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vop.co.kr/A00000251169.html

위성 발사는 북한식 경제발전전략의 일환

[D+30, 인공위성 리뷰 ①] 북한 인공위성 발사의 과학기술사적 의미

강호제(이화여대 연구위원, 북한 과학기술사 전공)
[편집자주]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지 1달이 되었다.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북의 인공위성 발사는 지나치게 정치 이슈화되었고, 그에 따라 성패에 대한 객관적 검증은 물론, 북의 경제 정치적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민중의소리>는 인공위성 발사에 따른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지금, 차분한 시각에서 북의 인공위성 발사를 재조명한다.

이번 기획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었으며, 5월6일부터 3일간 연재된다.

북한 인공위성 발사의 과학기술사적 의미 /강호제(이화여대 연구위원, 북한 과학기술사 박사)
북한 로켓 실험은 성공했나, 실패했나/서정환 기자
우주 개발의 산업적 가치는 얼마? /정지영 기자
문답으로 풀어본 인공위성과 우주개발/박상영(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남의 인공위성과 북의 발사체, '합체'하면 어떨까/서정환 기자

기획의 첫 시작은 강호제 박사가 맡아주었다. 강 박사는 국내에서 '북한 과학기술사'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 글은 인공위성 발사까지 북의 과학기술의 역사와 현재 과학기술 수준, 이와 관련한 북의 경제정책을 다루고 있다.


인공위성 제작, 발사와 관련된 과학기술 및 그 수준

북한이 발사한 것이 인공위성인지, 미사일인지 구분하는 것은 과학기술적으로 보면 큰 의미가 없다. 발사체의 첫머리에 무엇을 두느냐, 발사각이 얼마냐, 순간속력이 얼마 이상이어야 하느냐 그리고 대기권에 재진입 하느냐 등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즉 둘 다 과학기술적 기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인공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이 요구된다.
2006년 한국과학기술평가원과 과학기술부는 인공위성 관련 기술들을 조사하여 '국가우주기술전략지도'를 발간한 적이 있다. 우주기술을 '위성체, 위성정보 및 임무활용, 발사체, 액체엔진, 탑재체' 5가지로 나누어 분야별, 분류별로 세부 목록을 만들고 해당기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국가우주기술전략지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우주 기술력은 선진국 대비 대략 60~70%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이 기술개발에 공을 들이는 발사체 기술의 62개 항목 중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술, 비행통신장비 기술, 고체 추진기관 점화장치 기술 등은 95%까지 도달해 있다. 이번 북한 인공위성이 시험단계라고 하므로 대분류 항목 중에서 '위성체'와 '위성정보 및 임무활동'은 비교대상이 안되겠지만 '발사체'와 '액체엔진' 그리고 '탑재체'는 직접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인공위성 제작, 발사 기술은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는 기계제작 기술의 최정점이다. 일반 기계, 공작 기계, 자동차, 비행기 등을 뛰어넘는 기술이 활용되어야만 가능하다. 초고온, 초저온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를 만들어 최고의 정밀도를 보장하면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기, 전자, 제어계측 및 자동화 관련 최고의 기술이 활용된다. 각 부품들의 작동을 원활하게 작동, 제어해야 함은 물론 급변하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동체를 조절해야 하며 나아가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지상의 통제국과 정보를 원활하게 주고받아야 하므로 통신 기술도 높은 수준에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기에 우주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혹은 멀리까지 날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므로 최고 수준의 엔진을 만들고 다룰 수 있는 능력 또한 요구된다.

엔진을 작동시키는 고체, 액체 연료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화학공업 관련 기술도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만 한다. 또한 현대의 과학기술, 혹은 산업기술의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인공위성 관련 사업도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자원들을 활용하는 거대한 사업이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관리, 프로젝트 관리 능력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이번 인공위성 제작, 발사는 이 모든 기술을 북한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북한 과학기술 정책의 역사

인공위성 '광명성2호'가 탑제된 북한의 우주 발사체 '은하2호'

북한의 우주 발사체 '은하2호'가 지난 4월5일 무수단리 발사대에서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


이처럼 북한이 최첨단 과학기술력을 개발,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해방 직후부터 계속해서 견지해왔던 과학기술 중시정책 때문이었다.

