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1914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가게 됐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기게 됐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나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일요일이다. 교회에 가기 앞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보존된 '금수산 궁전'을 먼저 참관한다고 한다. 전날 밤, 설경이는 "가능하면 단정한 옷차림을 부탁한다"고 일러줬다. 마침 교회에 가기 위해 준비해 온 정장이 한 벌씩 있어 다행이다.

 

설경이가 양복을 입은 남편을 보더니 "야! 정말 멋있습네다. 아주 위신 있어 보이십네다"란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그동안 남편은 골프 모자를 눌러쓰고 덜렁거리며 다녔다. 이날 정장을 입은 남편을 보니 내 눈에도 조금은 차분해 보인다.

 

엄숙한 분위기의 금수산 궁전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궁전' 앞에서 남편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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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산 궁전은 오전 9시부터 참관할 수 있으며 목요일과 일요일에만 대중에 공개된다고 한다.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귀빈 대기실로 안내됐는데,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서양인 관광객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동양인은 우리 둘뿐이다. 오전 9시가 되면 우선 외국관광객들이 먼저 입장하게 된단다. 평양에서 숱하게 봤던 중국 관광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는지, 아니면 일반 북한 주민들과 함께 입장하는지 의문이다.

 

대기실을 나와 무빙워크를 탔다. 끝도 없이 한참 동안 가는 긴 복도. 복도 주위에는 대리석 장식의 벽화와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본관까지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카메라뿐 아니라 모든 지참물을 보관소에 맡긴 뒤 금속 탐지기를 통과했다. 이어 살균실 같은 곳(사방에서 센 바람이 나왔다)을 통과하니 시신이 안치된 메인 홀이 나온다.

 

주위의 어두운 불빛과 대조되게 시신대를 환하고 화려하게 비추는 조명, 그리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가 참관객을 저절로 숙연하게 만든다. 내 전공이 음악인지라 자연스레 음악에 관심이 갔다. 진취적인 리듬에 화려한 멜로디, 그리고 적당한 템포와 은은한 음향 조절이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속삭이듯 설경이에게 물었다.

 

"지금 나오는 저 연주곡이 뭐야?"

"<김일성 장군의 노래>라고 하는데, 원래 박자보다 느린 속도로 편곡된 연주 록음입네다. 김원균이라는 음악가가 작곡했는데 우리나라의 애국가도 그 분이 작곡했습네다."

 

어떤 노래인지 노랫말과 함께 원곡을 들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외국 관광객들 뒤로 조총련계 재일교포 학생들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관 주위를 돌며 정중히 절을 한다. 일부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서양인 관광객들도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시신 주위를 돌며 참배한다. 자유분방한 그들이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오열하던 평양시민의 모습... 진실 아니었을까

 

 모란봉 극장에서 바라 본 김일성 주석 동상.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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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홀을 나와 그 옆에 있는 유물 전시관을 참관한 후 다시 무빙워크를 타고 나왔다. 북한 주민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남성들은 양복 또는 인민복을 입었고, 여성들은 대부분 한복 차림이다. 어느 누구 하나 말을 하거나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숨소리마저 조심하는 것 같은 숙연한 느낌이다. 이들의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에서 그리움의 연민 속에 애절한 참배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김일성 주석 서거 당시 오열하면서 쓰러지는 평양시민의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로 봤다. 그때 나는 '저 모습은 진실일 수가 없다. 틀림없이 가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모든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지금 내가 이곳 평양에 와서 느끼는 것은 북한 주민은 진심으로 김일성 주석을 존경하고 있으며, 김일성 주석의 서거 당시 평양시민의 통곡하는 모습은 아마도 진실이었을 것이라 는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 행렬 속에 가슴 치며 오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았는가.

 

밖으로 나오니 건물 앞 광장을 장식하는 인공 호수 위에 백조 한 쌍이 떠다닌다. 위축됐던 심장이 활짝 펴진다.

