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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정치군사 문제와 경협.교류 분리 대응
<해설> 정부 '차분한 대응' 불구 서해상 '국지전' 배제 못해
2009년 01월 30일 (금) 15:06:56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30일 성명을 통해 남북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을 무효화 하고, 남북기본합의서 상의 서해해상 군사경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이명박 정부 들어서 경색되기 시작한 남북관계가 언제든지 서해 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이같은 북측의 강경 입장은 이미 지난 17일 북 군부가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선언한 이후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남북간 기존 합의사항들까지 소급해 모두 무효화 한 것은 예상보다 수위가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1.30 성명’이 밝힌 몇 가지 이유

북측이 이처럼 강경한 성명을 발표하게 된 경과는 여러 차례의 북측의 성명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다. 가깝게는 북 군부의 지난해 12.1 육로통행 제한 조치 및 개성공단 상주인원 감축 조치와 지난 17일 전면 대결태세 진입 및 서해해상분계선 고수 선언 등이 있다.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이후 19일자 <노동신문>은 “우리는 빈말을 모른다”며 “이명박 패당은 우리의 엄숙한 경고를 똑바로 새겨듣고 분별없이 날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채로운 것은 지난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반도 정세의 긴장상태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점이다. 당시도 이에 대한 해석이 구구했지만 결국 김 위원장의 발언은 주로 대미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남측에 대한 경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이번 성명에서 남북간 합의사항을 무효화를 선언하게 된 이유를 직접 밝히고 있다.

성명은 “이제 북남관계는 더이상 수습할 방법도, 바로잡을 희망도 없게 되었다”며 그 근거로 남측의 군사적 경계태세 강화와 더불어 통일부 장관에 현인택을 내정한 것을 들고 있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비핵, 개방, 3000’을 철회하기는커녕 그 대결각본을 고안해낸 악질분자를 ‘통일부’의 수장자리에까지 올려앉힌 것은 우리와 끝까지 엇서나가겠다는 것을 세계면전에 선언한 것”이라는 평가가 눈에 띈다.

특히 “우리의 존엄높은 체제를 모독하였다”, “우리 인민의 최고존엄을 함부로 헐뜯고...”라고 성명에서 표현한 대목이 북측으로서 가장 결정적인 사유일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발언이나 남측에서 무성하게 떠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후계설, 급변사태설 등을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없다는 점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성명은 “이 모든 반공화국 대결광란의 앞장에는 이명박 역도가 서있다”며 “이명박은 앞에서는 ‘대화’와 ‘협력’을 부르짖고 뒤에서는 ‘대화재개 자체가 목표로 되여서는 안 된다’, ‘협력이나 해서 남북관계가 개선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줴치고 있는가 하면 그 누구의 ‘태도변화’를 운운하며 저들 족속들에게 ‘장기적 관점’에서 북에 ‘대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전략’을 연구하라고 고아대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결국 “역적패당에 의해 지난 시기 북남사이에 채택된 모든 합의들은 이미 사문화되고 백지화되었다”며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만이 과거 북남합의들에 구속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는 것이 최종 결론이다.

당국자 “대북정책 고쳐달라는 것... 대화 분위기 아니다”

조평통 ‘1.30 성명’에 대해 남측은 일단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NLL(서해상 북방한계선) 준수 입장을 밝혔으며,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날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남쪽에 대해서 우리 대북 정책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고쳐달라는 것 같고, 미국도 6자 회담도 있지만 양자회담을 많이 해야 되니까 이슈화 시켜서 관심을 일으키려고 한 것 같다”고 배경을 분석하고 “북한 신문에도 나오니까 내부용으로도 쓸 수 있는 다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서해상 충돌 가능성에 대해 “당장은 없다. 꽃게철이나 되어야”라며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라고 축소 해석했다.

또한 ‘북측에 대화를 제의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분위기가 대화할 분위기가 아니잖느냐”고 반문했으며, “지금 상황이 물밑 접촉해서 될 상황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한 관계자는 "당장 대북정책을 바꿀 수도 없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지켜본다는 것은 사실상 무대책이다"고 평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10.4선언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그런 것을 남쪽에서 부정하니까, 계속 대결적 자세를 늦추지 않는다고 북측이 보기 때문에 상당한 반격을 가해오는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북측의 입장에서는 서해상에서 돌발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자신들이 짜놓은 판에서 상황을 관리하고 싶어할 것이며, 이같은 맥락에서 북측으로서는 짐이 될 수도 있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의 서해해상 경계선에 대한 잠정합의 등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먼저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6.15, 10.4선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느닷없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들고나온 점도 북측으로서는 못마땅했을 것이다.

북, 정치군사 문제와 경협.민간교류 분리 대응

정부의 ‘차분한 대응’ 입장에도 불구하고 서해 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임동원 전 장관은 “남북이 서로 자제하지 않으면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으며, 한 전문가는 “서해상에서의 국지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남북 함정간의 총격 뿐만 아니라 남측의 이지스함이 동원되고 북측의 미사일이 발사되는 등 국지전 수준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서해상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낮게 보며 “북한한테도 마이너스”라며 “북한이 미국과, 중국과 같이 살아야 한다. 말로 협박하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합의사항 만을 무효화 한데 주목해야 한다”며 “민간교류와 경제협력 등은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6.15북측위)는 6.15남측위 실무협의 대표단을 오는 2월 7-10일 평양으로 초청하는 등 다양한 민간교류가 차질없이 진행 중이며, 개성공단 사업도 12.1조치로 제한을 받고 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추진되고 있다.

결국 북한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분리대응하고 남북관계 중에서도 남북 당국간 정치군사적 문제와 경협, 민간교류를 분리대응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남북 당국간 정치군사적 긴장이 높아가면 경협과 민간교류 역시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반도 정세의 긴장상태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표명과 ‘1.30 성명’의 입장이 대치되는 것 아니냐며 북 군부의 득세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국제사회를 향한 대외용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