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의 정신을 찾아간 청원 고드미 마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오민성 (사)우리겨레하나되기대전충남운동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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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한국사교과서가 친일, 독재 등을 미화하는 등 심각한 역사왜곡으로 인한 논란을 일으켰다. 교사,학생을 비롯한 온 국민의 저항을 받으며 결국엔 전국적으로 교과서 채택이 철회되었지만, 이와 같은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기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때 구한말, 역사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단재 신채호 선생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신채호선생님은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에서 출생(현 대전 중구 어남동) 하여 선생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8세까지 이곳에서 성장하였고, 그 이후에는 충청북도 청원의 고드미 마을로 옮겨가 성균관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셨다고 한다.그래서 대전에는 선생님 생가가 있으며, 충북 청원에 사당과 묘소, 관리사무소가 있다.
을사조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항일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북경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하여 일생을 다 바치셨다. 특히 그동안의  중국을 큰 나라로 보았던 사대사관, 구시대 지배자의 왕조 중심사관, 일제의 한국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는 식민사관을 부정하며 독사신론 이라는 제목으로 단군에서 발해의 역사를 우리 민족위주로 썼으며, ‘역사를 아와 바와의 투쟁이다’ 라고 정의를 내리고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는 등 우리 역사의 민족사관을 확립하는데 주력을 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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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주요저서- 단재 기념관>


주요 저서 중에 전기 ‘이순신전,을지문덕전’ 이 있는데, 당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선 과거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들이 필요함을 느끼고 위 위인전을 저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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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사당-충북기념물 제90호>

 ‘단재영각’이라고 씌여 있는 사당 안에는 신채호 선생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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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 신채호 묘소- 사당 뒤편에 선생님의 묘소가 있다. >


선생님이 순국하신지 78년이 되어가는 이때, 역사는 아직도 끊임없이 싸워가고 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위안부 문제,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시키는 발언, 역사왜곡 문제 등 일본의 극우주의 부활과 재무장을 위한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과거 선조들이 겪었던 전쟁의 아픔과 망국의 설움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1910년대 국권침탈기의 암울한 시대를 언론인으로, 역사가로 평생을 독립운동가로 살아가셨던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이제 우리에게 숙제를 내주시는 듯 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