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전 사무국장)

 

 

1. 방북 개괄

- 방북일정 : 2011. 10. 12~15(34)

- 방북목적 : 밀가루 지원에 따른 모니터단 방북 활동 보고

- 방문지역 : 신의주 지역(애육원, 본부유치원, 신의주화장품직장)

- 세부일정

10/12() : 인천공항 출국중국 대련공항중국 단동시 국제호텔(1)

10/13() : 단동세관신의주세관압록강여관애육원본부유치원

10/14() : 압록강여관신의주화장품직장신의주세관단동세관압록강 철교 관광

10/15() : 단동압록강 지역 유람선 관광대련공항인천공항

 

 

2. 방북 수기

 

불현듯 찾아온 방북의 행운!

올해 3월부터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임명되어 근무하면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경험하였다. 4대강 사업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 아산 유성기업 사태, 한진중공업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곳곳의 아픈 현장을 찾아가고 알리는 활동을 쉼 없이 진행하였다. 나는 1999년 충남 천안으로 귀농하여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다. 10년 남짓 농사를 지으며 두어 차례 파농하고 남은 것은 농가부채의 비참한 삶이었다. 그래도 자연농업 양계를 통하여 희망의 끊을 놓지 않고 농업과 농촌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리겨레하나되기 대전충남운동본부로부터 밀가루 지원에 따른 모니터단으로 추천되어 생애 최초의 방북의 행운을 얻게 되었다. 천안함 사건 및 연평도 사건 등에 따라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 통일의 길은 요원해 보였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하게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활동가들 덕분에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이 재개된 것이고, 이에 따리 이번 방북도 성사된 것이다.

 

돌아가야만 하는 길!

갑작스런 방북 확정으로 농사일이고 집안일이고 단체일이고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할 것이 많아서 겨레하나에서 마련한 사전 일정에 결합하지 못하였다. 기간 만료된 여권을 새로 신청하고 중국 비자도 신청하고 여행 보따리도 챙겨야 했다. 제주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발족식에 참가하기 위해 1010~11일까지 12일 제주에 다녀온 후 1012일 새벽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이번 방북단 일행인 김이경 겨레하나 사무총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오신 여덟 분의 활동가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방북단 활동에 들어갔다. 인천공항에서 바로 북쪽으로 향하지 못하고 중국의 대련-단동을 거쳐 신의주로 우회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기간 동안 다져놓은 통일의 분위기를 이명박 정권 단 3년 동안에 30년 전으로 후퇴하였다는 대다수 국민의 평가를 실감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중국을 경유하는 비용이라도 아껴서 통일을 위한 일에 쓴다면 그것도 보람찬 일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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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한다는 진실!

중국 대련공항을 거쳐 단동에서 하루를 묵고 1013일 오전 1030분 드디어 북과 중국의 국경인 압록강 철교를 건너 신의주에 들어갔다. 중국에서 12일을 지내면서 타국에 있다는 실감은 언어의 차이에서 왔다. 통역에 의존해야만 했던 답답함이란 어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방북에만 관심을 갖고 중국을 경유한다는 것에는 무심했기에 자유시간에 호텔과 주변 시장과 상점을 기웃거릴 때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손짓 발짓으로도 소통이 어렵고 10년 넘게 학교에서 배운 한자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한자를 읽는 발음은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멀기만 했다. 그런 경험이 신의주 세관에서 완전히 해소되는 시원함으로 다가왔다. 비록 어색한 억양과 북쪽 지방의 사투리가 섞여 집중을 해야만 정확한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분명 우리말이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바로 신뢰할 수 있다는 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압록강 철교를 건너면서 느꼈던 두근거리던 심장의 고동은 북측 민화협 담당자를 만나면서 안도할 수 있었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익숙한 말소리에 같은 겨레 같은 조국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애육원에서 눈물을 흘리다!

