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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싫다' 분명히 말하고 국민 심판 받아라

[한반도 브리핑] 관광 재개의 조건인가 거부의 조건인가

기사입력 2010-03-10 오전 10: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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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이 되면 만물이 생동하기 마련이다. 겨우내 움츠려들었던 나무들도 새싹으로 옷을 갈아입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도 기지개를 편다. 산들은 신록으로 덮이고 회갈색의 수풀은 푸르름으로 살아난다.

상춘객이라고 했던가? 봄이 오면 봄을 맞으러 산과 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지만 아직도 금강산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조선의 명산 금강산이 봄을 맞아 새로 태어나고 있건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기막힌 현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남북간에 관광재개를 위한 협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 탓이다. 북한은 관광 재개를 당장 하자는 입장이고 남측은 이른바 3대 조건의 진전이 없는 한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일견 남북의 팽팽한 입장 차이가 그런 대로 일리 있어 보이고 따라서 상호 양보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광 재개의 조건을 둘러싼 남북의 입장차이가 아니라 관광 자체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입장차이가 더 본질적인 듯하다. 북은 시종일관 관광 사업을 재개하고 싶은 반면 남은 어찌됐든 관광 사업을 재개하고 싶지 않은 심산이다. 관광재개 자체에 동의하고 그 조건을 둘러싼 논란이 본질이 아니라 관광 자체에 대한 찬반이 지금 남북의 기싸움의 본질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관광 재개는 하겠지만 이를 위해 북이 반드시 3가지 조건을 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해 하반기 이후 진행 과정을 보면 기실 남측의 속내는 관광 재개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고 그 구실로 3대 조건을 내걸고 있을 뿐이었다. 쟁점이 되고 있는 3대 조건이 관광 재개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관광 재개를 거부하기 위한 조건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 지난 2월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눈앞에 펼쳐진 북녘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3대 조건 따져보니…

우선 첫 번째 조건인 진상조사부터 따져보자. 잘 알다시피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이 북측 군인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중단됐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통일부는 관광 중단을 발표했고 북은 명승지개발지도총국 명의의 담화를 통해 바로 다음 날 유감을 표명하고 사건 개요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공동 현장조사를 요구했고 북은 군사통제구역이므로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북측 군부 관할에 있는 피격지점 조사를 공동으로 요구한 남측의 주장은 처음부터 무리한 것이었다. 남측 관광객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체류할 수 있는 구역은 금강산관광특구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점은 북한군이 실탄경비를 서는 군사통제구역이다. 따라서 남측이 특구가 아닌 군사구역에 들어가서 현장조사를 한다는 것은 북으로선 수용 불가능한 요구였던 셈이다.

출입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북이 위반했다는 주장 역시 그 규정이 관광지구 안에서만 유효한 것임을 안다면 처음부터 억지 주장이다. 역지사지로 북한 주민이 설악산 관광을 왔다가 구역을 벗어나 군부대에 들어와서 사고가 났을 경우, 북이 공동 현장조사를 하겠다면 남측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 통일부도 현실적 사정을 인지하고 2008년 말부터는 슬그머니 현장조사가 아니라 현지조사로 입장을 바꿨고 지금은 진상조사 요구로 되어 있다.

무리한 공동 현장조사가 아니라면 지금 통일부가 요구하는 진상조사는 사실상 거의 충족되어 있다. 이미 북이 자체 조사를 통해 개요를 밝힌 바 있고 현대아산과 통일부에 사건 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달 8일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에서 북은 피격지점은 아니지만 현장 방문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측이 요구하는 진상조사는 상당부분 진전되었고 진전될 수 있는 것인 셈이다.

두 번째 조건인 재발 방지를 보자. 이미 북은 사건 발생 직후 유감을 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남북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다시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남북이 제도적으로 보완하자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공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재발방지책은 남북이 지속적인 회담과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난달 실무회담에서 남측이 요구한 변호인 접견권 보장이나 출입체류에 관한 합의서 보완 및 출입체류공동위원회 설립 등은 관광 재개를 위한 선결조건이 아니라 재개 이후 남북이 긴밀하게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안건이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신변보장 역시 이미 북은 관광객의 신변과 안전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현정은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이미 북한은 '국방위원장의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을 철저히 보장'한다고 공동보도문에 명시했다. 현 회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발언을 통해 금강산 관광객의 신변을 보장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김정일 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유일지배체제임을 굳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현 회장과 김양건 부장과의 공동보도문에 국방위원장의 특별조치로 안전을 철저히 보장한다고 규정되어 있음은 그 자체로 북에서 최고 높은 수준의 신변보장 문서임을 보증하는 것이 된다. 국방위원장의 특별조치는 북한 군 모두가 절대 복종해야 하는 교시인 셈이고 금강산 관광지구를 경비하는 군대에도 해당되는 것임은 당연하다.

이처럼 남측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는 3대 선결조건이라는 것이 기실 그 내용과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히 합의 가능하거나 이미 상당히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정작 관광 재개를 결심하지 않고 있다. 실무회담에서도 북은 단장이 직접 사망에 대한 유감표명을 다시 하고 현장조사 허용방침을 밝히고 신변안전과 재발방지가 해결되었음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남측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로 3대 선결조건만을 반복해서 주장했다.

