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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지원단체들이 뿔났다?
<신년기획②> MB정부 2년차, 대북지원단체들의 고민과 대응
2009년 01월 22일 (목) 18:40:01 박현범 기자 cooldog893@tongilnews.com

2009년 새해가 밝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2년차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신년을 맞아 통일운동단체, 대북지원단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 실무자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봤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한 각 운동진영의 현주소를 조명했습니다. <신년기획>은 ①통일운동진영의 현주소 ②대북지원단체의 고민과 대응 ③방담-시민.사회.네티즌의 소통 ④르포-미군훈련장 확장으로 고통 받는 무건리 주민들 순으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암담한 정도가 아니다."
"이렇게 4년 가는 거다."

2009년 이명박 정부 2년차를 맞는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10년 넘게 남북을 오가며 현장을 누빈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들은 남북관계의 온도를 피부로 체감하는 '실물전문가'. 이들의 표정에선 2009년 한 해 살림살이를 꾸려나가기가 녹록치 않을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인도적 '지원사업'에서 '개발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던 민간지원단체들 사이에선 사업의 확대.발전은 커녕 현상유지라도 해야 할 판이라는 눈치다.

"악착을 떨고 해야 한다.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대북지원사업 '긴축운영' 불가피


올해 사업계획을 마무리짓기 위해 북측 파트너와의 실무협의차 1-2월 속속 방북길에 오르는 대북지원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올해 긴축운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북지원 사업을 긴축운영하는 데는 한국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 탓도 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정부가 지원하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이나 기업.국민 등을 대상으로 한 모금수입이 대폭 줄어들어 신규 사업을 조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지원단체들은 올해 협력기금이 전년도 수준이거나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 상황이 악화된다고 해도 대북지원 사업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 평양 현지에 공장을 설립해 직접 식량지원을 하는 사업을 벌인 단체들은 더더욱 그렇다. "악착을 떨고 해야 한다. 안 할 수는 없지 않냐?"(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김이경 사무총장)는 말이 절로 나온다.

   
▲ 남북관계 경색의 여파로 정부가 지원하는 남북협력기금과 기업.국민 모금이 줄어들 경우, 대북지원단체들이 평양 현지에서 생산하는 식량의 양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평화3000이 평양 현지에 설립한 두부공장에서 두부를 만들고 있는 북측 노동자들. [사진제공-평화3000]
단적으로 평양 현지에 콩우유.두부 공장을 설립해 인근지역 취약계층에 매일 콩우유와 두부를 공급하고 있는 평화3000의 경우가 그렇다. 평화3000의 박창일 운영위원장은 "우리 같은 경우는 올해 지원을 안 받아도 가는(사업을 계속하는) 거다. 공장 다 만들어 놓고, 기계 다 놓고 수억을 투자하고선 멈출 수는 없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2006년 평양시 장충동에 설립된 '북한 어린이를 위한 콩우유공장'에 생산설비와 배급차량을 지원한 평화3000은 매일 1,000L의 콩우유를 공급하기 위해 생산에 필요한 콩, 콩기름 등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또 이듬해 평양시 송신동과 남포시 천리마군에 세운 두부공장에도 분기별로 두부원료를 공급해야 한다.

초창기 설비투자에 총 3억 3천여만원이 투자된 콩우유 공장과 두부공장을 가동하는데 연간 수억원이 소요된다. 콩값 상승과 환율폭등 등 이중 악재가 겹쳤던 지난해 6개월간 콩우유와 두부원료를 지원하는데 1억 2천만원이 들어갔다. 환율변동이 없을 경우, 올해만 2억원이 넘게 소요된다.

평화3000의 피선영 사무처장은 "작년의 경우, 정부협력기금을 받지 않았다. 올해의 경우도 공동모금에서 일부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후원금을 받아서 할 것"이라며 "모금이 줄어들면, 원료비를 낮출 수는 없기 때문에 양을 줄이는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화3000과 같이 평양 현지에 공장을 세워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농업, 산림, 의료,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기아대책 등 대부분의 지원단체들 사정도 매한가지다.

단체별로 정부가 지원하는 남북협력기금 의존률에 차이가 있지만, 대북지원단체들이 비영리단체로 기업.지자체.국민모금과 정부기금만으로 사업을 이끌어 가야하는 형편인 만큼 올해 전체적으로 재정상황은 여의치 않다.

