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65103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나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담배와 라이터는 물론이고 카메라 등 아무것도 소지하지 말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 나서 나와 남편은 불안한 마음으로 로비에 내려갔다. 조금 있으니 다른 재미동포 예술단원들도 하나둘씩 모여 들고 있었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서로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는 남편의 성격이 발동했다. 남편은 김정남 안내원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어디를 가길래 담배도, 라이터도, 카메라도 못 가지고 간단 말입니까?"

"가 보시면 압네다."

"어디가 어딘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가본다고 거기가 어디인 줄 어떻게 압니까? 어디 간다고 설명을 해 줘야지 알지. 거참, 기가 막혀서..."

 

옆에 서 있던 우리의 일행들도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과 함께 남편의 말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답변은 여전히 "가 보시면 압네다"였다. '가 보면 안다'는 말만 반복하는 안내원, 남편은 더 이상 질문을 거두고 차에 올랐다.

 

영문도 모른 채 김일성 광장 쪽으로 향하다

 

 김일성 광장의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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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차는 열병식이 있었던 김일성 광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차들이 서 있었으며,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광장 한가운데 일렬로 줄을 선 채 다음 장소를 향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주로 외국인들이었다. 우리만 있는 게 아닌 걸 알게 되자 불안한 마음은 사라졌다. 대신 극도의 호기심이 고개를 든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우리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한 군인이 우리가 타고 온 버스에 올라 차를 샅샅이 검사하고 내려왔다. 그것도 부족해서 이번에는 금속 탐지기로 차에서 내린 우리 몸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는 김정남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조선미술박물관을 지나 대동강 변으로 안내됐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예술단 일행은 이미 마련돼 있는 우리 자리로 이끌려 갔다. 대동강이 보이는 곳에 마련된 자리, 가운데는 귀빈석이 마련돼 있었고, 그 주위에는 북한사람들이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외국사절단과 함께 그들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우리의 왼쪽에는 어느 나라 것인지 알 수 없는 군복을 입은 장교들이 북한 여성 통역군관들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곧 축포를 쏠 예정입네다"

 

 북한의 합창단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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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150명으로 이뤄진 미국 남성 합창단이 우리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합창단원들은 처음 오는 북한 땅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한 합창단원이 남편에게 "북한사람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자신들은 조지아주에서 왔는데 북한-미국 간 문화교류 증진의 일환으로 이곳 북한에 왔다고 설명했다. 남편이 "우리도 미국에서 온 예술단"이라고 설명하니 안도의 한숨과 함께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이들과 미국 얘기로 집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같은 국적을 갖고 있으니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북한에서 제2의 고향사람들을 만나니 마치 '우리집 소식'을 접한 것만 같은 반가움이 느껴졌다. 남이고, 북이고, 미국이고, 이렇게 한데 어울려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잠시 후 김정남 안내원이 나타나자 남편은 또다시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아니, 강가에 오면서 무슨 불날 일이 있다고 담배하고 라이터도 못 가지고 오게 했습니까?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곧 축포(불꽃놀이)를 쏠 예정입네다."

"아니, 그까짓 불꽃놀이 하면서 아무것도 못 가지고 오게 합니까?"

"기다려 보면 압네다."

 

남편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미국 합창단원과 조지아주에서 벌어졌던 골프대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만세! 만세! 만세!" 라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만세!" 소리를 수십 번은 한 것 같다. 우렁찬 함성에 지진이 난 듯 땅이 울린다.

 

'김정은 대장'과 함께 봤던 화려한 불꽃놀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까지 어두웠던, 북한 사람들이 앉아 있던 관람석 중앙이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곧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김정은 대장'이 수행원들과 함께 등장한다. 온 지구를 울리고도 남을 듯한 함성은 끊이지 않았다.

 

곧 이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축사를 낭독한다. 우레와 같은 함성에 귀가 먹먹해졌나 보다. 아니면 뇌의 기능이 멈춰 버렸는지 연설 내용은 '웅얼웅얼' 소리가 돼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축사가 끝나고 불꽃놀이의 시작이 선포되자 평양시내의 전기가 일제히 나가면서 순식간에 온 세상이 캄캄한 암흑으로 변했다. 어떻게 도시 전체가 동시에 불을 끌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동시에 섬뜩한 느낌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순간 우리가 앉아 있는 반대편 대동강 변에서 연이어 축포가 터진다. 여러 군데서 쉬지 않고 동시에 축포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 축포의 빛이 음악에 맞춰 대동강을 형형색색 아름다운 '불빛 무리'로 만들었다.

