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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물결에 묻힌 '한반도기'
[현장] 본선 진출 집념? 남북관계 경색? 찬밥 된 '남북공동응원'
2009년 04월 02일 (목) 00:30:19 박현범 기자 http://onecorea615.cafe24.com/xe/tongilnews/mailto.html?mail=cooldog893@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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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시작전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있는 가운데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집념 때문일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남북관계 탓일까?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 남북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치러진 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5만여명의 일방적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의례적이라도 할 법한 북측 선수단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는 이날 경기장에서 들리지 않았다.

킥오프 전 대한민국의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대표 선수들의 등 뒤로는 압도적 크기의 대형 태극기가 펼쳐져 넘실거렸다. 왼편 골대 뒷쪽 관중석을 가득 메운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악마'는 이날 남북전에서 처음으로 '태극기 카드섹션'을 선보였고, 경기 시간 90분 내내 지친 기색 없이 태극기 깃발을 흔들며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북측 선수들은 경기 시간 내내 '붉은악마'들의 매몰찬 야유소리를 들어야 했다. 특히나 전반전 '붉은악마'를 등졌을 때 야유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북측이 코너킥 등 유리한 세트피스 상황에 놓였을 땐, '우~' 하는 야유 소리에 장내 전체가 '진공상태'가 됐다.

남과 북을 조국으로 생각하며 양팀 모두를 응원한 재일동포에게 이런 모습은 퍽 섭섭하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학교'에 출연하기도 했던 장지성(22, 한양대) 양은 이날의 경기에 대해 "북이 이겨도 남이 이겨도 상관없이 둘 다 응원했다"면서 "결과는 남이 이겼는데, 그건 그것대로 참 기쁘고, 북이 져서 아쉬운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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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있는 붉은악마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남측 대학을 다니고 있는 재일동포 학생 20여명과 함께 이날 경기를 관람한 장 양은 "'붉은악마' 쪽이 북이 유리하게 되면 너무 '우~~~' 하고 그런 게 있어서 기분은 좀 안 좋았다"며 "지난해도 경기장에 왔었는데, 이번에는 공동응원단이 없지 않나? 작년에는 통일기도 들고 다니면서 응원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없어서 좀 섭섭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통일기도 갖고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고, 그래서 응원을 해도 뭐가 있어야 선수들한테 보이고 그러지..."라고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이날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700여명이 '남북 공동응원'을 위해 자리했었다. 그러나 장 양의 눈에도 띄지 못할 만큼 '공동응원'은 녹록치 않았다. 경기장 오른편 골대 뒷편에 휑하니 걸린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힌 현수막과 수백 명 정도가 흔들어 대는 '한반도' 문양의 수기가 '남북 공동응원'의 전부였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의 일부 회원들은 출입과정에서 수기를 빼앗기기도 했다.

그나마 걸려 있던 현수막은 경기장 전체가 녹색 그라운드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경비업체'라고 밝힌 10여명의 남자들에 의해 반쯤 떨어지는 등 '강제철거' 수모까지 겪었다.

이들은 '우리는 하나다'라고 적힌 글자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한반도 문양이 '정치성 표현물'이라고 하면서 현수막을 강제로 떼 내려 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단체 회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실랑이를 본 마포경찰서 경찰관들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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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업체라고 밝힌 남자들이 현수막 강제철거하려 해 이를 제지하려던 시민사회단체회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마포경찰서와 '경비업체'라고 밝힌 사람은 단체 관계자들이 "공동응원을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이 게 (한반도기) 문제가 된 적이 없다"면서 어떤 규정에 위배되는지 따졌지만,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2009년부터 한반도기가 안된다고 한다"는 말만 했다.

그러나 이날 '공동응원'에 나선 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단체 측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 축구대표팀 경기에서도 '한반도기'로 응원을 했었고, 더욱이 이번 경기에서의 공동응원을 위해 대한축구협회 측에 문의를 했을 때도 대형이 아닌 수기는 허용이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때문에 협회 측의 말과 달리 출입과정에서 일부 수기를 빼앗기고, 현수막에 그려져 있는 '한반도' 문양이 정치적 표현이라며 강제철거 하려는 것을 단체 회원들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마포경찰서 측은 한참의 실랑이 끝에 어딘가 전화통화를 한 뒤 "규정에는 어긋나지만, 더 이상 (실랑이를) 하면 경기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그냥 두기로 했다"면서 돌아갔다.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현수막을 허용하기로 한 것을 어디서 결정 한 것이냐'는 질문에 "마포경찰서와 대한축구협회가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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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진출권이 걸려있는 경기인 탓에 남북 선수들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사진 -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러나 정작 대한축구협회 측은 이 같은 사건에 대해 알고 있지도 못했다. 협회 홍보실 관계자는 '한반도기를 가지고 응원하는 게 어떤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응원에 대해선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면서 오히려 '한반도기'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한반도기와 관련해 제재를 한 게 경기를 주관하는 대한축구협회 아니냐'라고 묻자 "주관은 협회에서 하지만, 남북 축구경기는 통일부, 국정원, 경찰 등 정부가 같이 한다. 우리가 단독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만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대한축구협회) 정치적인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남북 공동응원'을 준비한 한국진보연대 최영옥 자주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가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했던 게 아니고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공동응원을 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과 다른 양상으로 대응했던 것이나 폭력적으로 협의도 없이 현수막 떼 내려고 한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또 "축구하는 과정에서도 작년과 달리 남측의 응원단이 북측에 야유도 많이 보냈다. 스포츠인데, 단일기까지 포함해서 정치성 표현물이라고 하고, 야유를 보내는 행동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