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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팔려가는 북한 땅, 속이 쓰립니다
해변가 좋은 자리는 벌써 중국인들이 다 차지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28] 라진-선봉 시내, 직접 돌아보니...
12.09.29 21:24l최종 업데이트 12.09.29 21:24l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라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새마을 운동' 떠오르는 라진시내

라진시내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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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한 후, 우리 일행은 라진-선봉시를 구경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길거리 청소를 하고 있다. 예전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킨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열렸네"라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친구들과 학교 앞 거리를 청소하던 생각이 났다. 라진-선봉시내에 무슨 노랫말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지는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들도 노랫소리에 맞춰 열심히 길을 쓸고 있다.

평양에 비하면 아주 작은 초라한 도시지만, 모든 주민들이 일심단결해 도시를 일으켜 보고자 최선을 다하는 의지가 어느 도시보다도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라진-선봉에 대한 내 첫인상은 이렇게 깊게 다가왔다.

운전기사 '사슴' 아저씨가 아무리 닦아도 빛이 안 날 것만 같은 오래된 자동차를 정성스레 닦고 계신다. 우리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함박 미소로 반가움을 전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아저씨의 표정에서 따뜻한 마음을 모조리 다 읽을 수 있는데...

문호영 안내원은 라진-선봉 이곳저곳을 돌아볼 것이라며 덧붙여 말한다. 다정다감한 목소리, 자상하고 예의 바른 얼굴로 말이다.

"두 분께서는 평양을 비롯해 우리 조국의 기념비적인 훌륭한 곳을 이미 많이 구경하셨으니, 라진-선봉에서는 우리 인민들이 전하는 사랑의 마음을 듬뿍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평안도 사람들이 남성적이고 시원시원하다면, 이곳 함경도 사람들은 여성적이고 아주 싹싹하다. 억양도 다정다감하고 몸짓 또한 그렇다. 그러니 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 상쾌함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생활력이 강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평양에 비해 라진-선봉에서는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우선 도시가 작고, 식당들도 평양에 비해 규모가 작아 현지 주민들 바로 옆자리에서 눈인사와 간단한 대화도 해 가며 식사를 할 수 있다. 분위기가 무척 자유롭다. 주민들도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라든가 수줍음이 덜 하다. 물론 우리 부부가 우리말로 대화하니 같은 '조선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자유무역지대라는 말에 걸맞게 분명히 평양보다는 아주 개방적이다.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 라진

아파트 건물 왼쪽으로 개인 주택들이 보인다. 개인 주택들의 마당에는 예외없이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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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는 도로 공사와 건물 신축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식 빌딩 건설 현장을 볼 수 있었는데, 호주계 은행 건물이란다. 중국 측에서 건설 중인, 중국과 나선을 연결하는 도로가 시내를 관통하는지 차가 지나다닐 수가 없어 먼 곳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그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 시내 곳곳을 걸어가며 주택가를 지나칠 때도 있고, 사람들과 마주치며 눈인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우리도 이곳의 주민인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도 아파트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평양에 비해서는 개인 주택이 눈에 많이 띈다. 집집마다 마당에 채소를 기르고 있다. 이것이 설경이가 사리원 가는 차 속에서 이야기했던 텃밭이 아닌가 싶다. 운전기사 '사슴' 아저씨도 마당에 채소를 기르는데 그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아주 부러워한다고.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철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러시아에서 라진항 부두까지 연결하는 철도란다. 러시아의 철길을 북한의 철길과 연결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북한의 철길 폭이 러시아의 그것보다 좁아 기존에 있는 북한 철길 위에 넓은 철길을 겹쳐놓는 식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렇듯 중국과 러시아가 라진-선봉에 활발한 투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중국 관광객들이 자가용을 몰고 관광을 오니 시내에서 중국 번호판을 단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러시아 번호판을 단 차도 눈에 띈다. 이 두 나라가 라진항 부두를 50년간 임대했다는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라진항이 꽤나 중요한가 보다. 중국은 국경선이 바다로 연결돼 있지 않으니 아예 바다로 나갈 수 없고, 러시아의 항구들은 겨울에 얼어붙어 무용지물이니 말이다. 이 항구를 통해 두 나라는 동해로 진출할 수 있다.

일제치하 당시 이곳에는 일본의 해군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게 있어 라진항은 중국과 러시아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다시 말해 없어서는 안 될 항구였을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군수 물자와 군인들을 실어 날르고, 돌아오는 길에 만주에서 수탈한 농산물이나 천연 자원을 일본 본토로 수송하는... 그야말로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을 게다.

