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45115


기분 좋게 빛이 들어온다. 몇 달 만에 빛을 보는 듯한 이 느낌은 도대체 왜일까. 엉성하게 쳐 있는 커튼을 활짝 제치고 밖을 내다봤다. 전날 밤 봤던 희미한 형광 불빛 위의 양각도 호텔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 나는 사방이 은빛 물결로 찰랑거리는 외딴 섬에 둥실 떠 있다. 호텔 주위는 온통 햇빛에 반짝이는 대동강 물빛으로 눈부시다. 잠시동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그저 그 물빛 위에 몸과 마음을 싣고 있었다.

 

남편이 샤워하면서 샴푸를 좀 갖다 달란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호텔에 샴푸도 없고 비누도 한 개밖에 없었다. 갑자기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미처 준비되지 않았나 싶다. 갖다 달라고 하면 가져다 주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이런 상황이 생겼더라면 마구 불평을 쏟아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오늘 한마디의 불평도 털어놓지 않았다. 불평 대신 생기는 이 쓰라린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평양에서 맞은 아침

 

 평양의 아침,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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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날 북한땅을 가로질러 원산으로 간다. 우리의 여행을 담당해줬던 미국 여행사 말에 의하면 원산 가는 육로는 관광객들에게 잘 공개되지 않는 곳이라 귀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편 말로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상륙 작전지로 인천과 원산을 놓고 인천을 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원산'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전쟁과 연결돼 이야기되니 대체 이번 여행은 미지에 대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폐허의 잔영을 상상하며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일찌감치 짐을 꾸려 안내원들과의 약속 시각보다 일찍 로비로 내려갔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일찍 남자 안내원이 말끔히 옷을 차려입고 내려와 있었다. 얼굴 표정이 기분 좋게 상기돼 있었다. "밤새 편안히 주무셨습네까?"라면서 우리의 짐을 얼른 가져간다.

 

남편은 보자마자 전날 준 선물은 집에 가져다줬는지 물어봤다. 남자 안내원은 "어젯밤, 아이들이 다들 자는 시간에 갖다 주고 왔는데, 오늘 새벽 아이들이 눈뜨자 마자 선물을 발견하고는 흥분들해서 난리법석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해줬다. 자신도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을는지 상상이 된다며 기분이 들떠 있었다. 우리 부부 또한 그 광경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자 안내원이 출발하기 전 아침 식사를 하고 오라며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같이 식사하자고 했더니 이미 다른 곳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면 우리도 식사를 하지 않겠다"라며 남편이 엄포를 놨다. 다음부터는 같이 할 수 있도록 해보겠단다. 아마 손님 대접용 음식과 자신들의 음식에 차등을 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귀한 손님이 오시면 손님 상과 우리의 상을 분리해 따로 차리던 생각이 났다. 그럴 때면 언니가 나를 부추겨 친선대사 마냥 부엌으로 가 간신히 몇 조각의 반찬을 구해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식당 안에는 주로 중국 관광객들, 그리고 약간의 서양 관광객들로 차 있었다. 메뉴는 죽과 밥, 그리고 나물류가 주를 이뤘다. 또한, 서양인 관광객들을 의식해서 인지 토스트와 버터, 배를 갈아 만든 잼,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만들어줬던 밀가루 지짐이가 설탕과 함께 있었다. 옛날 생각에 감회가 새로워 밀가루 지짐이를 세 조각이나 먹었다. 당연, 지금은 성인병의 원인 중에 하나로 금기시된 하얀 설탕을 솔솔 뿌려서 말이다.

 

음료수로는 인스턴트 커피와 따끈하게 데운 우유가 있었다. 과일이 먹고 싶어서 과일 대신 주스라도 마실 생각에 혹시 오렌지 주스가 있냐고 물었다. "물론 있습네다"라며 소녀 아가씨가 씩씩하게 가지러 갔다. 시간이 제법 지나서야 캔에 들어있는 환타 오렌지맛 소다를 갖다줬다. 아마 다른 곳에서 구해 온 모양이다. 시려오는 가슴을 숨기기 위해 숨도 쉬지 않은 채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호텔 봉사원들의 순박하고 가식없는 친절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안내원들의 농담에 할 말을 잃다

   

 평양의 아침,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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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로 다시 내려와 보니 단정하게 차려 입은 여자 안내원, 설경이가 활짝 웃으면서 우리를 맞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웠던 사람들 마냥 서로 반가워했다.

