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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과 강선제강소 노동자들의 아이디어 회의
에피소드로 본 北 과학사② 천리마운동이 시작되던 날
[95호] 2009년 02월 01일 (일) 21:14:05 강호제 (사)현대사연구소 상임연구원 minjog21@minjog21.com

   
북은 1956년에 전후복구사업을 일단락했다. 뒤이어 경제발전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소련이 계획실행 직전인 1956년 11월에 강철재 지원 약속을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이에 당황한 북 지도부는 자체적으로 조달할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연말 직전까지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중요 생산현장을 직접 찾아가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김일성 주석은 강철재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강선제강소(현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맡았다. 1956년 12월 27일 김일성 주석(당시 수상)이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천리마운동이 시작되었다.

“수상님 말씀이 옳습니다”

강선제강소를 찾은 김 주석은 일반 노동자들을 모두 모아두고 당시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원래의 경제개발계획을 고수해야 할 필요성과 강재를 추가 생산해야만 하는 절박성을 설명했다.

“동무들이 다음 해에 강재를 1만 톤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 수 있습니다.”

이에 한 압연공이 조심스럽게 일어나 분괴압연기를 보수하는 날이 1년에 100일 정도 되는데 90일로 단축해서 기계를 가동하는 시간을 약 10일 정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부터 논의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열흘이라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결국 평균 3일 돌리고 하루 세운다는 소린데?”

이에 옆에 있던 강선제강소 기사장이 압연기의 롤러 핵심부품인 베어링이 3일이면 닳아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워야 하고 그 틈을 타 보수정비를 하려면 하루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당시 기술 수준이나 기계 수준을 고려한 작업 지침이라는 설명이었다.

“마모율이 낮은 베어링으로 교체하는 방법은 없나?”

“그렇긴 하지만…,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계 가동 일수가 짧으므로 이를 늘이는 것이 증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지만 기계제작 기술의 한계로 인해 이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기술 간부들의 판단이라는 것이었다.

이 때 압연기를 담당하던 ‘오랜 노동자’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수상님 말씀이 옳습니다.”

“허허…, 뭐가 옳다는 거요?”

“지금 롤러 베어링을 교체하는 날은 하루를 다 쓰고 있는데 16시간, 잘하면 12시간이면 교체작업을 끝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8시간에서 12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새로운 베어링을 제작할 수는 없지만 베어링 교체작업 방법을 좀 더 개선하면 개보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작업 숙달도를 높이고 기중기를 비롯해 각종 공구와 재료 등을 사전에 잘 마련해 두면, 대략 16시간, 잘하면 12시간 안에 교체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 시간은 어떻게 산출했소?”

“지난 달, 수상님께서 다녀가신 이후 저희들끼리 준비를 잘 해 가지고 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16시간 걸렸고 다음 번에는 12시간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왜 진작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자신도 최근에서야 동료들과 시험해 본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훌륭합니다. 예비란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구체적으로 타산해 보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이처럼 노동자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찬성하면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제안해 보라고 힘을 실어 주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새로운 의견이 나왔다. ‘교대본위주의’를 없애자는 것이다. 하나의 로(爐)를 여러 작업반이 교대로 담당하는데 교대할 때 가열로의 온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가열로 실수율(實收率)이 몇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자기 교대만 신경 쓰지 말고 서로가 좀 더 신경 쓰면 실수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현재 가스관에 제진 장치가 없어 재가 차는 바람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로를 세운다는 설명과 함께 가스관에 제진기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보수하면 되니 그만큼 가동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최근 다시 등장한 제 2의 천리마운동

현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식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설비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생산 현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자나 관료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증산의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었다. 즉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작업방법의 비효율적인 부분이나 개선사항, 나아가 설비들의 문제점 정도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기술혁신’이라고 하면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거나 기계 설비를 만들어내는 정도의 거창한 것만 생각하는데 이처럼 작업방법의 효율화, 설비 장비의 개선 개조 등도 기술혁신의 일종이다.

오늘날 도요타나 GE, LG 등 유명한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기술혁신도 이와 같은 형태이다.

흔히 사람들은 천리마운동을 무식하게 일을 많이 해서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천리마운동은 기술혁신을 강력하게 추구하면서 진행되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학기술적 지원 활동은 과학원 소속 고급 과학기술자들을 현장에 파견하면서 메워나갔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 다시 등장한 천리마운동은 지난해 12월 24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면서 시작됐다. 김일성 주석이 천리마운동을 추동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앞으로 북이 어떤 방식의 기술혁신운동을 전개할 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호제(34)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마도 국내외를 통틀어 북한 과학기술정책사로 학위를 받는 첫번째 박사일 것이다. 저서로는 해방직후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룬 《북한 과학기술 형성사 1》이 있다. 이후 시기를 다룰 《북한 과학기술 형상사 2, 3》권을 집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