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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고 달리는 남북 기관차, 충돌은 불가피한가

[기고③]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의 배경과 남북관계 전망

장창준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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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대남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천명한 뒤, 급기야 30일에는 북한 조평통이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에 대한 무효화를 선언하는 등 새해들어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장창준 진보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대남강경대응을 천명한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의 의미와 배경을 분석하는 글을 <민중의소리>에 보내왔다.

    당초 3회에 걸친 연재계획이었으나 조평통의 입장발표로 상황이 급변한 탓에 4회로 연장해 게재한다. 4회에 걸친 연재중 세 번째 글에 해당하는 이번 글은 이명박 정부의 '통일거부정책의 종말'을 주제로 하고 있다.

    <글 순서>
    - 들어가며
    - 2월 군사충돌 가능성 배제 못해:17일 성명의 키워드는 ‘대결’과 ‘서해해상분계선’
    - 언론에 회자되는 무책임한 분석들
    - 정치적 무대응과 군사적 대응이 불러올 파국
    - 통일거부정책의 종말 1:NLL, 다시 화약고가 되다
    - 통일거부정책의 종말 2:현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통일거부정책의 필연적 귀결

    - 무엇을 할 것인가:결론을 대신하여


통일거부정책의 종말 1:NLL, 다시 화약고가 되다

17일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 이어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성명을 통해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했다. 19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에 명시된 ‘서해해상군사경계선’에 관한 모든 조항을 폐기하는 것이 골자이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나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을 정도로 NLL은 남북 사이에 화약고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의 발표 이후 남북관계가 발전하면서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었다. 2004년 2차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함정이 서로 대치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상대측 함정에 대해 부당한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으며, 제3국 어선들을 단속·통제하는데서도 협력키로 합의했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0.4 선언에서는 서해에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키로 합의했으며 그 해 11월 개최된 국방장관회담에서는 남북간의 불가침합의를 재확인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을 설정하고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키로 합의하기도 했다.

남북 사이의 화약고였던 서해상의 NLL이 바야흐로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의 장으로 재탄생되는 역사적 사변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해상에서의 불가침경계선을 확정하기 위한 논의가 남북 사이에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 북측은 해상불가침경계선 확정 논의는 북미 사항이라며 남북 사이에 논의하자는 남측의 주장을 일축해왔다. 둘째, 북측이 ‘NLL의 존재’를 인정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 확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이다. 물론 북측이 'NLL'을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30일 조평통 발표에서도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하루빨리 공정하게 확정하여 분쟁의 불씨를 없애자는 것”이 ‘NLL의 존재’ 인정의 취지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NLL의 존재’를 북측이 인정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을 확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발전했다는 것 자체가 북측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며, 남북 관계 발전의 커다란 성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모든 것이 헝클어져 버렸다. 국방장관회담에서 조속히 개최키로 했던 장성급회담이 열리지 못하면서 해상불가침경계선 설정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10.4 선언을 부정함으로써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역시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여기서 발견된다. 과거 대결시대부터 남측의 냉전적 보수세력들은 북측에게 NLL을 인정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을 확정하기 위한 남북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해왔다. 결과적으로 북측은 남측의 냉전적 보수세력들의 ‘요구’에 화답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했다면 그들이 일관되게 강조해왔던 방향대로 서해상에서의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를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부정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국 해결가닥을 잡아가던 해상불가침경계선 문제를 다시 NLL로 회귀시켰으며, 평화와 번영을 꾀하던 남북관계를 대결과 충돌의 파국 상태로 돌려놓고 말았다.

평화적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던 'NLL 문제‘가 다시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통일거부정책의 종말 2:현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통일거부정책의 필연적 귀결

남북관계가 이 지경까지 된 배경과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는 우문일 수 있다. 그러나 현 사태를 냉정히 직시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소위 ‘비핵개방3000’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다. 부시 정부마저 포기한 ‘선핵포기’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북의 반발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북은 MB 출범 초기 ‘비핵개방3000’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MB 출범 초기에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북측 차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다. 대표적인 네 장면을 보자.

# 장면 1.
MB 출범 전부터 중국에서 막후 접촉이 진행되기도 했으며, 당시 이명박 당선인 비서실장이었던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에 따르면 북은 MB 취임식 때 ‘특별초청장’을 요구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즉 남측 당국에서 북측에 ‘특별초청장’을 보내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소위 ‘사절단’을 파견할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특별초청장’ 발송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와 똑같은 ‘초청장’을 보내 북측은 결국 불참했다. 이미 지난 이야기이지만 당시 북측이 ‘특별초청장’을 요구했던 것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했던 것 같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 측에서는 남북관계를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규정해 ‘특별초청장’ 발송을 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튼 ‘특별초청장’ 관련한 해프닝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을 보여주는 것임엔 틀림이 없었다.

