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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핵실험' 악순환, 이번에도 반복될까?

전문가들, 핵실험 가능성 낮아...韓 중재자 역할 해야 하지만

조태근 기자 taegun@vop.co.kr

입력 2012-04-18 15:08:32l수정 2012-04-19 09:22:05

13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이후 미국과 한국.일본 등이 주도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16일 채택됐다.중국이 여기에 크게 반대하지 않은 점이 주목되면서, 북중관계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도출된 2.29합의는 광명성 발사에 이은 미국의 식량지원 중단으로 사실상 백지화 된 상태다. 양측이 2.29합의 파기 책임론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금지가 포함되지 않은 2.29합의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갔고, 각자의 속내가 어떤것이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안보리 의장성명으로 본격적인 제재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대중들의 관심은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추가적인 행동에 나설지 여부와 제재 옵션이 사실상 소진된 미국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지에 쏠리고 있다. 2009년 상황처럼 '위성'발사→제재→핵실험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역할 속에 북.미가 접점을 찾아 나갈지에 대해 안보리 의장성명이 발표된 뒤 17일 열린 '북한의 광명성3호 발사와 한반도 정세' 토론회와 '권력승계 100일, 김정은의 선택:광명성 3호 발사와 당대표자 회의를 통해 본 북한의 전략' 토론회, 18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토론회에서 나온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어떻게 볼까

안보리

유엔 안보리는 16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관련해 회의를 열어 로켓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 안보리 의장성명은 북한의 추가도발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했는데, 이는 향후 발생할 일에 대한 내용이다. 북한과 중국 입장에서 보면 안보리 의장성명은 이미 지난 2009년 나온 결의안 1874호에 이미 다 나온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최고 수준의 제재를 하고 있고, 중국이 독자적으로 제재를 강화하지 않을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안보리 의장성명은 신속하고 강력한 경고 메세지다. 이번 의장성명은 미국과 중국의 합작품으로 중국은 나름대로 북한에 경고의 메세지를 보낸 것이다. 미국은 의장성명을 통해 2.29합의에 대한 미국 보수층의 의구심을 해소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북중간 고위급 상호방문이 없었다. 북한이 4.15행사에 중국 정치협상회의 사절단을 받지 않았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4.15 연설에서 '자주성'을 언급했다. 북한은 중국이 미국.남한에 이끌려 간섭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진 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점도 봐야 한다. 중국이 쌀이 아닌 옥수수만 지원하면서 생색을 내고 있고, 무기지원을 하지 않는 데 대해 북한이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은 G2 국가인데 현재 북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이익보다는 손해라고 봐서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정철: 북중관계가 나쁠 수도 있는데, 의장성명에 중국이 동의한 것이 북중관계가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북한이 자제요청에도 발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북한은 의장성명을 중국이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본다면, 의장성명의 수위는 오히려 낮게 나온 것이다.

■제재 국면, 북한 3차 핵실험 택할까?

문정인 연세대 교수: 앞으로 대북 제재국면이 강화되면 3차 핵실험이나 다른 형태의 미사일 실험발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새뮤얼 라클리어 미국 태평양군사령관이 '북한 핵실험 시 정밀타격' 발언을 나중에 취소했지만 미국의 보수는 물론 중도 성향 논객들도 군사행동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에도 대화파가 있지만 대선이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도 자신의 실수를 내버려둘 수 없어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이정철: 북한의 매뉴얼에 따르면 미국이 강한 톤의 의장성명을 제기하고 중국이 이에 동의할 경우 이는 2009년 4월 상황(광명성 2호 발사 뒤 2차 핵실험)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이를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2009년 상반기의 악순환이 재연될 수도 있다. 북한이 3차 핵실험 준비를 공개하거나 4.15 군사퍼레이드에서 고체 연료에 의한 ICBM급 미사일을 전시한 것은 상황 악화에 대한 대책을 과시한 것이다. 그런데 안보리 의장성명에서 '인공위성'으로 표현한 점을 보면 상황을 유화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실마리를 볼 수도 있다. 북중관계가 나쁘다면 북한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도 있고, 상황은 앞으로 2009년 보다 악화될 수 있다. 북중관계에 문제가 없다면 이번 의장성명이 오히려 상황을 호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2.29합의도 살리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지나면 모멘텀이 생길 여지가 있다고 본다.

