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5284&PAGE_CD=ET000&BLCK_NO=1&CMPT_CD=T0000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나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김일성 광장의 가장 중앙에 있는 '인민대학습당'은 말 그대로 인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학습당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평생교육원' 혹은 '국립도서관'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의 웅장함과 규모가 드넓은 김일성 광장을 압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 건물들을 품어 살피고 있는 듯하다.

 

평양 한가운데 있는 건 바로 인민대학습당

 

 인민대학습당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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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세계 나라들을 여행 다녀보면 중요한 광장이나 도시 중심이 되는 곳에는 정부기관이나 궁전, 기념관 등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평양 중심에는 '인민대학습당'이라는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전통 양식 건물의 우아하고 중후한 겉모습 못지않게 건물 안에도 대리석 기둥과 장식들로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

 

해설원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휴게실에 들어가니 '조선국제여행사'에서 온 다른 관광팀들도 해설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한 해설원이 여러 관광객이 모이면 한꺼번에 설명해주려는 듯하다. 한 팀이 더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휴게실 안에서 다른 팀 담당 안내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설경이의 친구이자 안내원인 다른 팀 여성 안내원을 보더니 남편이 깜짝 놀란다. 남편이 북한에 오기 전 조사하면서 봤던, '북한 여자 얼짱'으로 유명한 바로 그 여성이란다. 다시 보니 그 아가씨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다가가 "아가씨가 인터넷에서 북한을 대표하는 미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더니 몸 둘 바를 몰라하며 부끄러워한다. 설경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내 친구라니 나도 영광입네다"라고 한다.

 

 가운데가 인터넷상의 '북한 얼짱' 그리고 오른쪽은 설경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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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끼리 서로의 만남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으니 남성들도 "오늘의 만남을 훗날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는 징표로 삼자"며 사진을 찍는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사진을 찍는 남자 안내원들의 모습이 참 다정하다. 휴게실 안의 훈훈한 기운은 무슨 이유인지 모를 슬픔이 가득한 내 마음에 아롱진다.

 

해설원이 인민대학습당의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준다. 도서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에는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책들이 있었다.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직장인들, 그리고 연세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관심 분야에 맞는 정보도 찾고 책도 보고 있었다. 컴퓨터로 정보를 찾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인터넷은 아니고 북한 안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인트라넷'으로 정보들을 교환하고 있었다.

 

평양의 영어 열풍... 의외네

 

 인민대학습당 영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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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제일 인상적인 곳은 영어 학습방이었다. 여러 방에서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수많은 방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곳 북한에서도 '영어 열풍'이 대단하다고 한다. 빈자리 없이 꽉꽉 차 있는 영어 교실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지난번 원산에서 우리에게 "헬로, 헬로"라고 하던 어린 아이들, 모란봉 공원에서 맥주를 권하며 "유 프롬 아메리카? 아이 노우 잉그리쉬"라던 소풍 나온 아저씨, 영어가 쓰여 있는 옷을 입고 영어가 쓰여 있는 가방을 메고 가던 아이들, 모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어에 거부감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북한 강사도 영국식 영어가 아닌 미국식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말하자면, 'water'를 '워터'라고 발음하지 않고 '워러'라고 하는 식이다. 놀라울 뿐이다.

 

영어 학습방을 나와 열람실로 가봤다. 두 여성이 한 테이블에서 공부하고 있어 호기심에 다가가 봤더니 이들도 사전을 옆에 두고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보더니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남편과 나는 우리말로 대답할까 망설이다 그들이 영어를 연습해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어로 "미국에서 왔지만 우리말을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우리말을 할 줄 안다고 했으니 더 이상 영어로 묻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학생은 계속 영어로 질문한다. 실습을 해보려는 노력과 열정이 대단하다.

 

 인민대학습당 열람실에서 사전을 펴 놓고 영어공부를 하는 북한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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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에서 설경이가 '북한에서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르친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

 

"왜 여기서는 영어를 그렇게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외국어는 일찍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입네다. 또 지금은 세계를 향해 눈을 떠야 합네다. 그러니 인민들이 국제어인 영어 그리고 다른 외국어들을 잘 해야 하지 않겠습네까?"

 

"아파트를 6개월 만에? '새빨간 거짓말' 하지마요"

 

 인민대학습당 옥상에서 해설원과 함께. 왼쪽으로 아파트 건설현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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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을 마치고 맨 위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가 'SEE YOU IN PYONGYANG'이라고 적혀 있는 티셔츠를 샀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김일성 광장과 대동강, 그리고 주체사상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방에서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설경이 말에 따르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2012년 4월에 맞춰 완공할 예정이란다. 지금이 2011년 10월이니, 도저히 그때까지 완공될 것 같지가 않아 보인다. 남편이 아니나 달라 또 한마디 한다.

 

"뭐? 이 많은 아파트 건물들이 내년 4월까지 완공될 예정이라고? 새빨간 거짓말하지마. 그때까지 다 완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남편은 속마음을 거르지 않고 드러낸다. 나도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기분 상하게 말할 필요가 어디 있겠나 싶어 남편 옆구리를 툭툭 쳐댔다. 그러자 설경이가 웃으며 큰소리친다.

 

"선생님! 제 말을 확인해 보시기 위해서라도 내년 4월에 다시 오셔야겠습네다. 아파트가 다 완공돼 있어도 손가락에 장은 안 지지게 할 테니까 꼭 다시 오십시오."

 

그나저나 남편은 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을 듣기도 민망하게 많이 쓰는지 싶어 조그마한 소리로 귓가에 대고 주의를 줬다.

 

"여보, 지금 여기가 어딘데 '새빨간'이란 말을 그렇게 해요. 지난번 군대 얘기 나왔을 때도 그 말을 쓰더니... 제발 말끝마다 '새빨간'이란 말 좀 하지 마세요."


