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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체제-비핵화 맞물려 돌아가나?
<2009 송년특집 1> 북.미관계
2009년 12월 15일 (화) 09:30:08 이광길 기자 http://onecorea615.cafe24.com/xe/tongilnews/mailto.html?mail=gklee68@tongilnews.com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09년 올해는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반도 정세에 일말의 변화, 나아가 결정적인 변화가 오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던 한 해였습니다. 북미관계 변화의 시동이 뒤늦게 12월 초순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방문으로 걸렸지만 아직 그 크기와 범위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관계는 작년에 이어 화해교류가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마저 정부당국의 영향을 받아 6.15공동선언 이후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했습니다. 통일뉴스는 <2009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북한내부 ③남북관계 ④민간교류 ⑤경제협력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평화체제와 비핵화 논의가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지켜본 한 외교안보전문가의 촌평이다. 이는 2000년 북.미공동코뮈니케와 2005년 9.19공동성명이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북.미 양측이 애초 기대됐던 출발선에 선 것이다.

기대와 실망

2009년 벽두, 전 세계의 이목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쏠렸다. 그의 '강인하고 직접적인 외교'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북한과 쿠바 등 "적대국 지도자와도 만날 수 있다"던 유세 발언이 현실화될지 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 목표를 확인하면서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나라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며"라며 조심스런 기대를 나타냈다. 또 1.13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는 준비된 수를 던졌다.

<조선신보>도 1.21 및 1.22자 기사에서 "(오바마 정권이)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를 단걸음에 실현하려고 할지"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신년 공동사설에 적시된 '비핵화' 의지가 "2012년에 '강성대국 대문'을 열어제낄 구상과 결부돼 있다는 관측"을 전하면서 "현실적이며 신속한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현재 워싱턴의 기류는 알려진 것보다는 (북한에 대해) 엄격한 접근법을 취하는 쪽(당국자)"이라는 징후들이 나타났다.

1.13(현지시간) 상원 인준 청문회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후보자는 "관계 정상화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플루토늄 생산 △우리늄 농축 △핵확산 활동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인권문제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도 2.3 이명박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6자 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로 돌아가, 올브라이트-조명록 상호 방문 이후 대화가 끊어진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북한측의 '구애'를 뿌리친 것이다.

북한의 신년 구상은 2.3 민간인 자격으로 방북했던 보즈워스 전 주한미대사 등에게 소상하게 전해졌으나 미국은 미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대통령과 국무장관도 곧 대북 정책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인내심을 가지라"는 2.11 웬디 셔먼 전 오바마 캠프 국무부 인수팀장의 발언이 단적인 증거다.

'도발-제재'의 악순환

북한은 보즈워스 전 대사 편에 보낸 '숙제'에 대한 답을 미국측에 재촉하는 한편, 2.24 우주공간기술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광명성 2호'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고 알렸다.

갓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도발'로 간주했다. 이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급히 동북아에 보내 '미사일 발사 저지'에 나섰다. 북한이 내세운 '평화적 우주 이용권'은 한.미.일에 의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으로 치부됐으며, 수십년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양국 간 불신이 상황을 빠르게 악화시켰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라인 인선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일 보수정권이 그 공백을 파고들면서 상황은 더욱 꼬였다. 실제로, 2.19 클린턴 장관의 '북 후계' 발언은 방한 직전 한국측 당국자가 브리핑한 대북정보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을 앞둔 아소 정권은 '미사일 요격설'까지 흘리며 대북 강경대응을 부추겼다.

결국 외길 수순 밖에 남은 게 없었다.

북한은 광명성 2호를 발사(4.5) 했고 유엔 안보리는 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4.13)을 통과시켰다. "의장성명으로서는 전례없이 강한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다(고위당국자)"는 이 조치에 북한은 반발했다. 외무성 성명(4.14)을 통해 6자회담 불참과 핵억제력 강화를 천명했다. 다시 안보리가 북 3개 회사를 제재 대상에 올리자(4.24), 북한은 폐연료봉 재처리(4.25)에 착수하고 이어 안보리의 사죄가 없을 경우 추가 자위적 조치(4.29)를 천명했다.

북 외무성은 마침내 "미국의 현 행정부는 이전 행정부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5.4)"고 불만을 터트렸다. '2차 핵실험'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방북했으나 빈 손으로 귀환했다. 보즈워스 특별대표가 다시 서울을 찾았으나(5.8), '6자회담 틀 내 양자대화' 방침 외에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5.25 북한은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광명성 2호가 강성대국의 대문을 두드렸다(4.7 노동신문)"면 2차 핵실험의 성공은 "150일 전투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을 크게 고무하고 있다(5.25 조선중앙통신)"는 의미부여가 이어졌다. 안보리는 제재 결의 1874호를 통과(6.12)시켰고, 북한은 '추출한 플루토늄 전량 무기화-우라늄 농축 시험 착수'를 선언(6.13)했다.

클린턴, 원자바오 방북

대화의 실마리는 '핵.미사일 먼지'가 가라앉을 즈음에야 포착됐다. 6자회담 의장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7월초 6자회담 참가국을 순방했다. "북한이 아마도 협상장으로 돌아오는 방안을 찾고 있는 듯하다(7.9, 게리 새모어)"는 평가에 이어,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7.18 서울에서 '포괄적 패키지'를 제안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25 담화'를 계기로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7.12 김정일 위원장은 '네온등 밑에 초병'을 관람하고 '조중 친선은 영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7.17 우다웨이 중 외교부 부부장을 비공개로 평양으로 불러 들였다.

