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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란 오래된 오판 [2010.12.10 제839호]
[표지이야기] 주관적 희망에 바탕해 북한 급변사태만 기다리는 이명박 정부…
현실성 없는 대북정책 고집해 제2의 연평도 이어질 우려
김순배
1997년 4월20일, 에어필리핀 특별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2명의 노신사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에 앞서, 한 손에 모자를 든 채 두 팔을 들어 외친다. “대한민국 만세.”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이다. 같은 해 2월 중국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한 지 67일 만이다. 역대 북한 최고위직이자 ‘주체사상의 대부’의 망명은 ‘주체사상의 망명’으로 여겨졌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서울 도착 성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북조선은…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 상태에 들어가고… 인민들은 기아에 신음하고… 빌어먹는 나라로 전락됐습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석 달을 못 간다’는 주장까지 나오던 북한 붕괴론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연했다.

붕괴 시나리오, 어게인 1994

»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 등 서해 5도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12월3일 오후 백령도에서 군인들이 단거리 지대공유도무기(SAM) ‘천마’를 점검하고 있다.연합 이지은

1994년 10월, 북한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론까지 제기됐던 북핵 위기 뒤 북-미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2개의 경수로를 지어주는 제네바 합의에 이른다. 북한 체제가 10년 이상 걸릴 경수로 완공 전에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2010년, 북한 정권은 아직도 건재하다. 오판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북한 붕괴론이 현 정부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머리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을 보면,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외교부 2차관이던 지난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7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에게 “김정일은 2015년 이후까지 살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이 갑작스레 붕괴할 경우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나? 개인적·공적 생각이 섞여 있다”(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대북 정책과 전략이 이런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실마리를 보여주듯 이들의 발언은 지난 3년간의 정책기조와 퍼즐처럼 맞아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단이 드러난 대북 인식은 기존의 북한 붕괴론과 판박이다.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라는 논리 구조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1993~95년 북한 식량난이 맞물려 제기됐던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위기를 초래할 사망의 당사자가 김일성 주석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권력 장악에 실패할 지도자는 김정일에서 아들 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 지도부가 경제난을 견디기 어렵고 일부 엘리트의 쿠데타나 민중봉기에 의해 결국 실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그대로다.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숨지면 쿠바가 무너질 것이라는 미국 내 반쿠바 세력의 쿠바 붕괴론이 연상된다.




북한 붕괴론은 1998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식 최고지도자에 오르고 식량난 완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등을 거치며 설득력을 잃는 듯했다. 그러나 김정일 건강이상설이 불거지고 후계 구도가 한동안 드러나지 않으면서 다시 부상했다. 이런 붕괴설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한 전직 안보분야 고위 관료는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망상이다”(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미몽이다”(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단히 어설프고 심각하다”(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왜일까?

짐작과 달랐던 체제 안정성

» 지난 6월15일, 천영우 당시 외교부 차관(왼쪽)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북한 체제를 오판하고, ‘김정일 사망=북한 붕괴’로 동일시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곧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적 권위를 갖고 북한을 통치해온 만큼, 그가 숨지면 북한 체제가 곧바로 무너진다는 판단 착오다.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 논의도 붕괴론의 연장선이다. 소련, 루마니아, 폴란드 등의 사례를 보면 체제 권력의 위기, 경제개혁의 실패 또는 극단적 악화, 민중봉기가 체제 전환의 변수다. 북한에도 유효할까? 북한의 치밀한 내부 시스템을 따져보면, 대답은 ‘노’(NO)에 가깝다.

이번에 일단이 드러난 대북 인식은 기존의 북한 붕괴론과 판박이다.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라는 논리 구조다.