미사일

김일성 주석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15일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추정되는 신형 장거리 탄도미사일(上)이 공개됐다. 이 미사일은 지난 2010년 10월 공개된 '무수단' 미사일(下) 보다 길이와 폭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서주석 전 청와대 안보수석비서관: 북한은 2.29 합의에서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핵실험을 한다면 의장성명에 협조한 중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거 핵실험에서 사용됐던 플루토늄은 핵실험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농축 우라늄은 보유 자체만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핵실험을 해도 실익이 남지 않는다. '조선신보'가 이번 발사를 '북한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의 첫단계 사업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핵실험보다 준비 과정에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재차 위성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 15일 군사 퍼레이드에서 새로운 ICBM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공개하면서 나름의 카드를 보여줬고, '백업카드'로 핵실험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분리해서 접근한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화됐기 때문에 섣부른 위기를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일의 유언 중 제재를 풀고 경제발전을 위해 대외관계 부문을 신경 쓰라는 내용이 있는데, 핵실험을 할 경우 그러한 유훈을 반영할 수 없다.

김창수 전 청와대 NSC국장: 과거 핵실험 상황은 미국을 떠보거나 밀어붙이기 위해 벌어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김정은 체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강력한 군사태세를 유지하는 정도다.

■미국의 행보는?

이정철: 북한이 합의를 먼저 깼고, 국제사회가 일치된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외교적 조치 외에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수세적인 표현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자신의 전매특허인 스마트 제재를 가동할만한 역량이 충분치 못한 것 같다.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경우 이는 미국의 중동 전략(시리아.이란을 고려할 때)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이 대북강경책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 북한은 절반의 성공이고 미국은 절반의 실패다. 미국은 북한의 광명성 발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실패지만, 발사가 실패한 점은 그나마 오바마 정부에 위안이다. 미국은 단독제재가 마지막 옵션인데, 이 옵션은 나머지 절반의 실패를 회복시킬 수도 있지만 절반의 성공을 다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선택이다. 그래서 아직 유동적이다. 2.29합의에서 위성은 다뤄지지 않았는데, 미국은 두가지 가능성을 다 보고 후폭풍을 본 것이다. 첫째는 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은을 테스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한 것으로 2.29를 깰 것인가에 대한 테스트다. 쏘지 않는다면 미국의 성공이었을 것이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3일 플로리다 탬파에서 스페인어방송 '텔레문도TV'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광명성3호 위성' 발사에 대해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공조할 것"이라며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두번째는 만약에 북한이 강행했다는 식량지원을 중단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부시처럼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첫번째 시나리오 보다는 못하지만 미국으로써는 그렇게 잃을 것은 없다. 또 하나는 발사를 하면 시간을 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추가도발만 없다면 말이다. 미국은 대선까지 '전략적 인내'로 갈 것이다. 이런 상태로 7~8개월 끌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오바마 재선 이후를 봐야 한다. 이제 잘게 잘라서 협상하는 것은 끝났다. '그랜드바겐'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그런 게 있어야 한다.

■한반도 위기상황, 한국은 방관자?

문정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미국이 강경하게 나올 때 말리는 입장이었지만 현 정부는 지금도 북한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 2012년 한반도가 위기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북한의 주요 핵시설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서려다 김영삼 정부가 반대해서 못했던 일이 올해 5~7월 사이 이뤄질 수 있다. 제재가 이어지는 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강화돼 한반도의 긴장이 한층 굳어지는 '죄와 벌의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군사행동까지는 안 갈 것이라고 생각해 강경 대응으로 나서고, 미국은 북한이 강경하게 나서기 때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미국 편에서 방관하면 심각한 안보위기가 초래될 것이다.

이정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일.중도 아닌 한국이다. 오바마에게 강경책에 기울지 않을 명분을 주면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않도록 하는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다가오는 대선에도 불구하고 강경책을 고집한다면 위험천만한 긴장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지난 3월 연설에서 6.15, 10.4를 인정한 게 진정성이 있다고 잘 대처해야 한다. 박근혜 위원장이 광명성 발사와 관련 국회에서 대북 규탄결의안을 내자고 했는데 자기가 한 6.15, 10.4 인정 발언과 충돌하는 것이다.

김준형: 한국이 오바마에 강경책으로 돌아서지 않게 유인책을 쓸 수 있을까. 한국은 중재자로써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총선 이후에 남은 임기 동안 최선으로 바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끌고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5년 동안 단 한번도 중재자 역할을 못했는데, 스스로 국면을 바꿀 동기가 없다고 본다. 박근혜 위원장이 6.15, 10.4를 인정한 게 기회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