미국은 국가정보원발 대북 정보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6월초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의 동북아 순방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대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다. 중국이 '균형 잡힌 대북정책'으로 회귀한 까닭이었다.

'정보의 실패'와 '중국 요인'이 겹치자,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적 사안을 고리로 조심스럽게 북한과의 대화를 타진했다. 8월초 '두 미국 여기자 석방' 임무를 띄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한 것이다. 한.미 당국은 '인도적 임무에 국한된 개인 자격'임을 강조했지만, "북.미 직접대화의 신호탄(대북 전문가)"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김기남 북 노동당 비서가 서울을 방문해 북.미-남북대화 병행방침을 분명히 했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순조로울 것 같은 보즈워스 대표의 9월말 방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한국 정부였다. 성김 국무부 특사 주도로 뉴욕채널을 통해 일정과 협상안 협의를 마친 미국측을 향해 9.21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바겐'으로 북.미대화의 문턱을 높여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이 동맹의 덫에 갇힌 사이 중국이 움직였다. 10.5 김정일 위원장은 '북미대화의 결과를 보고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고 밝혔고 원 총리는 총 2억 달러로 추정되는 유무상 원조와 경제협력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미국은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것인데, 이미 제재는 북.중 경제협력으로 사실상 무력화된 것(대북 전문가)"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리근 방미, 보즈워스 방북

북.미대화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10월초 워싱턴의 분위기는 "(북한에 대해) 개입은 한다, 그러나 협상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대화에 '러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재를 지속하기 위한 전술적 수단으로서 대화를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도 잇따랐다.

실제로, 미 국무부 대북정책 라인의 핵심인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대북 강압 외교'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게리 새모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과의 협상보다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 복원이 시급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뉴욕채널을 통한 북.미간 협의가 신통하지 않았던 점, 한.일의 끊임없는 발목잡기, 성급한 결정으로 큰 실수를 저지르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작은 진전을 원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 등이 겹치며 연내 대화가 물건너 갈지도 모른다는 비관적 관측이 팽배했다.

돌파구는 민간채널을 통해 찾아왔다. 10월 하순 미 서부 샌디에이고 인근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 리근 북 외무성 미국국장이 초청됐고, 미 국무부가 이를 승인했다. 10.24 뉴욕에서 리근 국장과 성김 특사가 회동했다.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 일정과 면담자를 사실상 확정했다.

그럼에도 미 행정부가 머뭇거리자, 11.2 북한은 "미국이 아직 우리와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도 그만큼 제 갈 길을 가면 될 것"이라고 발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즉시 보즈워스 방북안에 서명하고, 이어 서울에서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12월 8일 북한에 보내 양자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정대로, 보즈워스 대표는 8일 방북해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 부상 등을 만났다. 10일 서울로 돌아와서는 "2005년 공동성명 이행의 필요성과 6자 프로세스 재개의 필요성에 공통의 이해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예비회동으로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했고, 크롤리 공보차관보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평했다.

북한도 11일 "쌍방은 평화협정체결과 관계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조, 조선반도 비핵화 등 광범위한 문제들은 장시간에 걸쳐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였다"고 호응했다. "쌍방은 남아 있는 차이점들을 마저 좁히기 위하여 앞으로 계속 협력하기로 하였다"며 추가 대화도 시사했다.

'추가 고위급 대화가 중요하다'

10일 밤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유용한 대화였지 않나 싶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어느정도까지 영향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고 두고 봐야겠다"며 추가 북.미 고위급 대화도 어느 때에 성사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당국자들도 일제히 방북 성과 폄하에 나섰다.

이와는 달리 11일 정보 소식통은 "보즈워스 대표가 북측에 오바마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면서 친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우리 정부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과 북한의 직접 협상을 통해 적대관계를 평화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의지의 교환이 있어야 한다. 최고위층의 의지가 중요하다"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조언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어 13일자 <연합뉴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즈워스-강석주 회담에서)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평화체제와 관련해 4자회담을 가동하자는데 양해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평화보장체계를 다루기 위한 4자회담(북.미 공동코뮈니케)'과 '직접 당사국들에 의한 별도의 적절한 평화포럼(9.19공동성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는 북한의 내년 구상과도 맞아 떨어진다. "상반기 안에 힐러리 방북을 성사시키고" 이어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뒤 "하반기에 10.4선언에 적시된 3자 또는 4자 정상에 의한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미 한반도 정세는 평화체제-비핵화가 맞물려 돌아가는 판으로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제 무기 적재 항공기 억류 사태'에서 보듯 고질적인 불안요인도 여전하다. 미국의 핵심 당국자들이 북.미대화에 회의적인 것도 앞날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조(북)미대화의 결과를 보고(김정일 위원장)"라는 조건을 북한이 어떻게 풀어낼지도 관전포인트다.

결국, 내년 초로 예상되는 2차 북.미 고위급 대화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또 쇠퇴하는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 사이에서 외교 좌표 재설정에 부심 중인 하토야마 일본 정권의 대북 행보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