위기설이 불거졌다. 제3의 서해교전도 점쳐진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느긋하다. 이 대통령의 대북 브레인에게 그 속내를 들어봤다.
[74호] 2009년 02월 10일 (화) 11:12:53 고제규 기자 unjusa@sisain.co.kr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 남북 공식 대화는 단 한 차례만 열렸다.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에 이 대통령은 묘안을 낼 수 있을까? 왼쪽은 2007년 서울시장 시절 통일전망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시계(視界) 제로. 남북 사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는 착각도 든다. ‘Again 1993’, 한반도에 전쟁 구름이 덮치기 시작한 1993년과 상황과 엇비슷하다. 1993년 3월 미국 클린턴 행정부 출범 직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5월에는 노동미사일을 발사했다. 김영삼 정부는 “기다리면 북한 문제는 풀린다”라며 느긋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반도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지금도 똑같다. 벌써부터 경제가 아닌 북한 변수로 ‘3월 위기설’이 불거진다. 북한은 이미 ‘말’로 선전포고를 했다.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전면 대결 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1월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나아가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무효를 선언했다. “북남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을 무효화한다”(1월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봄 꽃게잡이 철을 앞두고 서해 군사 충돌마저 점쳐진다. 

‘말’뿐 아니라 ‘행동’도 보여줬다.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쏘아 올릴 태세다. 미사일 동체가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로 옮겨진 것을 한·미 정보 당국이 확인했다. 6자 회담이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아닐까?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마스터플랜이 있기나 한 것일까?

<시사IN>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브레인부터 이를 집행하는 청와대 인사까지 접촉했다. 이들로부터 한반도 정국 전망과 해법을 들어봤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공식으로는 ‘상생·공영 정책’이다. 통일부가 지난해 7월 발표했다. 하지만 대북 정책의 핵심은 ‘비핵·개방· 3000’으로 요약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경제·교육·재정·인프라·복지 등을 지원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 현인택 교수도 관여한 정책이다.

이회창 변수에 흔들린 대북 구상

하지만 이런 구상은 남북 양쪽에서 십자포화를 맞았다. 북한은 체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남한에서도 진보적 학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부족한  엄격한 상호주의라고 비판하고, 한나라당 안에서도 비현실적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보수 쪽에서도 무늬만 다른 ‘일방적인 퍼주기’라고 비난했다. 급기야 통일부는 현인택 장관 내정자가 이 정책을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았다는 해명까지 했다.

이 대통령 쪽 핵심 인사들은 엄격한 상호주의니, 비현실적이니 하는 비판을 ‘상황’과 ‘오해’ 탓으로 돌렸다. 이들은 정부의 대북 마스터플랜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정책의 생산과정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대북 정책 형성에 관여한 한 핵심 인사는 “대북 정책 아이디어도 대통령 머릿속에서 나왔다. 대북 정책도 당연히 경제 마인드에서 비롯됐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반도 구상을 밝힌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계천 신화, 버스 전용 차선로 도입 성공 등으로 대선 후보로서 손색이 없던 이 대통령 처지에서 ‘2%’ 부족한 게 바로 대북 정책이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임기 종료를 나흘 앞두고 개성공단을 전격 방문했다. 방문 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남북한 통일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남한이 최소 3만 달러가 돼야 가능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북한의 1인당 소득이 10년 안에 3000달러가 되도록 남한이 적극 돕겠다”라고 말했다. 대북 정책의 골격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에 대북 핵심 브레인들이 살을 붙였다. ‘대한민국 선진화’를 내건 이 대통령은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북한도 경제 파트너가 되어야 하며,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올려야 남북 모두 ‘윈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선중앙TV 촬영
지난 1월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왼쪽)은 이례적으로 군복을 입고 나와 “남한 정부가 대결을 선택했다.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그것을 짓부수기 위한 전면 대결 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2월 북한판 마셜 플랜인 ‘비핵·개방·3000’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게 그해 7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확정 뒤 나온 ‘신한반도 구상’이다. 이 구상은 남북 경제 공동체 실현을 위한 협의체를 제안하는 등 한나라당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이 후보의 신한반도 구상 내용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청와대 브리핑이 나간 게 아닌가 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치 변수를 만나면서 신한반도 구상이 흔들렸다. 캠프에 참여한 한 핵심 인사는 “이회창 변수가 등장하면서 일이 어그러졌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원조 보수를 내세운 이 총재 쪽이 이 대통령의 신한반도 구상을 일방적인 퍼주기라 비판하자, 상대적으로 ‘집토끼(보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북 정책도 오른쪽으로 더 이동했다”라고 말했다. 즉, 선거 국면에서 보수색이 강화됐을 뿐 본질적으로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혁신적인 정책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정책과 전제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대통령 쪽은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을 실패라고 본다. 북한의 초기 개방 물꼬를 튼 성과가 있지만, 북한 내부가 속도 조절을 하며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 체제 공고화에 햇볕정책이 역이용당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민물(북한)’에 ‘바닷고기(대북경협)’ 를 넣어봤자 계속 죽기만 하니, 민물 자체를 천천히 ‘바닷물(개혁·개방)’로 바꿔주는 정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의 근본 원인도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책기관의 한 고위 인사는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는 북한 문제 핵심인 북핵 개발을 냉전 구조에 따른 외부에서 그 원인을 두고, 냉전 구조를 해체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선다고 봤다. 결과는 정반대로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 우리는 북한 문제 본질을 내부에 두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처럼 자체적으로 개혁·개방을 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통미봉남도 괜찮아

