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7219
남측 고위급 대화 제의, '진정성' 시험대에
<초점> '통일부 2012년 업무보고' 어떻게 보아야 하나
2012년 01월 07일 (토) 17:36:08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통일부는 2012년 업무보고에서 남북간 대화채널 구축을 위해 고위당국자간 대화 개설을 통한 포괄적 의제 논의를 제시했다.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선사과 후대화'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산가족.개성공단.금강산 관광, △6.15, 10.4선언 이행 등 포괄적 의제를 한 자리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현 정부 들어 사실상 내팽개쳐졌던 6.15, 10.4선언이 다시 등장한 점도 흥미롭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5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례적으로 업무보고 브리핑을 열고 "(천안함.연평도 사과문제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대화를 할 때 테이블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의제"라고 말해 '선사과, 후대화' 원칙을 사실상 철회했다.

천안함 사건이후 정부가 5.24조치로 사실상 남북대화의 문을 닫은 상황에서 '선사과, 후대화' 원칙을 철회한 것은 일단 남북관계 전기를 마련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받는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방향 자체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좋다"고 평가했다.

이는 정부 내 기류변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통일부 당국자가 "정부 내 기류가 바뀐 측면이라고 보면 된다"며 "(북한에게) 명확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서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조금더 나아가고 전향된 입장이라고 평가해주길 바라고 북쪽도 그렇게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과거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방점이 있다"는 다른 당국자의 말에서는 '천안함' 족쇄를 풀고 싶은 정부의 속내가 엿보인다.

반면,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 급변사태를 주문처럼 외우던 대북 강경파들이 막상 김정일 위원장 유고사태가 발생하자 정보력과 상황관리 능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며 "북미회담의 모멘텀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측의 자제 요청과 맞물려 일단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쪽에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준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정부 내 기류 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한 통일부 당국자는 "첫째 김정일 사망 이후 한반도 상황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관리해야한다는 필요가 있었다"며 "북한이 불안정한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게 당연한 의무라는 점"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대화의 채널을 여는데 우리 요구에 대해서 북한이 '뭐지 뭐지'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북한 내)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판단하는데 도움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관리'라는 5일 통일부 업무보고 목표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통일부가 '포괄적 의제'를 다룰 대화의 급으로 '고위당국자'를 적시한 대목도 주목된다.

류우익 장관은 "북측과 협의를 해야 된다"는 전제를 깔면서도 "그러나 우리 정부가 갖고 있는 생각은 당국의 의사를 책임있게 내놓고, 협의를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무자 가지고는 안된다"며 고위 당국자간 대화통로 개설을 강조했다.

'고위당국자'의 급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총리급이든 장관급이든 차관급이든 선수들끼리 하자는 것"이라며 "북에서도 판단하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오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회담도 잘 되지 않겠느냐는 바램"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남북 고위당국자간 '포괄적 의제'를 놓고 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통일부는 '여건'에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류우익 장관은 "특단의 조치를 통해서 대화채널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대화를 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것도 중요한 정책 수단 중의 하나"라며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이라며 '여건 조성'에 나서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한 당국자도 "여건이라는 것은 우리가 대화를 제의하고 저쪽이 호응할 것이다. 또 호응해서 나와서 우리의 문제, 저쪽의 문제를 논의할 마음의 준비가 됐다는 서로간의 믿음이 여건"이라고 해 대화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대화 여건 조성을 위해 우리 정부가 먼저 대화를 제의할 용의는 없어 보인다. 물론 지난 5일 류우익 장관의 이례적인 업무보고 직후 브리핑은 북에 대한 '대화 메시지'로 평가받지만 '선제의'도 여건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여건이 돼야지 제안하는 것이다. 제안은 누가하든 중요하지 않다"며 '선여건 후대화'를 강조, '눈치보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북한은 지난달 30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상종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며 조문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낸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를 통해 이 대통령의 '기회의 창' 발언에 "이명박 역도가 '신년연설'이라는 데서 그 무슨 '기회의창'을 열어놓고 있다느니 하고 역설한 것은 파렴치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도높게 비판해 남북간 대화채널 구축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오는 3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북측의 훼방을 우려해 상황관리에 나선 것일 뿐 본질적인 대북정책 전환은 아니라는 냉소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3월까지 통일부를 앞세워 북측에 유화적 메시지를 던지며 시간을 벌다가 북측이 호응해 오지 않을 경우 다시 국정원이나 국방부 등에서 강경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통일부의 업무보고 바람대로 상황이 진전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실천의지가 관건이라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통일부는 업무보고에서 남북간 대화채널 구축과 함께 평화.경제.민족공동체 구축을 추진키로 했다. 여기에는 △비가역적 비핵화 실현 △개성공단 안정적 발전 추진 △문화재 발굴.보존, 겨레말큰사전 △교향악단 공연, 체육교류 △백두산 화산, 수해방지 등 구체적인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사안들이 현실화될 경우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홍현익 실장은 "실제 세부정책은 없으면서 말만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 행동으로 지켜지면 좋겠다"면서도 "업무보고에는 행동이나 각오, 정책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마디로 말 뿐일 수도 있다. 정책은 실제 행동으로 가서 상대국에 영향을 주거나 효과를 가져와야 하는데 주변국과 협력을 하겠다는데 주변국과 협력해서 압박을 가하겠다는 생각아닌가. 능동적 통일정책의 구체적인 정책은 없다"고 정부의 대화의지에 의구심을 보였다.

홍 실장은 "상황관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더 심각해지는 위기를 막아야 한다. 북한의 핵능력, 대중 의존, 급변사태 등을 막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경협 등 북한을 관리하는 구체적 정책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황을 돌리기에는 소극적 사고발상과 정책으로는 극복 못한다. 말만 하지 말고 예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에서 쌀이 아니라면 다른 식량지원을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을 해야한다. 그렇기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김종수 민주통합당 통일전문위원도 "(통일부 업무보고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말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실제로 변화시키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질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실천적으로 해야 진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김종수 전문위원은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라며 "금강산 관광 등 북에서 핵심적으로 보는 사안에 대해서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서울시가 신년사에서 언급한 경평축구, 서울시향 평양공연 추진 등을 승인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면 북측도 '남쪽 정부가 어느 정도 변화를 실질적으로 하려는가 보구나'하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정부가 북측에 비핵화와 천안함.연평도 사과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며 애용했던 '진정성'이 이제는 우리 정부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실제 임기가 1년 밖에 남지 않은 현 정부가 북측과 고위급 대화를 통해 포괄적 의제를 다룰 '진정성'이 있는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관련기사
· 통일부, 한반도 평화 안정관리 최우선 · 류우익 "고위급 대화채널서 모든 문제 협의"
· 이 대통령 "북한을 망하게 한다는 목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