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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지 생신지.. 북에 두고온 딸 만나러 갑니다"

[인터뷰] 26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앞둔 최고령 96세 박양실 할머니

김보성 구자환 기자



2009년 이산가족 상봉자 96세 최고령 박양실 할머니

부산에 살고 있는 96세 최고령 이산가족 상봉자 박양실 할머니. 박 할머니는 북에 두고온 딸(리원화 씨, 62)를 만나면 "손부터 꼭잡고 고생 많이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그때는 다시 만나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피난 오다보니 어느새 남한이더라구요. 한달이면 다시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는데, 이렇게 헤어질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지요”

“예뻤던 내동생 어려서 걸어나오지도 못하고 할머니랑 남겨졌어요. 살아있나 죽어있나도 몰랐는데.. 생각만 하면 안타깝고 애처로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19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박양실(96) 할머니와 아들 이대원(65) 씨는 당시만 생각하면 마음이 저민다. 잠깐의 이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반백년이 지난 것이다. 58년 전 피난길, 북에 두고온 가족 때문에 평생동안 마음의 짐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 박 할머니 가족은 다음주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오는 26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추진되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당시 세 살배기 딸이었던 리언화(62) 씨와 여동생 들을(80대 추정) 만나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에 두고온 가족이 살아있다는 소식과 이산가족 상봉자로 선정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를 정도였다. 박 할머니는 “기쁘고 너무 고맙다”며 “(딸을 만나면) 손 꼭 잡고 고생 많이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소감을 전했다.

26일 58년만에 북에 두고온 딸과 동생들 만나는 박양실(96) 할머니

전쟁 전만해도 황해도 은률군 이도면 고현리에 살고 있었던 박 할머니는 1951년 이른바 1·4후퇴 시기 두 아들과 첫째·막내딸을 데리고 무작정 피난길에 올랐다. 하지만 피난길을 따라 걷기 힘들었던 세 살배기 딸(원화 씨)은 어쩔 수 없이 박 할머니의 친정어머니와 홀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어려운 때에 피난데리고 다니기가 쉽지 않은데다 걸음도 못걸으니 그나마 먹을게 있는 집에 있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한거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남측으로) 내려올 줄은 몰랐지요.”

당시 다섯 살이었던 대원 씨도 “나도 집에 남아있으라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따라나섰다”고 남아있는 기억을 떠올렸다. 지명에서 보다시피 섬이었던 고향의 지형은 피난길 조차 쉽지 않았다. 박 할머니는 배를 타고 섬에서 나와 걷고 또 걷고, 어쩌다보니 전투를 피해 남쪽으로 무작정 걸어 내려왔다.

이들에게는 이외에도 또 다른 분단의 아픔이 있었다. 고현리에 큰 과수원을 가진 지주이자 기독교 신자였던 박 할머니의 남편인 이순복(95) 씨는 전쟁 초기 좌우대립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박 할머니는 남편의 시신을 과수원 어디엔가 묻었지만 그날 이후 한번도 묘소를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큰 아들이었던 동원(72) 씨도 국군으로 참전해 1951년 벌어졌던 구월산 전투 과정에서 전사했다.

“고생은 말 못해요. 맨손으로 내려와 정말 고생 많이 했지요. 군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왔어요.”

이렇게 가족사진 한 장 품에 넣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남하한 박 할머니는 가족들을 데리고 결국 부산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남편도 없이 보따리 장사와 노점상을 통해 억척같이 생계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러다보니 북에 남겨 두고 온 딸과 가족들이 살아있을 거라고는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금강산이나 개성에라도 한번 가보려 했지만 이마저 최근 남북관계 악화로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대원 씨는 “어떻게 손도 쓸 수 없고 가슴앓이만 해왔다”며 “이렇게나마 (이산가족 상봉이)추진되지 못했다면 생사도 확인못했을 거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거듭 기쁨을 표현했다.

이산가족 최고령 상봉자 박양실(96) 할머니와 아들 이대원(65) 씨

추석 이산가족 상봉자 중 최고령인 박양실(96) 할머니와 아들 이대원(65) 씨는 “이번이 끝이 아니라 정부가 어려울 수록 더 많이 지속적으로 교류해서 58년간의 뻥뚤린 구멍을 메워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어... 손 꼭 잡고 고생많이 했다 말하고 싶어"

박 할머니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 중 남북을 통틀어 가장 최고령자. 상봉일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행여나 몸이 아프지 않을까 지팡이를 짚고 아파트 마당을 돌며 매일같이 산책을 하고 있다. 식사도 평소보다 더 신경써서 챙긴다. 표정도 더 밝아졌다.

어떤 선물을 줄지 설레이는 고민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가 끝날 즈음 딸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던 박 할머니가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다름아닌 박 할머니가 젊은날 평소 입었던 남색바탕의 흰 무늬 원피스. 박 할머니는 이 옷을 손에 꼭 쥐고 “상봉장에 가져갈 선물로 고민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 상봉이 끝나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딸 원화 씨에게 자신의 체취라도 남기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이제 더 이상의 생이별은 안된다던 96세의 박 할머니. 인터뷰 말미 그녀는 이 말을 꼭 당부했다.

“말도 같고 얼굴도 같고 우린 한민족이고 한나라 아녜요. 이제 남북이라고 나누지 말고 좀 부족한게 있어도 사랑으로 대하고 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지켜보던 아들 대원 씨도 “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만나면 눈물부터 날것 같다”며 “이번이 끝이 아니라 (정부가) 어려울 수록 더 지속적으로 교류해서 58년간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하루빨리 메워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또 헤어지면 언제만날까.. 박양실 할머니의 선물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데...' 추석 상봉을 약 6일 앞둔 박양실(96) 할머니는 북에 두고온 딸 리원화(62) 씨에게 줄 선물을 꺼내 보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