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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부여하자
<초점> 북핵문제 해법, 새로운 로드맵 필요하다
2013년 01월 28일 (월) 14:35:40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1.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북핵문제가 장기화 되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3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2087호가 나오자 북한 외무성은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결론을 내리였다”고 선언했다. 앞서 북한은 개정된 헌법 서문에 아예 ‘핵보유국’을 명기하기도 했다.

특히 이같은 비관적 전망은 오히려 북한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지북파(智北派)’라 할 수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체제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맥락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근원적인 체제안전 보장책 없이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폐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 역시 또 하나의 ‘과신 오류’는 아닐까?

지난해 4월 북한을 방문해 로켓 은하3호와 인공위성 광명성3호 1호기를 직접 둘러보고 4.15태양절 행사 등에 참석하고 방한한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 교수는 지난해 4월 20일 한반도평화포럼 강연에서 “북한은 핵을 보유하지 않으면 자기가 존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핵을 보유하게 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 길이 아득하다. 그러니까 북은 김정은 시대에서는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경제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표적 지북파라 할 수 있는 박 교수의 진단은 경청할만한 견해라 할 수 있다. 물론 최근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입장 전환도 감안해야 한다.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북한은 군사적 대치상태를 완화시키고 경제발전 구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국제적 여건을 마련할 수 있는 핵 폐기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조선은 핵무기를 가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던 대목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북한 스스로도 인정한 실현 가능한 목표인 것이다. 다만, 이제는 이같은 북측 입장이 현실화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다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박한식 교수는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안보의 게런티, 담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다국적인 평화체제 등등 국교정상화 이런 게 다 선행돼야 된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 엄청난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안보 문제만 해결된다고 하면 포기를 한다”고 하면서 중요한 논거를 들었다. 즉, “북한이 핵국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핵국 가능성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북한 사람들하고도 얘기했지만, 북한은 핵과학이 있다. 핵과학자가 있다. 핵원료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시작해도 몇 달 만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이 영영 핵국가의 스태터스(status, 지위)를 없앤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은연 중의 힘이랄까 자기들 스스로 믿는, 그게 또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경제발전과 같은 국익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고, 그 배경에는 핵무기를 포기하더라도 ‘몇 달 만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중요한 논제를 던진 것이다. 북한이 체제안전이라는 근본적 이익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온 만큼 더 큰 체제이익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논리는 얼마든지 성립 가능하다. 다만 근본적 이익인 체제안전을 어떻게 보장해주느냐가 어려운 숙제였던 셈이다. 따라서 박 교수가 “북한 사람들과도” 의견을 나눠 본 핵 재무장 능력이 북한 핵무기 폐기의 현실화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늦었지만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북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 모색은 정립된 개념조차 없는 낯선 길이고 문제의 역사성과 복잡성으로 인해 수많은 난제들이 가로놓여 있는 험난한 작업일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간명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논지나 북한이 경제난 때문에 핵 폐기를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희망사항에 기댈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시론에 불과하더라도 새로운 북핵문제 해결의 로드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절실한 때다.

2. 9.19공동성명, 신뢰와 비가역성의 한계

먼저 9.19공동성명이라는 훌륭한 설계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북핵문제의 해결이 요원한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자도 베이징 현지에서 6자회담 취재를 통해 9.19공동성명 탄생을 지켜보았지만,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6개국이 9.19공동성명이라는 옥동자를 낳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북핵문제는 물론 한반도 평화문제의 모든 해답이 거기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19공동성명은 남과 북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체제 구축과정에 이룩한 기념비적 걸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2005년 9.19공동성명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미국이 BDA(뱅코델타아시아) 문제를 꺼내들어 긴 시간 발목을 잡았고,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 역시 미국이 검증문제를 들고 나와 또다시 난파되는 상황을 맞는 등 갈지자 행보를 거듭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북한은 영변원자로를 불능화하고,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도 있었지만 결국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과 네 차례 인공위성 발사,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등으로 북핵문제는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형국이다.

