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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강성대국건설을 확정적으로 만든 해”
<2010 송년특집 ①> 경공업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난 북한
2010년 12월 17일 (금) 17:13:33 이계환 기자 khlee@tongilnews.com

201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올해도 2,3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정세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답보되거나 후퇴했습니다. 한반도에서 3월에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났으며 11월에는 남북이 연평도에서 포격전을 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두 사건이 한반도 정세를 무겁게 짓누른 한 해였습니다. 남북 당국간 및 민간 교류는 꽉 막혔습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가 미국에게 유인책이 될지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2010년 송년특집>으로 ①북한내부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민간교류 ⑤통일운동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2010년은 북한에 있어 2012년 강성대국건설을 향한 노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북한의 <노동신문>은 12월 8일자에서 ‘강성대국건설은 확정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힘 있게 선언한 2010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2010년은 강성대국건설을 확정적으로 만든 해’라는 것이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2010년을 “혁명적 대고조의 자랑찬 승리와 성과에 토대하여 인민생활 향상에 전당적, 전국가적인 힘을 집중하여야 할 총공세의 해”로 규정하고, 경공업과 농업을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의 주공전선으로 설정했다. 이와 관련 12월에 들어서자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한 해를 평가하면서 북한에서 인민생활과 직결되는 경공업 분야에서 지난 시기와 달리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올해 북한에 대한 평가는 인민생활 향상과 관련한 경공업 분야에서의 성과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내적으로는 제3차 당대표자회를 개최해 당조직을 체계화하면서 특히 후계 구도를 가시화한 것과 대외적으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두 차례나 방문해 후진타오 중국국가 주석과 회담을 한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민생활 향상과 직결되는 경공업 분야에서의 성과

북한이 총노선으로 강성대국건설을 설정한 뒤 남은 과제로 경제강국건설이라고 하면서 경제부문에 큰 힘을 쏟아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터넷 <조선통신>에 공개돼 있는 ‘2010년 김정일 총비서 관련 보도’를 보면 12월 15일 현재 ‘경제 분야’가 65차례로, ‘군 분야’ 31차례보다 두 배 이상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 비슷한 기간의 경우 경제 58회, 군 43회와 비교해 볼 때, 경제 분야 비율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김 위원장이 올해 군보다는 경제를 더 챙겼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재일 <조선신보>는 12월 9일자 ‘조선의 주체노선과 벼랑끝론의 허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이 2012년에 ‘(강성대국)대문’을 열기 위한 관건적 고리는 경제의 부흥, 인민생활의 향상”이라면서 “그 담보는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에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자립적 민족경제로 열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올해 자립적 민족경제의 하나로 김책제철연합기업소(김철)가 이룬 주체철 생산체계를 들었다. 지난해 성진제강연합기업소에서 주체철 생산체계를 완성한데 이어 올해 북한 내 최대 야금기지인 김철이 비콕스제철법에 완전성공하고 북한 내 무진장한 갈탄을 100% 이용하는 생산체계를 확립하였다는 것이다. 북한 언론들은 이를 두고 “야금공업에서의 일대 혁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황해제철연합기업소와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에서도 강철 생산이 늘어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의 이 같은 주체철 생산공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체철 외에도 주체섬유와 주체비료를 들 수 있다. 주체섬유의 경우, 북한은 지난 2월 “16년간 생산의 동음을 멈추었던 2.8비날론연합기업소의 현대화가 완료되어 조선에 무진장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가지고 ‘주체섬유’-비날론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졌다”면서 “이후 각지 방직공장들에서는 비날론에 의한 천제품생산에 들어갔다”고 알렸다. 김정일 위원장은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현대적인 대화학기지로 전변된 것은 “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며 사회주의의 대승리”라고 말했으며,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월 8일 “우리나라 비날론 공업이 강성대국의 휘황한 미래를 앞당겼다”고 평할 정도였다.

주체비료의 경우, 북한 언론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서는 대규모 무연탄가스화공정이 새로 꾸려져 각지 농장에 보내주는 화학비료를 원료, 연료의 수입 없이 안정적으로 생산, 보장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면서, 또 하나의 비료생산기지인 “흥남비료연합기업소에서 추진되고 있는 현대화공사가 완료되게 되면 국내수요를 기본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고 알렸다.

