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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적 검토
<칼럼>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2012년 07월 11일 (수) 14:30:56 이승환 tongil@tongilnews.om
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위기의 남북관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요지부동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려 해도 북한이 변화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판에 박힌 논리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대북정책은 바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한다.

이런 기대의 배경에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보다는 상대적으로 대범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여당의 유력주자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보다는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고, 또 이러한 기대가 그의 높은 지지율과 어느 정도 연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대 총선과 새로운 안보공세

그러나 지난 19대 총선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남북.평화 의제’와 관련한 태도는 이러한 일반의 기대와 달리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남북.평화의제와 관련하여 철저히 ‘핵심 쟁점 비껴가기’로 일관하였다.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집 중에서 남북.평화의제 부분은 사실상 아무 내용 없는 ‘공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남북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 추궁’을 회피하려는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정치세력으로서는 결코 책임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른바 ‘종북세력’에 대해서는 3대세습과 북핵 등에 대해 책임있는 입장을 밝히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남북.평화의제와 관련한 입장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모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또 박근혜 후보는 핵심쟁점 비껴가기와 함께 적극적인 ‘안보공세’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지난 총선 당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구럼비 폭파 강행’으로 제주해군기지문제와 한미FTA 등 안보이슈를 공세적으로 제기하였고 이를 지지율 변화로 연결하려 하였다. ‘북한’ 없는 이 새로운 안보공세는 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색깔론 공세와 다를 바 없지만, 천안함사건 이후 치러진 2010년 지방선거와 달리, 지난 총선에서는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한 관계자에 의하면 한미FTA 폐기 논란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이 불거지면서 민주통합당 지지율이 약 5% 정도 하락했다고 한다).

‘신뢰와 균형,’ 모호한 원론적 언술

결국 지난 총선은 여당의 신안보공세가 국면을 주도하고 야당의 남북관계 파탄 책임론과 남북.평화의제는 잠복하는 양상을 보인 선거였다. 이는 총선에서 남북.평화의제와 관련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포지션이 결국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그들의 색깔공세에 올라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 파탄으로 이어진 현 국정 운영구조가 실은 이명박-박근혜 연합정권이며, 총선 이후 그 구조는 박근혜-이명박 연합정부로 역전되었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백낙청, ‘6.15공동선언 12주년 기념식’에서의 격려사).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은 지난해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고문에서 그는 햇볕정책은 목적한 바와는 다르게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를 얻지 못했고, 지속적인 압력 일변도 정책 역시 남북관계의 진전에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였다.

박근혜 후보는 이를 “궁극의 목표는 (현 정부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유연할 땐 더 유연하고 단호할 땐 더 단호하게 함으로 안보와 교류, 남북관계와 국제공조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 목표는 같지만 접근법이 이명박 정부와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더 많은 당근, 더 많은 채찍’이란 이 그럴싸한 언술은 박근혜 후보만의 특별한 정책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도 출범 초기에 동일하게 구사했던 대북정책 언술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박근혜 후보의 이러한 언술은 ‘비핵.개방.3000정책’의 핵심 요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더 많은 당근, 더 많은 채찍’의 논리로 북한에 접근했던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북에 대해 채찍을 휘두르다가 이제는 휘두를 더 많은 채찍도 없어졌고, 정작 당근을 제공할 기회는 단 한 번도 갖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칠 상황에 처해 있다.

후퇴한 북핵문제 입장

또한 박근혜 후보는 <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는 “한국과 국제사회는 핵을 포기하는 것이 북한이 더 안전하고 풍요롭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 역시 ‘선 북핵포기론’ 등 사실상 북한의 일방적 변화만을 요구한 이명박정부와 전적으로 동일한 입장이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의 김영희 대기자는 “그런 말은 우리가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이지 박 전 대표의 새로운 통찰이 아니다. 대세론을 믿는 한국의 ‘미래의 권력’은 남북관계의 타결을 위한 새로운 방안도, 깊은 통찰도 없는 ‘글을 위한 글’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고 냉철히 지적한 바 있다(<중앙일보>, 2011, 9. 2).

김영희 대기자의 지적대로, 이러한 입장은 박근혜 후보가 2009년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북핵 문제는 그것만 따로 떼어서는 해결할 수가 없고 북한 문제, 더 크게는 동북아 다자안보 프로세스의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한 것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북정책에 관한 한 박근혜는 이명박과 다를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는, 지난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대북전문가들 대부분이 낙관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과 연결해볼 때, 매우 안이한 인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사여구에 결여된 진정성과 비전

현재까지 박근혜 후보는 대북정책에서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을 보이기보다는 원칙적 입장의 동질성을 더 강조해왔고, 지난 총선에서 보듯이 대북정책 관련해서는 핵심쟁점 비껴가기와 ‘국민을 홀리는’ 모호한 화법, 그리고 색깔공세 편승 등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대북정책은 미사여구로 넘어가기 어려운 매우 복잡하고도 포괄적인 고려를 필요로 한다. 남과 북은 통일의 대상이자 현실적으로는 제도화된 수많은 적대성에 발목 잡혀 있으며, 특히 탈냉전 이후에는 사회.경제.문화 등의 다방면에서 새로운 관계가 끊임없이 구성되면서 민족성과 적대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북정책이 처한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포용정책과 압박정책’ 양자의 좋은 말만 가져오는 미사여구의 조합은 정책으로서 아무런 현실성도 가질 수 없거니와 실제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미사여구에 결여된 진정성과 비전을 채워 넣는 일이다. 특히 북한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리지 말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할 독자적 비전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에는 그런 독자적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과 관련한 모호한 태도는 그의 비전 부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