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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신혼부부, 결혼식 마치고 어디 가나 봤더니...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22] 평양의 아침, 그리고 혁명열사능
12.09.11 15:03l최종 업데이트 12.09.11 15:03l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나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뾰족 구두 신고 조깅한 방현수 안내원

호텔방에서 내려다 본 평양의 이른 아침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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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의 첫 아침이다. 서둘러 로비로 내려가니 설경이는 아침부터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큰소리를 내며 웃고 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넋을 잃고 로비 의자에 축 늘어져 앉아 있는 방현수 안내원이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 일행 중 한 분은 오전 6시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조깅을 한다. 이미 전날 저녁 그분이 "아침에 조깅을 할 것"이라고 알려줬고, 방현수 안내원은 그분의 조깅에 동행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사실 방현수 안내원은 낯선 평양, 여행 첫날부터 조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오전 6시가 되자 방현수 안내원은 양복 차림에 코가 뾰쪽한 '멋쟁이 구두'를 신고 로비에 내려갔다고 한다. 그런데 반바지 차림에 서 있는 그 여행객을 보고 순간 당황했다고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서도 물론 운동을 하디. 그렇디만 반바지 차림에 이른 아침부터 시내 중심가를 뛰다니는 사람은 정신 나가지 않고서야 없디 뭐. 고저 놀래 멍해서 쳐다보고 있는데 '렛츠 고우'라고 하면서리 호텔문을 나서더니... 이건 뭐 조깅이 아니라 단거리 선수 뛰듯... 뭐... 죽는디 알았디 뭐."
"아니, 왜?"

"이모, 내가 키가 크다 보니까니 전에 배구선수를 했댄는데, 그때 무릎을 다쳐 잘 뛰지를 못한단 말입네다. 기런데 구두마저 '날라리'다라니 도저히 못 따라 가겠는 기야요. 평양역 앞을 지나... 뭐... 나도 정신이 없어 오데를 갔는지 기억도 안나요. 지나가던 시민들은 서서 구경하디... 여성 교통보안원도 뭔가 해서 쳐다 보며 히쭉거리디... 뭐... 창피해 죽는디 알았디 뭐."

조깅하는 여행객의 뒤를 쫓아가는 방현수 안내원을 보고 웃었다는 여성 교통안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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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출근 전차. 전차안의 아이들이 우리 버스안을 들여다 보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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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뭘 입고 시내 중심가 한가운데서 조깅을 하든 뭘 하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미국과 이곳은 확실히 달랐다. 건장한 체격에 반바지 바람의 외국인을 뒤쫓아가며 헉헉거리면서 달리는 방현수 안내원, 그것도 모자라 신사복 차림에 뾰족 구두를 신은 홀쭉이 조카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터진다.

"기래도 사람이 많이 없는 이른 아침이라 다행이었디... 정말 창피해서 혼났디 뭐."

지쳐서 말 할 기운도 없어 보이는 방현수 안내원은 그 와중에 부인이 사다 준 새 양말이 '깨졌다'(뚫어졌다)며 열심히 달린 흔적을 보여준다.

"내 집사람 쫓아다니느라 양말이 깨졌드랬는데 이번이 두 번째야요"라며 농담을 하는 걸 보니 그래도 정신을 좀 차린 것 같다.

"통일이 되면 개 한 마리 걸치고 서울로 찾아갈게"

방현수 안내원(왼쪽), 김용성 운전기사 아저씨(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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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수 조카는 아침마다 조깅 쫓아다니느라 힘들 때면 어리광을 부린다.

"이모, 이모부! 힘들어 죽겠습네다. 한 5킬로는 깠습네다. 몸 보신 좀 시켜 주시라요."(체중이 줄었다는 말)

그 모습이 참으로 친근하고 정이 간다. 남편은 방현수가 '이모, 이모부'라고 말만 하면 "그래, 오늘 밤은 뭐가 먹고 싶어? 뭐든지 말해. 다 사줄 테니..."라고 답했다.

일행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는 오후 6시 정도에 제공됐다. 지난해 10월, 남편과 단 둘이서 왔을 때는 저녁식사 전 우리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설경이가 미리 물어보기도 하며 식사 시간을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체 여행이다 보니 미리 정해 놓은 식당에서 비교적 정확한 시각에 식사를 하게 됐다. 보통 식사가 끝나고 호텔에 돌아오면 자유롭게 쉴 수 있었다.

