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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김정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빈소에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김정일

외부세계의 우려와 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에서는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벌써부터 "위대한 영도자", "위대한 계승자" 등 김정일 위원장에 버금가는 각종 호칭을 잇달아 사용하며 김정은 '영도체제'를 기정사실화 했다. 북한이 이렇게 큰 흔들림 없이 김정은 체제를 안착시키고 있는 것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는 달리 유고(有故) 대응계획이 서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장성택·김경희 노동당 부장 등 북한의 '최고지도층'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유고 가능성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당 선전선동부는 김정일의 기록영화를 분야별로 새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김 위원장의 불편한 모습을 그대로 조선중앙TV에 내보내도록 했다. 과거 같았으면 관련자 모두 '숙청'될 만한 '사건'이었다. 김정일 유고에 대한 마음의 준비, 새로운 후계자가 등장할 시점이 됐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사전에 암시한 셈이다.

 

심지어 2010년 10월 10일 당창건 행사 때는 김 위원장이 절뚝거리며 입장하는 장면이 생중계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중국동포의 전언에 따르면 "아니 장군님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주위 간부들은 뭐 한 거야"란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고 한다. 상당수의 북한 주민이 시점만 몰랐을 뿐 김정일의 사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보다 충격이 덜한 또 하나의 이유다.

 

2008년 이후 2년 만에 압축적 후계체제 수립

 

김정은 체제에 대해 일부에서는 김정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권력기반이 약해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라든지, 집단주의 체제로 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어린 나이로 권력 승계 준비가 전혀 안 돼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김정일의 후광 속에서만 활동했지 단독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운영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실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에도 김정일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짧으면 3일, 오래가도 3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300만 당원을 거느린 노동당을 주축으로 움직이는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이 놓치고 있는 대목이 하나 있다. 2010년 9월 28일 북한이 당 대표자회를 열고 후계자의 얼굴을 공개한 시점에 이미 김정은 체제가 출범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지난해 당 대표자회에서는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향후 김정은 체제를 이끌 인맥으로 당·군·정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197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할 때는 당내에서 후계자로 확정된 뒤 3년 동안 당·군·정에 후계체제를 수립하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에 노동당 6차 당대회를 열어 후계자를 주민에게 공개했다. 그러나 김정은 부위원장은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 후계자로 내정됐고, 2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년 만에 압축적으로 후계체제를 수립한 것이다.

 

처음 당 대표자회가 소집됐을 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후계자를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2010년 8월 중국을 방문해 북중정상회담을 마친 후 당대표회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김정은 부위원장을 공식석상에 내세웠다. 중국의 확고한 지지를 얻은 데 자신감을 가지고 후계체제의 공식출범을 앞당긴 것이다.

 

미국도 2010년에 "김정은 승계, 순조롭게 진전" 평가

 

2010년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 부위원장의 공식 등장과 함께 부상한 인물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 대표자회에서 나타난 인선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할 수 있도록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중심역할을 했던 간부들을 총망라해 당·정·군의 주요자리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거론하는 승계과정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김정일시대에 중앙과 지방에서 활동하며 검증된 인사들이 정치국과 비서국에 등용됐다.

 

둘째는 항일 빨치산의 2세대 중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김정은 시대의 중심간부로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최룡해 비서,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오일정 당 민방위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의 항일 빨치산 2세대, 3세대들이 김정은 후계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셋째는 집단지도체제보다는 김정은 후계자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분산을 통해 '특정인'이 섭정을 하거나 후견인으로 부상시키기보다는 '집단 협의'를 거쳐 조직적으로 후계자를 보좌하는 형태가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2008년 하반기에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최고지도부 안에서 내정되고 2년 만에 후계자를 공식화 할 정도로 노동당 내부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의미다. 

실제로 김정은 부위원장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특정 직책에 임명된 것은 아니지만 '청년대장'으로 불리며 당·군·정의 모든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당 대표자회 이후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공개 활동에 자주 동행했다.

 

또한 후계자의 위상을 가지고 독자적인 현지지도도 수행하기 시작했다. 후계자로서 "수령을 보좌하고 받드는 혁명 활동"을 이어가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행보에 나섰던 것이다. 사실상 북한은 내부적으로 김정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10년 3월 10일 로널드 버저스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도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우리는 김정은으로의 승계가 순조롭게 진전될 것 같다고 계속 평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남측과 서방학자들이 북한 후계체제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정보당국 책임자는 북한의 후계구도가 순조롭게 안착되고 있는 것으로 봤던 셈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보면 김정은 부위원장으로의 승계과정에서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2009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진해온 '김일성 주석 3대유훈' 사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2010년 10월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고 황장엽 추모 및 북한 3대 세습 독재 규탄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김정은 사진에 물풍선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김정은

 

북미회담 합의... 6자회담·남북회담도 재개 가능성

 

'애도기간'이 끝난 후 공식 출범할 김정은 시대에 북한은 2009년부터 표면화된 평화·대화 공세와 경제재건 사업을 지속할 전망이다. 김일성 주석의 '3대 유훈' 관철이 주요 목표다.

 

특히 인민경제 생활 향상과 대외환경 개선을 위해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또한 북의 경제재건은 한반도의 평화보장, 남북관계 개선과 서로 연계돼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대외개방, 6자회담 재개, 남북대화 복원 노력을 동시에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북한은 지난 세 차례 북중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북중 전략적 협력관계를 다방면에서 걸쳐 확대해 나갈 것이다. 중국도 '정부 지원'에서 '정부 주도'로 입장을 변경하며 대북 경제협력에 나설 의향을 밝혔고, 김정은 체제의 조속한 안정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북과의 협력관계 강화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여러 차례 김정은 부위원장을 초청했기 때문에 올해 적절한 시점에 방중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 북은 평화협정 체결을 중심으로 북미대화 및 다자대화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은 지난 12월 북미3차고위급회담에 합의했기 때문에 상중기간이 끝나면 대화에 나설 것이다. 6자회담 재개프로세스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셋째, 북은 다른 돌발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남북대화에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난 12월 북미접촉에서도 북한은 남북대화에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즉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부재라는 갑작스러운 변수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으로 대외·대남노선의 기존 정책방향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김정은 시대의 공식 출범에 대해 남측과 미국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관리하는 차원이 될지, 지난 12월의 합의를 이행해 6자회담 재개에 나설지 선택의 시점에 직면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조의 표명', 긍정적 작용할 것

 

일단 미국과 남측의 반응은 신중한 편이다. 미국도 "북한의 안정적 권력이행을 원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직후 19일(현지시간) 뉴욕채널을 통해 실무접촉을 했다. 미국으로선 한반도의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관망하기보다 북한을 적극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쯤 3차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상반기 안에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는 표현으로 '조의 표명'을 하고, 민간 차원의 조의문 발송을 허가한 것도 남북대화 재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비료지원, 금강산관광 재개 등 북한이 요청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수용할 수 있을지가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초기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노선을 '계승'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적절한 시점에 노동당 총서기,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최고사령관 등의 직책도 승계할 것이다. 지난해 당 대표자회를 통해 '친김정은 인사'들로 인적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면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 논의가 합의에 도달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본궤도에 오르는 시점에 김정은 부위원장의 성향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정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창현은 <민족21> 대표이자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입니다.

2011.12.22 17:40 ⓒ 2011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