9.19공동성명이 미국과 한국, 북한의 동상이몽을 버무려놓은 것이라는 혹평이 나올 법한 대목이지만 사실은 9.19공동성명의 내용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체로 미국과 북한의 ‘신뢰’ 문제가 기저에 깔려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불가역적’으로 ‘완전하게’ 폐기시키려 하고,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안전을 ‘불가역적’으로 ‘완전하게’ 보장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검증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때 북한에 대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사실은 많은 이들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완벽한 핵무기 폐기와 완벽한 체제보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허점 또한 명백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CVI 방식으로 폐기한다면 미국은 북한에게 CVI 방식으로 안보를 보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리 평화협정을 맺고 심지어 주한미군까지 철수시킨 상황에서 국교정상화를 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마음만 바꿔먹으면 북한을 무력침공하는 것은 형식논리적으로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북한도 핵무기를 CVI 방식으로 폐기하는데 불안감을 갖고 끝까지 핵무기 보유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CVI 방식으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가 훨씬 설득력을 갖게 돼 9.19공동성명은 불가능을 전제로 한 합의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9.19공동성명이 실현되기 위한 공평한 길은 서로 신뢰에 기초해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미국 등은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방법 밖에 없지만, 이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북한과의 약속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북한에게도 언제든지 핵무기 폐기를 되돌릴 수 있는 ‘가역적 폐기’(Reversible Dismantlement)가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길 밖에 없다. 북미관계에서 신뢰의 문제는 결국 상호 불신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 국제정치에서 상호 신뢰란 약속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9.19공동성명의 또 한 측면에서의 한계는 2005년 합의 당시와 2013년 현재 상황에는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 사이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해 ‘사실상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했고, 1998년에 이어 두 차례 인공위성을 추가 발사한데 이어 지난해 12월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궤도에 진입시켜 10번째 ‘스페이스 클럽’ 국가가 됐다. 더구나 북한은 2010년 11월에는 농축우라늄시설도 공개했다. 지난해 4월 13일 개최된 제12기 제5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는 ‘핵보유국’ 지위가 명기돼 있어 핵폐기는 헌법 개정이 뒤따라야 할 사안이 되었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결이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자 인공위성 보유국인 북한과의 핵군축 협상과 헌법 수정 등 보다 복잡하고 힘든 과제가 되었다.

또 하나의 고려사항은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와 북한의 체제안보 환경의 변화다. 중국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의 일극패권주의는 퇴조의 징후를 보이고 있어 이른바 ‘G2’라는 신조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 및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예상보다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심화시킴으로써 체제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는 향후 핵문제 해결과정에서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3. ‘가역적 핵포기국’의 지위와 보장조건

전 세계 국가들은 핵무기 보유 여부에 따라 대체로 핵무기보유국(NWS, nuclear weapon states)과 핵무기비보유국(NNWS, non-nuclear weapon state)으로 나뉜다. 이른바 P5(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불리는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가 핵무기보유국이고 나머지 국가는 핵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핵무기비확산조약(NPT, The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de facto nuclear-weapon state)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여기에 이제 북한도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구소련에서 분리독립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벨로루시는 ‘핵무기 폐기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표1> 핵무기 보유 여부에 따른 국가군 분류

핵무기보유국(NWS)

핵무기비보유국(NNWS)

핵보유국
(P5)

사실상
핵보유국

가역적
핵포기국

잠재적
핵보유국

핵폐기국

핵비보유국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이스라엘*,파키스탄, 북한

(북한)

이란, 일본, (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아공,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벨로루시

기타 
모든 나라

* 이스라엘은 ‘사실상 핵무기보유국’ 중에서도 핵실험을 거치지 않았고, 보유 선언을 하지 않은 ‘Undeclared nuclea weapon state’로 분류된다.
** 한국은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 「2010년 합동작전 환경평가 보고서」에서만 ‘잠재적 핵무기보유국’으로 분류돼 있다.

