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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 시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고> ‘하나의 유령이 남한을 배회하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라는 유령이’
2010년 12월 31일 (금) 17:44:33 김광수 http://onecorea615.cafe24.com/xe/tongilnews/mailto.html?mail=no-ultari@hanmail.net
김광수 (인제대 통일학부 외래교수)


1. 북한붕괴론의 역사성과 현재

다음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1997년 4월20일, 에어필리핀 특별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2명의 노신사는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에 앞서, 한 손에 모자를 든 채 두 팔을 들어 외친다. “대한민국 만세.”(주1) 또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서울 도착 성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북조선은…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마비 상태에 들어가고… 인민들은 기아에 신음하고… 빌어먹는 나라로 전락됐습니다.”

이 발언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석 달을 못 간다’는 주장까지 나오던 북한붕괴론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당연했다. 최근 이와 연동하여 다시 살아난 망령은 북한 외교관의 짧은 주기 망명을 북한붕괴론의 징조로 MB정권과 언론들은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북한식 답변은 먼저 1994년에는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 상황 종료였다. 북한체제는 건재하였다. 다음으로 2010년식 답변도 ‘연평도 포격’이었다. 시·공간을 달리했지만 북한의 답변은 여전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빨랐고 분명했다.

반면, MB정권과 보수세력들의 대북 인식은 기존의 북한붕괴론과 판박이다.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라는 프레임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때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 그리고 1990년대 후반 식량난 때의 소동과 거의 유사하다. 아니 판박이다.(주2)

이렇듯 북한붕괴라는 환상은 착시를 통해 2010년 한 해를 넘기는 이 시점에서 또 한번의 유행병으로 부활하고 있다. ‘북한은 붕괴할 것이다!’라는 명제로 말이다. 이는 마치 마르크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문구를 떠올릴 만큼 근거 없는 북한의 급변사태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다음 장면도 한번 상상해 보자.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래, ‘대북 퍼주기’가 핵개발로 화폐개혁은 실패했고 물가는 폭등했고 생필품 거래는 끊어졌다. 배급은 제대로 되지 않고 시장은 위축됐다.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선 정권의 식량 수탈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감지되었다. 더 나아가서 권력엘리트층은 분열되었다는 등의 인식은 충분히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대통령을 떠올리고 싶었을 것이다.(주3) 나아가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대기근을 겪던 1996년, 당시 한미연합사의 국제관계 담당관이었던 로버트 콜린스가 ‘북한 붕괴 7단계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는데 이도 현실화되길 원했을 것이다.(주4)

그 결과 미국과 MB정권, 보수적 대북정책 브레인(국가정보원 산하 대북국책 기관들 포함)들은 김정은 승계가 성공할지, 북한이 어떻게 붕괴할지 예측하고 점치는 일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급변사태가 어떻게 발생한다는 건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찾기 어렵다. 몇 가지 불안요인들을 나열하고는, ‘그래서 이런 혼란이 오면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는 동어반복, 논리 비약이 정설로 굳어진다.

이러한 인식은 지독한 ‘북한멸망론’ 내지 ‘북한부인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결과이다. 특히 북한부인론과 관련하여서는 마치 ‘성골체제;보수·기득권정권’이 ‘진골체제;DJ정권’을 넘어 ‘평민체제;노무현정권’이 들어서자 진골체제까지는 참겠는데, 도저히 평민체제는 용납할 수 없어 결국 ‘죽음’으로 끝장내고 싶었던 그들의 뇌구조가 있는 것이다.

이의 실제 반영은-다시 말해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햇볕정책이 핵개발로 나타났다는 인식에서 보듯이 평화·통일정책에서 적대·대결정책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비핵·개방·3000정책이다.

북한멸망론과 관련하여서는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무척 힘을 얻고 있는 흐름이다. 아니 대세이다. 대표적으로는 ‘급변사태론’,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의 격상, ‘통일대비론’ 등이다.

이 두 흐름 중 최근의 흐름은 전자가 아닌, 후자이다. 즉, 북한멸망론으로 그들의 뇌구조가 확정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쟁불사·무력통일·흡수통일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교체)정책으로 고착화된다. 대외적으로는 한-미-일 신(新)3각동맹을 통한 신냉전 프로세스의 부활과 대내적으로는 통일세, 북한인권재단 설립 등 북한체제를 자극하고 무너뜨리려는 공작-내정간섭-을 구체화하게 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붕괴할 정권과 애써 대화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를 들게 한다.

2. 위키리크스(Wikileaks)와 ‘나비효과’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따르면 지난 2월17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교부 2차관(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오찬 때 천영우는 중국이 김정일 사망 뒤 북 정권의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더 나아가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너졌고, 김정일 사망 뒤 ‘2~3년 안에’ 정치적으로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지난해 7월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김 위원장이 2015년 이후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폭로의 유탄은 엉뚱하게 MB정권과 보수세력이 아닌, 진보진영이 맞았다. 다시 말해 최근의 MB정권과 보수세력의 대북인식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려스러운 것은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 예가 된다.(주5) 물론 조 대표가 진보진영 전체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니 염려스러울 것은 없다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함에도 진보진영까지 미국과 MB정권의 시각이 침투한 것은 미국과 MB정권의 파상적 공세가 진보진영까지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했다는데 있다. 진보진영까지 미국과 MB정권의 파상적 공세가 먹힌 다면 하물며 일반 국민들이야 두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려스러운 것이다. 우려가 현실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진보진영에서는 다음과 같은 시각회복이 필요하다.

