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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훈 북한서적 공중분해 위기

대전 떠나 경기도로 일부 '파지'될 처지, 북한문학 연구'寶庫' 지역사회 관심 절실

서이석·홍성후 abc@ggilbo.com 2011.01.30 21:54:12

옛 대훈서적의 보관창고로 사용되던 대전 중구 선화동 대훈빌딩이 경매를 통해 건물 인도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29일 관계자들이 건물내 보관중이던 북한서적들 지게차로 옮겨나르고 있다.
▲옛 대훈서적의 보관창고로 사용되던 대전 중구 선화동 대훈빌딩이 경매를 통해 건물 인도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29일 관계자들이 건물내 보관중이던 북한서적들 지게차로 옮겨나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구(舊) 대훈서적의 북한서적들이 사장될 처지에 놓였다.
<본보 1월 28일자 1면 보도>
보관서고였던 대전 중구 선화동 대훈빌딩의 경매낙찰로 길거리로 강제 반출된데 이어 급기야 보관처를 찾아 쫓겨나다시피 타 시.도로 옮긴 것.

 

한때 국내 유일의 북한문학연구의 보고(寶庫)이자 대전.충남 서점가의 자부심으로 조명받던 이들 서적들의 공중분해 위기에 지역 사회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대전 중구 선화동 대훈빌딩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구 대훈서적의 북한서적 관련 법인인 엔에스원코리아(남북서적출판)는 지난 26일에 이어 29일 오전부터 대훈빌딩 지하서고에 보관된 북한서적들에 대한 외부 반출작업을 벌였다.


앞서 엔에스원코리아 측은 대훈빌딩 낙찰자의 건물인도요구에 따라 지난 26일 대훈빌딩 7층에 보관 중이던 북한서적들을 건물 밖으로 빼내 빌딩 앞 노상에 적치했었다.
엔에스원코리아 측은 이날 지하서고에 보관된 서적들에 대한 반출작업과 함께 서적 이송에 나섰으며, 15톤 트럭 10대가 동원됐다.

 

이날 대훈빌딩을 떠난 서적들은 경기도 안성의 모 보관창고로 옮긴 것으로 파악됐다.
운송회사 관계자는 “경기도에 있는 창고로 옮겨간다는 것만 알지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며 “당초 이틀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오늘 하루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서적 이송 작업엔 구 대훈서적 경영진이나 엔에스원코리아 관계자들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부도 여파가 여전히 진행중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다만 건물 경매낙찰 후 대훈빌딩을 떠난 일부 세입자들만 찾아 착잡한 심경을 표했다.
한 세입자는 “보증금을 한푼도 못받고 나왔다”며 한숨을 쉬면서도 “돌아가신 김주팔 사장님이 아침이면 빌딩 앞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곤 하셨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특히 이날 운반트럭에 싣지 못한 일부 잔여 서적들은 ‘파지’ 운명을 예고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때 지역 서점가의 자부심으로 통하던 이들 서적들이 지역을 떠나 타 시.도로 옮겨감에 따라 서적의 운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20여만 안팎으로 추정되는 이들 서적에 대한 소유권은 구 대훈서적의 별도 법인인 엔에스원코리아(남북서적출판)가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훈서적 채권단은 이들 서적에 대해서도 법원에 압류신청을 했으나 부도사태를 맞은 대훈서적과 관리 법인이 다르다는 점 등으로 ‘압류집행불능’ 결정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엔에스원코리아측은 대훈서적 부도 이후 사실상 기능이 유명무실해져 이들 서적에 대한 활용안은 물론 대전.충남지역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지역 문화계 일각에선 국내 유일의 북한문학 연구자료나 다름없는 이들 서적들이 떠돌이 신세나 공중분해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고 김주팔 대훈서적 사장이 20여년에 걸쳐 수집한 이들 북한서적들은 북한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북한지역 고전소설 등 약 4000여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로, 학술적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화계 한 인사는 "국가보안법을 적용받는 서적이란 점에서 국내에서 일반용으로 활용되기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문화사적 연구 측면에선 가치가 크다"며 "고 김주팔 사장이 경영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수집한 오랜 공든탑이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도록 지역 사회의 관심이 어느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