 

반신반의로 향한 북한 교회

 

 교회가는 길에서 본 평양시내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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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교회를 방문하게 됐다. 떠나기 전 남편은 미국 여행사에 "아내가 기독교인인데 평양에도 교회가 있다고 하니 일요일에 예배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알기로 북한에서는 종교 생활이 금지돼 있고, 전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알고 있다. 게다가 종교를 가졌다가 적발이 되면 감옥에 간다고 들었다. 기독교인이 있긴 하지만, 비밀리에 지하 교회서 예배를 본다고 들었다.

 

나는 과거 평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독교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었는데, 공산주의가 들어오면서 기독교 활동이 완전히 소멸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부부는 평양에 교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외부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라 반신반의하면서 주일 예배를 위해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북한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평양의 교회에 간다고 하니까 주위 사람들은 그 교회가 진짜 교회인지 가짜 교회인지 잘 살펴보고 오라고 부탁했다. 때문에 일종의 사명감을 안고 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막상 이 나라에 와서 보니 내 나름의 예리한 더듬이가 상황 판단에 착오를 많이 일으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점점 상실된다.

 

 교회로 가는 평양시내 길. 잔디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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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교회든 가짜 교회든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나는 적어도 진심으로 내가 예배드리는 그 시간만큼은 그 자리에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믿는다. 때문에 그 예배당에서 기도를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역사적인 임무 수행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평양 시내에 있는 봉수교회로 향했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금수산 궁전에 들른 데다 그곳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초조한 마음으로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회로 가는 주택가의 길이 도로수리 공사로 막혀버렸다. 사실 말이 공사지 내 눈에는 동내 주민 몇 명이 나와 험하게 망가진 집 앞 도로를 임시 방편삼아 땜질하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아줌마가 집에서 들고 나왔는지 양동이에다 시멘트를 개고 있다. 그 옆에서 한 아이가 시멘트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며 논다. 심각한 공사도 아니고,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놀이 삼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한데, 마치 큰 공사라도 하는 것처럼 자동차를 보더니 놀던 아이까지 나와 막으며 지나갈 수 없단다. 단호한 얼굴로 손짓까지 한다. 한 아저씨가 어디선가 돌을 가져오더니 금지구역 표시를 하는 것마냥 도로를 가로질러 가져온 돌들을 띄엄띄엄 줄지어 놓는다.

 

어떻게라도 얘기해서 살짝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른바 '당원'이라는 운전수 아저씨는 차 밖으로 나가 그 사람들과 몇 마디 나누고는 끽소리도 못한 채 덜커덩덜커덩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우리 차는 이리로 저리로 교회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맞닥뜨리고 돌아서 가는 길은 마치 산동네 재개발 구역처럼 허름하고 누추했다. 골목길 주택가의 초라한 모습에 혼미해져 버린 머릿속을 진정시키느라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어디를, 무슨 목적으로 가고 있는지 잊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북한 교회입니다

 

 정면에서 바라 본 평양의 봉수교회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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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잿빛 안갯속에 교회가 위엄이 서려 있는 웅장한 성처럼 보인다. 주위 환경과 어색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 마치 인쇄체로 써 내려가던 글귀에 필기체로 몇 단어를 써 놓은 듯한 어울림이다. 우리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교회에 도착했다.

 

우리가 닿았을 때, 마침 예배가 끝났나 보다. 사람들이 우르르 계단을 내려온다. 설경이가 갑자기 뛰어가더니 어떤 아주머니 한 분에게 정중히 인사를 드리며 다정하게 얘기를 나눈다. '조선 국제려행사'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의 어머니란다. 그 친구는 우리 일행이 오늘 봉수교회에 간다니까 "혹시 우리 엄마를 보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단다. 그 친구도 요즘 유럽 관광객들을 안내하느라 집에 못 간 지 오래됐다고. 설경이 친구의 어머니는 이 교회 성가대서 피아노를 치신다고 한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평양 봉수교회 성도들. 김일성 주석의 배지를 달고 있지 않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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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빛이 환하다. 가짜 교회에서 가짜로 예배를 보러온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꾸밈이 없다. 얼굴빛이 밝고 생기가 넘친다. 이날 이곳에 예배를 드리러 온 외국 관광객은 우리밖에 없는데, 설마 이 예배 시간도 맞추지 못한 우리에게 가짜 성도들을 출연시키지는 않았으리라.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북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왼쪽 가슴에 달고 다니는 '김일성 주석 배지'를 거의 모든 신도들이 달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교회에 올 때는 배지를 달지 않아도 되는가 보다.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이 준 선물

