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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변화의 성격은?
<칼럼> 양극단의 평가가 아니라 현실 인식이 우선이다 -정창현
2012년 09월 03일 (월) 00:39:39 정창현 tongil@tongilnews.com
정창현(<민족2>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지난 달 전방 군부대 시찰에 집중했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다시 경제 분야 시찰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9월 1일 김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양 창전거리에서 개업을 앞둔 해맞이식당을 돌아봤다고 보도했다. 

올해 1월 문을 연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의 ‘광복지구상업중심’(옛 광복백화점)에 이어 2번째 슈퍼마켓이다. 2009년 이후 평양에 문을 연 삼일포특산물상점을 시작으로 평양에는 대규모 슈퍼마켓과 고기 및 수산물 전문상점이 연이어 들어섰다. 국영상점과 종합시장이 아닌 ‘제3의 상업(유통)망’을 만들어 주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시장영역을 축소하는 한편 재정 수입을 늘리려는 시도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 상점의 가격은 “시장의 가격보다 눅게(싸게), 다른 국영상점의 가격보다 높게 설정했다”고 전해진다. 국영상점망을 통한 물자 공급부족으로 비싸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의 발걸음을 잡겠다는 조치다. 국가가 보장하는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안정적으로 시장보다 싸게 살 수 있다면 굳이 시장에 갈 이유가 없게 된다. 시장 가격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것이다. 김 제1위원장도 해맞이식당 내 슈퍼마켓을 둘러본 뒤 “슈퍼마켓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자면 식료품 가격을 바로 정하고 영업전략을 잘 세우는 것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 등장이후 확대되고 있는 ‘제3의 상업망’은 계획경제의 틀에서 운영되고, 시장영역의 축소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反)시장적 정책이다. 반면 국영상점망을 일부 대체하고,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과거의 경제운영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변화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경제정책의 변화 또는 반경제개혁 조치로 상반된 평가가 가능하다. 

북한 당국이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경제관리개선 조치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경제운영에서 ‘국가의 계획적이며 통일적인 지도’를 위해 내각책임제를 강화하는 한편, 공장.기업소, 협동농장 등에 ‘상대적 독자성’을 확대하려는 구상을 모색하고 있다. 계획경제의 틀을 흔들지 않으면서 생산단위의 생산성과 창발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획경제의 포기란 기준에서 보면 개혁 조치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내각책임제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당과 군에서 대외무역을 통해 얻은 수익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관행을 없애 국가재정을 내각에 집중시키는데 실패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국가재정을 내각에 집중시키는 조치는 성공할 경우 북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것이다. 

북한이 라선, 황금평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특구 확대정책은 더욱 논쟁적인 평가의 대상이다. 북한은 지난해 대외자본 유치를 위한 관계 법령을 개정했고, 지난 달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의 방중을 계기로 라선경제특구와 황금평.위화도특구를 실질 개발 단계로 진입시키기로 중국과 합의했다. 북한과 중국은 양대 특구 개발 계획 수립을 완료했고, 인프라 건설 및 인력 양성, 통관 절차 간소화 등에 진전을 이뤘다. 

라선시의 경우 시 인구(약 20만명)의 10%에 가까운 1만 8천여 대의 휴대전화가 보급됐고, 100Mbps급 인터넷망이 깔렸다. 북한은 내년 10월까지 국제상업무역중심(국제무역센터) 등 주요 건물들을 완공하고, 주택들도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특구의 운영경험을 기초로 더욱 확대된 대외개방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더 나아가 신의주-남포-해주로 이어지는 서해안벨트와 라선-청진-금강산을 잇는 동해안벨트를 경제특구로 개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외환경과 남북관계 등에 따라 개방 속도가 조절되겠지만 북한은 20-30년을 내다보며 이같은 구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경제특구가 점에서 선으로 확대되면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을 둘러싼 평가논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단기간에 정치개혁과 전면 개방에 나설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세계적 추세’를 내세우며 사회 전반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선군노선과 계획경제를 계승하고 있다.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핵 능력도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지난 달 31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외무성 비망록’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실지 행동으로 ‘용단’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지금처럼 적대 정책을 계속 유지하면 그에 대처해 우리의 핵 무기고가 계속 확대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올해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단언한 영변 경수로 건설 공사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진행해온 경수로 건설에 최근 몇 개월 동안 ‘상당한 진전(significent progress)’을 거뒀다며 “경수로 건물에 돔이 설치됐고, 그 내부에는 기기설비들이 장착됐을지 모르며 냉각시스템은 이미 갖춘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의 이같은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부정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 5년도 동일한 인식을 보였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발전은 한계에 직면”한다며 비핵화와 남북대화를 연계시켰다. 핵 포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며 6자회담에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임박한 북한붕괴론, 체제위기론이라는 ‘주관적 희망’에 빠져 북핵문제에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오히려 방관자가 되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능력만 높여줬다. 

우리 정부를 통하지 않고서는 중국, 러시아의 경협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지만 북중관계는 199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의 협력관계를 회복했다. 2000년 약 5억 달러 수준이었던 북중 무역 규모는 2011년 56억 달러로 10배 이상 늘었다. 북한 전체 무역에서의 비중 역시 20% 수준에서 89%로 크게 확대됐다. ‘주관적 희망’과 ‘현실’ 사이에 큰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관계는 북한에게 ‘상수’가 아닌 ‘변수’로 바뀐 셈이다. 

반면 최근 대선후보들은 집권하면 임기 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는 반대로 너무나 낙관적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현실을 과소평가하고 북한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양쪽의 대북인식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점에서는 동일하다. 

결론적으로 한반도평화와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 수준과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 대북인식과 정책 마련이 절실한 것이다.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 등장이후 북한의 중장년층은 사회의 변화속도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세계적 추세’를 내세우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선도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가고 있다. 

차기 정부는 대북정책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이러한 북한의 변화를 무시하거나 과대평가하지 말고, 우리의 주관적 잣대가 아니라 현실의 잣대로 평가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