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서기 1950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우리 유족은 전쟁이란 틈새에 끼어 부모 형제 자매를 국가 공권력에 무참히 학살당한 유족이다.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켜야 함에도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무참히 학살한 것은 불법이라고 진실화해위원회는 판단하였다. 아무 법적인 절차없이 대전 사내 골령골에는 우리 추산으로 약 8천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계산된다. 당시 대전 형무소 정치범이 18백명이라는 것은 미군 기밀문서에 공개된 사실이며, 국민보도연맹원 약 1천명, 당시 대전시 및 대덕군에서 약 14백여명과 청주, 공주형무소에서 대전형무소로 이관된 수백명, 충남지역 각 군에서 국민보도연맹 A급 수천명이었다. 그리고 1950628일 수도 서울이 함락되자 서울 마포서대문영등포 형무소 재소자 전원을 석방하였다. 이에 재소자 중 여수사건, 제주4.3사건 및 대전 이하 거주자들은 수원까지 간신히 내려오다 수원역이나 평택역에서 기차에 승차하여 내려오다 대전역에서 머리를 빡빡 깍은 사람은 재소자로 간주되어 전원 체포되어 대전형무소에 재수감하였다. 이 수가 1천여명으로 추산하여보니 약 7천여명이 대전 산내에서 1950628일부터 717일 사이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당했다. 또한 1951년 부역 혐의로 대전 형무소에서 수감 중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1.4후퇴 당시 대전 산내에서 사형 선고자 120명에 수감자 약 1천여명이 학살당했다고 하니 합하면 8천명이 대전 산내에서 학살당한 그 후손이 모여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를 창립하여 활동하고 있다. 우리 유족은 이승만 정부 하에서 빨갱이 자식이란 딱지가 붙어서 감히 우리 아버지가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 알려고도 말하려고 하지도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던 중 19혁명으로 1961년 전국유족회를 결성하여 활동 하였다. 하지만 그해 516일 육군 소장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유족회 활동하시던 많은 분들이 최고 사형에서 2010년의 중형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으며 감히 입도 뻥긋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왔고, 연좌제란 족쇄로 다시 얽매여 공무원이나 군장교, 큰 회사에는 발도 못들여 놓았다. 심지어 해외에도 나가지 못하였다.

    LJG080706s_9446T.jpg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넋을 이제는 완벽히 위로할 때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우리유족은 생명만 부지하는 것도 다행이라 여기며 생활하였다. 문민정부 즉,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좌제란 족쇄가 풀리고 거창 사건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사건진상이 밝혀졌었다. 또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특별법이 통과되어 사건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 첫 사과를 하였다. 그 후 20051227일부터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하여 2008년에는 충남서부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진실규명결정문을 1차로 받고, 2009년에 2차로 충남대전 지역 국민보도연맹 진실결정문을 받았으며, 2010622일에 대전· 공주· 청주 형무소 사건 진실규명결정문을 받음으로서 신청인 전원이 결정문을 받고 201012월 진실화해위원회는 문을 닫았다.

 

우리 유족회 활동은 199910대전산내사건 희생자 진상 조사단발족을 시작으로 유족회 첫모임(2000419)을 대전 참여자치 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참여연대 복진국, 심규상, 금홍섭, 전민특위 박희인 사무국장 및 유족으로 정준섭 김종현 이규희 등 7인이 참석하여, 초대회장으로 신탄진 정준섭을 회장으로 추대하여 활동을 개시하여 왔다. 그 첫 시작으로 200078일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 제1차 위령제를 봉행, 작금까지 제63주기 14차 위령제를 봉행하여 왔다. 우리 유족은 진실화해위원회가 발족하고 20051227일부터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하여 1차는 2009년도, 2.3차는 2010년도에 결정문을 통고받고 2012년부터 사건별 형별로 분리하여 1-7차까지 배보상 청구소송을 하고 있으며, 1-3차까지는 일부 승소하여 현재 서울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고 4-7차는 서울 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다.

 

우리의 희망과 소원은 지금도 구천을 떠도는 영령님들의 안식처를 만들고, 아버지 돌아가신지 올해로 6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상을 못 치룬 불효자임을 국가가 조속히 면해주기 바라는 것이 희망이며 꿈이다. 200771일 진실 화해위원회는 최대 학살지인 대전 산내, 경산 코발트 광산, 전남 구례 3곳을 2010년까지 연 3년간 유해발굴 계획을 세워 발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007년 제57주기 제8차 위령제를 병행하여 개토제를 봉행하고 발굴하려고 하니 토지 소유주의 승인을 얻어야 발굴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학살을 자행 할 적도 개인소유 토지였으며, 지금도 개인소유 토지이다. 국가는 민간인을 불법으로 학살·암매장하여 60여년을 넘도록 방치하였다. 그 억울한 죽음을 이제야 풀 수 있겠구나 하며 유해를 발굴하자니 토지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단다. 대체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뭐하는 나라란 말인가!

LJG130627_6167T.jpg
▲산내학살사건은 올해로 63주기를 맞고 있다.
이제는 완전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 수십년간 고통받은 유족들의 한을 풀고,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법이 그러하면 무슨 수라도 국가가 해결해야지 우리 유족이 해결한단 말인가! 결자해지라고 국가는 토지소유주와 협의하여 빠른 시일에 60년이 넘도록 초상 못 치룬 우리 유족을 편하게 해주시고 구천을 떠도는 불쌍한 영령들의 안식처를 마련해주기 바란다. 국정 책임자여! 당신 부모가 우리와 같은 입장이라도 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조속한 해결을 바라며 우리 유족의 고통을 부디 보담아주시고 국가가 할 일과 도리를 다해 주리라 생각하며, 수 십 년을 대한민국 3등 인생으로 살아온 우리 유족에게 더 이상 고통 없는 삶을 보장해주기 바란다.

 

국민소통이란 말은 정치인이면 다 앵무새처럼 말한다. 더 이상의 앵무새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 우리 유족은 이제 고령으로 살만큼 살아왔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깊이 명심하여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하여 주리라 믿고 이만 줄인다

.

8hr_IMG_0799.jpg
▲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위령제에서 유족대표 인사를 하고 있는 김종현 회장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 회장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