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0452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가게 됐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기게 됐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나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기상 전화벨이 울리기 훨씬 전부터 남편이 분주하다. 소풍 가는 어린아이마냥 마음이 들떠서 미리 준비를 다 마친 듯하다. 낚시 못지않게 좋아하는 골프를 치러 가기 때문인가 보다. 남편은 "골프는 소위 '부르주아 운동'이기 때문에 공산국가에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호기심 많은 남편은 도대체 공산주의 국가의 골프장은 어떻게 생겼을지 여행 떠나기 전부터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평양에도 골프장이 있다니

    

 평양골프장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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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분 남짓 평양시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니 '평양 골프장'이라는 곳이 나온다. 재일 동포들이 세운 골프장이라는 것 같다. 너무나 한산해 아무도 없나 싶었다. 그런데, "미리 연락을 받았다"며 이곳 책임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의 첫인상은 서글서글했다. 그는 우리를 인도해 클럽하우스로 데려갔다. 남편은 "라커룸에 적혀있는 회원들의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골프장 회원들이 대부분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아닌가 싶다"고 한다. 

 

안내 데스크에는 어디선가 봤을 법한, 마음씨 좋게 생긴 아줌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두 분 다 치실 겁네까?" 


나는 골프를 치는 것보다 얘기하고 노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도 자기도 쳐 보지는 않았지만 그럴 것 같다고 한다. 한편, 책임자 아저씨는 남편에게 맞을 만한 골프채를 이것저것 고르고 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얌전한 캐디 아가씨가 카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티 박스에 갔다. 남편은 소위 말하는 '대통령 골프'를 치게 될 듯하다. 드넓은 골프장에서 혼자 친다. 설경이와 만룡 안내원, 운전수 당원 아저씨와 나, 그리고 캐디 아가씨까지 다섯 명의 수행 비서를 옆에 데리고서 말이다.

    

우리 안내원들은 "골프 구경은 처음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은 혼자만 치는 것이 미안한지 한 홀 한 홀 칠 때마다 골프의 규칙에 대해 설명한다. 남성들은 마치 자기가 치는 것처럼 즐거워한다. 그때, 운전수 당원 아저씨의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이다. 자기도 한 번 해보면 안 되겠느냐며 골프채를 잡더니 공을 놓고 휘둘러 본다. 공을 맞히지도 못 했다. 몇 번 더 해보더니 이내 포기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을 참느라 혼쭐이 났다.


설경이의 작은 소망


 평양골프장 캐디와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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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골프에 집중하는 동안 설경이와 나는 지칠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딸과 엄마가 나눌 법한 솔직한 이야기들이었다. 설경이는 영리하고 똑똑했다. 게다가 앞날에 대한 비전도 가슴에 꼭 품은 아이다. 설경이는 속이 깊고 따뜻해서 내 깊은 감정도 헤아려가며 이야기를 받아준다. 집에서 맏딸로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착한 딸임이 분명하다. 이런 아이가 자신이 품고 사는 희망을 다 이룰 수 있기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제가 말입네다. 세계가 좁아진 이 시대에 태어나서 영어를 전공으로 공부했는데, 언젠가는 외국을 가봐야 되지 않겠습네까?" 

"물론 그래야지. 우리 집에도 꼭 오고!" 


나는 설경이의 말에 큰 소리로 맞장구쳤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암담한 현실이 서로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낀다. 어서 빨리 북한과 미국이 수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설경이가 올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남과 북의 지혜롭고 현명한 아이들이 과거에 엉킨 원망과 증오를 걷고 민족의 매듭짓기를 향해 서로 너그러운 사랑으로 포옹하고 다독여 하나가 되는 장면 또한 머릿속에 그려졌다.