생각의 시추선이 한국에게 닿는다. 중국·러시아·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라진-선봉이 똑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을 터인데...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황금같은 조국의 땅과 바다를 기껏 남의 나라에 세나 받고 임대해주다니...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라진의 골목길, 동포의 정이 느껴집니다

문호영 안내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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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으로 우울해져 있는 내 마음을 문 안내원이 전환시켜줬다. 여자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는 모양이다. 부드럽고, 다정한, 상대의 애간장을 녹이는 다정다감한 말투로 통화를 나누고 있다.

"여자 친구인가 봐요?"
"네, 곧 결혼할 사람입니다."
"여자 친구는 뭘 하시는 분이세요?"
"의사인데, 제가 보기에도 진정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의사란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제 어머님께 효성이 대단합니다. 그 점이 제일로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집사람이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지요. 어머니께만 잘하면 저는 뭐래도 괜찮습니다."

젊은 사람이 참 효자다. 휴대전화에 있는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니 예쁘고, 얌전하고, 성실하게 생겼다. '남남북녀'라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북한에는 정말 예쁜 여성들이 많다. 평양에서 성형수술을, 그것도 쌍꺼풀 수술을 한 여성들을 보긴 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대개 천연 미인들이다. 게다가 하고 다니는 모습들이 성실하고 정숙해 보인다. 화장법만 약간 달리한다면 남한의 여성들과 비교했을 때, 영화배우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남편이 라진-선봉에 온 기념으로 신선한 해산물을 점심때 먹자고 제안한다. 마침 점심 식사를 할 식당 근처에 수산물 가게가 있어 그곳에 들러 몇 가지 해산물을 사 식당에 가서 요리해 먹기로 했다.

해산물 가게 앞으로 도로 공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었기에 한참을 걸어서 가야만 하는데 괜찮겠냐고 문 안내원이 묻는다. 오히려 동네 구경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이곳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골목길을 걸어 주택가로 접어드니 마치 우리도 이곳의 주민이 된 것마냥 이들의 마주하고 있는 일상에 하나가 됨을 느낀다. 예쁜 구두를 신고 비포장도로를 조심조심 걷는 아가씨도, 진흙탕에 빠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가며 걸어가는 여학생들도,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지고 마음이 급했는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주머니도, '첨벙첨벙' 일부러 흙탕물을 튀기면서 신이 나 있는 장난꾸러기 아이들도... 모두 내가 살아온 지난 시절의 정겹고 익숙한 모습들이다.

집집마다 자그마한 텃밭에는 각종의 야채를 심어 놨다. 문 안내원의 집 앞마당에도 텃밭이 있는데, 어머니가 야채를 길러 장마당에 가져다 파신단다. 문 안내원이 어머님께 '이제는 아들이 편히 모실 테니 집에서 쉬시라'고 아무리 말려도 "집에서 쉬면 되레 몸에 병이 생기니까니 운동 삼아, 재미 삼아 장마당에 나가서 사람구경도 하고 얘기도 나누는 게 더 좋다'라고 하시며 매일 장마당에 나가신다고 한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정신없이 동네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산물 가게 앞에 와 있다. 가게 안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싱싱한 해산물을 고르고 있고, 옆에는 안내원으로 보이는 이가 통역을 하고 있다. 우리처럼 이들도 해산물로 점심 식사를 하려나 보다. 우르르 들이닥쳤던 중국 관광객들이 나가고 나니 해산물 가게 안에는 금세 적막감이 돈다. 우리 부부는 살아있는 대게와 해삼·멍게·소라 등을 샀다. 이곳에서 해산물을 파는 아가씨들이 먼저 말을 건넨다.

"오마야, 우리 말을 하시는 것을 보니 동포이신가 봅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미국에서 왔어요."
"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우리 동포분들을 뵈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해외동포들은 많이 오질 않는가 봐요?"
"재일동포들이 좀 오고, 가끔 재미동포들도 오기는 오는데 워낙 중국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까... 맛있는 해산물 많이 많이 드시고 가십시오. 저희들이 최고로 좋은 것들로 골라 드리갔습니다."


세 아가씨가 "이것이 더 좋아 보이지 않네?" "아니, 그것은 어제 들어온 거야"라며 정성을 다해 해산물을 고른다. 조금 전 중국 사람들에게 할 말만 몇 마디 던졌던 아가씨들의 모습이 아니다.