그랬더니 남편이 한 술 더 뜬다.


"가만있어 봐. 여기서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하나? 남쪽에서는 많이 쓰거든."

"여기서도 씁네다. 하하."(만룡 안내원)

 

우리는 서로 쳐다보면서 그 단어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화는 그쯤에서 끝냈다(사실 지금도 궁금하긴 하다. 언제부터 그 말을 썼으며 왜 생겼는지 말이다).

 

평화로운 대동강변

 

▲ 대동강변 풍경 대동강변. 강 건너 아파트 건설현장이 보이기도 하고 옥류관이 보이기도 한다. 또한, 대동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의 모습, 낚시를 즐기는 노인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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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많은 기념비적인 대형 건축물들이 모두 30~40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북한은 헐벗고 가난한 나라라고 배웠는데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대형 건축물들을 짓는 게 가능했는지 의문이 일었다.

 

우리는 인민대학습당을 나와 김일성 광장으로 내려가 대동강변을 산책했다. 낚시 나오신 할아버님, 산책 나온 사람들, 보트를 타며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들...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북한 부모들의 교육열... '여기도 똑같구나'

 

 평양의 학생소년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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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의 다음 방문지는 '학생소년궁전'. '인민대학습당'이 어른들을 위한 학습장이라면 '학생소년궁전'은 아이들의 방과 후 특기 개발을 위한 교육기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곳에서는 어른 해설원 대신 청색 교복에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른, 얼굴이 하얀 여학생이 우리를 거수경례로 맞았다. 오른손을 펴 머리 위로 올리는 경례인데, 공항에 도착한 귀빈에게 화환을 증정한 후 그런 식의 경례를 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났다. 수줍음을 많이 탈 것 같은 모습과는 달리 씩씩하고 분명한 말소리로 이곳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아코디언반. 이후 우리는 바이올린, 첼로, 기타, 가야금, 피아노, 서예, 자수, 미술, 무용반을 차례대로 참관했다. 관광객들이 들어서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능숙하게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대강당으로 이동해 아이들의 공연을 봤다. 그 모습이 얼마나 깜찍하고 사랑스러운지...

 

 학생소년궁전 서예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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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하는 학생소년궁전 아이들 공연에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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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목이 메여온다. 앞으로 남과 북의 이 아리따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실책으로 인한 쓰라린 아픔과 슬픔은 절대 물려줘서는 안 되리라. 밝은 희망의 빛으로 행복의 열매만을 주렁주렁 물려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밖에 나와 보니 엄마 손을 잡고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엄마의 발걸음이 어지간히 급하다. 아이는 엄마 손에 끌려오듯 뛰어온다. 아마 수업 시간에 늦어서인가 보다. 지금은 다 커 버렸지만 수시로 허둥지둥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 저리로 다니던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향수에 젖는다. 이곳도 아이들 교육이라면 극성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 사는 곳이구나'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 만경대에 가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 '만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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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들이 '만경대'를 간다고 하길래 나는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이름만으로는 전망대 정도쯤 되리라 생각했으나,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금수산 궁전'을 먼저 방문한 터라 생가 주위도 엄청나게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 놨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 규모를 상상해봤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초라한 초가가 하나 있었다. 주변은 깨끗하게 정돈해 놓은 공원 같았다.

   

사립문에 들어가 보니 예전 김일성 주석의 조부모와 부모가 쓰던 농기구들이 있다. 그리고 방안에는 초라해 보이는 가재도구가 있다. 벽 위쪽에 걸려 있는 흑백 가족사진들을 보니 남한의 평범한 옛 농가와 별다를 게 없었다. 싼값에 구입한, 찌그러진 장독이 마당에 놓여 있다. 가난했던 그 시절, 고달픈 삶이 느껴진다.

 

 만경대에서. 방 안 흑백사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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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원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후 사람들이 김 주석의 조부모에게 '이제는 좀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갈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주석의 조부모는 '그러면 그럴수록 손자의 뜻을 잘 받들어 더 근면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답했단다. 해설원은 김 주석의 조부모가 '운명할 때까지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본이 돼 부지런하게 일하시며 사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는, 존경할만한 어른들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방지축 남편... 드디어 여기서 대가를 치르는구나

 

 '만경대' 참관을 마치고.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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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에서 나와 언덕에 오르니 사방이 한눈에 펼쳐진다. 해설원이 언덕 아래에 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만경대 혁명학원'이라고 설명해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이 큰 소리로 묻는다.

 

"아, 그 희생된 '남파 공작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그 학교 맞지요?"


그러자 갑자기 다른 관광팀을 인솔하고 있던 한 여성 안내원이 남편의 말을 듣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너무 당황하고 긴장됐다. 아무리 나같이 정치를 모르는 사람도 이런 장소에서 '남파 공작원'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더구나 여기가 어떤 곳인데... '남편의 천방지축 같은 말이 드디어 그 대가를 치르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해설원은 기가 막혀서인지, 아니면 어이가 없어서인지 어찌할 줄 모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내 해설원이 남편을 잠시 쳐다보더니...


"선생님, '남파 공작원'이라니요? '혁, 명, 열, 사'. 아시갔어요? '혁, 명, 열, 사'."

 

순간 아차 싶은지 남편이 겸연쩍어하며 멍하니 해설원만 바라본다. 옆에서 설경이도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우리는 언덕 위 쉼터에서 그동안 다녀온 곳들, 남편의 '막말' 때문에 발생한 일화들을 이야기했다. 이곳 해설원, 그리고 우리 안내원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수다를 떨었다.

 

다음날은 마지막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이다. 왜 이리 빨리 시간이 흘러가는지... 곧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