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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요리하다' 통일요리경연대회 후끈후끈

[현장] 부경대에서 펼쳐진 대학생들의 통일요리열전

김보성 기자 vopnews@vop.co.kr
“북한 잡채에는 미나리와 배추속대가 들어가요. 남한 잡채에는 시금치가 들어가죠. 또 남한 잡채에는 보통 피망을 넣어 요리하지만 북한 잡채에는 홍고추와 청고추가 들어가는게 달라요”

이쯤 되면 민족 요리 전문가라고 해야할까? 잡채 하나를 두고 남북간의 요리법 차이를 설명하던 김소향(부경대 국제통상 1) 씨는 연신 부끄러운듯 웃음을 지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치이이”하는 달궈진 후라이팬에 무언가가 굽히는 소리와 함께 향기로운 냄새가 솔솔 풍긴다. 눈길을 돌리려는 찰나, “탁탁탁탁” 전문 요리사 뺨치는 예사롭지 않은 칼솜씨가 들려온다. 뒤로는 어디선가 싱싱한 광어와 생닭을 든 이들이 나타나 어딘가로 사라진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어울리지 않는 재료들은 뭘까. 마치 영화 식객에 나온 요리대회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때였다. “여러분 알려드립니다. 8분 남았습니다”

통일요리경연대회 출품작

'우와 식객 따로없네' 30일 부산겨레하나 대학생모임 '알통' 주최로 부경대에서 열린 '통일요리경연대회' 출품작들. 가운데 통일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볶음밥이 이날 우승의 주인공이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최고의 통일요리 식객을 찾아라

최고의 통일요리 식객을 찾아라-통일요리경연대회가 30일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분수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경연대회에는 11개팀이 출전해 전문가급의 요리솜씨를 선보였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자칭 '통일요리 전문가' 부경대학교 분수광장에 뜨다. '통일요리열전' 후끈

30일 오후 2시 30분 부산 부경대학교. 가을 대동제(부경학술제) 기간인 이날 대학생 식객들이 분수광장에 등장했다. 부산겨레하나 남북대학생 교류협력 기획단 '알통'(알면알수록필요한통일)과 부경대학교 총학생회가 주최한 ‘통일요리경연대회-남북을 요리하다’에 11개 팀이 출전한 것.

출전한 팀 모두 ‘한반도를 밝히는 공학도들’, ‘우린하나요’, ‘1명’, ‘우린운명’ 등 팀명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육쌈냉면’, ‘통일녹여서크로켓’, ‘통일찌지미’, ‘6자닭백숙과 평양어죽’, ‘통일볶음밥’ 등 듣기만해도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제목의 요리를 들고나와 2시간 30분여 동안 열전을 펼쳤다.

“우리는 통일을 요리하고 싶은데 MB는 분단을 요리하고 있죠. 여러분의 통일요리가 남북관계를 조금이나마 개선시키는데 기여할 거라 생각합니다.”

‘분단이 아닌 통일을 요리하자’던 이성우 부산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대회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날 통일요리경연대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성우 공동대표는 “평양 제일의 음식점 옥류관에는 10%에 달하는 봉사원들이 요리비법을 지키는데 투입될 정도로 고유의 맛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여러분들의 만의 통일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오늘의 비법“이라고 참가자들에게 귀뜸했다.

이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11개팀이 나뉘어있던 부스에 온갖 재료들이 선보였다. 열심히 돼지갈비를 굽고 있던 1번부스의 정인선(화학과 2) 씨. 통일요리경연대회 포스터를 보고 참가 지원했다는 그녀는 자신의 요리작품을 ‘육쌈냉면’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언론사 조사결과를 보니 북한음식 하면 70%이상이 냉면을, 남한음식하면 돼지갈비를 꼽았다"면서 “남과 북의 상징 요리들을 조합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잡채vs남한잡채

30일 부경대에서 열린 통일요리경연대회에서 김소향(국제통상 1) 씨 팀이 완성시킨 '북한잡채vs남한잡채'. 남측의 잡채와 달리 북측의 잡채에는 미나리와 배추속대가 들어가는게 특징이라고.ⓒ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통일요리경연대회-육쌈냉면

남을 상징하는 돼지갈비와 북을 상징하는 냉면을 조합해 만들어낸 통일요리경연대회 1번 출품요리 '육쌈냉면'. 데코레이션도 깔끔하게 꾸며져 보는 이를 즐겁게 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6자 닭백숙과 평양어죽

이날 통일요리경연대회에서는 생각치도 못한 요리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3번팀이 완성한 '6자 닭백숙과 평양어죽'.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동물이 조류(닭)와 어류(광어)라며 이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냈다. 닭의 속에는 6가지 재료를 넣어 성공적인 6자회담을 소망했고, 광어로 평양의 맛을 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북을 상징하는 면(당면)과 남에서 두루먹는 두루치기가 ‘당면 두루치기’로 탄생했어요. 남북이 서로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친해져야죠”

건너편에서 열심히 당면을 요리하던 4번부스의 한 여학생. 요리솜씨도 솜씨지만 말도 술술 나온다.

