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vop.co.kr/2010/01/05/A00000277392.html


여전히 험난한 남북 정상회담의 길

[기고] 北 신년사설과 새해 남북관계 전망

장창준 새세상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벽초부터 남북 정상회담이 화두다. 북측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높은 의지를 보여주었고,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신년 공동사설에 대해 ‘북남수뇌회담’을 언급하며 "올해의 극적인 사변을 예감케 하는 의지 표명"이라고 해설기사를 내보내면서 2010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연초부터 고조되고 있다.

과거 북측이 북미관계 개선시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추진해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난 해 하반기 들어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는 점에서 북측이 올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남북정상회담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잘못된 기대감 부를 오도된 분석 경계해야

그런데 남측 일각에서 오도된 분석이 적지 않다. 즉 북측이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자체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돌파하는 데서 남측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분석은 결정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북한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정세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다. 북측이 정치적, 경제적 절박성으로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활용하려한다는 분석은 북측에게서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감을 만들어준다. 이같은 잘못된 기대감은 북측이 ‘북핵 폐기’, ‘국군포로·납북자’ 등 남측 당국의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북측이 제시한 신년공동사설에는 그같은 잘못된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어떤 문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측은 신년공동사설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기초’할 것을 전제로 제시하고 있다. ‘무조건 관계정상화’, ‘무조건 정상회담’이 아닌 것이다. MB가 기존의 정책을 고수할 경우엔 남북관계가 ‘언제가도 개선될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MB의 현재까지 입장은 '안 하겠다'는 것

MB 정부가 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최근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1월 4일 신년국정연설을 마친 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장소 문제는 상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결국 콘텐츠가 문제고, 나머지는 협상하기에 달린 게 아니냐"며 장소 문제에 구애받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해 11월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 ‘북핵문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MB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통일부 2010년 업무보고에 그대로 녹아나 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정상회담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의제를 ‘북핵 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라고 밝혔다. 통일부 2010년 중점 추진과제로 ‘북핵 문제의 획기적 전환’을 맨 앞자리에 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4일 신년국정연설에서 남북상시대화 기구 창설을 북측에 제의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4일 신년국정연설에서 남북상시대화 기구 창설을 북측에 제의하기도 했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또한 MB는 1월 4일 신년국정연설에서 남북상시대화 기구 창설을 북측에 제의하기도 했다. 2008년에 제의했다가 북측에 거부당한 바 있는 이 제의에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남북 관계 정상화에 대한 최근의 정세 변화를 염두에 둔 제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골자로 MB의 2010년 대북정책 골자를 정리해본다면 북핵문제의 해결,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 남북상시대화 기구 창설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접근을 북측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핵 문제의 해결’부터 살펴보자. MB 정부는 핵문제는 남과 북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문제가 북미 사이의 적대적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또한 북측이 요구하는 평화체제의 문제, 대북안전보장의 문제, 북미 관계정상화 등은 이명박 정부가 풀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를 설득할 수 있는가. 일본을 설득할 수 있는가. 속된 말로 ‘그랜드 바겐’조차 설득하지 못한 무능력한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의제로 미국과 일본 혹은 중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남북 사이의 인도적 현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군포로와 납치자 문제를 그대로 의제로 올렸을 때 남과 북은 더 이상 논의가 불가능한 첨예한 정치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남측이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북측이 그에 대한 상응한 조치로 반공포로 교환을 얘기한다면 MB는 그 의제를 수용할 수 있는가. 설령 그 의제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남측에서 반공포로를 찾아내어 북쪽에 송환할 수 있는가. MB는 그럴 의사가 전혀 없을뿐더러, 60년 가까이 지난 현 시점에서 반공포로를 모두 찾아내 북쪽에 송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결국 국군포로와 납치자 문제는 그 자체를 의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교류와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인 것이다.

남북상시대화 기구 창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기구인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기구인가?”라고 묻는다면 MB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변하지 않은 조건 하에서 남북상시대화 기구는 창설 자체도 불가능할뿐더러 만약 그런 조건에서 창설된다면 대결과 반목의 대화 채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럴 듯한 ‘말의 성찬’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MB는 여전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다. 아니 정상회담의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북측을 굴복시키기 위한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다.

MB에 대한 정상회담 압박, 전방위적으로 전개될 것

그렇다고 해서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물은 변화하게 마련이고 정치 역시 주객관적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MB에 대한 남북정상회담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복잡성과 상호연관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미관계가 잘 풀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함께 풀려야 한다. 북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성립한다.

지난 해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입장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피력했던 것도, 북측이 그 후부터 남북관계에 전향적으로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점은 올해 북미 관계가 새로운 진전을 맞이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특별대사의 방북에서, 비록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병행추진한다는 원칙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안전이 보장되어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북측의 입장과 비핵화가 진전되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미국측의 입장이 상호 조율된 결과였다. 이는 곧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은 북미 관계 진전의 다른 표현이다.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올해 북미관계가 새로운 진전을 맞이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올해 북미관계가 새로운 진전을 맞이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북일 관계 역시 올해 새로운 대화 국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측의 제의로 북일 당국자들이 수차례 비밀접촉을 해왔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북일 관계 진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해 북일 간의 상호 조율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 관계의 진전과 함께 북일 관계도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의 복잡성과 상호연관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북미관계도, 북일관계도 큰 진전을 보기 어렵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나 하토야마 총리의 입장에서는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 사활적 문제가 된다.

북미관계와 북일관계에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가 진전되어야 한다는 것은 북측의 입장에서도 동일하다. 오바마 대통령, 하토야마 총리, 김정일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3각 축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명박 정부에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요구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해진다.

또 다른 변수는 국내 여론이다. 현재까지는 MB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찬반 양론으로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소위 보수 진영은 MB의 원칙있는 대북접근을 지지해왔고, 진보·개혁 진영은 MB의 이념편향적 대북접근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북미관계와 북일관계가 정상화되고 북중 관계 역시 돈독해지는 상황 속에서 보수 진영에서의 평가가 양분될 것이다. 국민들 역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는 의구심과 ‘이대로 가다가 남북관계만 경색되어 결국 모든 주도권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감이 제기될 것이다.

올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라는 요구가 MB에게 집중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결국 MB의 선택이 정상회담의 전망과 남북관계의 운명을 좌우할 것

결국 MB의 선택이 중요하게 부상할 것이다. 객관적 정세 조건에 맞게 대북 정책을 전향적으로 바꿀 것이냐,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유아독존 대북적대정책’을 강화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 누구의 선택도 아닌 MB의 선택이다.

그러나 MB의 선택에 따른 파장과 영향력은 MB의 것이 아니다. ‘유아독존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하여 한반도 정세의 외톨이로 전락할 경우 그 모든 비용과 부담은 우리 국민과 민족 전체에게 전가될 것이다.

통일부는 새해업무보고에서 2010년을 “남북관계 전환점”이라고 규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 나아가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북미관계가 진전되고 한반도 프로세스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에서 추진되는 상황에서 김영삼 정권 때보다 더 극한 대립의 남북관계가 되느냐, 객관적 조건에 편승하여 남북관계도 정상화되어 한반도 프로세스를 촉진하고 완성하느냐 하는 ‘전환적 시기’의 중심에 MB 정부가 놓여있는 것이다.

<장창준 새세상연구소 상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