핵무기비보유국 중에서도 ‘잠재적 핵무기보유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핵무기 기술이 보편화되는 추세이고 핵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발된 핵무기의 품질과 안정성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어 잠재적 핵무기보유국의 확산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의 경우 잠재적 핵무기보유국으로 분류된 바 있지만 2003년 미국의 침공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한반도와 이웃한 일본은 잠재적 핵무기보유국으로 분류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3개월이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고, 현재 보유 중인 약 30톤의 플루토늄만으로도 1천~3천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으며, 연간 1만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 시설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핵무기 운반수단인 로켓기술은 이미 위성발사 성공으로 입증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30년 원전 제로’를 내걸면서도 아오모리(靑森)현의 롯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공장을 계속 가동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잠재적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지속하겠다는 의도 외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한편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가 작성한 「2010년 합동작전 환경평가 보고서」에서는 “한국과 일본은 그들이 하겠다고 선택만하면 핵 장치를 빠른 시일안에 만들 수 있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을 가진 국가”라고 규정해 한국 역시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분류한 바 있어 흥미롭다. 한국은 2014년 3월까지 유효한 ‘한미원자력협정’에 의거해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를 할 수 없으며, 남북 간의 합의로 1992년 발표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참고로 미 합동군사령부는 북한의 2차 핵실험(2009년 5월) 이전에 발간된 「2008년 합동작전 환경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최초로 명기해 파문을 일으키는 등 미 국방부의 이해관계에 따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핵심 사안은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인 북한을 ‘핵무기 폐기국’으로 유도하는 것이며, 이는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의 목표이자 9.19공동성명의 목표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대로 북한이 CVI 방식의 체제안전을 보장받지 않는 한 그 실현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을 ‘자발적 핵무기 폐기국’, 즉 ‘핵무기 포기국’(핵포기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역적 핵무기 포기국’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가역적(可逆的) 핵포기국’은 상대방이 핵포기의 조건으로 합의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어겼을 경우, 핵무기보유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인정하는 조건부 핵포기국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 보장 약속이 미국이나 한국 등에 의해 본질적으로 침해됐을 경우, 즉 북한이 핵무기 포기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체제위협에 내몰릴 경우 북한은 핵무기보유국 지위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또는 이미 북미, 남북간에 합의돼 집행된 평화협정, 관계정상화, 경제지원 등이 되돌려질 경우, 북한은 그 훼손 정도에 조응해 단계적으로 핵무기보유국 지위로의 복귀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특수한, 잠정적 지위인 ‘가변적 핵포기국’이라는 개념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가변적 핵포기국’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북한은 엄연히 핵포기국 지위를 인정받아 반대급부를 제공받기 때문에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같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구로부터의 사찰을 수용해 핵폐기의 투명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즉 북한은 ‘투명한 핵폐기국’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북한은 완전한 핵무기 폐기를 검증받아야 하고, 평화적 핵이용시 국제적 감시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과 한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임을 인정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나 관계개선, 경제적 지원 등 북한과 약속한 의무사항을 성실히 준수해야 하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우해 북한에게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을 인정함으로써 핵무기 보유의 가역성을 보장해야 한다. 핵연료 주기를 완성한 경수로 운용은 폐연료봉 재처리 등을 통해 핵물질을 추출해낼 수 있고, 인공위성 발사를 통한 로켓 기술 향상은 핵무기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조건과 둘째 조건이 필요충분조건으로 충족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IAEA나 6자회담에서 정한 별도의 국제기구 등의 사찰 하에 핵무기를 폐기하고 상시사찰을 수용할 경우, 폐기 대상과 사찰 범주와 대상을 정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내지는 핵물질을 은닉해뒀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수많은 지하군사시설에 대해서도 사찰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되돌릴 수 있는 조건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경수로 운영이나 인공위성 발사 문제도 오래 전부터 난제 중의 난제로 꼽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 외에는 다른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의 실현을 위한 길을 팽개칠 수는 없다. 실제로 사찰 문제나 경수로 문제 등은 오래 전부터 논의돼 왔고, 일부는 직접 시험해본 사안들이다. 의지를 갖고 합리적 협상을 진행한다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사안들인 셈이다.

4. 정상국가의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경우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 간 수교가 이루어진 상황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북-미 간, 남-북 간에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평화공존의 상대로 인정하는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따라서 평화체제에 포함된 북한은 더 이상 적성국가나 ‘깡패국가’(rouge state)가 아닌 정상국가이자 평화국가가 되는 것이다. 북한이 9.19공동성명 이행 과정에서 테러지원국의 굴레를 벗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그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경제제재 역시 해제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돼 북한이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 편입되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한 핵포기국이 될 경우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을 가질 권한이 회복되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나 이같은 형식논리는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실현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미국은 북한의 핵이용권에 거부감을 가질 것이고 북한은 핵포기국이 된 이후에야 핵이용권을 부여받는다면 ‘핵무기 방어체계의 공백 기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핵포기를 주저할 것이다.