김정은이 지난 9월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면서 북한은 ‘3대 세습’ 공식화에 들어갔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고모인 김경희 당경공업부장이 김정은을 돕는 ‘친족 후견체제’를 드러냈다.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는 노동당 대표자회를 하루 앞두고 대장 칭호를 부여받았다. 김일성 일가는 ‘조선의 독립과 해방에 몸 바친 혁명가족’으로 떠받들어진다. 북한은 1990년 후반 식량난으로 수백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봉기 없이 넘어갔다. 절대적 빈곤은 겪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적고 철저한 통제와 감시가 이뤄지고 있어,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체제 붕괴로 연결되기는 무리라는 분석이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유도할 지도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북한은 군부 원로 및 실세가 국방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를 통해 집단적으로 군사·안보를 관장하는 체계다. 김정일 위원장을 빼면 독자적 군대 지휘가 어렵다. 또 경제난과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과거 사회주의권의 붕괴 과정을 봐도 장기간 대규모 유혈사태는 없었고, 민족적 동질성이 높은 북한에서 그 가능성은 더욱 낮다. 오랜 위기에 단련된 북한은 우라늄 농축과 연평도 공격 등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 한반도의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 중국은 북한을 정치·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후견국임이 연평도 포격 뒤에도 확인됐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통 까맣다. 문제는 붕괴론에 기초한 ‘희망적 분석’이 대북정책을 오도한다는 사실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의 권력이 198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을 능가할 정도였는데도, 1990년대 북한 붕괴론자들은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해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잘못 파악했다. 2004년 북한 용천 폭발사고 때도 통치시스템 붕괴 및 암살기도설이 제기됐다. 최근의 붕괴설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의도적 해석에 따른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남북관계는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경계해야 하고 객관적 판단이 요구된다”며 “희망적 차원의 접근은 정책 안정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독특한 공산독재 체제에 자유민주 체제 분석의 틀로 접근하면, 북한은 권력의 정당성과 기반이 취약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라는 인식을 넘어설 수 없다.

사실 북한 체제의 붕괴 및 예기치 않은 급변사태 가능성은 과거 정부에서도 대비했다. 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햇볕정책도 북한을 쓰러뜨리려는 술책이라는 북한의 반발을 샀다. 기존 정부도 북한 붕괴라는 시나리오는 더 열심히 대비했다”고 말했다.

‘플랜A’로 부적절한 붕괴론

문제는 이런 급변사태 대비와 일상적 대북정책을 어떻게 통합시키느냐다. 협상과 외교 등을 통한 일상적 전략, 곧 ‘플랜A’가 우선되고 북한 붕괴 등 비상시에 대비한 ‘플랜B’도 준비해야 하는데, 현 정부에선 플랜B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전직 안보 분야의 한 고위 관료는 “비상계획은 비상계획일 뿐인데, 그 자체가 정책적 판단의 기초가 되면 정상적이고 합리적 정책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급변사태 대비는 당연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일상적 정책에서 중심이 돼 강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대북정책은 대화 기피와 강경론으로 이어진다. 곧 무너질 것이므로 압박·공세 정책을 선택하게 한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뒤에는 북한 정권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떨어질 감을 따기 위해 바람도 부는데 나무 위로 올라가 가지 잡고 아슬아슬하게 감을 따려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북한 붕괴론이 기승을 부리던 1990년대 중·후반 김영삼 정부의 대북 강경책의 되풀이다.

김연철 교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의 실체로 인정해야 대화를 하는데, 곧 붕괴할 테니 무시하고 제재하고 도발에 협상하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교수는 “정부가 북한은 잘못된 주장을 하다가 합의를 어기고 기분 나쁘면 도발한다는 뿌리 깊은 ‘북한 악마론’과 제재하면 북한이 결국 항복하거나 무너진다는 잘못된 인식의 동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 교류협력 축소와 중단도 북한 붕괴론에 닿아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기아 등으로 붕괴 직전에 있었으나 남한의 지원으로 살아난 만큼, 압박과 공세로 붕괴를 유도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붕괴추진론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인권유린 등을 알려 대량 탈북을 유도하고 ‘깡패국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도 한 뿌리다. 양무진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경제적 지원 요구 때문에 포기한 것으로 위키리크스를 통해 밝혀진 것과 관련해 “붕괴론에 기반을 둔 흡수통일론과 오락가락하는 대북정책은 남북 정상회담 추진의 진정성과 의지 부족은 물론 전략 부재를 의심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흡수통일 방관할까