이런 '자유 시간'에 우리 부부는 설경이와 방현수 안내원과 함께 커피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 물론 관광객과 안내원이 아닌, 동포로서의 정을 듬뿍 나누면서 말이다. 그저 다 어디서나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방현수 안내원의 관심은 단연 자식 교육이다. 특히 여덟 살난 딸아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소조활동'(과외활동)으로 무용을 한단다.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딸아이의 동영상을 봤는데, 정말이지 춤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앞으로 무용을 전공시키라'는 내 조언에 "실력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경쟁이 심하다"며 "웬만한 치맛바람이 아니면 턱도 없다"고 걱정이다. 남이나 북이나 우리 민족은 자식 교육이라면 부모들이 인생을 거는 듯하다.

그러다가 식당이 닫기 직전에 방현수 안내원의 핑계로 한 끼 식사를 더 한 뒤 호텔로 돌아와 꼭대기 층 회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전 12시가 다 되도록 북한산 차나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정을 쌓았다.

북한에서는 육개장을 '소육개장'이라고 부르는데, 방현수 안내원은 특히 육개장을 참 좋아했다. 그는 가끔씩 물리는 듯하면 냉면을 먹곤 했다. 내가 잘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육개장인데, 언제쯤 내가 직접 만든 육개장을 설경이와 방현수 안내원에게 먹일 수 있을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오늘 늦은 밤에도 어김없이 소육개장을 한 그릇 뚝딱 비운 방현수 안내원이 한마디 한다.

"이모, 이모, 통일이 되면 내가 개 한 마리 잡아 목에 턱 거치고 서울로 찾아갈게."
"에그, 징그러워! 나는 개고기 못 먹어. 그리고 나는 미국 살잖아."
"개고기가 아니라 '단고기'디. '단고기' 못 먹으면... 기게... 조선사람이 아니디 뭐. 긴데 이모는 통일이 돼도 조국에서 안 살고 미국서 살낀가?"

북한도 결혼철은 역시 꽃피는 5월

한 식당안에 있는 결혼식장에서 직원들이 예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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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코스를 다니다 보니 여기저기서 결혼사진을 찍고 있다. 순간 깜짝 놀랐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이후 한국의 몇몇 언론매체가 '북한에서는 앞으로 3년간 결혼식이라든가 일체의 연회를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내용의 뉴스가 보도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결혼식을 막 끝낸 듯한 차림의 신혼부부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럼 한국에서 보도된 뉴스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반공 교육의 일환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렇다면, '머리에 뿔나고 얼굴이 새빨간 북한 사람' 수준의 반공 교육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한 모양새다.

우리가 찾은 많은 식당들이 결혼식을 열 수 있는 홀을 갖추고 있었다. 결혼철이라서 그런지 결혼식 준비를 위해 홀을 치장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다. 내가 설경이에게 "결혼식장은 정했어?"라고 물으니 아직 정하지 못했단다. 아무래도 피로연을 함께할 수 있는 곳이 편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친정집과 시집에서 논의하고 있단다.

만수대를 찿은 신혼 부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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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열사능'을 찿은 신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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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행 일정에는 '혁명열사능'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묘지와 같은 이곳. 여기에도 참배를 하러 온 신혼부부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설경이의 이야기에 따르면 신혼부부들이 결혼식 날 예식을 마치고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혁명열사능'이라고 한다.

"오마니, 우리 나라에서는 결혼을 하거나 집안에 좋은 경사가 생기면 우선 먼저 주석님과 나라를 있게 해 주신 애국열사들을 참배하고 경의를 표합네다."

설경이가 또박또박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다른 일행들에게도 영어로 설명한다. 미국 친구들이나 우리 부부나 결혼식이 끝난 후 국립묘지 같은 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 아니었던가. 오늘 만난 모든 신혼부부들이 앞으로 마주할 세상은 화해와 평화, 그리고 용서와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설경이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꽃이 만개하는 5월에 결혼식을 제일 많이 한단다. 자기도 5월에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는데, 서로 바빠서 10월에 하기로 했다고. 이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앞서는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그때 꼭 올게, 설경아. 여보, 우리집 새로 산 밥통 이름이 뭐였지? 그 밥통이 제일 좋다면서? '쿡쿠 밥솥'이라고 했나? 그 밥솥 들고 올께, 설경아."