동포라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정이 솟아오른다. "함께 사진 찍자"고 하니 금세 머리를 다듬는다. 밝고 명랑한 우리네 젊은 딸들임이 분명하다. 이들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처져있던 내 마음에 힘이 솟는다. 남이든 북이든 젊은이들의 생기발랄하고 당당한 모습 속에서 남북의 미래가 밝게 잡히는 듯하다. 내 마음에 생기가 흐르니, 비릿하게 느껴졌던 해산물 냄새가 싱그럽고 달콤한 냄새로 바뀐다. 해산물 냄새에 입맛이 돋는다.

"다시 또 만나자"며 수차례 인사를 되풀이한 뒤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자동차로 걸어왔다. 그새 되돌아오는 길이 익숙해진다. 문 안내원과 남편보다도 훨씬 더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왔다.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동해, 이젠 다르게 느껴져

금방 잡아 올린 숭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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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 '사슴' 아저씨가 "모셔다 드리지 못해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모릅니다. 험한 길, 잘 다녀오셨습니까. 신발은 괜찮습니까?"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맞는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북녘 동포들과 하루빨리 한 데 어우러져 잘살아갈 날을 또다시 소원하며 기도한다.

우리가 사온 싱싱한 해산물을 주방 아주머니께 드리니 삽시간에 뚝딱 다듬고 쪄서 상에 내놓는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해산물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요리를 주문했다. 이곳 식당의 자랑이라는 '가자미식해'와 '북어무침'은 밥 도둑이었다. 밥 한 공기가 금세 뚝딱 사라진다. '오리지날' 함경도 가자미식해라 그런지 괜스레 평양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지난해 처음 북한을 여행하면서 봤던 동해안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나 지금 북한 동포들과 해산물을 나눠 먹으며 느끼는 풍요로운 동해안은 '기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남게 될 것이다.

남자들은 맥주을 마시며 이야기에 깊숙히 빠졌다. 왼쪽부터 관광회사 간부, 남편, 운전기사 '사슴' 아저씨, 문호영 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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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의 건어물 상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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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없이 밥 한 공기를 해치우고 있는 사이, 남성들은 해산물을 안주 삼아 사람 사는 이야기, 경제 이야기,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 안으로 이야기가 끝날 수 있을는지... 이럴 때 설경이라도 옆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고 재미날 텐데... 설경이는 지금쯤 모자를 덮어쓴 채 내가 준 BB크림을 바르고 '모내기 전투'에 동원돼 나가 있겠지.

다음 행선지로 가는 차 안에서도 끝이 나지 않는 남성들의 수다는 마침내 해변가에 도착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끝났다. 남성들이 낚싯대를 빌려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건어물 가게에 들렀다. 질 좋은 건어물들이 매우 탐스럽게 진열돼 있다.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다 사고 싶었으나 미국까지 먼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몇 가지만 엄선해야 했다. 매일같이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물건이 모자랄 지경이란다.

값싸고 질 좋은 수산물들은 거의 다 중국에서 수입해 가는 것 같다. 심지어는 해변가의 해산물 식당에도 중국 관광객들이 북적인다. 중국에서 하루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니 아침에 들어와 값싸고 신선한 해산물을 잔뜩 즐기고, 해변가를 거닐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단다. 남녘의 동포들은 한 나라임에도 자유롭게 와 볼 수 없는 곳인데, 중국인들은 마치 자기네 집 드나들 듯하니 속이 또 상한다.

엉성한 낚싯대로 물고기를 유인하니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지 않는다며 남편이 불평불만을 털어놓는다. "집에 있는 낚싯대를 들고 꼭 다시 라진-선봉에 낚시하러 올 것"이라고 문 안내원에게 호언장담을 한다. 단단히 벼른 모양새다. 문 안내원은 "선생님, 이 엉성한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아야 실력이 있는 겁니다. 제가 한 번 잡아볼 테니 잘 보십시오"라며 큰소리를 치며 낚싯대를 드리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낚싯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남편의 막말이 또 시작된다.

"이 사람아, 그 낚싯대로는 죽어도 못 잡아. 아무리 여기 고기가 많다고 해도 그렇지, 어디서 붕어 낚싯대로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해!"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어렸을 땐 나뭇가지 꺾어 실을 매달아도 잘 잡았습니다."
"이런... '나뭇가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빨리 가자."
"선생님, 10분만요."

