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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프레임 싸움에서 이기는 법- 한국 전쟁 종식을 강력하게 주장하자
<연재> 장창준의 통일돋보기 (63)
2011년 02월 18일 (금) 12:28:36 장창준 http://onecorea615.cafe24.com/xe/tongilnews/mailto.html?mail=92jcj@hanmail.net

장창준 (세새상연구소 연구위원) 


‘전쟁과 평화’라는 불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통일과 분단’이라는 유리한 프레임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전쟁과 평화’라는 프레임이 지난 해 지방선거를 장악하고 그 결과 참패를 당했던 경험을 비춰보면 그 같은 노력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통일과 분단’의 프레임을 강화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지난 해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 발언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통일세를 걷어야 한다고?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통일하면 안 되겠네!” 같은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같은 노력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아니 강화되고 있다. 2월 16일 수요일 “통일 이끌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동아일보의 ‘배인준 칼럼’을 보자. 그는 ‘통일과 분단’ 문제를 ‘북한급변사태’와 연결시킨다. 앞으로 7년(남은 이명박 임기와 차기 대통령 임기) 동안 북한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 기간 안에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시킨다. 다음 대선에서 ‘안보에 유능하고 통일 전략이 있는 대통령을 세우자’는 것이 표면적 결론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칼럼은 남북통일의 불가함과 분단 지속의 필연성을 설파한다.

2월 18일자 조선일보는 “(북한의) 전방위적인 대화공세” 속에 “제3의 도발의지”가 숨겨져 있다며 “지금은 대화보다 북 추가도발에 대비해야”(시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통일이 아니라 전쟁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너무나 ‘일반적인’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장을 하고 있다.

통일 대통령을 준비하자는 것도 좋고 북의 추가도발에 대비하자는 것은 좋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지속되는 데 통일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가? 대화를 전면 거부한 채 북의 ‘군사도발’을 중단할 수 있는가? 결국 이들은 통일을 말하고 남북관계의 안정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분단의 지속성을 유포하고 있을 뿐이며, 전쟁 방지를 말하면서 ‘북한의 호전성’을 되풀이할 뿐이다.

이것이 그들이 설정하고자 하는 프레임이다.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그 같은 프레임 설정을 한사코 막아야 한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통일과 분단’ 프레임에서 강조하는 내용을 반박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프레임을 강화시킬 뿐이다. 이미 어느 프레임을 자신의 인식틀로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관계 여부가 프레임과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난다고 하더라도 그 프레임이 설정한 인식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즉 ‘천안함을 북한이 폭침했다는 증거를 대라’라든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대라’ 라든가 하는 것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설령 천안함을 북한이 폭침하지 않았다는 물증이 나오거나 북한에서 발표한 온갖 논평을 분석하여 도발 의지보다는 대화 의지가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통일과 분단’ 프레임을 흔들 수는 없다.

물론 그 같은 작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가 근거 없다는 것을 밝히는 작업은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과 병행되어야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확인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유리한 프레임은 ‘전쟁과 평화’이다. 즉 ‘전쟁을 원하느냐 평화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통일과 분단’에 관한 질문은 결국 ‘북한에 관한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나쁜 북한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박혀있다. ‘독재국가’, ‘인권탄압’, ‘대규모 아사’, ‘세습국가’ 등의 이미지는 결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또한 ‘통일’은 대단히 추상적이다. 통일이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장황할 수밖에 없고 그 장황한 답 역시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통일과 분단’ 프레임을 설정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반면 ‘전쟁과 평화’에 관한 질문은 ‘전쟁의 참상에 관한 질문’이다. 전쟁의 참상은 매우 구체적으로 우리 머리 속에 그려진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대단히 강력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북한이 아무리 나쁘다고 하더라도 북한과 전쟁을 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라는 강한 ‘전쟁 거부 정서’가 형성된다.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는 이 같은 ‘전쟁 거부 정서’가 발동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전쟁을 원하는가?”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할 것이다. “남측의 강경 정책으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는가?” 그들의 답변은 장황해질 것이며 간결한 답변을 할 수 없는 그들은 결국 “북한이 어떤 나라냐?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꿈꾸는 세력 아니냐?”는 반박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적화통일을 꿈꾼다고 해서 전쟁을 통해 그 꿈을 좌절시킬 수 있는가, 전쟁을 해서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가, 전쟁을 해서 북한을 붕괴시켰다고 해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들의 답변은 더욱 길어질 것이고 초점을 잃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소위 그들의 대표주자들이 끊임없이 ‘남북 사이에 전쟁은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60년이 넘도록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하는 사상 유례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 연평도 포격 역시 결국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한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과 평화’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종식을 주장해야 한다. 60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그 결과 여전히 전쟁 위기의 1차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전쟁의 상대방’이었던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준비되는 한미연합 ‘키 리졸브 훈련’은, 따라서, 비록 그들은 북침 전쟁 연습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결국 전쟁을 부르는 행동이 된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도발 태세 강화’를 부르짖는 것은 결국 전쟁을 획책하는 행동이 된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종전선언부터 하라. 이에 대한 그들의 명확한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프레임 싸움에서 이기는 법이고 2011년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만드는 1차적 과제이다.

* 이 글은 새세상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주간통일동향 [통일돋보기 63호]에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