김연철 교수는 “흡수통일론은 북한 붕괴론이란 동전의 뒷면이다”라고 지적했다. 체제붕괴론은 북한이 대한민국에 흡수되는 형태로 소멸할 것으로 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에서 통일세 신설을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이 곧 무너져 흡수통일된다는 판단에서 그 대책으로 통일세 논의가 제기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기존에도 같은 남한 주도 통일이지만 협상에 의한 합의통일을 상정했다. 이는 자체 붕괴나 붕괴시키려는 전략을 상정하고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통일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화해-연합-통일’의 연착륙을 상정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통일비용 논의가 활성화된 것도 붕괴론의 연장선이다. 민주노동당은 8·15 기념사에 대해 “통일세는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극우적 발상과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한 비현실적인 전제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불순하다”며 “북한은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 아닌 통일의 동반자”라고 비판한 바 있다.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고립정책은 북한 체제의 내부적 결속과 폐쇄성 및 적의를 키워놓았다.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저질러 남한 국민 등의 적대감에 불을 질렀다.

현 정부의 북한 붕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북한이 무너지면 우리가 먹는다’는 안이한 인식에 있다. 북한의 붕괴는 떨어지는 감이 아니다. 감은 위치만 잘 잡고 입만 벌리고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흡수통일은 북한이 원할 때, 그것도 중국 대신 남한을 선택할 때만 가능하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도 1990년 국민투표에서 서독에 편입되겠다는 동독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됐다. 독일은 동족상잔의 전쟁도 겪지 않아 원한과 적대감이 적었고 사실상 자유 왕래를 했다. 통일을 하려면 자석처럼, 흡인력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전직 안보 분야 고위 관료는 “중국이라는 대안이 있는데, 북한이 망하면 한국이 접수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순진한 생각이다. 급변사태가 나서 한국이 주도하려면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남한에 의존할 수 있겠다는 심리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생겨야 하는데 ‘2등 국민’ 취급받을 생각에 남한을 선택하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남한 주도의 통일을 용인하는 것은, 그것이 중국에 위험하지 않고 동북아에서 한-미 동맹을 끌어들여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될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김근식 교수는 지난해 논문 ‘북한 급변사태와 남북연합: 통일과정적 접근’에서 “붕괴 후 흡수통일로 분류되는 독일의 경험이 화해협력에 의한 점진적 통일 방식과 역사적으로 결합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에 20여 년에 걸친 교류접촉과 화해협력의 신동방정책이 있었다. 화해협력이라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지속됨으로써 비로소 붕괴 뒤 흡수통일이라는 ‘결과로서의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붕괴 기다리다 도발만 당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소원’ ‘민족의 염원’이라는 남북통일은 북한 붕괴라는 급변사태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과 막대한 통일비용, 이후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 붕괴론에 기반을 둔 대북정책을 바꿀 때까지 대결 국면과 제2, 제3의 연평도는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연평도 사태 뒤 정부는 연평도에 과도한 무기 배치를 추진하는 등 대북 강경대응론에 휘둘리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 내정자는 11월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추가로 도발하면 “분명히 항공기를 통해 폭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대응은 필요하지만, 하필 확전을 우려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불안하고 미덥지 않기는 연평도 도발을 저지른 북한 정권만이 아니다.

참고 문헌

‘북한붕괴론의 어제와 오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북한 붕괴론에 대한 평가’ 이상근, 통일연구, 2008

‘북한 급변사태와 남북연합: 통일과정적 접근’ 김근식, 북한연구학회보, 2009

‘북한 조기붕괴설 부작용 차단과 내재적 접근의 이적논리’ 정용석, 북한, 2010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