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43162&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이 정부 들어 남북 대화를 모두 21번 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80번, 노무현 정부는 171번 했다. 하다 못해 노태우 정부도 163번이나 했다. 그나마 이 정부에서 한 대화는 장성급 이상 고위급은 하나도 없다. 정치 분야는 하나도 없다."(2011.2.25 국회 대정부질문)

 

현재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을 이처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또 있을까. 사람도 자주 만나야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만나지 않고 짐작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다 보면 괜한 오해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는 법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성적은 굳이 수치로 따져보지 않아도 참담한 상황이다. 서해에선 멀쩡했던 대잠수함 초계함이 세 동강으로 쪼개져 장병 46명을 한꺼번에 잃는가 하면,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우리의 영토인 연평도에 적의 포탄이 날아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대북단체들의 전단 살포가 계속되고 있으며, 북은 이를 조준사격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사소한 일 하나가 언제 어디서 크게 불거져 전면전으로까지 비화할지 모를 일이다.

 

전임 정부들이 집권한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매도해 남북간에 그간 이뤄놓았던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릴 때만 해도 이 정도로까지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마 했던 사람들에게 우리가 분단국가이며 자칫 전면 전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현실을 일깨워준 것이 바로 1년 전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이다.

 

사실규명은 미래지만, 남북관계 경색은 현실

 

너무나 예기치 못한 사건인 만큼 천안함 사건에는 수많은 의혹들이 많이 있지만, 정부와 보수세력은 '비전문가들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제기하는 음모론', '북한이 아니라면 누가 했다는 거냐'는 식으로 무시해 사건의 진실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규명은 미래의 숙제로 남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심각화는 엄연한 현실이다.

 

  
전문가 6인이 펴낸 <천안함 외교의 침몰> 표지
ⓒ 풀빛
천안함

코리아연구원이 천안함 사건 1년을 맞아 최근 펴낸 <천안함 외교의 침몰>(풀빛, 1만8000원)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진행된 한국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이 오늘날 왜 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군사전문가, 언론인, 학자, 연구원 등 전문가 6인이 힘을 모아 펴낸 이 책에서 그들은 '천안함 침몰'에 이어 '천안함 외교마저 침몰했다'고 본다, '천안함 외교'라고 줄여 불렀지만 사실은 '천안함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침몰이다.

 

즉, 천안함 이후 외교는 한미동맹에 매몰돼 한반도를 둘러싼 또 하나의 강대세력인 중국과의 외교가 침몰했고, 언제 작은 불똥이 떨어져 전쟁으로 치달을지 모를 심각한 남북대치국면이 연출된 만큼 안보도 침몰했고, 그에 따라 통일은 아예 눈앞에서 멀어져갔다는 것이다.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던 남북관계가 20-30년 냉전 시대로 돌아간 것에 대해 아쉬워하면서도 저자들은 애써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침몰된 외교를 다시 수면으로 꺼내놓기 위한 저마다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 키워드는 '대화'다. 조건을 달지 말고 대화에 나서란 말이다.

 

"한 우리 안에 호랑이와 사자를 함께 집어넣은 꼴"

 

군사전문가 김종대 <D&D 포커스> 편집장은 이 책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서해에서 일어난 군사 충돌을 '한 우리 안에 호랑이와 사자들 함께 집어넣은 것과 같다'고 진단한다. 즉, 적대감이 강한 양측 군대가 좁은 해역에서 으르렁거리는 만큼 반드시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평화적 접근법보다 군사주의 접근을 우선시하면서 북한의 군사주의와 맞부딪치고 남북대치가 고조돼 급기야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에 이르게 됐다고 진단한다.

 

서해에서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남측의 '확전차단장치'가 약화돼 도망가는 북 함정을 쫓아가 격퇴시킨 연평해전, 굴욕적 패배에 절치부심하며 오매불망 보복을 벼르는 북한 군부의 움직임, 정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2차대전 이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군사작전이라 할 수 있는 천안함 침몰 사건, 미 항공모함의 서해진입 요청과 심리전 재기 같은 비현실적인 군사조치의 남발, 어정쩡하게 사태가 정리되는 듯한 와중에 터진 연평도 포격의 비극 등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이르는 과정을 군사전문가답게 속도감 있게 서술해 나갔다.

 

그는 남북 양측 최고지도자가 각각 군부의 강경 정책 건의에 휘둘려 전쟁위기까지 이르렀다며 서북 해역 문제를 군에만 맡겨두는 의사결정구조에서 벗어나 문민주의에 입각한 스마트한 통제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북관계 바닥 친듯... 진정한 대화에 나서라"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 긴장이 조성되는 등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고 규정한다. 또한 그런 상황의 원인제공자로서 북한의 도발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관리해야 할 책임을 진 정부로서 대북강경책을 유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은 천안함 사건 1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분명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런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추가도발을 한다면 남측의 강력한 보복 응징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북측은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므로 당분간 도발보다는 남북관계 복원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며, 남측의 이명박 정부도 안보 무능 및 남북관계 파탄이라는 최악의 평가를 받은 채 임기를 마치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에 따라 그는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는 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방침을 버리고 북한과의 접촉과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고 상호 의견을 교환하면서 관계를 변화시켜야 북한의 변화도 이끌 수 있다고 주문한다. 즉, '북한의 변화를 통한 대화'에서 '대화를 통한 변화'로 정책을 바꾸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 "언제 대화 안 한다고 했나?"

 

그러면 이명박 정부는 과연 방향을 바꿀 것인가.

 

"정부가 언제 (북한과) 대화 안 한다고 했나요?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어요. 최근 군사회담도 열렸고…"

 

올초 북한으로부터 대화제의가 잇따르고 주변국의 6자회담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최근 남북관계가 대화국면으로 접어든 게 아니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가 답한 말이다.

 

대북 강경책과 대화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답하는 정부 정책 담당자들의 답은 항상 이런 식으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식이다. 기자가 남북관계의 봄을 그리 낙관하지 않는 이유다.

 

이 책에는 이어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의 'MB표 한미동맹', 서보혁 이화여대 교수의 '북핵 문제의 악화와 한반도 비핵화 신구상', 홍익표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의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의 대응과 전략적 선택', 박홍서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의 '21세기 미중관계, 충돌인가? 담합인가' 등의 글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