결국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고 더욱 기막힌 것은 북이 12일 후속회담을 제의했음에도 남측은 불투명한 태도로 일정합의를 미뤘다. '사안의 성격상 한두 번 만나 합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남측 당국자의 발언이 뒤따르기도 했다.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 자체를 내켜하지 않는 뉘앙스가 분명했다.

개성공단은 되고 개성관광은 안 된다? 신변안전 때문에?

사실 관광재개를 위한 2월 8일 실무회담이 열리기까지도 북측의 일관된 회담 요구와 남측의 일관된 회담 지연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미 지난 해 8월 김정일 위원장의 보장 하에 관광 재개를 위한 합의문이(8.17) 채택되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민간사업자간 합의이므로 당국간 합의가 필요하다'며 수용을 유보했다. 당국간 합의라는 또 하나의 요구를 제시한 것이다.

다시 북은 11월 8일 아태 리종혁 부위원장을 통해 현정은 회장에게 '당국대화를 공식 제의'하면서 통일부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통일부는 또 다시 '당국 채널 제의가 아니므로 공식 대화제의가 아니다'며 거절했다.

급기야 북은 1월 14일 판문점 채널을 통해 통일부 앞으로 실무회담을 제의했고 이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아태가 공식 기관이 아니라면서 떨떠름한 입장을 견지하다가 통전부 앞으로 회담 일자를 수정제의하면서 2월 8일 실무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다.

남측이 요구하는 3대 조건을 협의하고 관광재개를 논의하자는 북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회담요구에 대해 시종일관 이명박 정부는 이런 저런 구실과 이유를 걸어 회담을 뒤로 미루고 주저하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그리고 정작 회담이 열렸지만 이명박 정부는 예의 3대 원칙만을 북의 주장과 요구에 대한 대안은 없는 채로는 관광 재개가 불가하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

저간의 과정과 이른바 3대 조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보면 과연 관광 재개의 의지가 있는가를 근본에서부터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애초부터 금강산 관광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지난 10년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잘못된 정책으로 규정하고 북한과의 사업과 접촉을 '퍼주기'와 '끌려다니기'로 비판하는 정부로서는 금강산 관광 사업 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된 퍼주기의 전형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관광 중단을 단행한 이명박 정부는 아무리 북이 유연하고 적극적인 입장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더 높은 요구와 더 어려운 조건을 자꾸 내걸어 결국은 관광재 개를 거부하고 마는 것이었다.

관광 사업 자체를 혐오하고 부인하는 이명박 정부의 속내는 개성관광의 경우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금강산과 달리 개성 관광은 사망 사건이 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관광 중단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남북관계의 악화 과정에서 북이 2008년 '12.1 조치'를 통해 군사분계선의 육로통행을 제한·차단되면서 북이 중단을 선언한 것이었다. 따라서 개성관광은 북이 스스로 12.1 조치를 해제하면 자동으로 재개돼야 하는 사안이었다.

결국 북한은 현 회장의 방북을 통해 아태와의 공동보도문에서 '군사분계선 육로통행이 정상화되는데 따라 개성공단을 곧 재개'한다고 합의했고 곧이어 8월 20일 12.1 조치의 전면 해제를 남측에 공식 통보함으로써 육로통행이 정상화되었다. 논리적으로라면 개성관광은 곧바로 재개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통일부는 현대아산의 개성관광 재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공식재개 통지가 없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발목잡기였다. 다시 현대는 북측과 협의를 진행해서 통일부의 요구대로 북측 명승지개발지도총국 명의의 개성관광 재개 공식 통지문을 지난 해 9월 4일 접수하고 통일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기다리는 입장을 반복했고 또 다시 개성관광객의 신변 안전 문제를 제기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이미 개성공단은 육로통행 정상화 이후 많은 민간인이 활발하게 출입하고 있는데도 유독 개성관광에만 안전 문제를 걸어서 관광재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억류사건이 있었던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신변 안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도 12.1 조치 해제로 개성공단의 출입을 정상화하면서 정작 아무 사고도 없었고 이미 북이 육로통행을 정상화하고 관광재개를 밝혔는데도 신변 안전을 이유로 관광객 출입을 불허하는 상식 밖의 고집을 부리고 있다.

아무 사고도 없었고 북이 중단했다가 북이 스스로 푼 사안임에도 이제 와서 개성관광을 금강산 관광과 연동해서 불허하는 것은 한마디로 관광사업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럴 거라면 이제라도 이명박 정부는 관광 재개가 아니라 관광 반대라는 보다 명확하고 솔직한 입장을 밝히는 게 낫다. 관광 재개를 위한다는 말뿐인 '가면'을 차라리 벗고 관광사업 자체를 할 생각이 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라. 그래야 국민들도 헷갈리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반포용정책(disengagement)을 선명히 보고 찬반을 명확히 보낼 것 아니겠는가.

최근에야 북은 관광사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본심을 간파하고 관광 관련 계약과 합의를 파기할 것임을 선언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관광 재개를 구걸할 생각이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이명박 정부도 가면을 벗고 당당히 자신의 속내를 밝힐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