 

 평양 봉수교회 담임 목사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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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예배는 끝났지만 예배당 안에서 기도라도 하고 갈 마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목사님께서 예배당 안에서 나오시다가 우리를 보시고는 반갑게 맞는다. 목사님께서 자상하게 교회를 안내해 주신다. 이 교회 건물의 땅은 국가에서 제공했고, 기금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남한에 있는 교회들이 보태줘 원래 있던 교회 건물을 증축하고 설비를 더 갖췄다고 한다. 교회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으며 음향 시설과 영상 시설도 현대식으로 아주 잘 갖춰놓고 있었다.

 

목사님은 "많은 남한 사람들도 이 교회에 와 예배도 드리고, 찬양도 하고 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교회에 와 있는 것처럼 친근하고 마음이 편해진다.

 

 봉수교회에서 기도하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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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진을 찍느라고 교회 안 여기저기를 다니는 사이, 나는 의자에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공산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의 한복판에서 예배를 보다니! 눈물이 고인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이 땅이 열리고 남과 북이 하나 돼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없었다.

 

목사님은 내가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처럼 친근하다. 생각해보니 그분도 북쪽 사투리를 쓰시곤 했다. 목사님은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에서 번역한 성경과 찬송가책을 선물로 주셨다. 성경을 우리말로 풀이해 놓아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목회 활동이 궁금했다. 목사님께 말을 걸었다.

 

"전도는 어떻게 하시나요?"

"주로 개인적으로 많이 합네다. 우선 열여덟 살 미만의 아이들한테는 (전도를) 못하게 돼 있습네다. 왜냐하면 아직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안 되기 때문입네다. 전도는 주로 봉사활동을 통해 하지요.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사람들은 자연히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니..."

 

동양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

 

 평양 봉수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부터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선물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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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말씀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교회에도 다 해당되는 말이다. 아무리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실천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은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나도 신앙과 생활이 분리돼 있는 그런 부류의 기독교인이 아닐까'라고 반성해 본다.

 

평소에도 '실천하는 신앙'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평범한 진리를 "진짜 교회 인지, 가짜 교회인지" 헤아려 보러 온 이 교회에서 깨닫게 되는 것인지...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도 가정 교회가 꽤 있다고 한다. 예전부터 믿어오던 가정들은 꼭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가정에서 예배를 본다고 한다.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이 평소에 품고 있던 폭탄 발언을 해버렸다.

 

 평양 봉수교회 담임 목사님과 헤어지며 교회 앞에서. 왼쪽 부터 남편, 목사님, 그리고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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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이 교회 진짜 교회 맞습니까? 혹시 가짜 교회 아닙니까?" 

 

내 머릿속에서 폭탄이 "쾅!"하고 터진 듯했다. 목사님께 너무도 죄송했다. 설사 이 교회가 가짜 교회며 이 목사님이 진짜 목사님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지 도저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질문이 아니었다. 수습이 안 되는 상황. 그런데 다행히도 목사님이 초연한 미소로 너그럽게 실타래를 풀어주신다. 목사님의 말 속에는 신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 않습네다. 하루빨리 북과 남의 교회가 한 마음으로 서로 교통하며 예배 볼 수 있을 날을 내 살아 생전 희망하며 기도할 뿐입네다."

 

그래,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런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목회를 하자니 세상의 말과 생각으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진짜 교회인지 가짜 교회인지는 북녘땅에서만 해야 할 질문이 아니다. 번지르르하게 교회의 탈을 쓰고 있는 세상의 모든 교회들에 해야 할 질문이다. 과연 내 마음의 성전은 진정 거짓 없는 아름다운 성전이라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한 때 바티칸으로부터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다는 평양. 봉수교회에서의 짧은 기도는 너무나도 강렬히 영혼에 남아 내 가슴에 파장을 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