 

옆에 서 있던 리만룡 안내원이 설경이에게 "오늘 따라 얼굴이 활짝 더 핀 것을 보니 남자친구라도 지금 만나고 온 것 아닌가, 늦게 내려온 것을 보니 좀 수상하다"며 능청스럽게 농담을 건냈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지금 남자친구도 외국 손님들을 모시고 사리원에 가 있어서 전화로 겨우 음성만을 들어 너무나 아쉬웠다"며 능숙하게 농담을 받아쳤다.

 

이들이 주고받는 농담에 나는 살짝 충격받았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받은 반공 교육으로 인해 생겨난 선입견에 의하면 북한 사람들은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어야 했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설경이의 남자친구도 같은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외국인 담당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아마 캠퍼스 커플이었나 보다.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들을 나누며 호텔 밖으로 나와 보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열심히 자동차를 닦으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근한 옆집 아저씨를 만난 듯 낯설지 않았다. 여러 해를 봐왔던 사람들처럼 모든 것이 친근하고 익숙하다. 같은 말, 같은 정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분명 다른 나라 여행지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평양의 출근길... 생각보다 밝았습니다

 

 평양시내, 다정히 손을 잡고 출근하는 부부의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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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의 두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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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밖이 잘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오늘은 어떤 사람, 어떤 광경, 어떤 생각들을 마음에 담게 될 것인가. 내 마음은 벌써 호기심과 기대감의 날개를 달고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평양을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원산으로 향했다. 같은 방향으로 평양교외에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릉이 있다며 그곳부터 참관한 후에 원산으로 갈 계획이란다.

 

출근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전날보다 거리가 훨씬 활기차 보인다. 온통 흑백으로만 보였던 거리의 모습들이 오늘은 밝은 색상의 물감으로 색채를 가미한 듯하다. 학생들이 화려한 색깔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거나, 교복을 입고 삼삼오오 짝지어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다정히 손을 잡고 출근하는 부부의 모습, 애인의 팔짱을 다소곳이 끼고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도 클로즈업이 돼 내 눈에 번쩍 띄었다. 상상해보지 못한 이 광경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 부부는 북한 여행을 앞두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평양의 거리 모습 사진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진들이 남루한 옷차림에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들, 텅 빈 거리 등을 담은 그런 것들이었다. 또 심지어 '북한 사람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손을 잡는다든가 하는 애정 표현도 할 수 없다'는 글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광경은 과연 내가 지금 평양에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유관순 언니를 연상케 하는 학생들

 

 노동당 창당일 행사를 준비하는 북한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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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학생들. 곱게 입은 한복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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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설경이가 "며칠 후에 있을 노동당 창당일 기념 준비로 학교마다 학생들이 광장에 모여 연습을 하러 간다"고 설명해줬다. 아닌 게 아니라 큰 광장을 지나가면서 보니 정말 많은 남녀 학생들이 모여 선생님의 지도 하에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며칠 후에 있을 노동당 창당일은 북한의 큰 명절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리를 오가는 여학생들은 대부분이 한복 차림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한복 치마 밑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한껏 멋을 부렸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손을 잡고 무슨 얘기가 저리도 재미있는지 잡은 손을 흔들어가며 웃는다.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해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다채로운 색상의 한복 차림 속에 간혹 흰 저고리에 무릎 밑 길이의 검정색 치마를 입은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북한 대학생들의 교복 중 하나라고 설경이가 설명해줬다. 유관순 언니가 생각났다. 예쁘고 당당해 보였다. 그리고 왠지 곧은 절개 같은 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쳐 버린 생각들이다.

 

평양에서 벗어나 동명왕릉에 닿다

 

 동명왕릉 앞에서. 동명왕릉은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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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왕릉에서 만난 해설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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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내를 벗어나니 금세 푸른 빛깔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도로에는 차들이 몇 대 없어서 우리만의 세상이 됐다. 방해물 없이 신나게 달린다. 가끔 차를 태워 달라고 손짓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때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태워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추수할 때가 돼서인지 들판은 누렇다. 아스팔트 길가에는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들이 예쁘게 피어 있다. 군데군데 논밭 사이에 붉은 깃발과 구호들만 없다면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외가에 가며 봤던 그때 그 풍경과 꼭 같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동명왕릉. 동명왕릉은 웅장하고 잘 관리돼 있었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의 고분들이 왕릉의 역사성을 한층 더 깊게 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현지 해설원이 차분히,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고구려의 건국과 주몽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내 나라, 내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이미 다 배운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가슴이 아려온다.

