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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을 만들어 평화협정 체결로 가야”

[인터뷰]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3-03-12 08:28:53l수정 2013-03-12 08:55:19
오종렬 상임고문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고문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이승빈 기자


오종렬(76)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은 진보운동의 좌장이자 큰어른으로 인정받는다. 이로 인해 극우세력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종북세력’의 핵심인물로 ‘찍혀 있는’ 대표적 인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과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한 뒤 최근 몇 년간 주로 광주에서 머물며 활동을 해온 오 고문은 급박한 정세를 반영하듯 최근 무척 분주해졌다. 한반도 긴장 국면을 타개할 방안과 진보진영 및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기 위해 만난 11일에도 그는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 인사들과 접촉하느라 여러 개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오 고문에게 먼저 한반도 위기 상황의 배경을 물었다.

“한반도 이미 60년 동안 사실상 전쟁 상태였다”

오종렬 상임고문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고문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이승빈 기자

그는 “어떤 집단과 국가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오랫동안적개심을 불태우고 전투준비를 하면 결국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군사학의 정설”이라며 “강화조약을 맺어 평화체제로 바뀌어야 할 정전체제가 60년 동안 이어져왔는데 이는 곧 전쟁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1일부터 열흘간 독수리 훈련과 겹쳐서 진행하는 키리졸브 훈련은 결국 과거 팀스피리트 훈련이 모양만 바뀐 것이 불과하다”며 “북은 군사연습을 하면 오늘부터 정전체제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방아쇠에 걸어놓은 손을 풀었다 이제 다시 당기겠다는 것”이라고 격화된 긴장에 우려를 표했다.

‘역지사지’를 강조한 오 고문은 키리졸브 훈련이 연례적 방어훈련이라는 주장에 “북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앞 공해상에서 군사훈련을 하면서 연례적 방어훈련이라는 말을 믿겠는가, 목포나 부산 앞바다에 군함과 전폭기를 동원하며 걱정 말라고 하면 어느 국민이 믿겠는가”라며 “남의 집 담벼락 앞에서 불장난을 하며 안심하라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이날 낮 진보진영과 시민사회 대표자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 양국 정부에 군사훈련 중단과 대북 특사 파견 등의 ‘대화’를 촉구하며, 북에 대해서도 “정전협정 백지화, 불가침합의 무효화 등을 즉각 철회하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또 “위기를 고조시키는 북한의 태도에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반대하고 있다”며 불안과 우려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오 고문은 “북에 자제를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상적”이라며 일각에서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체제 논의 주장을 종북 운운하는 것에 대해 “전쟁 상태를 평화체제로 만들어 법제화하자는 것을 친북, 종북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을 계속 하자, 즉 분단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병장 제대도 어려운 50년 전에 일반병으로서 육군 하사까지 진급해 모범 군인이자 특등사수로서 소화기 분대장을 맡았다”며 “평화체제 구축하자고 하면 종북이니 빨갱이라고 하는 그들은 본인은 물론 자식까지 군대도 안 보내고, 누억의 돈을 쌓아놓고 여차하면 해외로 달아날 안전장치속에서 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6.25 전쟁의 결과나 1994년 전쟁위기 때 미국 측의 분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극과 참화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전쟁이 나면 온 민족이 멸망하는데 많은 국민들이 심각한 불감증에 걸려, 일종의 마취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개탄했다.

“평화체제를 위한 대화 절실.. 분단냉전세력 정신 차려야”

한반도 긴장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 일각에서 ‘비확산’ 등을 목표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오 고문은 이 점을 주목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북이 핵을 외국으로 확산하지 않는 전략을 존 케리 등 미국의 새로운 외교팀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핵을 확산하지 않고 능력을 개선하지 않고 증산하지 않는 3NO(No export, No better, No more) 정책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북미 및 남북 간 대화를 위한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미국 내의 군수산업, ‘스타워즈’의 후신인 MD로 먹고살며 한국에 군수물자 시스템 팔아서 천문학적 돈을 벌어가는 자들, 그리고 한국의 택도 없는 강경론자들”을 평화체제로 가는 걸림돌로 지목하며 “박근혜 대통령도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고문은 북미 간, 또는 남북 간 대화를 지지하면서도 대화의 목적과 의제에서 ‘평화체제, 평화협정’이 반드시 들어가야 함을 강조했다. “만나서 악수하고 웃으며 밥 먹고 헤어지는 대화로는 불안과 긴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미 1953년 정전협정 조인 당시 당사국 간에 3개월 내에 정치대화를 통해 정접협정을 대체할 평화체제를 논의하기로 했으며, 6.15 및 10.4남북공동선언에서도 이런 내용을 잇고있다”며 “특히 10.4 선언에서는 상호내정불간섭,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 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손질 등을 남북의 최고 정치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가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즉 평화협정 논의가 일방의 정치공세가 아니며, 새삼스러운 주장도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 상호 간에 험악한 말 공방이 오가고 남측 내에서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협정 논의 주장을 ‘종북’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오 고문은 진보진영과 시민사회 등의 역할을 강조했다.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서는 냉전잔재, 특히 냉전의식을 넘어서야 하는데 진보진영이 이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진보진영이 내분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극도의 위기를 맞으면 함께 살기 위한 지혜도 생기는 법이다. 진보진영이 여러 이견과 감정적 차이를 넘어 손을 잡고 지혜를 모으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종렬 상임고문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고문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이승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