따라서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는 북한과 미국, 한국 등 이해당사자들 간의 정치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상호 신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서로 인정해서 북한에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인정하는 협상목표에 합의하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핵포기 과정과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과 우주개발권 부여를 맞물려 진행하는 방식이다. 북한이 ‘공백’에 대한 불안감 없이 핵포기를 단행할 수 있고, 미국과 한국 등이 투명한 핵포기와 경수로․인공위성에 대한 ‘국제적 감시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이다.

 <표2> ‘가역적 핵포기국’ 조건

구분

평화적 핵이용권

평화적 우주개발권

방식

경수로(핵연료주기 완성)

인공위성(발사 보장)

인공위성(발사 대행)

가역시
효과

1)폐연료봉 재처리 통해 플루토늄 확보

2)우라늄연료봉 제조시설 이용 고농축우라늄 확보

1)단기: 궤도진입 로켓기술 향상

2)장기: 왕복우주선 기술개발로 대기권재진입 기술 시도

1)궤도진입 로켓기술 보유

2) 대기권재진입 기술 미지수


실제로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가장 논점이 됐던 사안은 경수로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05년 ‘9.19공동성명’ 채택을 며칠 앞둔 9월 14일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오늘은 경수로의 날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결국 9.19공동성명에는 북한의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와 ‘경수로 제공문제’가 포함됐다. 북한이 경수로를 원한 것은 단순한 에너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이 북한에 ‘200만 킬로와트 전력공급’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수로가 공동성명에 포함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는 “조선은 응당 경수반응로를 갖고 이것은 핵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다”며 “평화적 핵 활동을 하는 것은 조선의 정당한 권리이고 미국이 이에 대해 조건을 다는 것은 조선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결국 북한에 대해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는 북한에 대해 경수로를 운영할 권리를 인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 등이 일방적으로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북한이 빠른 시간 내에 핵보유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핵연료 주기를 완성한’ 경수로 운영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맞서 체제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 개발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사안이다.

먼저 경수로 문제를 살펴보면, 통상 경수로는 우라늄을 원료로 연료봉을 만들어 원자로를 가동하고 거기서 나오는 폐연료봉을 수조에 보관하거나 재처리하며 이를 ‘핵연료 주기’를 완성한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이 IAEA 등의 사찰을 수용한 상태에서 경수로를 가동하면서 핵연료 주기를 완성하고 있다면 핵무기 보유국으로 되돌아가는데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상태가 된다.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획득하거나 저농축우라늄 연료봉 생산시설을 활용해 고농축우라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평상시 국제적 사찰 하에 ‘투명한 경수로’를 운영해 부족한 전력을 확보하는 한편 미국이나 한국 등과의 합의가 깨졌을 때 빠른 시간내에 핵무기 보유국으로 전환할 수 있는 안전판을 갖게 된다. 미국 등이 그간 북한에게 경수로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며, 북한이 경수로를 기어이 9.19공동성명에 포함시키려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북한 입장에서 경수로는 경제재건의 핵심과제인 에너지난의 해소를 위해서도 필수적 선택이지만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핵발전소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국제적 추세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라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경수로 문제는 1994년 북미 제네바기본합의(Ageed Framework) 당시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며 추진했던 이 사업은 결국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흉물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 2005년 9.19공동성명 제1항에 양측의 의견이 절충된 형태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네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하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은 9.19공동성명의 합의가 지켜지지 않자 자체로 경수로 개발에 돌입해 경수로 완공을 다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리기성 교수는 지난해 3월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영변에 건설 중인 경수로의 규모는 10만㎾급이며 “올 연말까지 완공, 즉시 가동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이 1994년 북미 제네바기본합의에 따라 지어주기로 했던 경수로는 100만㎾ 2기였다. 따라서 다시 북미 간에 핵무기 폐기 문제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북한은 당연히 그 반대급부로 자체 건설 중인 경수로의 인정은 물론 추가 경수로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를 수용할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또한 북한은 자체적으로 이미 인공위성을 네 차례 발사해 지난해 12월에는 궤도진입에 성공했고,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권’(우주개발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운반하는 로켓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에도 적용되므로 미국 등은 이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더라도 이를 실어 나를 수단이 없다면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없지만 인공위성 기술을 개발할 경우 ICBM 기술 역시 향상되므로 미국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남한이나 일본, 중국 등 인접국의 경우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사정거리 내에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에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적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공위성은 상업적 목적뿐만 아니라 군사정보 측면에서도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북한의 우주개발 권리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보장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이미 북미 간에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에 관한 협상이 여러 차례 진행된 경험이 있으며, 2000년 북미 미사일협상 과정에서 나온 ‘위성발사 대행’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과 운영은 인정하되 ICBM 기술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로켓발사는 미국이나 중국 등 외부에서 대행해주는 방식이다. 특히 북한이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보여준 만큼 북한으로서는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 호언장담한 북한이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향후 유인우주선에 도전할 경우 왕복우주선을 개발해야 하고 이는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를 완벽하게 보유함으로써 ICBM 기술을 온전히 시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호제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도 “오히려 북한이 거대한 발사장을 건설해 다른 나라 위성발사를 대행해주겠다는 입장”이라고 진단해 만일 북측이 ‘위성발사 대행’을 협상을 통해 받아들일 경우 그 대가를 훨씬 더 많이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위성발사 대행사업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외화를 포기하는 대가까지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위성 운영은 경제적 효과는 물론 군사정보 획득의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의 인공위성 운영을 인정한다는 것은 북한을 주권국가로서 대우하고 신뢰한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인정해주거나 약간 변형된 방안으로 일정한 반대급부를 제공하고 발사를 대행해주는 방안이 북한의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다.

