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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제3자로서 감동 느끼고파"
'프랑스인 한반도통일 전도사' 패트릭 꿴즈망 씨
2009년 05월 11일 (월) 16:45:05 정명진 기자 http://onecorea615.cafe24.com/xe/tongilnews/mailto.html?mail=mjjung@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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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한국 친선협회' 소속 패트릭 꿴즈망(Patrick Kuentzmann)씨. [사진 - 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패트릭 꿴즈망(Patrick Kuentzmann)씨는 프랑스인이다. 그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관심은 한국사람 못지않다. 오히려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한반도 통일 전도사'라는 별칭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주위에 자신보다 한반도 문제를 더 잘 알고 관심이 많은 프랑스인이 많다면서 사양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그에게 이 별칭만큼 어울리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이 통일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돈이 많이 들것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요. 물론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수준이 낮지만, 경제적 차이를 표면적으로만 보지 말고 북남 고유의 능력이 있다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한국의 통일은 누구나 염원하는 것인 동시에 필수적으로 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죠. 한국이 통일되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민감한 의견 분립까지 해소시켜 좋은 영향을 끼칠 겁니다. 통일 만세! 그런 자세를 가지고 진전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남한보다 북한을 먼저 알게 됐다. 1989년, 꿴즈망씨가 대학생 때 일이다. 그는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북한에서 송출하는 방송을 듣게 됐다. 프랑스어 방송이었다.

"평양 라디오 방송국에 편지도 보냈어요. '나는 프랑스 사람이다. 평양 방송을 들었는데 아주 내용이 괜찮아서 관심이 생겼다'라는 내용이었어요. 며칠 뒤에 답장까지 받았어요. 거기에는 북한을 소개하는 책자들이 담긴 선물도 들어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만 해도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갈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프랑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한국사람들에게 들려줄 때마다 놀라거나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꿴즈망씨는 '북한을 꼭 여행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꿈은 17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그는 2005년도 벨기에의 '코리아 이즈 원'이라는 협회를 통해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그것도 중국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순식간에 도착하는 비행기보다 기차를 타고 천천히 북한을 맞이하고 싶었어요. 북경에서 신의주로 넘어가서 입국 검사를 마치자 북한을 처음 만나는 감흥이 몰려왔습니다. 기차를 타고 신의주를 내려오는데 시골풍경이 시야에 들어왔어요. 프랑스에 있을 때 북한 당국이 외부사람들이 기차에서 바깥 풍경을 못 보게 하기 위해, 기찻길 양옆에 높은 벽을 다 쌓아 놓았다고 들었는데, 차장 밖을 보면서 프랑스가 거짓말을 했구나하는 걸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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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꿴즈망씨는 200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6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다. [사진 - 알레인 노그베스, 제공 - 패트릭 꿴즈망]
그 뒤로 그는 2006년, 2008년 '프랑스-한국 친선협회' 간부 자격으로 평양을 두 번 더 방문했다.

"(북한이) 가난한 나라라는 것은 맞았어요. 죽어간다고 했지만, 그런 모습은 아니었어요. 가난하지만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어요. 2006년 7월 홍수가 나고 한 달 뒤인 8월에 갔을 때도, 프랑스 언론들은 큰 홍수로 전 나라가 파멸해간다고 보도했지만, 다 죽어가는 참혹한 상황은 아니었어요. 평양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을 그대로 하고 있었고, 여러 기업을 방문하면서 상상했던 만큼 기술 수준이 낮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가 속해 있는 '프랑스-한국 친선협회'는 1969년 프랑스의 공산진영, 사회진영, 국수진영 등 여러 가지 정치 이슈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창설한 협회다. 처음에는 북한하고 더 가까운 협회였다고 한다. 창설당시 단체 명칭이 '파리-평양친선협회'였다가 남북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989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했다.

이 단체의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를 잘 모르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소개하는 것이다.

'프랑스-한국 친선협회'는 2007년 북한에 홍수가 났을 때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북한수해돕기운동'을 펼쳤다. 자선바자회를 통해 얻은 모금으로 컨테이너 한 개 분량의 생활필수품을 북한에 보냈다. 북한의 '조선-프랑스 친선협회'와 교류하면서 모란봉 제1중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교육자재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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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에서 북측 인사들과 찍은 기념사진. [사진 - 알레인 노그베스, 제공 - 패트릭 꿴즈만]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북한과 정상외교관계 구축을 촉구하는 것도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이다. 꿴즈망씨는 "프랑스 정부는 유럽에서 조선인민공화국과 완전한 외교활동을 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비판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언론들도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 많이 다뤘지만 정부의 입장을 비판 없이 소개하는 보도였죠. '북한은 위성 발사 자격이 없는데 발사했다' 이렇게 인식될 뿐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드러냈다.

"오바마한테 특히 북.미관계에 대해서 아주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요. 특히 3월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기록적으로 대규모로 치르면서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오바마는 부시와 다르게 모든 세계에서 애호 받는 대통령인데 저희 협회나 개인적인 평가로는 너무나도 실망스럽습니다."

꿴즈망 씨는 한국사회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3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전날 저녁에 있었던 '촛불 1주년 집회'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를 보면서 100만명이나 모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아내와 함께 개인적인 여행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 기획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백범기념관을 다녀오기도 했다. 김구 선생에 대해 탐구하면서 "한반도 통일은 우익이나 좌익 같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참여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평가해달라고 요청하자 "한국 사람이 파리에 와서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을 꺼리듯이 남한에 와서 남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서도 "남한은 너무 친미적인 정치 입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서 본질을 비켜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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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꿴즈망 씨와의 인터뷰는 8일 오후 서울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프랑스-한국 친선협회 회원으로 보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관심이나 애착을 가진 대통령으로 보이지 않아요.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남북관계 개선의 열쇠를 가져다 줄 장관으로 보지 않습니다. 남북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사이의 문제인데, 현 장관은 외교적으로 세계에 알려서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한국 친선협회'가 한반도 통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프랑스 국민들에게 한반도 통일 문제를 알리는 데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한민족은 5천년의 역사에 걸맞은 의식을 가진 민족이라고 믿고 있어요. 남북이 통일로 가기 전까지 불협화음 없이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북한 사람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고 싶어요. 북한 사람이 남한에 왔을 때 문화적 차이를 느끼는 모습을 제3자로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