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6563
‘유연한 접근’만으로는 남북관계 전환 어렵다
<칼럼>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2011년 11월 08일 (화) 10:05:48 이승환 tongil@tongilnews.com

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유연한 접근’

통일부장관 교체 이후 남북관계에서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5.24조치 이후 중단되었던 개성 만월대(滿月臺) 남북공동발굴사업도 재개될 움직임이고, 2년여 이상 중단되어 있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도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사진)은 지난 10월 21일 “비정치, 비군사 부문에서 교류.협력의 물꼬를 만들고 대화 통로를 여는 것이 유연한 접근”이라면서, 겨레말큰사전 사업과 만월대 발굴사업을 위한 남북접촉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10월 24~25일 있었던 제2차 북미 고위급 대화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7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으로 "이번 회담에서는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일련의 전진이 이룩됐다"고 평가했다. 이는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북한의 주장과 ‘6자회담 재개 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을 요구해온 미국 사이에, 비핵화로드맵에 대한 이견 해소에 일정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가 교차하고 있는데, 월간지 <민족21>은 남북이 정상회담 추진에 합의했고 판문점에서 11월경에 진행될 것이라고 매우 구체적인 보도를 하기도 하였다.

“현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불가능”

그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섣부른 전망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북한측 인사들과의 접촉에서 확인되는 분위기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일련의 기대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10월 17-20일 사이에 미국에서 북한의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부위원장과 만났던 남측 인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리 부위원장은 "두 번이나 정상회담에 합의해 놓고 남측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명박 정부하에서) 정상회담은 어렵지 않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북측 인사들과 접촉한 바 있는 필자 역시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북측의 의견을 물은 적이 있었다. “일본의 <조선신보>와 협력관계에 있는 <민족21>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보도는 남쪽에서 매우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하자, 북측 인사는 “그 기사는 사실과 다르며, 남측에서는 <조선신보>가 마치 북측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는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 상황에서 정상회담 추진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 추진 의사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북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은 현재로서는 "(두 번이나 정상회담 합의를 깬) 그런 정권과 어떻게 정상회담 얘기를 하나. 북측은 매달리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요한 것부터 과감하게

만약 이러한 부정적 상황이나 전망과 별도로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 정부가 지금의 시점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비정치, 비군사 부문에서 교류.협력의 물꼬를 만들고 대화 통로를 여는 것이 유연한 접근”이라는 식의 정석보다는, 시간 부족을 감안한 과감한 수순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 정부가 남북관계 전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별로 없다. 내년 3월의 ‘핵안보정상회의’를 고려할 때 기껏해야 남은 시간은 3개월이다.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4-5개월의 시간이 더 있기는 하지만, 내년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정상회담 추진에 많은 리스크가 따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치, 비군사 부분부터 물꼬를 터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가겠다는 식의 접근은 좀 한가하다.

정상회담 추진에 필요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핵심적 문제와 중요한 문제부터 과감하게 풀고, 나머지 문제는 점차적으로 해결하가는 파격적 수순 전도가 필요하다. 개성공단 확장, 금강산관광 재개, 쌀 지원 등 대북인도지원 확대, 정치적 분야를 포함하는 과감한 민간교류 재개 등이 먼저 추진된다면,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관계 변화가 임기 내에 가시화될 수 있다.

만약 이 정부가 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고, 비정치.비군사 부분부터 물꼬를 터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가겠다는 입장이라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차악의 선택일 뿐이다. 북한의 가시적인 비핵화 노력과 남북관계 발전의 중대한 계기가 될 정상회담을 추진조차 하지 못하고, 신뢰를 위한 탐색만 하다 임기를 마감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보나 민족사적으로 보나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미 부여는 금물이라는 점이다. 집권 말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정상회담 추진동력은 극히 떨어져 있고, 북한 역시 서울시장 선거 패배 등 이미 레임덕이 시작된 이명박 정부와의 정상회담은 ‘중대한 실리가 없다면’ 적극적으로 추진할 이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명박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과거와 차별화되는 ‘획기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상회담은 북핵문제에 대한 북측의 보다 진전된 입장과 표현, 기존 남북정상 간의 합의 확인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 수준을 높이는 섣부른 여러 의제의 제기는 오히려 정상회담 추진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집권 후반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는 남북관계 전환에서 지지층에 얽매인 소극적 태도에서 과감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집권 말기라는 점, 그리고 서울 시장 선거를 통해 정부의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남북관계 변화를 위해 과감한 행보를 취하는 데서 이 정부가 망설여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사정으로 <월간 피플>에도 함께 실립니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