 

동명왕릉을 떠나 한 시간쯤 가자 차가 고지대의 전망대에 멈춰 섰다. 아름다운 경치도 경치지만 공기가 정말 신선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도 공기가 좋은 편인데,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래 건네던 아주머니... 그 아름답고 슬픈 눈빛

   

 우리가 산 다래. 우리 부부는 바구니째 들고 먹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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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는 근처 주민으로 보이는 듯한 인민복 차림의 아주머니 한 분과 여자애들 몇몇이서 산열매를 팔고 있었다. 남편은 뭐든지 사고 싶은 마음에 그 중 붉은 색깔의 열매를 사겠다고 했다. 남편은 입에 넣어 맛을 보더니 이내 뱉어 버리고 말았다. 오미자였다. 남편은 그것이 일종의 과일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운전기사 당원 아저씨가 "선생님, 오미자는 과일이 아니라 차를 만들거나 술을 담글 때 쓰는 열매입네다"라고 했다. 다른 안내원들과 함께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남편이 아주머니에게 입에 댄 한 송이 값이 얼마냐고 묻자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으며 손사래 쳤다. 너무 미안해 남편이 차에 가서 초콜릿을 한움큼 건넸더니 이번에는 까지 않은 잣을 두손에 담아 남편에게 그냥 가져가라는 몸짓을 했다. 남편이 "나는 이가 안 좋아 잣껍질을 깨지 못합니다. 고맙습니다. 먹은 거나 다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손을 자루로 가져가 두 손에 담긴 잣을 털어놓았다. 설경이가 여자 아이들에게 가서 다래 한 바구니를 사 가져왔다. 

 

미소를 지으며 물끄러미 우리를 쳐다보던 아주머니는 차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에게 눈빛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마도 우리의 이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내가 차에 오르기 전 고개를 돌려 눈이 마추쳤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서로를 슬프게 하는 눈빛을 경험했다.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설경이가 사온 다래를 바구니째 들고 마구 먹었다. 정말 달았다. 운전기사 당원 아저씨가 "낯선 땅에서 물이 안 맞으실 텐데 너무 드시면 배탈이 날지도 모릅네다"라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시간 정도를 더 달렸을까 휴게소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강이 멋진 산을 병풍 삼고, 한가히 하늘을 우러러 슬픈 듯 눈물을 머금은 채 누워 있다. 하늘과 얼굴을 맞대고 무언의 말을 주고받는 듯하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아 덩그러니 서 있는 휴게소에 들어갔다. 

 

휴게소 안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몇 개의 과자와 음료수들이 외롭게 놓여 있었다. 한 직원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반기듯 어디선가 뛰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잠시 '아는 사람이었던가'라며 주춤했다. 단정하고 순하게 생긴 아가씨의 모습에서, 예전 대학에서 가르쳤던 한 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기야 이 북녘 땅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 학생도 이미 저 아가씨의 나이를 훌쩍 넘겼을 텐데... 그런데 왜 이리 친근한 마음이 드는 걸까.

 

순박한 미소 뒤로하고 원산으로 향하다

 

 평양을 벗어났다. 추수 때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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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쳐다보기가 난처해 화장실을 물어봤다. 그녀는 바로 내 눈앞에 있는 화장실로 친절히 안내해 줬다. 그러더니 "불편하시겠지만, 손은 세숫대야에다가 물을 퍼서 씻으십시오"라며 미안한 낯빛을 띤다. 지하수를 끌어다가 쓰는 것 같았다. 똑. 똑. 똑. 약숫물처럼 떨어지는 지하수가 커다란 물통에 채워지고 있었다. 늘상 봐왔던 복잡하고 화려한 휴게소보다 훨씬 친근함이 느껴졌다.

 

우리 일행이 자동차를 다시 타고 목적지로 떠날 때까지 휴게소 안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자동차가 휴게소를 빠져나올 때까지 그 순하게 생긴 아가씨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마음 한구석은 계속해서 슬펐다.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의 자동차는 또 다시 무표정하게 원산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