5. 신뢰와 평화 그리고 한반도 통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 간에는 갈등과 긴장이 높아졌고,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다달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새로 등장한 ‘김정은 체제’가 선군정치를 표방하면서도 당면과제로 지식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강국 건설을 내세우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처지는 미국이나 한국에게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기회를 살리는 것이 정치와 외교의 임무일 것이다.

2003년 6월 미국은 우리 정부와 협의도 없이 북한과의 전면전을 추진했고, 주한미국대사관은 자국민의 소개를 준비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첨단 무기들이 즐비한 오늘날 전면전이 발발하면 전후방이 따로 없고, 좁은 땅덩어리 한반도는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그 어느 곳도 전쟁의 참화를 비켜갈 수 없다. 따라서 남과 북에 더 많은 미국인이 상주할수록 한반도의 평화지수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가벼이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전쟁의 기미를 조금이라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경보장치라도 될 것이다.

혹자는 북한에 대해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보장하자는 논지를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너그러운 접근법이라고 비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조건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에게만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 북한 측 입장에서 평등한 핵군축 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형식 논리상으로만 보면 틀린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 국제정치의 ‘힘의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북한의 입장을 상식적으로 수긍할 만한 수준에서 수용하는 절충적 방안으로서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는 완전히 공평한 해법도 아니고 북한에 대한 일방적 시혜조치도 아니다. 어찌 보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북한의 현실을 활용해 핵포기를 끌어내는 강대국의 변형된 압박과 회유책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보다 객관적 평가라 할 수 있다.

1994년 북미기본합의서 체결 당사자들은 북한의 소멸을 전제로 합의서에 서명했고, 9.19공동성명 합의 당사자들은 멀고 거창한 목표를 제시해 둠으로써 당장 북한의 핵개발을 붙들어 매두려고만 했는지 모른다. 결국 북한이라는 국가를 소멸하지도 않고, 합의서를 이행할 수도 있는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상호 신뢰의 첫 걸음이다. 북한이 국제적 감시하에 투명하게 경수로와 인공위성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정상국가로 대우하는 신뢰를 보낼 때, 북한 역시 투명하게 핵무기 폐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게 지구상 첫 ‘가역적 핵포기국’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상호신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 유엔안보리는 결의 2078호를 채택해 대북 제재의 수위를 높였고,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추가 핵실험 등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나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어차피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 위성 보유국인 북한에 대해 ‘동결과 비확산’으로 정책목표를 하향조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핵물질(무기) 동결과 비확산의 대가로 미국 대기업이 북한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설까지 흘러나오고 있어 상황은 매우 역동적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기존 핵물질 내지는 핵무기의 동결과 비확산을 추구하는 것도 또 하나의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방법 외에 ‘가역적 핵포기국 북한’은 일정기간 우리가 합의하고 실현해낼 수 있는 새로운 목표일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긴 여정에서는 경과적 조치라 볼 수 있지만 ‘가역적 핵포기국 북한’이 통일의 한쪽 주체일 때, 한반도 통일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다양하고 심도 깊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 이 기사는 월간 <민족21>과의 기사협약에 의해 <민족21> 2013년 2월호에 동시 게재됩니다.
(수정, 29일 0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