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vop.co.kr/2009/03/18/A00000246193.html


2009 서해, '확전'방지 안전장치 있나

분쟁지역 넘어선 교전은 정전협정 위반...근본대책 없어

서정환 기자 / jhshe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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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국방부장관은 지난 2월 20일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 선제공격을 해올 경우, 타격지점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한 달 전인 1월 17일 북한 총참모부는 “서해 우리 측 영해에 대한 침범행위가 계속되는 한 우리 혁명적 무장력은 이미 세상에 선포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그대로 고수하게 될 것”이라며 “통일되는 그날까지 조선 서해에는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북한이 서해북방한계선에서 선제공격을 해올 경우, 타격 지점을 공격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 이상희 국방장관은 "북한이 서해북방한계선에서 선제공격을 해올 경우, 타격 지점을 공격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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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영해 등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남북한은 오래 전부터 서해상의 주권과 관련하여 엇갈린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이 때문에 초여름 꽃게철이나 남북 관계 경색 국면 때마다 군사적 긴장이 극에 달하곤 했다.

그런데 올 초부터 제기되는 ‘서해 위기’의 내용은 그 이전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에 각각 발생한 제1, 제2 연평해전은 바다 위에서 시작되어 바다 위에서 끝났다. 함포 사격과 함포 사격, 군함 간의 충돌전은 비록 적지 않은 사상자(1차-남측 11명 부상, 2차-남측 6명 사망 22명 부상, 북측 30명 사망 및 부상)를 냈으나 바다 위에서 싸우고 각자의 기지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과 이상희 국방장관은 양국 군의 공식 입장이 ‘제3차 서해교전이 발생할 경우 최소한 국지전까지는 각오하겠다’는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제3연평해전, '교전'이 아니라 '확전'이 문제

국제사회에서 보는 북한의 해군력은 남한에 비해 절대적으로 약세다. 북한의 전체 함정 수는 약 650대로 남한의 180대보다 월등히 많지만 더 정확한 해군력의 비교 기준이 되는 함정의 총 중량은 10만7000 톤으로 남한의 15만3000 톤보다 훨씬 적다(2008년 판 ‘밀리터리 밸런스’). 남한은 독도함 한 대만 해도 1만4천 톤이 넘는 반면 북한에서는 1000톤 넘는 군함이 다섯 손가락에 꼽히고 나머지는 모두 고속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잠수함은 남한보다 낫다고 알려져 있지만, 수심이 얕은 서해상에서는 잠수함 작전을 펼치기 어렵기 때문에 전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2차 연평해전을 겪으면서 한국군은 서해상 해군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북한의 고속정보다 작은 ‘참수리’호를 그보다 큰 ‘윤영하함’ 등 미사일 고속함으로 교체했고 구축함도 보강했다. 백령도에는 사거리 40킬로미터에 달하는 K9자주포도 배치했다.

해군만 가지고는 전력상 열세를 극복할 수 없는 북한이 ‘해강군사분계선을 고수’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은 등산곶이나 웅진반도, 대수압포 등 황해도 남쪽에 배치된 해안포를 쏘거나 샘릿, 실크웜 등 지대함 미사일을 사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2차 연평해전의 무대는 실제 북한의 서해상 해안선을 따라붙은 지역이기 때문에 북한이 해안포를 활용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1,2차 해전 당시 북한은 자신들의 대응을 '무한한 인내력'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해상 전투에서 밀리면서도 해안포와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였다.

서해 미사일 배치도
  • 북측 서해 해안포 및 미사일 배치도.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교전이 벌어졌을 경우 해상전투는 서해안 10km 안팎을 따라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은 북측의 해안포 사정거리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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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해안포는 구경이 76, 100밀리에 사거리가 20킬로미터를 웃도는 수준이며 사곶, 해주, 옹진반도 등 서해안 주요 기지에 수 백 문이 배치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남한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희 국방장관이 언급한 '타격지점'은 바로 이들 해안포와 미사일 기지이며, 이 장관은 청와대 보고에서 가장 유력한 타격 수단으로 F-15 등 공군력까지 거론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이미 분쟁지역에서의 우발적 교전을 벗어난다.

해상에서 교전 중이던 우리 해군이 북한 영토에서 날아온 포탄이나 미사일에 피격될 경우 이에 대해 보복을 가하는 것이 일면 타당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의미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서해에서 남과 북의 영해를 어떻게 경계 짓느냐 하는 것은 독도 문제처럼 명쾌한 것이 아니다. NLL은 정전협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남한 선박과 군함의 월북을 막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남측이 이를 경계로 그 이남의 영해를 사실상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다고는 하나 국제무대에는 그것만으로 NLL 이남에 대한 권리가 남측에 있다고 인정해 줄 법적 근거와 구속력이 약하다.

오히려 80년대에 유엔에서 결의된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의 NLL로부터 10~20 킬로미터 아래까지를 자신들의 영해로 삼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NLL을 부인하는 북한 측의 중요한 논리다.