과학기술을 생산력 발전의 필수요소로 파악한 북한 지도부는 해방 직후부터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하고 과학기술 정책을 정책의 제일 첫머리에 두게 하였다. 일제로부터 넘겨받은 각종 공업 시설들을 스스로 운영하기 시작하여 1949년에는 해방직전 수준을 회복하였고 1956년에는 다시 전쟁 전 수준을 나름 회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 역사상 가장 경제성장 속도가 빨랐던 '제1차 5개년계획(1957~1960)'이 예상보다 빨리, 높은 수준의 성과를 거두면서 추진될 수 있었다. 이 당시 북은 10년 동안 공들여 확보하고 키운 과학기술자들을 '현지연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현장에 투입하면서 과학기술을 앞세워 경제발전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1956년 12월에 시작된 천리마 운동이 1959년 천리마작업반운동이라는 '북한식 기술혁신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략 때문이었다.

북한의 과학기술 정책은 항상 생산현장을 중심에 두었다. 연구실에서 실제 생활이나 생산과 관계가 없는 혹은 먼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활동과 강력하게 연관된 내용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북한 과학기술 활동은 항상 생산현장에 풍부한, 즉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것을 바탕으로 삼아왔다. 이는 북한이 추구하는 '자립경제노선'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은 1950년대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를 확인한 북한 지도부는 1960년대 초에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과학원 본원을 꾸리고 기타 별도의 과학원으로 독립시키는 형태로 연구기관을 정비하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국방-경제 병진노선'이 추진되면서 일반 과학기술보다 국방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을 더 우선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학원 조직 내에서도 '국방과학원'이 새롭게 조직되어 고급 과학기술자들이 우선적으로 배치됐다. 북한의 군수경제 부문은 '제2경제'라고 불리면서 1970년대부터 일반경제 부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된 예산, 편성, 집행체제를 갖추었는데 '제2경제위원회'가 이를 관리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국방과학원은 '제2 자연과학원'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사실 오늘날 인공위성 관련 기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기계공업 분야는 해방 직후 북한 내에서 가장 낙후하고 뒤떨어진 분야였다. 북한 지역에는 일제 말기에 건설된 각종 공업설비들이 남한 지역에 비해 풍부했는데 유독 기계공업 분야만 남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래 <표1>은 일제의 해외 자산 중에서 남북한별 분포 상황을 정리한 것이다.

일제 해외자산 남북한 분포

일제 해외자산 남북한 분포ⓒ 강호제


이렇게 뒤떨어진 기계기구공업 분야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발전을 선택한 북한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이자 걸림돌이었다. 따라서 전쟁 전은 물론 전쟁 당시에도 기계공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천리마운동, 천리마작업반운동 당시 '공작기계새끼치기 운동'이라는 별도의 대중운동이 추진된 이유도 다른 분야에 비해 뒤떨어진 기계공업 분야로 인한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1958년부터 북한은 굴착기(락원기계공장), 트랙터(기양농기계공장), 오토바이, 화물자동차(덕천기계공장), 불도저(북중기계공장) 등을 비록 역설계방식(Reverse-engineering)이었지만 자체적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락원기계공장에서는 5900여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무게 300여톤짜리 '8m 대형 타닝반(터닝반)'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화물자동차를 생산하는 덕천기계공장과 트랙터를 생산하는 기양기계공장에서는 자동차 실린더를 가공하는 '6축보링반'과 트랙터 본체 좌우 측면의 38개 구멍을 한꺼번에 뚫는 '38축' 등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국방 과학기술에 집중하기 시작한 북한은 1970년대부터 미사일을 역설계 방법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는 1980년대 초부터 거둘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 인공위성과 발사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화학공업 분야는 일제시기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흥남지역에 건설할 흥남비료공장 등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앞서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리승기 박사가 일제시기에 개발한 비날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최고 규모의 공장이 흥남지역에 건설되는 등 화학공업 분야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려경구의 염화비닐, 리재업의 합성고무, 한홍식의 무연탄 가스화 등 각종 화학공업적 발전들이 초기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매우 정밀하게 다루어야 할 인공위성 발사체의 연료 제어 기술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발전되었다.