 

 평양골프장에서. 왼쪽이 설경이 그리고 오른쪽이 만룡 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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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나이스 샷!"이라는 캐디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캐디 아가씨는 의외로 영어를 쓴다. 아마 우리가 미국에서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이 남한의 캐디들과 상당히 흡사하다. 복장도, 그리고 그린 위에서 공을 원래 지점보다 약간 더 홀에 가깝게 놓고서는 남편을 쳐다보며 살짝 웃는 애교 섞인 행동까지 모두.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남편과 캐디는 그린 위에서 연신 웃는다. 순간, 나는 이곳이 북한이라는 것을 또다시 망각했다.

    

몇 홀을 지나자 앞에 다른 팀이 골프를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외교관이나 비즈니스맨인 것처럼 보인다. 남편이 다가가 영어로 "혼자 치고 있는데 당신들을 지나쳐도 괜찮은지..."라며 양해를 구하자 선뜻 괜찮다며 허락한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안내 데스크 아줌마가 저만치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클럽하우스 식당에 우리의 점심 식사가 준비돼 있다고 알려주려나 보다. 그때, 우리 카트를 보더니 헐레벌떡 뛰어온다. 식당에는 크고 싱싱한 조개구이와 생선 튀김, 그리고 나물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다. 아줌마가 뛰어와 우리를 반길만 하다 싶었다. 오랜 시간 설경이와 얘기를 나눠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특히 남포에서 가져왔다는 조개는 맛이 참 좋았다. 때문에 두 접시를 더 부탁했다. 모두들 할 말도 잊어버린 것이었을까. 일행들은 음식 맛에 심취한 표정이었다. 

   

그곳 사람들과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또 다른 만남을 향해 자동차에 오른다. 남편이 캐디에게 손을 흔들며 못내 아쉬워한다.

     

평양 사람들의 하루, 그리고 그들의 삶

 

 평양의 차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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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오는 길이 그새 눈에 익숙하다.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가는 아줌마도, 모택동 모자를 쓰고 가는 아저씨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새 구두를 신은 듯 어색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소녀들도... 모두 각자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이 사람들의 겉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과, 걱정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느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리라. 하느님은 이들에게 나와 똑같은 육체를 빚어주시고 영혼을 불어넣어 주신 뒤 "보기 좋았더라"라며 감탄하셨으리라. 내 영혼의 맑은 눈으로 보니 '철통 보안'의 두껍고도 단단한 강철담도 맑디맑은 연못 속처럼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맑고 따스한 빛이 관통해 내 영혼을 달군다.

   

우리가 탑승한 차량은 평양 기차역을 지나간다. 예전 흑백 사진 속의 멈춰 있었던 광경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던 삶의 희로애락들이 알알이 흩어져 움직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호텔 앞에 도착하니 어느새 우리 동네 경비 아저씨마냥 친숙해진 벨보이 아저씨가 달려와서 반갑게 문을 열어준다. 달나라보다도 낯설었던 이곳의 모습과 상황들이 이제는 늘 함께 했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작은 눈동자로 사물을 보는 것은 역시 한계가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니 이 세상 모든 것을 단번에 품어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평양우동과 짜장면... 상상이나 해보셨나요

   

 평양우동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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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호텔 앞, 소위 '먹자골목'이라고 할 수 있는 식당 거리를 구경했다. 각양각색의 식당들이 구색을 갖추고 양쪽 도로변에 쭉 늘어서 있다. 많은 식당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순두부집' '짜장면집' '불고기집' '흑맥주집' '단고기(개고기)집' '술집' '서양요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간혹 '평양 우동집' '창광산 국수집' '사계절 식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식당이 눈에 띈다.

    

식당들은 한산해 보인다. 설경이는 "지금은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없고, 저녁 때가 되면 늦게까지 연다"고 설명한다.

    

같은 민족이 아니랄까봐 이곳 남성들도 퇴근길에 동료들끼리 늘 한 잔씩 술을 걸치고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점이 아내들의 단골 '바가지' 메뉴란다. 설경이는 "남자 친구도 친구를 좋아하고, 같이 술 마시는 분위기를 즐겨 벌써 저도 바가지를 긁는다"고 설명해준다. 


