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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법안, 갈등의 핵으로 부상하나?

외통위 전체회의 의결 남겨둬...남북관계 악화, 반북단체 지원법 될라

이재진 기자 besties@vop.co.kr
논란이 일고 있는 북한인권법안이 제정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한나라당 의원들은 북한인권법안을 상정, 의결하고 25일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소위 심사를 보고한 상태다. 의결정족수가 미달돼 법안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문구 수정 과정인 축조심사까지 이뤄져 다음 외통위 전체회의가 열릴 경우 의결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북한인권법안은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지만, 한나라당이 전체회의를 열고 밀어붙일 경우 여야 갈등의 핵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외통위는 한나라당 의원 17명, 민주당 의원 8명, 비교섭단체 의원 4명으로 구성돼 있어 전체회의가 열린다면 한나라당 의원만으로도 의결 정족수가 충족돼 언제든지 북한인권법안을 의결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북한인권법, 갈등의 핵으로 떠오르나

한나라당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정부는 지난 11월 채택된 유엔의 대북 인권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결의안은 오는 12월 19일 본회의에 상정돼 공식 채택될 예정인데, 한나라당은 이번 기회에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켜 유엔 본회의에서 북 인권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국제사회에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법안의 수정이 아니라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법안이 일방 통과될 경우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주당은 북한인권법안을 'MB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지난 미디어법 처리과정과 같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 외통위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북한인권법안은 황진하 의원의 '북한인권증진법안', 황우여 의원의 '북한인권법안', 윤상현 의원의 '북한인권법안', 그리고 홍일표 의원의 '북한인권재단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 등 4건이 올라와 있는데, 외교통상위는 4건의 법률안을 통합, 조정해 단일안을 마련한 상황이다.

조정안은 ▲통일부에 북한인권자문위원회를 두고 통일부 장관이 3년마다 자문위원회 자문을 거쳐 북한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외교통상부에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를 두고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하는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 실태조사 결과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한다는 것이 큰 골자다.

이같은 북한인권법안을 야당과 시민사회가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법안이 실효성도 없을 뿐더러 법안의 제정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속 보이는 북한인권법안 제정 의도

우선 북한인권법안의 대상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의 생활의 근거를 두고 있는 북한주민들이다. 사실상 법률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북한주민을 상대로 한다는 얘긴데, 인권증진 개선은 커녕 북측의 반발만 살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측이 내정 간섭을 이유로 들어 남북관계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조정안의 제8조(인도적 지원) 1항은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조건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인도기준에 따라, 전달, 분배, 감시될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북한의 반발이 예상된다. 해당 조항은 사실상 북측이 허락하지 않는 한 불가능해 '생떼'를 부리는 셈이어서 정치공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법안 심사를 거부하며 퇴장했던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북한인권법안은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 전달, 분배, 감시, 투명화하도록 하는 등 실제 인권을 증진시키기보다는 역효과가 나는 조항이 많다"면서 "내부 간섭과 같은 인상을 심어주기 보다는 경제, 사회, 문화, 인적 교류를 증진시켜 북한 정권을 안심시켜 인권을 증진시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북한인권법안 제정이 곧바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며 북 인권은 남북관계를 전진시키는 화해협력 정책과 병행해야 할 사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인권법안이 정부와 여당의 대북압박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정작 '인권'은 '실종'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흥사단 민죽통일운동본부 정현숙 사무처장은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최악인 상황에서 대북 압박의 상징적 수단으로 유엔에서도 제재수단으로 써온 북한인권법안을 현재 시점에서 제정하겠다는 것은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의사가 없다는 말과 같다"라고 비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석진 활동가도 "2004년도 미국이 제정한 북한인권법안은 주요 골자가 탈북 난민지원이었지만, 난민 규모도 크지 않았고 지원금도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정치적 의미가 컸다"고 분석했다.

반북단체 합법적 지원 통로 되나

특히 북한인권법안 중 통일정책의 주무부서인 통일부에 인권자문위를 두고 자문위의 자문을 거쳐 북한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면서 통일부 관계자조차 난색을 표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우리가 하는 일이 남북관계 진전인데, 북이 내정간섭이라고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그 순간부터 남북한 대화창구 역할을 하지 말란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외통위

외통위ⓒ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이번 조정안은 또한 홍일표 의원의 '북한인권재단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통합해 정부의 출연금과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고 북한인권 실태를 조사해 통일부장관으로 하여금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당초 황우여, 윤상현 의원 등 2개의 북한인권법안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둬 실태조사를 하게 했지만, 최종 조정안에서는 민간단체인 재단에 그 역할을 맡긴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인권법안 제정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법안이 만들어지면 그 취지에 따라 집행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그 속내는 복잡하다.

인권위 관계자는 "북한 인권 실태조사는 국가정보원, 재외 공관, 국방부가 할 수 있고, 그나마 인권위가 국가기관이어서 인권실태를 조사하는 게 가능한데, 이 역할을 민간단체에 맡긴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사실상 정부가 (실태조사를)하기가 부담스러우니까 민간단체에 맡긴 것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표출했다.

더구나 제15조(민간단체의 활성화 지원)에 따라 "재단을 통해 민간단체에 대해 그 활동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게 하면서 북한인권법안 제정의 의도가 반북단체의 합법적인 지원 통로를 열어주는 데 있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커지고 있다.

정현숙 사무처장은 "대북 삐라 등 보수 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남남갈등이 심화될 것이고, 북한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형태로 정책이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우려 속에 북한인권법안은 외통위 전체회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외통위 전체회의는 11월30일 현재까지 여야 간사 협의를 거치지 않아 의사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여야 간사 협의는 말그대로 협의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전체회의를 열어 의결을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