정말 마음이 먼저 앞서서 그런지 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마구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진심을 이미 알아차린 정 많고, 마음 약한 설경이는 눈물부터 글썽인다.

뚫어진 양말 보여주며 결혼을 허락받다니

왼쪽에서 두 번째와 네 번째가 자하철에서 외국관광객들에게 안내 책자를 나눠주던 '조선국제려행사'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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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데, 두 명의 아가씨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온다. '조선국제려행사'에서 나온 안내원들이라며 설경이가 반긴다. 편의를 위해 지역마다 직원을 파견해 평양을 알리기 위한 안내 책자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단다. 말하자면 '관광 안내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이 또한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이다.

지난 4월 공연 여행 당시 한 안내원이 "여기 식당들도 이제는 경쟁을 한다"고 하더니... 분명 여러 면에서 변화가 생겼음이 틀림없다고 생각됐다. 이곳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행동 또한 빠르게 느껴진다.

평양의 기념비적인 건물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대동강변을 산책하니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지하철이나 평양 시내서 본 사람들과는 달리 이곳, 강변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여유롭게 이른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다.

시원한 대동강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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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데이트하는 젊은 남녀가 지나가니 방현수 안내원이 "좋을 때"라며 부러운 눈빛을 던진다. 방현수 안내원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고, 첫 만남 때의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부인과 딸아이의 또 다른 동영상을 보여준다. 아빠를 꼭 닮은 여덟 살 딸아이의 춤 실력, 그리고 예쁜 딸아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 짓고 있는 방현수 안내원 부인의 모습은 순박한 사랑이 넘쳐 흘러 보인다. 남편이 방현수 안내원의 동영상을 보더니...

"이런 탈피(마른명태) 같은 남자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예쁜 색시가 결혼을 했을까?"
"그런 이모부는 어떻게 이런 고운 이모를 만나셨습네까? 공항에서 처음 뵙는데 딸하고 나오시는 줄 알았디 뭐."

남편도 인정하는지 웃고 만다. 방현수 안내원의 통쾌한 '한판승'이다.

방현수 안내원은 지금의 아내와 '인민대학습당' 앞 분수대에서 처음 '상봉'했다고 한다. 당시 모르는 척하며 분수대를 거닐었던 사람들이 지금의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형들이라고 한다. 방현수 안내원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기때는 기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디. 손이라도 잡았드라면 다 끝날 뻔 했디 뭐."

방현수 안내원은 첫눈에 반해 양말이 떨어지도록 그녀를 따라 다녔단다. 장인어른을 뵈러 가던 날, 방현수 안내원은 떨어진 양말을 신고 가서 '따님 쫓아다니느라 양말이 이렇게 깨졌습네다'고 말했더니 장인어른은 그 자리에서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남자다운 기개가 있다고 칭찬해주니 "사내가 되어나서 나라에서 주는 배급밥 먹으면서리 그것도 못하면 되겠습네까"라며 제법 의기양양해한다.

사리원을 앞두고... <고향의 봄>에 눈물이 난다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구경하고 나니 내 몸에 쌓여 있던 피로도 스르르 풀리며 식욕이 생긴다. 저녁 식사 메뉴가 뭐냐고 물으니 설경이는 "평양서 제일 유명한 숯불 꼬치구이집에 가는데, 맛이 일품"이란다. 입맛이 핑 돈다.

우리가 닿은 곳은 숯불 꼬치구이집, 설경이가 자신 있게 소개할만 했다. 처음 먹어보는, 전혀 먹지 못할 것만 같은 양고기 구이를 맛있게 먹었으니 말이다.

내일은 사리원을 거쳐, 개성과 판문점을 향해 먼 길을 떠날 계획이니 일찍 쉬어야 할 듯하다. 그런데, '사리원'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에 전화를 줬던 할아버님이 떠오른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땅을 밟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시며 "혹시 가게 되면 사진이라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던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황해도 '사리원'에 간다니!

그 할아버님께서 고향 생각이 나면 불러 보지만 목이 메어 끝까지 불러본 적이 없다던 노래 <고향의 봄>을 조용히 불러본다. 나도 끝까지 부를 수 있을는지.. 잠을 청하며 옆에 누워 묵묵히 노래를 듣고 있는 남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잠이 오지 않는다. 마치 내 자신이 '죽어도 못 가볼 것만 같았던 고향'에 가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