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일재원 일부 세금으로 충당”
고위 당국자 "대북 지원식량 전용, 상당히 근거 있어"
2011년 07월 17일 (일) 12:00:07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대화 환경 숙성돼 있지는 않다”

“북한이 지금 어떤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는 그런 조짐은 아직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떤 대화의 환경이 숙성돼 있지는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5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관계라는 게 현 시점에서 볼 때는 가변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큰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하고 남북관계 전반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 고위 당국자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비공개 접촉에 대한 폭로가 한달 남짓 밖에 안 됐고, 최근 그 이후에도 특히 표적지 문제에 대해서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을 아주 원색적으로 비난을 해왔다”는 점과 “북한 내부적으로 각 지역마다 소위 군중대회를 통해서 우리를 비난하고 내부를 결속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현 시점에서 작은 발걸음이라도 한 걸음씩 떼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계적인, 작은 것들이나마 갈 수 있는, 그런 것들로부터라도 착실히 밟고 가는 그런 단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계적인, 작은 것들’의 사례로 “민간에 의한 특히 북한의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지원은 인도적 측면에서 계속 해나간다. 모니터링 같은 것들이 더 잘 되고 하면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약품이라든가 취약계층 위해 필요한 그런 것들도 물론 좀 확대를 해나가겠다. 그리고 취약계층을 위해서 필요한 어린 아이들의 분유라든가 영양식 같은 그런 것들은 우리가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예시했다.

또한 “일부 민간단체들이 취약계층에 밀가루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며 “앞으로 여러 가지, 모니터링의 가능성을 포함해서 검토를 해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했다. 아울러 민간지원 역시 “영유아 취약계층에 한정된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이 북한 취약계층 밀가루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가 사실상 불허 입장을 고수해 발이 묶인 상황이 상당기간 이어지고 있고, NCCK(한국기독교회협의회)는 정부의 승인 없이 제3국 민간단체를 통해 밀가루 지원을 강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고위 당국자는 “과거 민간단체 지원 같은 것들은 사실은 모니터링이 거의 되지 않았다”며 “EU나 국제기구에 대해서는 북한이 상당히 엄격한 모니터링 약속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민간단체들이 지원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도록 격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원식량 전용, “상당히 근거가 있는 얘기”

그러나 이 고위 당국자는 “대규모 식량지원 문제는 순수한 인도적 지원의 범주에 우리가 넣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것은 그야말로 남북관계 전반 상황, 그리고 북한의 식량의 필요성, 특히 북한 주민의 기아상태 이런 것들에 연관돼서 우리가 구분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정부는 금년 북한의 식량사정이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게 악화된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북한이 지금 전 세계 향해서 식량 원조를 호소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금 당장의 북한의 소위 식량상태, 즉 극심한 기아라든가 이런 상태에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중기적인 내년을 위한 목적이 좀 크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정부의 판단을 밝히고 “당장은 대규모 식량지원 같은 것은 검토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확인했다.

그는 ‘대북 지원식량의 군이나 고위층에 전용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 “북한이 이미 방송이나 공개 매체를 통해서도 식량 공출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근거가 있는 얘기”라고 수긍하고 “지금 북한 내부에는 일종의 식량 모금 같은 것들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확인했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북한 언론들은 지난 4일 평양시 군민(軍民)대회에서 김영복 만경대 남새공장관리위원장의 “우리 농업근로자들은 지난조국해방전쟁시기 농업전사들처럼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을 들고 올해 농업생산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며 매국역적 이명박 역도의 골통을 까부실 우리 군대에게 더 많은 군량미를 보내주기 위한 투쟁에 한 몸 바쳐 나가겠습니다”라는 발언을 보도했고, 당국은 이 점을 공개적인 ‘군량미 공출’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이례적으로 대북 지원식량의 ‘전용’을 사실상 확인하고, 이를 ‘군량미 공출’과 연계시킴으로써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통일재원, “일부는 세금으로 충당”

이 고위 당국자는 ‘통일 재원 마련 방안’ 준비상황에 대해 “사실 거의 됐다”며 “8.15 정도 내에는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확인하고 남북협력기금과 통일세라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남북협력기금을 앞으로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를 안(案)으로 보고 있다”며 “많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이미 법안을 제출해놓은 게 있다. 일종의 컨센서스가 조금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일부는 어쨌든 세금으로 충당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며 “세금이 일부 포함되더라도 우리 서민에게 부담이 크게 안 가는 쪽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고 그런 쪽으로 내용을 좀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해 주목된다.

통일부는 상반기 중으로 통일재원 마련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통일세 신설에는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이같은 입장 변화의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그는 “거쳐야 될 과정들을 조금씩 다 거쳐야 되기 때문에 그런 과정들을 좀 거치고 있다”고만 답했으며, 일종의 ‘부유세’ 개념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정상회담, “허허벌판에 갑자기 집 지을 수 없어”

금강산 재산 처리 협의와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 그는 “북한이 29일로 못을 박아서 또 제안했기 때문에 2주간 우리의 대응 방법에 대해선 조금 더 검토를 하도록 하겠다”며 “기본은 금강산 문제는 우리가 무슨 3대 조건이라 해서 자꾸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금강산 관광이 취소된 근본 원인이 제대로 해소가 되는 그런 바탕 위에서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야 한다는 매우 근본적이며 상식적인 요구”라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과 유럽 등과 개방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중.북 간 협력 같은 것은 구체적으로 있다”면서도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그런 개방의 모습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하고 “정부는 북한이 제대로 된 개발로 자발적인 개방을 통해서 나와서 제발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또 그런 협력을 통해서 북한 자신의 발전 꾀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 고위 당국자는 ‘천안함.연평도 문제와 비핵화 문제 분리’ 여부에 대해 “너무 기계적으로 이것을 구분하거나 붙이려고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좀 더 큰 틀에서 같이 보고, 다만 두 가지가 남북관계 발전 위해 중요한 문제라는 그런 기본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비핵화 회담은 비핵화 회담이라는 소위 고유의 틀을 가지고 있는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물론 있다고 생각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정상회담이란 것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갑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남북관계를 그런 정도의 집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좀 우호적인 그런 것들이 좀 성숙이 돼야 될 것”이라고 현 단계에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고위 당국자는 “대화라는 것은 명확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그것을 일방적으로 원한다든가, 하는 그런 것으로서는 이뤄지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북측의 태도변화’가 없다는 점을 수 차례 지적했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