▲ 평양의 먹자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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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말해 주는 설경이의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이자니 나의 표정 관리가 잘 되지않아 당황스럽다. 내가 마음대로 정해 놓은 북한 사람들의 생활 계획표 속에는 이런 상황은 없었다.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는 부분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내 마음은 매일매일 폭풍 속에 떠 있는 돛단배마냥 출렁인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이면 잔잔해지려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목에 '꿀빵' '남새빵' '지짐'이라고 써 놓은 작은 스낵 부스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참 정겹다. 배낭을 멘 아줌마가 빵을 사고 있다. 그러고는 뛰어가듯 걸어간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터질 듯한 배낭이 나비마냥 팔랑팔랑 날아간다.


절도 있는 그녀의 손동작

 

 여성 교통 안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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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창당기념일이 임박해 오는가 보다. 이날은 아침부터 평양시내 곳곳에서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색상의 한복 때문에 시내가 온통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아름다웠다.

    

차들도 많이 다닌다. 평양에 와서 보고 느낀 것들 중의 하나는 거리 위의 차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도로에는 어김없이 '여성 교통 안전원'이 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평양의 명물로 꼽힌다는 여성 교통안전원. 이들이 교통 정리를 하는 모습은 마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 같기도 하다. 또한, 절도있는 손동작은 마치 거리의 자동차들을 데리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기도 하다.

    

남편이 여성 교통 안전원에게 다가가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다. 머뭇거리던 여성 안전원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지금은 근무시간 이라서 그럴 수가 없습네다. 규정 위반이라서..."


'규정 위반'이라는 여성 교통 안전원의 말에 남편은 얼른 인사를 하고 물러섰다. 말하는 교통 안전원의 표정에서 '그렇게 해 드리면 좋을 텐데...'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교통정리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 우리는 인도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설경이가 "저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습네까?"라고 묻는다. 우리가 계속 구경을 하고 있자 교통 안전원이 다가와 "저... 혹시 교대시간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는 얼른 그곳을 떠났다. 근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를 배려해 준 여성 교통 안전원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타본 북한 지하철... 어떻게 생겼을까

 

 평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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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하철을 한 번 타 보기로 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내 '고소공포증'을 유발한다. 마치 놀이공원의 아찔한 놀이기구를 탄 듯. 낭떠러지의 절벽에 매달린 듯한 서늘한 가슴으로 내려갔다. 


다 내려와 보니 내 눈앞에는 수십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견고한 기둥과 화려한 장식의 지하철 승강장이 나온다. 은은한 불빛 속에서도 벽화와 벽에 붙어있는 조각들이 시선을 집중시킨다. 웅장한 어느 동굴 안을 구경하듯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역들이 이렇게 화려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리에게 제일 멋진 역을 보여 주지 않았나 싶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것만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신문을 보고 있다. 어두침침한 곳에서 눈들을 신문에 고정시켜 놓고 정신없이 읽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많이 쓰는 것을 보니 삶을 대하는 마음이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보인다. 얼핏 보니 제호가 <로동신문>이다. 


 지하철안. 서양인 승객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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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안. 사진을 찍으려하자 아기 엄마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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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안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이 타시더니 다른 곳에 빈자리가 많음에도 출입문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고생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짜고짜 "좀 일어나라우"라고 한다. 여학생이 군말 없이 "네"하며 벌떡 일어난다. '저 할머님 지하철 막말녀한테 걸리면 어쩌시려고'라고 생각하며 남편을 쳐다봤다. 그러자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웃음을 짓는다.


서너 정거장을 지난 후에 지하철을 갈아탔다. 이번 전철 안에는 서울의 출퇴근 시간처럼 승객들로 꽉 차 있었다. 이 와중에 남편이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고맙게도 한 아기 엄마가 아기의 얼굴을 카메라 쪽으로 향해 준다.


"녀사님! 춤 실력이 대단하십네다"


 개선문 광장에서 춤추는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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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지하철역처럼 우리는 떠밀리듯 내렸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면서 내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색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쭉 웃으며 쳐다본다. 간신히 지하도를 나와보니 이 지하철역이 유독 붐볐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광장 곳곳에, 놀이 공원 앞에는 주말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행 첫날 지나갔던 '개선문' 앞 광장이다.