우선은 북한이 ‘합리적’ 행위자라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 만약, 북한이 비합리적 행위자라면 1994년 1차 북핵위기부터 2009년 5월 핵실험까지 핵을 통한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 또한 11월 23일 ‘연평도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어야 한다.(주6) 그러므로 우리가 좀 불편하더라도 북한이 비합리적인, 예측 불가능한 행위를 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으로는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내구력적 측면 중, 상징적 코드로 따져 볼 때 사상의 균열성-주체사상에서 이탈-이 나타나고 있는지, 체제의 이탈성-수령체제에서 이탈하고 있는지, 역사적 정통성-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일성민족의 시원을 부정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이 NO가 아니라 YES라면 북한멸망론은 허구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여기에다 노력동원체제의 유지와 체제저항세력의 부재는 북한멸망론이 갖는 허구성을 객관적·합리적으로 증거해 내고 있는 것이라면 진보진영이 더더욱 착시에서 정상 시각으로 되돌아와야 할 이유가 된다.

3. MB정권의 대북 딜레마와 출구전략에 대한 제언

착시에서 정상 시각으로 되돌아와야 할 세력은 또 있다. 불편하지만 MB정권과 보수세력이 그들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좋든 싫든 현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DJ와 참여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이 지금의 상황을 불려왔다는 인식을 불식하여야 한다. 시쳇말로 ‘돈가는 곳에 간섭이 있다’는 속언이 있듯이 2008년 촛불항쟁이 이를 증명하였다. 이후 반MB정책을 기조로 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해 보조금 족쇄를 채웠다. 같은 논리로 DJ정부와 참여정부의 햇볕·번영정책에서는 북한으로 돈이 갔기 때문에 치킨게임처럼 결코 비겁쟁이가 되지 않았다.(주7) 즉, 6.15와 10.4 공동선언,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화해·협력의 틀이 마련되었고 입김이 더 세어졌다. 햇볕정책이 핵개발로 되돌이표가 된 것이 아니라, 천안함과 연평도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지금 대북정책의 딜레마에 빠진 MB정권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된다. 무조건 NO-Rh정책이 아니라 ‘사슴사냥’게임이나, 이 게임이 너무나 급격한 정책적 유턴이라 부담스럽다면 덜 부담스러운 죄수의 딜레마 게임(Prisoner's Dilemma Game)이라도 도입하여 대북정책을 수립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 북한과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감히 제언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볼 때 대통령의 오판이 얼마나 끔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1964년 8월 ‘통킹만 조작사건’의 결과와 2003년 3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 침략의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도 이 대열-실패한 대통령, 역사의 죄인-에 끼고 싶지 않다면, 최근의 ‘전쟁 불사’식의 대응방식을 재고하고 불편하지만 DJ의 햇볕정책과 Rh정책을 ‘비판적으로’ 승계하길 바란다.

필자는 현재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 6.15남측위원회 부산본부 정책위원장 겸 공동집행위원장,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운영위원장, 민생민주부산시민행동 대변인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다수의 직책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세습은 없다』(서울: 선인, 200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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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들은 다름 아닌,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이다. 같은 해 2월 중국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한 지 67일 만이다. 역대 북한 최고위직이자 ‘주체사상의 대부’의 망명은 ‘주체사상의 망명’으로 여겨졌다.

2) 굳이 다른 요인을 찾자면 위기를 초래할 때의 당사자가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세습 후계자’ 김정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 지도부가 경제난을 견디기 어렵고 일부 엘리트의 쿠데타나 민중봉기에 의해 결국 실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그대로다.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숨지면 쿠바가 무너질 것이라는 미국 내 반쿠바 세력의 쿠바 붕괴론이 연상된다.

3)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멸망이후 1989년 12월16일 루마니아 혁명이 촉발됐다. 헬리콥터를 타고 망명을 시도했던 차우셰스쿠 부부는 총살을 당했다.

4) 이 시나리오는 ‘자원고갈-(자원투입의) 우선순위화-국지적 독자노선-탄압-저항-분열-정권교체’의 순서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의 작성자인 콜린스는 1996년의 북한이 2∼4단계를 통과하고 있었다고 봤다. 북한은 4단계에서 약 10년 이상 정체했다. 이 기간동안 남한에는 대북 유화적 정권이 들어섰고,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았으며, 핵무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5) 조 대표는 12월 27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붕괴 등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진보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기존의 관계나 평화통일 세력으로서만 북한을 볼 것이 아니라, 일종의 한반도 리스크(위험)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6) 이를 국제정치학자 월츠(Kenneth Waltz)의 시각을 빌려 표현대로라면, 핵개발은 비대칭적 전략으로서 체제유지를 위한 생존수단으로, 연평도 사건은 전작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지전·전면전으로 발생하지 않는 다는 치밀한 계산, 그리고 치킨게임(chicken game)의 법칙을 활용한 승자의 원리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7) 백번 양보하여 MB정권과 보수세력의 시각으로 본다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은 햇볕·번영정책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치킨게임이었다. 즉, 미국으로부터는 핵포기 댓가로 체제보장과 수교, 중국으로부터는 혈맹관계의 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