흐릿한 해상 경계선, 분명한 정치적 확신

즉 서해는 두 국가 간의 권리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쟁 지역’에 해당한다.

교전은 어디에서든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경우지만, ‘분쟁 지역’이 평화롭다면 이미 그것은 분쟁 지역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설혹 북한이 황해도 남해안에 배치한 대포나 미사일로 서해상의 NLL과 자신들이 1999년에 선포한 해상군사분계선 사이에 있는 남측 함정을 공격한다 해도 ‘분쟁 지역의 교전’에 해당한다.

그러나 남측의 F-15기가 떠서 우리 함선을 공격한 북측의 대포 및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게 된다면 이는 ‘도발’을 넘어 명백한 ‘침공’이 된다. 북한도 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응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공을 주고받는 속력과 힘이 점점 증가하는 탁구 경기처럼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1, 2차 연평해전과 올해 ‘서해 위기’의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위기, 즉 남북한의 해상 교전이 확전되는 것을 막는 장치가 일부 있다.

우선은 북-미 간의 정전협정이 그것이다. 물론 남한은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니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이 아닌 미국 때문에 이 정전협정상의 적대행위 금지 의무를 질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이 체결될 당시 이 협상을 반대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그러나 1954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막상 체결되기 전후로는 ‘휴전조항에 관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며 “정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명했다.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미국은 북한 및 중국과의 정전협정 당시 남한의 협정 준수도 보증한다고 약속했으며 남한에 대해서는 그것을 조건으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며 “실제로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남측의 도발로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는 경우 미국은 남한을 지원하지 않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1999년과 2002년의 연평해전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한 바 없다. 미국 해군의 작전지역이 사실상 동해이며 서해의 작전은 상당부분 한국 측에 맡겨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은 1980년 유엔 해양법 회의에서 서해상의 남북한 영해선을 지금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NLL로부터 남쪽으로 멀찍이 내려 앉힌 안으로 제출한 바 있다. 즉 미국에게도 서해상은 분쟁지역이므로 북한의 명백한 ‘남침’이 아닌 한 개입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F-15가 북한의 영토를 타격하는 것에는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전협정에서 보증한 대로 남한의 ‘도발’을 막을 책임이 있고, 막상 남한의 선공으로 확전이 될 경우 주한미군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타격지점 공격’을 막고 있는 것은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구조다.

한국의 공군은 한미연합사령부 산하 공군구성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다. 육군구성군사령부의 사령관은 한국군이지만 이 공군구성군사령부의 사령관은 주한 미공군사령관이 맡고 있다. 한국 공군의 작전은 평시에도 철저히 미국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김성전 예비역 중령은 “공군지휘통제부 당직을 미군과 한국군 같이 서게 되는데 대한민국 공군이 독자적으로 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며 “서해 교전 시 전투기를 이용한 ‘타격지점 공격’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서해 교전의 확전을 막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북한군의 전력이다.

보수적 성향의 한 장성 출신 군사전문가는 “만에 하나 이상희 장관의 말대로 우리 공군이 북한의 공격지점을 타격한다고 해도 북한이 이것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며 “오히려 북한은 도발을 통해 압도적인 남측의 군사력 차이만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한의 전투기가 출격할 경우 가장 일반적인 대응은 날아오는 전투기를 격추 시키거나 전투기가 이륙한 기지를 타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은 한국 전쟁 당시에 쓰던 것도 상당수 있고 1980년대에 개량이 멈춘 상태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다. 당장 활용하기에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또 남한의 공군기지는 수원 이남에 있기 때문에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를 벗어난다.

이 전문가는 “이상희 장관이 이런 점을 모를 리 없으며, 다만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발언으로 본다”며 “공연히 긴장을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말했다.

정전협정, 군사지휘체계, 군사력 등이 안전장치. 그러나...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이 서해 위기를 100% 막아 주는 것은 아니다.

근대 이후 최고의 군사 전문가로 꼽히는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실상은 전쟁을 지휘하는 군사 지도자의 격한 감정이 발로된 것”이라며 전쟁의 우연성, 우발성을 강조했다.

원체 경계선 획정이 어려운 곳이어서 남북한의 해군 함정들은 평소에도 남측의 NLL이나 북측의 서해상 분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또 해마다 초여름이면 남북의 꽃게잡이 어선들이 명확한 경계선이 없는 서해로 몰려 들고, 양 측의 해군도 이들의 안전을 위해 출항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은 물론이고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인 2002년에도 위기를 방지할 수 없었다. 한반도의 서해는 바로 이 우연과 우발성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곳 중 하나다.

더구나 출범 이후 내내 남북관계를 동결시켜 왔고, 촛불 이후 보수 세력의 결집으로 정국을 돌파하려는 구상을 내비치고 있는 남한 정부에게 서해상의 충돌이 꼭 '손해'인가를 고려해본다면 서해상의 우연과 우발성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브레이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확신은 어려워 보인다.
  • 기사입력: 2009-03-18 03:23:03
  • 최종편집: 2009-03-18 18: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