이와 관련 북한은 지난해부터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석탄 가스화 시설을 전면 가동하는 2012년에 비료 100만t을 생산해 비료문제를 자체 해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질소비료 1t을 쓰게 되면 쌀이 10t 나온다”는 ‘1:10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첫 해인 2012년에 ‘비료 100만t 이상’이 나오기에 ‘알곡생산 1,000만t 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건설을 굳이 북한식 지표로 표현하면 북한의 사회주의가 가장 발전했을 때인 1980년대 말에 이룩한 최고생산실적을 초과달성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조선중앙연감> 1989년~91년판에 의하면 1987년 북한의 알곡 생산실적은 1,000만t이었다.

이 같은 주체철과 주체섬유, 주체비료의 생산에 힘입어 인민생활 향상과 직결되는 경공업 분야에서도 증산이 일어났다. 올해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삼일포특산물공장이 정상가동한 것과 아울러 각 도에 ‘삼일포’식 공장이 세워진 것이다. 재일 <조선신보>의 한 필자는 2월에 방북기를 통해 “경공업발전의 상징의 하나인 삼일포특산물공장을 참관했다”면서 “막걸리, 국수, 가루, 콩류, 산나물, 과자, 사탕, 엿, 쌀제품, 기름, 차 등 100% 국내의 재료로 만든 350여 가지 제품들을 이번에 다시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발전된 나라의 가공식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분위기를 잡은 바 있다. 이어 언론은 지난해 4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삼일포특산물공장을 현지지도하신 때로부터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각 도마다에 지방의 원료로 식료품을 생산하는 ‘삼일포’식 종합식료공장이 일떠섰다”면서 알렸다.

그리하여 북한 언론들은 올해 ‘인민생활 향상’에 기여한 경공업공장들로 함흥모방직공장과 평양양말공장을 비롯해 평양곡산공장, 대동강식료공장, 경련애국사이다공장,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 강계기초식품공장, 회령식료가공공장, 백운산종합식료공장, 장강식료공장, 삼지연장공장, 삭주식료공장, 만포방사공장, 창성직물공장, 창성종이공장, 평양화장품공장, 함흥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 평양일용품공장 등을 열거하고는, 이들 경공업공장들이 “인민소비품 생산에서 계속 혁신을 창조해가고 있다”고 알렸다.

위에서 말한 여러 공장, 기업소들에서의 생산실적과 관련한 자료가 없어 정확한 분석을 하기는 어렵지만, 참고로 <조선중앙통신> 12월 13일발에 따르면 올해 북한의 금속공업부문 성과와 관련해 “금속공업성적인 공업총생산액은 11월말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여 1.3배로 늘어났다”면서 “중요지표들인 선철은 2.4배, 강철은 1.3배, 압연강재는 1.6배, 철광석은 1.6배로 생산이 장성되었다”고 알린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이 밝힌 이들 성과들에 근거해 북한식의 식의주(食衣住)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식(食)은 주체비료가 폭포치며 쏟아져 나옴에 따라 알곡생산이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아울러 각 도마다 세워진 ‘삼일포’식 종합식료공장으로 해결되며, 의(衣)는 꽝꽝 쏟아져 나오는 주체섬유 비날론에 의해 해결되며, 그리고 주(住)는 현재 2012년의 완공을 목표로 10만 세대 살림집건설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으며, 이 10만 세대 살림집이 건설되면 평양시민들의 주택문제가 완전히 풀린다는 것이다.

한편, 최첨단 돌파전의 성과로 련하기계의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컴퓨터 수치 제어)기술 성과를 빼놓을 수 없다. 북한에선 ‘첨단을 돌파하라’라는 구호 아래 련하기계의 CNC설비 생산과 보급을 “인공지구위성을 연이어 쏴 올린 것과 같은 큰 승리”라고 평가할 정도다. 북한은 최근 2012년 강성대국건설을 향한 산학합동연구들의 성과가 각 공장, 기업소들에서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 CNC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알린 바 있다.

당 대표자회와 후계구도 가시화

북한은 9월 28일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당 총비서 재추대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선임 △당 핵심요직 선출에 따른 노동당의 재정비 △공산주의 삭제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명시화라는 당 규약 개정 등을 이뤘다.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 총비서로 재추대된 데 이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그리고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추대돼 최고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수행하게 됐다.