패러다임이 바뀌듯, 지난 1년간 뒷걸음질을 친 남북 경색의 주된 원인도 북한 내부에 있다고 본다. 최근 강경몰이도 북한 내부 사회 다잡기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제시한다. 이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에 관여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은밀하게 보는 등 황색바람이 심하고 배금주의도 퍼져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까지 보태지면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위기 국면으로 몰고가며 내부를 단속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성동격서’에 빗대 ‘성남격북’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 쪽 인사들은 더욱 중요한 것은 일련의 강경몰이를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를 향한 ‘신정부’ 길들이기라고 진단했다. 북한이 한국·미국 정부로 하여금 북핵 문제를 정책 우선순위에 올려놓게 하고, 벼랑 끝 전술로 그들이 원하는 정책으로 바꾸기 위한 무력 시위라고 보고 있다.

   
미사일 발사나 서해상 충돌로 군사 긴장 조성→남한 사회 불안심리→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 확산→정책 변화 유도를 바란다는 것이다. 미국을 향해서도 클린턴이 집권한 1993년 때의 서울 불바다 발언→준전시상태 선포→NPT 탈퇴→노동미사일 발사 등 강도를 높여 결국 북·미 고위급회담을 이끌어냈듯이 이번에도 오바마 정부를 향해 벼랑 끝 메시지를 계속 강화할 것으로 보았다.

당분간 북한이 ‘통미봉남’ 카드를 또다시 쓴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우리에게 통미봉남은 쓰디쓴 교훈을 안겼다. 1993년 북한은 미국과 통했고, 뒷전으로 밀린 우리는 경수로 자금 70%를 감당하는 꼴이 됐다. 하지만 통미봉남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쪽은 개의치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청와대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통령 자문회의에 참여한 인사는 “이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통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오케이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30일 텔레비전 원탁토론에서도 “통미봉남하면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데, 한·미 사이에 신뢰가 없을 때 나오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브레인들도 1993년과 달리 한·미 동맹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때는 김영삼 정부가 북한 붕괴에 방점을 두었고, 클린턴 행정부는 대화를 거쳐 핵 확산방지에 방점을 두어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한·미 모두 목표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서울을 통하지 않고는 워싱턴을 갈 수 없다며 자신한다.

남북 관계를 회복할 복안은? 이 대통령 쪽 인사들은 ‘모멘텀’을 만드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 섣불리 무리를 했다가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르면 상반기에 북한이 ‘결자해지’한다는 낙관적인 견해도 나온다. 식량난 때문에라도 인도적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결국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책기관의 한 인사는 “남북 관계도 용수철의 나선 모양과 같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간다. 지금 북한이 대남 비방을 강화하지만, 필요하면 대화에 나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내까지 느긋하지는 않아 보인다.  물밑에서 관계 회복을 위한 행보가 분주하다. 남북 관계의 특성상 정부 채널이 막히면 현대 같은 민간 쪽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왔다. 민간 쪽은 시민단체와 기업이다. 이와 관련해 대북 전문가는 “북한과 말이 통하는 현대아산을 관료 출신인 조건식 사장이 맡은 것도 남북 관계를 뚫어보겠다는 청와대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현대아산도 북과 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Xinhua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월23일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왼쪽)과 면담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금까지 남북 공식 대화는 지난해 10월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실무군사회담 한 차례뿐이었다. 남북 대화 중단 상태나 다름없는데도 정부는 느긋하다.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들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다른 길로 남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큰 그림은 그려 있다지만, 국민에게 무엇을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작은 밑그림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핵심 브레인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국민들에게 북한 정책과 관련해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비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임동원·이종석 같은 상징적인 대북 포스트가 대국민 메시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메시지가 없다는 게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핵심 브레인들도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은 임기 동안 시간은 이명박 정부 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는 이산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현대아산은 휘청거린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7월11일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 지금까지 매출 손실만 930억원에 이른다. 이들에게 거꾸로 가는 남북한 시계는 착각이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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