총 56개의 대북지원.협력단체들이 모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회장 정정섭, 북민협)에 추가로 가입하는 단체가 지난해 처음으로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점은 대북지원사업의 토양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1년 사이 얼만큼 척박해졌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과 같은 비교적 규모가 큰 지원단체들이 모두 긴축운영을 하는 만큼, 정부기금에 의존해 왔던 신생.소규모 단체들은 말그대로 '보릿고개'를 넘어가야 할 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강영식 사무총장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협력기금 지원의 방향은 2월에 결정될 것 같다.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일방적 잣대에서 근거해서 축소내지는 비현실적 조건을 내걸 우려가 있다"며 "몇 년간 정부의 기금지원을 통해서 의미있는 사업들이 지속이 됐는데, 정부의 기금이 없어지거나 축소되거나 또는 새로운 모니터링 잣대로 비현실적 조건을 내세운다면 사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북한 주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의 김이경 사무처장은 "신규사업을 벌이지 못하면 유지가 안 된다"면서도 "큰 기금이 위축이 되니까, 신규 사업을 벌이는 것은 힘이 들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안 벌일 수는 없고, 그런데서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남북관계 경색에 지원단체 '이중고'

경직된 남과 북, 양쪽 당국을 상대해야 하는 대북지원단체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남북간 교류흐름의 물꼬를 더 넓게 틔우기 위한 새로운 지원.협력 사업들을 만들어내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단적으로 6.15, 10.4선언의 이행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남북 당국간 경색여파가 민간단체들의 사업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다.

한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북측이 꼭 필요로 하는 사업이 아니면 안 받을 거다. 최근 몇 개월간 신규 사업을 (북측이) 받지 않는 것은 그 쪽에도 인사 이동되는 것이다. 담당일꾼들이 자기책임을 마무리해야 하니까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경험 있는 일꾼들이 많이 뒤로 물러났고, 새로운 사람들, 젊은이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갖는 일정정도 한계와 문제점이 그동안의 합의된 사항이 약간 도외시되는 측면이 있다"며 "북측이 남측을 직접 비난했던 지난해 3월부터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 북이 남에 대한 태도를 정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민간단체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민간단체들이 대북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히는 것은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박창일 운영위원장은 "방향이 잡히는 게 있어야지. 평화3000은 올해 사업에서 특별히 크게 벌일 생각이 없다. 기존 사업 그대로 해나가면서 흐름을 봐야지 어떻게 하겠냐"며 "지금 정치적으로도 남북이 어려움과 갈등을 겪는 상태에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는데... 좀 더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의 모호성이다. 남북경협을 하겠다는 건가 안하겠다는 건가? 한쪽에선 한다고 하고 정책이 실행되는 것을 보면 안 한다는 것이고"라고 꼬집었다.

강영식 사무총장도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을 포함한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라며 "작년 한해도 오락가락했고, 결국은 10년 동안 유일하게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었던 한 해로 기록이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북관계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속에선 민간단체들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기아대책의 권용찬 사무총장은 "지난해 남측 정부가 북한지원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북측 당국도 마찬가지 태세로 일관해 오고 있었기에 남쪽과 북쪽의 인도적 지원 사업에 대한 대승적 결단을 끌어내지 못하면 앞이 안 보이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간 교류로 기반이 조성되지 않으면, 민간차원의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북지원단체들 '뿔났다'... 북민협 강화 움직임

   
▲ 대북지원단체들은 총 56개의 단체들이 모인 북민협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북지원단체 대표자들이 지난 20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회원단체들의 책무성 강화와 지원사업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공동행동규범'에 사인을 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지난해부터 대북지원단체들 사이에선 북민협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 정부의 인도주의적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진 탓으로, 개별단체들이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식에서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단체들이 모인만큼 대정부 인식에서도 온도차가 크지만, 대북지원사업에 대한 위기의식이 공통분모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민단단체간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채찍질을 한 셈이다.

한 지원단체 관계자는 "작년에 민간단체 길들이기가 있었다. 그전까지의 경우는 민간단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통일부 입장서 말이 되건 안 되건 큰 틀에서의 수용이 있었다"며 "작년의 경우 통일부 잣대가 너무 심각하게 들어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작년에 북민협이 효율적으로 대응을 못했다"며 "올해는 북민협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단체들 사이에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단체의 관계자는 "대정부 정책 조정에서 단일한 코드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을 조정해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야만 대정부 견인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배경에서 북민협은 지난 20일 정기총회를 열어 정책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정책조정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책위원회는 운영위원회와는 별도로 상임위원회 산하에 설치하며, 상임위원회와 운영위원회의 정책지원기능을 갖는다.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인 북민협이 조직 내 정책위원회를 둬 북민협 차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단체간 의견을 조율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측 파트너인 통일부와의 정책조정기능을 강화하는 것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다.

한 관계자는 "북민협을 통한 단결, 어떻게 질을 높여내서 실질적으로 대응을 하느냐의 문제에서 원론적으로 북민협 단체들의 이해가 있지 않냐? 이해를 조정하면서도 실제 단결을 어떻게 시켜나가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