북한의 IT관련 기술 중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이 오늘날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북한이 하드웨어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도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상당히 일찍부터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북한이 IT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생산활동의 기계화, 자동화를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북한 과학원은 1959년 후반부터 '기계화 및 자동화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전기공학과 반도체공학, 전자계산기공학 분야의 발전을 위해 1959년 후반부터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에 '계산수학연구실'과 '반도체연구실'을 정식으로 설치해 운영해왔다. 특히 계산수학연구실에서는 1961년 9월 초에 진공관과 2극 반도체를 사용한 '전자계산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970년대에 프랑스로 유학까지 갔다온 컴퓨터 관련 연구자들은 1980년대초에 유닉스 컴퓨터를 역설계 방식으로 제작하는데 성공하기도 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발전시켜온 과학기술력을 국방 분야에 집중시킨다면 고도로 정밀한 자동제어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인공위성과 발사체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 가능한 것이다.

인공위성과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인공위성 제작, 발사와 관련한 기술은 ICBM 기술과 겹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군사적 의미로만 국한시켜 해석하는 것은 시야가 너무 좁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주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공위성 관련 기술은 그 자체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최첨단 산업이면서 동시에 그 기술들이 상품 생산에 활용되기 시작하면 탁월한 기술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항공우주 시장의 규모가 대략 연간 4천억 달러에 달하지만 이를 일부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일반 상품과 관련한 기술은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지만 이미 인공위성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민수로 전환시키기만 한다면 북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선군정치론에서 제기하는 경제발전전략은 "국방공업을 확고히 앞세우는 것과 함께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켜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9월에 정식화시킨 것이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이전 시기 경제발전전략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를 강성대국 건설론에서 경제발전 전략으로 제기하는 '과학기술 중시' 정책과 함께 살펴보면, 국방과학기술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그 결과를 적극 활용하여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북한이 확보한 인공위성 관련 기술과 핵폭탄 관련 기술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전략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군수를 민수로 전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 경제구조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환에 긍정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 북한 지도부는 '제2경제'라는 이름으로 군수 관련 경제를 일반 경제와 분리하여 우선적으로 보장해왔다. 이는 다른 분야보다 군수 관련 분야가 우선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지만 1990년대 경제위기 상황에서 군수 관련 분야가 일반경제 분야보다 피해를 훨씬 덜 받을 수 있게 보호하는 기능도 하였다. 따라서 낙후된 경제를 빠른 시일 내에 끌어올리려는 오늘날이 과거 어느 때보다 군수에서 민수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과 요구가 강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필요성과 절박함이 군수-민수 전환에 대한 저항력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 지도부는 '제2경제'를 일반 경제와 분리해서 운영하면서도 유사시에는 민수시설을 군수시설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구축했다. 예를 들어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 현장에는 반드시 군수 관련 시설을 설치하게 하였다. 따라서 이미 북한 경제는 민수와 군수의 연결고리가 강하고 거리가 상당히 가깝게 형성되었다. 이제는 이러한 구조를 역으로 이용해서 군수를 민수로 전환하기 쉬운 체제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방향만 바꾸면 되는 것이므로 나라 안팎으로 상황만 마련된다면 의외로 쉬울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북한은 '과학기술과 생활의 밀착화'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이는 과거 '경제발전과 과학기술 발전의 일체화', '과학기술과 생산의 일체화'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던 정책이다.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과학기술, 즉 국방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을 위해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군사적 긴장도가 완화된다면 북한 경제에서 군수-민수 전환이 훨씬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