북측 안내원을 따라 압록강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정해진 방북 활동에 들어갔다. 처음 방문한 곳은 애육원이었다. 후에 들은 바로는 이곳은 외부에 공개하기를 매우 꺼려하는 곳으로 사진촬영도 엄격히 제한한다고 한다. 5~6세의 아이들 특히 부모 없는 아이들 400여명이 교육을 받고 숙식하는 유치원이다. 높은반 낮은반으로 이름 지어진 두 개 학년에 다양한 이름의 반편성이 되어 있다. 매일 수업은 두 시간으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아이들의 특기 적성에 따른 교육을 별도로 진행한다. 붓글씨, 그림, 악기 연주, 합창, 춤 등 각기 갖고 있는 재능을 맘껏 키워가는 모습을 교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어린이 중창단에서 우리 방북단을 위해서 몇 곡을 노래를 연주해 주었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아이 하나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방북단 모두가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 그리고 자신들을 키워주고 가르쳐주는 모든 고마움을 하나로 표현하는 마음이 한꺼번에 전해져 왔다. 북측 안내원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외부 손님이 다녀가면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한다.’는 말로써 애육원의 모습을 정리해 주었다.

 

어찌 이토록 뜨겁게 환대하십니까?

애육원 창고에 쌓아둔 밀가루 포대를 확인하고 다음 방문지인 신의주 본부유치원으로 향하였다. 신의주시 본부동에 위치한 본부 유치원은 만5~7세의 500여명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부모님이 일일이 와서 아이를 맡기고 일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1983년부터 30년 가까이 직을 맡고 계신 원장님은 본부 유치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이곳 출신 어린이들이 전국 대회에서 많은 수상 경험이 있으며 많은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해 주었다. 어린이들이 우리 방북단을 위한 붓글씨를 써 주었고, 이어서 공연장에서 방북단을 위한 1시간 공연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들의 다양하고 뛰어난 재주를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을 했길래 저렇게 능숙한 연기와 춤과 노래와 연주를 해낼 수 있을까?하는 안쓰런 마음도 한편에 들기도 하였지만, 김연아나 박지성, 박세리와 같은 세계적 운동선수나 장한나, 조수미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안의 편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홉 명의 방북단을 위해 마련된 공연은 아이들의 전체 합창에 이어 교원들의 세련되고 능숙한 노래와 연주를 통해서 마무리 되었다. 공연 내내 고마움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찌 이토록 뜨겁게 환대해주는가? 우리가 무엇이라고 이들의 고귀한 시간을 이렇게 빼앗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 몰려왔다. 그래서 더더욱 통일의 길을 앞당겨야 한다는 다짐도 세울 수 있었다. 아이들과 교원들, 방북단 모두가 어깨를 잡고 기차놀이를 하면서 모든 일정을 마쳤다. 박수와 환호로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데 아이들이 방북단들에게 우르르 몰려와 손에 손을 잡고 마당까지 인도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눈물을 흘리고 사진을 찍고 부둥켜안고 사진을 찍고 차에 올라서도 끊임없이 손을 흔들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하고 결국 버스 속에서 누구랄 것 없이 북받쳐오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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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의 잊히지 않는 풍광!

거리 곳곳에는 길을 걷고 있는 북측 주민들의 모습이 많이 볼 수 있었다. 중심 도로와 간선 도로 포장은 곳곳에 파여진 흔적을 볼 수 있었고, 차량이 지나는 골목은 도로 포장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파트나 집집마다 창틀에 꽃 화분을 내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생소한 버스가 골목을 지나자 호기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주민들, 간혹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의 모습에서 아직 생활물자가 현저하게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단동에서 신의주로 건설기계 차량이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을 통해서 북측 곳곳에서 건설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며칠 동안의 방북 일정을 정리하면서 구글에서 제공하는 위성 사진을 통하여 신의주와 북쪽 산하 곳곳을 살펴볼 수 있었다. 논과 밭, 산과 강물을 선명하게 확인하고 우리 방북단이 머물렀던 숙소와 애육원, 본부 유치원의 위치를 찾아보았다.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모습에서 다시금 그리운 마음과 통일을 향한 열망이 솟아올랐다. 가깝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그래서 더운 간절한 그 곳! 그 곳에 다시 가고 싶다. 다음에는 돌아서 가는 길이 아닌 육로를 통하여 곧장 갈 수 있기를 희망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