광장 곳곳마다 포크댄스를 추는 모습들이 일사불란하다. 우리 일행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춤추는 광장으로 향했다. 그 큰 광장에는 춤추는 남녀 대학생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설경이의 권유로 포크댄스 대열에 합류했다. 


 개선문 광장에서 춤추는 대학생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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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댄스가 끝난 뒤 귀가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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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교생 실습을 나왔던 여 선생님이 포크 댄스를 가르쳐 주던 게 생각났다. 흥에 겨워 창피한지도 모르고 우왕좌왕 따라 췄다. 마음은 원하고 있으나 몸이 잘 따라와 주지 못해 춤추는 다른 학생들에게 폐만 끼친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다. 일부는 우리의 엉거주춤한 춤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망신스러워 얼른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설경이는 쫓아오면서 "녀사님! 춤 실력이 대단하십네다. 많이 춰 보신 실력입네다"라며 놀려댄다. 

    

이런 설경이의 놀림에 맞장구를 치면서 한마디 거들 것만 같은 남편을 쳐다보며 두 눈을 찡긋했다. 내가 어려서 국가 사절단으로 외국을 돌아다니며 춤을 췄던 일이나, 하나밖에 없는 내 언니가 무용교수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싶었다. 남편은 그 의미를 알아차린 듯 근질근질한 입을 단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보채는 아이 때문에 부부는 옥신각신... 북한도 똑같네

 

 서커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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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장에서 10분 남짓 나오니 멋진 공연장이 나온다. 북한의 교예(서커스) 공연장이란다. 북한은 어려서부터 교예에 재능있는 아이들을 선별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있으며, 교예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종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실력도 세계 최고라서 수많은 국제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한단다.    


이날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공연장 앞에는 교예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 지방에서 단체로 온 것 같기도 했다. 가족 단위가 많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한 부모는 교예 포스터를 가리키며 아이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설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빨리 보러 들어가자고만 한다. 아빠가 보따리에서 과자 봉지를 꺼내더니 "이 과자 먹으면서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보채는 아이를 다독인다. 엄마는 "아이 버릇 나빠진다"며 과자 봉지를 다시 보따리에 넣고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며 아이에게 뭐라고 한마디 한다. 그러자 아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부부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긴 듯하다. 보채던 아이가 자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언성을 높이자 보채던 것을 뚝 그치고 엄마 아빠를 말린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겪고, 흔히 마주했던 모습은 새삼 사람 사는 정겨운 냄새로 푸근하게 다가온다.

    

교예장 안은 바깥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고, 멋있게 꾸며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뇌리에 박혀 있는 '서커스'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서글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마 서커스를 주제로 한 영화나 이야기들은 어느 하나 다를 바 없이 서글픈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스토리에서 나오는 서커스단의 어설픈 천막 공연장 또한 그 서글픔을 몇 배로 증폭시킨다.

    

그런데 이곳 북한 서커스단은 이런 내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공연장도, 단원들도 최고의 수준이며 교예 배우들은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단다. 배경 음악도 달랐다. 오케스트라가 배경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있다. 


두 시간가량의 공연 시간 동안 우리는 수준 높은 기술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묘기들 때문에 숨 한 번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긴장했던 탓인지 공연장을 걸어나오는 순간 현기증이 난다.

    

바깥 공기를 마시고 난 뒤에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라지만 저토록 어렵고 위험한 동작을 최고의 수준으로 익히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땀을 흘렸을지 상상이 된다. 공연한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요즘 시대에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귀한 공연을 봤음은 틀림없다.


다음날은 북한에서 맞는 첫 주일이다. 내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관광 일정 중 하나인 평양의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간다. 그리고 교회에 가기 전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궁전'을 관람한다고 한다. 


평양의 교회에서 예배를 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내일이 너무나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