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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회담 판 키우는 北-美

[분석] 북미, 첫번째 만남에서 무엇을 논의할까

정지영 기자 jjy@vop.co.kr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2월 8일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로써 오바마 행정부 들어 첫 북미 양자회담이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이후 북미 양자회담 준비가 속도를 내고 있다. 북미는 애초 1박2일이었던 보즈워스 특별대표 방북 일정을 2박3일로 연장하기로 했고, 보즈워스 대표는 방북이 끝난 후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을 차례로 순방해 방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북미 양자회담이 본격적인 일정에 오르자, 관련국들 사이에서는 양자회담에서 어느 정도의 논의가 이뤄질지, 이후 추가회담이 열릴지, 6자회담 재개가 가능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美, ‘신중한 접근’에서 ‘적극적 의지’로

미국은 애초 북미 양자대화에 대해 “협상을 위한 장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지만, 양자회담이 본격화하면서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 일정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한국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2월 8일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청와대

지난 10일 처음 미국이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결정 사실을 발표한 방식은, 필립 크롤리 공보담당 차관보가 정례 브리핑에서 짤막하게 언급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지난 2001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직접 북과의 대화 재개를 발표한 것과 비교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북미대화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19일 아시아 순방의 마지막에 한국에서 북미 양자회담의 구체적인 일정을 직접 발표하면서 미국의 태도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미국 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정확한 날짜까지 수주 전부터 미리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양자대화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빅터 차 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실장)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미북관계를 빠른 속도로 진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뉴욕채널 협의 과정에서 보즈워스 대표의 일정이 1박2일에서 2박3일로 늘어난 것도 회담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사전 협의 과정에서 양자가 만나 논의할 내용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이처럼 북미 양자회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앞서 미국은 6자회담 참가국들과 계속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국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면서 “이러한 조율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북미대화로 나가는 단계가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백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국내정치에서 건강개혁법안이 풀려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업적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고 이란핵과 달리 북한핵은 제대로 하면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름여를 앞둔 북미 양자회담이 미국의 ‘대북 메시지 전달의 장’에서 실질적인 ‘협상장’으로 판이 커진 것이다.

“북미, 서로의 입장 꺼내놓은 자리”

그렇다면 양자는 이 자리에서 어떤 논의를 진행할까. 첫 번째 회담이니만큼 당장 양자가 ‘빅딜’을 성사하진 못하겠지만, 서로가 원하는 의제를 모두 테이블에 꺼내놓고 어떻게 주고받을지에 대한 초벌적인 논의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보즈워스 대표가 임명된 후 처음 북에 가는 것이니만큼 상견례 성격을 띤 자리”가 될 것이며 “북미 양자가 서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보따리를 풀어놓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자가 풀어놓을 보따리는 이미 그동안 ‘공중전’을 통해 분명해진 상태다. 미국은 2005년 9.19공동성명에 대한 재확인과 6자회담 복귀를 북에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북이 6자회담 복귀에 합의할 것인지에 대해선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20일 “우리가 (북미 간)만남을 갖기로 합의한 것은 ‘6자회담으로 돌아오겠다’는 북한의 암시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며 “우리는 그러한 암시를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국 내 기류는 북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다 해도 ‘비핵화 의지’를 밝힐지는 불분명하다는 분위기다.

북이 주장해 온 북미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양자회담에서 다뤄질 지도 관심사다. 우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지난 19일 “북한이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약속을 이행”한다면 “관계정상화,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경제지원 등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하다. 클린턴 장관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논의가 열려 있다”는 말로 북의 비핵화 의지를 전제로 이러한 의제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다룰 수 있음을 시사했다.

북이 그 동안 핵개발의 이유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이라고 규정하면서, 다자회담으로 가기 전에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에 대해 미국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23일 양자대화에서 평화협정 등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미국 내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등 관계 정상화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9일 북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한다면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9일 북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한다면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24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박선원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평화 상태가 아닌데 어떻게 핵무기를 포기하나”라고 물으며 “북한 측은 평화협정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측은 “6자회담에 참석하지도 않는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만나 단순히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양자대화에서 “평화체제 수립 뿐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따른 미북 관계 정상화와 대북 경제지원 등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협상의 기본 구성 요소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사회과학원 리언 시걸 박사도 클린턴 장관의 발언처럼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핵폐기 의지를 천명하면 평화협정 등과 관련해 6자회담 틀 내 양자대화 등을 통해 북한과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면서 보즈워스 대표 방북 첫날부터 “공식적인 미북 양자협상이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양자회담 그후...

양자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될 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후 양자는 추가회담이나 6자회담 등 다양한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23일 보즈워스 대표 북한 방문 이후 미국과 북한은 뉴욕채널을 통해 지속적인 대화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이 양자회담에서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힐 가능성은 높다고 보면서도 이는 북의 ‘비핵화 의지’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미 간 추가회담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어 보즈워스 대표까지 두 차례 평양에 보냈기 때문에, 다음 회담은 내년 1월이나 2월께 워싱턴이나 제3국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24일 경실련 주최 통일포럼에서 이후 회담 형태에 대해 부시 정부 때처럼 “결국 북미 양자 회담과 6자회담을 병행 추진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날 것”이며 “앞으로 북미 대화가 잘 될 경우 이르면 내년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미.중 4개국 회담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 수석연구위원도 의제 중 6자회담 참가국이 관여할 문제와 북미 양자 간에 다뤄져야 할 문제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9.19공동성명을 재확인하는 문제가 분명해지면, 이후 6자회담 안에서 미사일 문제나 평화체제 문제 등이 단계별로 논의되면서, 큰 틀 안에서 북미 간의 문제는 양자가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따라서 이후 회담에서 양자가 모두 “정치적인 의지”를 보인다면 6자회담과 평화체제와 관련한 4개국 사이의 회담, 북일 양자회담 등이 일정한 시점에 “다층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이를 통해 “패키지 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