아울러 노동당을 재정비했다.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등을 선출한 후, 이들이 별도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2010년 9월전원회의’를 개최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당 중앙군사위원회 △당 중앙위원회 부장 등의 당 핵심요직을 선출했다.

당 규약도 개정했다. 당 규약에서 당면 목적이 현실에 맞게 수정되고 최종 목적에서 ‘공산주의’ 문구가 빠진 것이다. 즉 당면 목적이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수정됐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 건설’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으로 바꿔졌다. 이로써 북한은 ‘파악이 안 되는’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현실적 노선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런데 당 대표자회 과정에서 부각된 것은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후계구도 가시화다. 김정은은 당 대표자회 개최 하루 전인 27일에 전격적으로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받았고,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 위원으로 선임됨으로서 최고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어 김정은 부위원장은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65주년 열병식 주석단에 등장했다. 이로써 외부세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을 사실상 후계자로 받아들였다. 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백두의 혈통’이 세워졌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김정은 후계구도를 예상보다 빠르게 공개화한 것과 아울러 속성으로 권력을 승계하는 이유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북한의 경제 사정 때문이거나 또는 외부에서의 ‘3대 세습’ 흔들기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라는 평가가 있다. 아무튼 북한은 후계 구도를 정식화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취하면서 강성대국건설로 매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한미 외면한 두 차례 중국 방문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두 차례나 방문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북설은 연초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1월이 지나고 2,3월이 흘러 잠잠해질 때쯤 김 위원장의 1차 방중(5월3일-7일)이 보도되었다. 이어 두 번째 방중(8월26일-30일)은 더 극적이었다. 1년에 두 번씩, 그것도 3개월여 만에 다시 방중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1차 방중은 북미관계 및 6자회담이 답보상태에 있고 무엇보다도 남북관계가 ‘천안함 사태’로 극도로 대립해 있을 때 이뤄졌다. 따라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양국의 주요 의제로 6자회담과 천안함을 점쳤다. 그런데 북중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문제는 아예 거론도 되지 않았고, 6자회담 문제도 원칙적인 수준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 이유는 북중 간에는 6자회담이나 천안함 문제보다 더 긴요한 현안이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양국의 관계강화와 경제협력, 그리고 새로운 관계로의 발전문제였다.

김정일 위원장의 2차 방중은 지난 5월 1차 방중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의 동선이 중국의 동북지역인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에 머무르면서 김 주석의 항일운동 지역을 찾음으로써 ‘혁명성지’ 순례를 했고, 중국 동북진흥계획의 핵심사업인 이른바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지역을 순회함으로써 중국의 창지투 개발지역과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와의 경제결합을 연상시켰다. 혁명성지 순례와 경제개발지역 순회. 이는 북한이 ‘혁명과 건설’을 자체 힘으로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의 두 차례 방중에서 볼 때 공통점은 미국과 남한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6자회담이나 남북관계 개선과 관계된 의미 있는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오히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을 향해 반격을 취했다. 즉, 한미동맹에 대한 북중동맹의 강화이자, 남북경협에 대한 북중경협의 대체로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2차 방중에서 두드러진 점은 김 위원장이 ‘혁명성지’를 순례한 것이다. 이는 다음 달인 9월에 개최된 당 대표자회와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원려라고 볼 수 있다.

강성대국건설과 대북 제재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건설을 내걸었다. 그때까지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미국과는 평화 분위기 속에서 남한과는 교류협력을 하면서 각각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진행하면 좋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표시해 왔다.

재일 <조선신보>는 12월 9일자에서 ‘2012년 강성대국 구상’이 자립적 민족경제의 잠재력을 강화하여온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 등 북한의 내적 요인에 의해 설정된 것이라고 알려 미국 등의 대북 제재나 6자회담의 유무 등 대외적 환경의 변화추이와 연계되어있지 않음을 밝혔다.

지금과 같은 형국으로는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일정 기간 미국 등의 대북 제재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건설이 대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국제사회는 대북 제재가 북한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2012년이 1,2년 남았다. 올해를 “강성대국건설을 확정적으로 만든 해”로 규정한 북한이 2011년을 거쳐 2012년에 어떤 내용으로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