남편이 웃으면서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목욕탕만 봐도 낚싯대를 드리운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30분을 줄 테니 잡아 봐"라고 한다. 그 사이에 본격적으로 낚시를 다시 하러 올 심산인지 문 안내원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곡식만 충분하다면 참 풍요로운 곳이 될 텐데...

남편과 함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문호영 안내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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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낚시 여행을 오려고 하는데... 배는 빌릴 수 있나?"
"네. 전마선도 있고 작은 목선들도 있습니다."
"모터는 달려 있어?"
"작은 목선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모터는 필요 없습니다."

"이 사람아, 모터가 필요 없다니... 파도 속에서 노를 저으면서 바다낚시를 하란 말이야? 생각하는 거 하고는..."
"파도가 왜 있습니까. 노 젓고 바로 앞에 나가서 잡는데요. 해안가에서 100미터만 나가도 고기가 우글우글합니다."
"에이, 이런 '새빨간' 거짓말하고는... 하여간 낚시꾼 허풍은 남이나 북이나..."
"선생님 제가 좀 있다가 사람들이 재미삼아 고기 잡는 데로 모시고 갈 테니 가서 보세요."


우리는 걸어서 모래사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수심이 얕은지 사람들이 그물을 갖고 10미터 정도 거리의 바다에 들어가 고기를 잡고 있다. 사람들은 금방 상당히 큰 숭어 여러 마리를 잡아 나온다. 문 안내원이 라진 앞바다에는 정말 고기가 많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바위 틈새에도 멍게 같아 보이는 것들과 조개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곡식만 충분하다면 참 살기 좋고, 풍요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령당한 라진-선봉, 속이 상했습니다

라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는 오성급 중국 카지노 호텔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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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를 거닐다 보니 저 멀리 궁전 같은 건물이 해변가를 끼고 멋지게 서 있다. 저게 뭐하는 건물이냐고 물어봤다. 문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홍콩 사람이 지은 5성급 카지노 호텔로 중국 사람들이나 외국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단다. 저 카지노 호텔 때문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재산을 탕진해 중국 당국에서 중국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호텔 옆에는 마치 '영빈관' 같이 생긴 웅장한 기와집이 있다. 저 집은 또 뭐냐고 물어봤다. 문 안내원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저 집은 중국 사람이 운영하는 전당포인데,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중국 관광객들이 이용합니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문 안내원은 속이 상했는지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저것뿐만이 아닙니다. 해변가를 따라 좋은 자리들은 벌써 중국 사람들이 다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신 선생님 친지분이신 '구리스' 선생께서 어떻게 해서든 나쁜 비즈니스를 하려드는 중국 기업들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하고 계십니다. 그뿐 아니라 '구리스' 선생은 중국 사람들이 들여오려는 공해 산업을 막기 위해 인민위원회 등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기업에 투자할 외국인이나 해외동포들을 찾으러 다니시는 것 같습니다. 동포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분이시지요."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워짐과 동시에 우리 동생네 부부가 자랑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머무는 호텔 앞 식당에 갔다. 밥맛이 없어서 간단하게 국수나 먹으려고 차림표를 보니, 옥수수 국수가 있어 그것으로 주문했다.

또 차림표에는 잣죽이 있었는데 가격 단위가 모두 인민폐로 적혀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도 안 되는 잣죽에 잣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무척 고소해 금방 물릴 지경이었다. 별 기대하지 않고 주문한 옥수수 국수의 맛 역시 일품이었다. 국물맛도 일품이었지만, 적당히 쫄깃하면서도 구수한 면은 내 입맛을 매료시키고 말았다. 이날 이후로 우리 부부의 식사 메뉴에는 '동해 바닷물로 만든 두부'와 '함경도에서 나는 옥수수 국수'가 꼭 자리 잡게 됐다.

옥수수 국수 맛에 잠시 착잡해져 있던 마음을 추스르고 호텔로 돌아와 커피숍 안에 들어가 보니 반가운 사람이 와 있었다. 크리스가 미국에서 온 동포로 보이는 사람과 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문 안내원이 말했던 것처럼 이런저런 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크리스는 우리 부부를 발견하고는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한다. 내 동생과 조카들이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단다. 어서 가서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데, 남성들의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아 나 먼저 방으로 돌아왔다. 예전, 어린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추억의 '꽃무늬 밍크 담요'가 가지런히 전기장판 위에 놓여 있다. 따뜻하게 잠들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가져다 놨을 이의 배려가 마음 깊게 느껴진다. 오늘 밤은 이 추억의 '밍크 담요'와 함께 포근하고 따스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