통일지지미, ‘6자닭백숙과 평양어죽’, '통일오꼬노미야끼'... 영화 식객 따로 없네

감자와 양배추, 당근, 고기 등을 이용해 무언가를 열심히 부치고 있던 8번 부스의 요리명은 ‘통일오꼬노미야끼’. 통일요리경연대회에 웬 일본요리냐 싶겠지만 의미가 있다.

8번 부스 참가자인 노재한(생태공학과 3) 씨는 “감자와 당근, 양배추 등 자기가 넣고 싶은 재료를 넣어 하나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 오꼬노미야끼”라며 “남북관계도 이처럼 서로 다른 모습이 하나되어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일본식 빈대떡으로도 불리우는 지짐요리인 오꼬노미야끼가 통일요리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노 씨는 직접 만들어온 한라봉 드레싱과 직접 만든 가스오부시를 곁들어 내며 솜씨를 뽐냈다.

통일요리경연대회 심사

2시간 30분여에 걸쳐 통일 요리열전을 펼친 팀들이 완성한 음식을 공개했다. 이날의 심사 기준은 맛도 맛이지만 얼마나 통일을 음식으로 잘 표현했는지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3번부스에서 탕평채치즈고기말이를 만들고 있던 한 남학생은 유창한 말솜씨로 탕평채의 유래를 설명하기도. 이 남학생은 붕당정치의 폐단을 바로잡으려 했던 영조시대의 요리인 탕평채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되고, 동과 서가 화합해 조화를 이루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날 통일요리경연대회의 심사위원은 모두 3명. 이원숙 부경대 총학생회장과 이순희 부경대 학생지원과 영양사, 황성혁 알통 대표가 심사를 맡았다.

평가지를 든채 부스 곳곳을 돌던 이원숙 총학생회장은 “다양한 의미를 담아 수준높은 통일요리를 선보이고 있다”며 놀란 반응을 나타냈다. 이원숙 회장은 “맛과 재료도 중요하지만 취지에 맞게 통일이라는 의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고 채점기준을 밝혔다.

통일요리 열전이 펼쳐지고 있는 동안, 무대 앞쪽에서 북녘술 시음회가 열렸다. 난생 처음 ‘들쭉술’과 ‘평양소주’를 맛본 학생의 입에서 절로 “캬~”하는 탄성이 나오기도. 중국 유학생들까지 이곳을 찾아와 몇 번이나 시음을 즐기는 등 북녘 술의 인기가 뜨거웠다.

그 순간 7번 부스쪽 한 참가자로부터 요리가 다 완성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참가자들 중 가장 먼저 요리를 완성한 부스의 주인공은 김범수 씨(생태공학과 2)로 사기 접시에 한반도 모양의 볶음밥을 선보였다.

이어 통일볶음밥을 시작으로 부스별로 완성된 요리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심사위원들과 학생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통일을 잘 담아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럼 어떤 작품이 대망의 1등을 차지했을까?

통일요리경연대회 우승은 '통일볶음밥'.. 김범수씨 "북녘 대학생에게 해주고 싶어요"

심사위원들의 잇단 채점을 거쳐 공개된 이날 통일요리경연대회 우승자는 바로 가장 먼저 요리를 완성시킨 7번 부스의 김범수 씨. 통일의 의미를 담은 데코레이션과 요리 매너, 학생들의 호응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됐다.

우승소감을 밝힌 김 씨는 “한반도에 통일이 된다면 내가 북녘의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고민을 해봤는데 흔히들 먹는 볶음밥이 생각나더라”며 “볶음밥 속 치즈로 이어진 우리땅을, 파슬리로 평화로운 남북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김 씨에게는 노트북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시상이 끝나자 바로 시식행사가 이어졌다. 처음보는 요리들을 맛보려는 학생들로 분수광장이 북적북적. 시식에 참여한 학생들은 하나 둘 통일요리들을 맛보더니 “맛있다”를 연발했다. 이들 뒤로 아쉽게 탈락한 채 요리기구를 정리하던 한 참가자는 “그래도 통일에 대해 요리로 의미를 담아냈다는 게 뜻깊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상호 부산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기획부장은 “10·4선언 발표 2주년을 앞두고 처음 시도한 행사인데 반응이 뜨거웠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 이번 행사를 통해 통일에 대해 대학생들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일요리경연대회

통일요리경연대회에서 자신의 만든 음식을 설명하는 참가자.ⓒ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통일볶음밥'

30일 부경대에서 열린 통일요리경연대회에서 2시간 30분이 넘게 요리열전을 펼친 결과, 이날 통일요리경연대회의 우승자는 바로 김범수씨. 그는 "북녘의 대학생들에게 이 음식을 해주고 싶다"며 통일볶음밥을 선보였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