# 장면 2.
MB 정권 출범 후 통일부와 국방부 그리고 외교부가 북측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스타트는 외교부가 끊었다. 3월 초 외교부는 ‘북한 인권문제와 남북관계는 별개 사안’이라며 대북 유엔인권결의안에 찬성할 의사를 피력한다.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그 바통을 이어받아 3월 19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간담회에서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발언했으며,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는 비핵개방3000을 통일부 사업 1순위에 놓고 10.4 선언 이행 사업은 제외시켰다.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 역시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것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남북한 정신은 91년에 체결된 기본 합의서로, 그 정신이 지켜져야 한다"고 발언함으로써 6.15 선언과 10.4 선언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결정적 발언은 국방부에서 나왔다.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가 3월 26일 인사청문회에서 북핵시설에 대한 ‘선제타격’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 의원의 유도성 질문에 대한 답변이긴 했지만 합참의장 후보자의 ‘선제타격’ 발언은 북측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002년 부시 행정부가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선제타격’ 운운했다가 북측의 격렬한 반발을 샀던 것을 고려했다면, 김태영 합참의장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고 있었다면 ‘선제타격’ 발언은 하지 않았어야 한다.

북측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김하중 통일부장관이 개성공단에 대해 부정적으로 발언하자 북측은 3월 24일 개성공단에 상주하는 당국 인사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김태영 합참의장이 ‘선제공격’ 발언에 대해서는 북측 군부가 직접 나서 통지문을 통해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으며 사과하지 않을 경우 “모든 북남대화와 접촉을 중단하려는 남측 당국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우리 군대는 당면하여 군부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장면 3.
7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개원 연설에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그날 금강산에서 피격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북측은 금강산 피격사건 발생 하루 만에 북측은 ‘유감이지만 책임은 남측에 있다’는 요지의 입장을 명승지종합개방지도국 담화문 형태로 발표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측이 이례적으로 사건 발생 하루만에 ‘유감’을 표명했다는 점이다.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서는 안된다는 북측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남측의 책임’이라는 표현에만 집착한 나머지 ‘유감’에 담긴 북측의 메시지를 읽지 못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 장면 4.
10월 16일 <로동신문>에 실린 논평원의 글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측의 최후통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논평원은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존엄을 훼손하고 무분별한 반공화국대결의 길로 계속 나간다면 우리는 부득불 북남관계 전면차단을 포함한 중대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논평원의 글에는 “리명박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며 지금처럼 미국과 극우보수분자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물덤벙불덤벙하면서 무엄하게 놀아대다가는 수치스러운 종말을 고한 선행독재자들의 비참한 전철을 밟게 된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극우보수분자’들과 구분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 표현이 다소 거칠긴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두 정상선언을 이행할 것을 진지하게 제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몇 가지 진지한 발언을 했다면 남북관계는 회복의 여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월 6일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밝혔지만 북측은 ‘기다리는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11월 16일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자유민주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는 흡수통일 발언을 하자 북은 대화의 여지를 닫게 된다. 11월 22일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전쟁에 의한 통일을 최후목표로 한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나 같다”며 “북남관계와 통일문제를 론할 추호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 립증된 이상 우리의 선택도 명백해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미 선포한대로 그에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으며 결국 11월 24일 개성공단 상주인원을 제한하고, 개성관광과 열차 운행을 중단한다고 통보한다.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 가까이 두 정상선언을 거부하고 북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일관된 모습을 견지했다. 아니 북측과 대화를 거부하는 정도를 뛰어 넘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송두리째 무위로 돌려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간의 대화가 단절되었고,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중단되었으며, 개성공단 통과가 엄격히 제한됨으로써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마저 위협받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MB 통일거부정책은 ‘성공적’이었다. 남북관계에서 잃어버린 10년을 확실하게 되찾았다. 그러나 아직 ‘되찾지 못한 것’이 있다. 군사적 긴장과 충돌이다. 바야흐로 군사적 충돌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적 충돌이 예견되는 현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통일거부정책이 부른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기다림의 전략은 이미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제라도 적극적인 대응의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서해상에 군사력을 증강하는 대응이 아닌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대응 즉 기존의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하는 대응을 했을 때 파국을 막을 수 있고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정책전환을 할 것 같지 않다. 파국을 맞이할 태세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몫이다. 남북 사이의 충돌을 막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긴급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