 

이 역시도 '아리랑 공연' 때처럼 두 눈으로만 감상할 수가 없었다. 눈을 이리저리 돌려 가면서 간신히 불빛 쇼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난데없이 대동강을 가로질러 나 있는 다리로 축포 행렬이 이어졌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가 화려한 불빛을 뿜어내며 흘러내리듯 다리 위부터 강물을 향해 불꽃송이가 무리지어 떨어진다.

 

아! 장관이다! 이런 불꽃놀이는 난생 처음이다. 이제까지 내가 본 여러 나라의 불꽃놀이 중 최고는 뭐니뭐니해도 미국의 독립기념일 때 벌어지는 불꽃놀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 내가 평양에서 목격한 이 불꽃놀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축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터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대동강 변 풍경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불꽃놀이의 또 다른 의미

 

 태양절을 축하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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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엄청난 불꽃놀이와 함께 터지고 있는 내 심장이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듯, 섬뜩한 느낌이 동시에 찾아 든다. 북한의 거의 모든 예술이 이념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이 불꽃놀이 또한 단순히 화려한 쇼나 오락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쏘아대는 이 불꽃놀이는 마치 '적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이렇게 응징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불꽃놀이가 끝나자 김정남 안내원이 늦은 저녁식사를 한단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느냐"는 남편의 빈정 섞인 질문에 안내원은 "인민문화궁전으로 간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나는 어느새 의식불명에서 방금 깨어난 것만 같은 몽롱한 기분으로 인민문화궁전 대연회장에 앉아 있다. 시원한 냉수를 한 잔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이곳은 여러 나라에서 초청돼 온 예술단들을 환영하기 위한 만찬회 자리란다.

 

웅장한 '축포 공연'의 스케일과 맞먹는 만찬회장. 옆에 있는 안내원이 "천여 명의 손님이 이곳에 와서 식사를 한다"고 귀띔해준다. 우리 테이블 뒷자리에는 미국에서 온 150여 명의 합창단들이 나처럼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귀빈석에 양형섭 인민회의 부의장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문화상(문화부 장관)이 도착해 축사를 마치자 어디서들 나왔는지 정장을 입은 몇백여 명의 남자 접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식사를 내온다.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자신의 나라를 찾은 외국의 예술단원들을 정성껏 대접하려는 따뜻한 노력이 마음에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테이블마다 차림표가 준비돼 있었다. 처음 보는 북한 요리들이었다. 전통 음식이 코스별로 나오는데, 순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북녘 요리들이었다. 나는 이 음식들을 맛보며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다양성에 깜짝 놀랐다.

 

김치만 나눠 먹어도 통일이 빨라질 텐데...

 

 우리 부부가 받은 태양절 기념연회 초대장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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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부부가 가장 감동한 음식은 김치였다. 붉은색이었지만 고춧가루는 보이지 않은데다 치장도 하지 않았다. 배추와 소금, 고춧가루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간 게 없어 보인다. 자극적인 양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김치를 맛보니 입안의 침샘이 요동치며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종지째 국물을 들이켜고 나면 시원한 미소가 뒤따랐다.

 

이를 눈치챈 접대원이 연신 김치를 가져다준다. 남편이 네 종지를, 그리고 나는 세 종지나 비워 버렸다. 아! 남북의 동포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 김치만 나눠 먹어도 통일이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을텐데….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 앉아 쉬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오늘 있었던 열병식 녹화 중계를 방영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볼륨을 낮춰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좀 답답했다. 그저 예전에 한국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대형 트럭 위에 미사일이 얹혀 지나가는 장면들이 나오고 있었다.

 

항일유격대... 나도 그들처럼 할 수 있을까

 

 항일 유격대 복장을 한 유적지 해설원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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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내 관심을 끌었던 장면은 열병식 맨 처음에 등장한, 치마를 입은 여군들이었다. 그런데 군복이 요즘 군인들 같지 않아 김정남 안내원에게 물었다.

 

"저 여군들은 어떤 군인들인가요?"

"항일유격대원들을 재연한 겁네다."

"항일유격대라니요?"

"아니, 항일유격대를 몰라요? 신녀사님은 조선 사람이 아니고 미국 사람입네까? 정말 모르십네까?"

"네, 정말 모르겠는데요."

 

김정남 안내원은 한숨을 쉬더니 차분히 설명을 해준다. 일제 치하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무장을 하고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군대에 속해 있었던 여성 항일전사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도 당시 총대를 메고 일본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였던 여성들이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내가 만약 그때 태어났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나라의 독립을 갈구하면서 전투를 치렀던 그분들을 떠올리며 숙연한 마음으로 방에 올라갔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