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충남도청이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도청사는 80여 년간 자신의 역할을 끝마치고 새로운 임무(?)를 기다리고 있다.
충남도청사는 일제시대 때인 1932년 5월,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준공되었다. 충남도청사의 첫 출발은 바로 식민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 후 해방과 한국전쟁, 4.19혁명,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충남도청사는 격동의 세월,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 되었다.
 LJG080229s_3799T.jpg특히 한국전쟁 당시 대전이 임시수도로 쓰이면서, 도청사는 임시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때는 분단과 전쟁 속에 슬프고도 치욕적인 현장이 되기도 했다. 대전이 임시수도로 쓰이게 된 때는 1950년 6월 27일부터인데 7월 16일까지 20일 간인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새벽 1시 자신이 소집한 비상국무회의도 참석하지 않고, 대전으로 피난을 오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 대전에 도착한 이 대통령은 "대통령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킬 것"이라며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담화를 녹음했다고 하는데, 녹음을 한 장소는 충남도청사 인근에 있던 도지사 공관(대흥동)이었다. 또한 7월 12일 치욕적으로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UN군 사령관에게 이양하기로 한 소위 ‘대전협정(사실은 협정이라기보다는 국회비준도 받지 않은 각서 형태였고, 체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피난을 떠나 7월 2일부터 부산에 머물고 있었다.)’을 체결한 장소가 바로 충남도청사이다. 그 후로 우리 군은 아직까지 60년이 넘도록 외국군대로부터 (전시)작전지휘권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도 충남도청사는 내포로 이전하기 전까지 기자회견과 집회, 행사 등이 이루어지며 현장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2006년 한미FTA저지 총궐기대회를 비롯, 2010년 쌀값보장과 쌀 직불금 즉각 시행을 요구하는 등 충남농민들의 100배 투쟁, 그리고 키리졸브, RSOI 등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요구 기자회견, 북녘어린이돕기 밀가루 지원 환송 기자회견까지 주요 현안을 다루는 기자회견과 투쟁, 행사들이 충남도청사를 등지고 진행되었다.

LJG110915s_1245T.jpg 충남도청 내포이전으로 이렇게 역사와 함께 많은 유서를 담고 있던 충남도청사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만 했다. 오랜 기간 충남도청사 활용방안에 대해 준비하였지만 예산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아직 확실한 역할을 결정하지 못한 채 유상 또는 무상임대를 통해 임시활용 중이다. 지난 3월 말 대전발전연구원이 도의회 건물 2층부터 4층까지 입주하였고, 근·현대 특별전시실이 오는 4월 25일 부분 오픈될 예정이다. 아직은 한시적이긴 하지만, 다행히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는 충남도청사를 보존하여 활용하고 있고, 소회의실, 중회의실을 비롯하여 200석 규모의 대회의실까지 리모델링해 개방하면서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하고자하는 취지는 다행이다. 하지만 도청사 활용과 관련하여 조만간 한시적 계획을 넘어 장기적인 활용방안 수립이 필요하다. 오는 4월 말부터 오픈되는 근·현대 특별전시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계획하고 있는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 역사적 과정과 근대 건축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자료, 대전 근대역사자료 전시와 더불어 충남도청사가 경험했던 식민과 분단,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평화교육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잘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