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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 남북관계 ‘잃어버린 5년’ 피해야
<칼럼>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11년 10월 24일 (월) 10:24:55 임을출 tongil@tongilnews.com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발등에 떨어진 10월 26일 서울 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2012년 4월의 총선, 12월 대선까지 1년 넘게 선거관련 이슈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역시 남북관계이다. 거센 선거 바람 때문에 국정 우선 순위에서 남북관계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설령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스처가 나온다 해도 단지 선거용 수단으로만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과연 이명박 정부 남은 짧은 임기 내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에 훈풍이 불 수 있을까.

지금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는 유럽발 재정금융위기가 앞날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듯이, 선거 국면이 남북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언제라도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돌발 변수들이 느닷없이 밀어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현 남북관계는 불신과 대결의식이 고조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남북한 모두가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다보니 피로감 혹은 무력감도 감지된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의 후폭풍이 남긴 일종의 트라우마(trauma)이다.

사실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남북관계를 경색 상태로 계속 끌고 가기는 부담스러워할 것으로 짐작된다. 여당에서는 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어질 경우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할 법하다.

보수층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안보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역주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크고작은 선거결과들이 입증한 것처럼 안보불안감이 극대화될 경우 유권자들은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이뤄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개성 방문과 이어진 개성공단 제재완화조치, 종교계 인사들의 평양 방문허용, 통일부 장관 교체, 인도적 대북지원의 부분적 재개 등이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류우익 신임 통일부 장관은 취임사를 비롯해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유연성 발휘를 통한 남북관계 변화 모색’ 입장을 피력해 왔다. 류 장관은 이런 발언을 뒷받침하듯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산가족 상봉 추진의지를 밝히고, 만월대 발굴, 겨레말편찬 재개 등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도 남북관계 경색에 따른 교류협력 중단의 장기화가 갈수록 불편해 보이는 듯하다. 이는 리종혁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10월 20일 미국 조지아대에서 열린 ‘남.북.미 3자 트랙 2’ 토론회 폐막식 후 남북관계개선방안으로 “1차적으로 5.24 (천안함 사건에 따른 대북교류 중단) 조치를 비롯해서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방해하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북한은 지난 9월 14일 노동신문을 통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천안함 사건에 따른 대북제재 조치인 ‘5.24 조치’의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북남 사이의 왕래와 접촉, 협력과 교류를 가로막는 5.24 조치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북남관계의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실 5.24 조치는 정치와는 무관한 대다수 경협기업, 인도적 대북지원, 그리고 남북문화교류 단체들에게는 치명적 상처를 입혔다. 물론 북측에게도 상당한 고통을 안겨준 것으로 추정된다. 남측뿐 아니라 다른 국제사회로부터의 대북지원의 크게 축소되면서 주민들의 식량난이 더욱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관광, 교역, 투자의 축소 및 중단에 따른 피해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5.24 조치 이후 1년 5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남북한은 천안함, 연평도포격과 같은 불행한 사건이 남북한 모두에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는지에 대해 충분히 배울 기회를 준 것이다.

현 단계에서 5.24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를 여는 유용한 수단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류우익 장관이 재차 강조한 바대로 남측 정부는 북측의 시인과 사과 없이는 5.24조치를 풀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류 장관 스스로 밝혔듯히 일단은 비정치군사적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조금씩 열어감으로써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든 꽉막힌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려하는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연 이런 점진적이고 우회적인 접근으로 의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2012년 초반부터 선거 광풍이 불어닥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5.24 제재조치를 푸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남측 보수층에서는 5.24 제재 해제를 ‘햇볕정책 되살리기’로 간주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베리아 가스관 건설과 정상회담 추진도 북한 체제만 위기에서 구해주는 편법의 수단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터다.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시기적으로는 지금이 가장 결단하기 좋은 적기다. 대북정책이 선거 회오리바람에 휩쓸린다면 남북관계는 ‘완벽한 읽어버린 5년’이 될 것이다. 이제 남북한 당국 모두는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희망을 주는 정책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은 서해상에서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들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는 데 적극 협력해야 한다. 남측은 대북 식량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조치를 포함한 활발한 협력과 교류로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5.24 제재조치 철회는 이런 환경을 만들고 촉진하는 불쏘시개 같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정치학 박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 조교수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개성공업지구입주기업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자문위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정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1기 민간위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연구원
KOTRA 북한경제/남북경협 조사분석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