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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첫 해, 6.15 이전으로 남북관계 역주행
<2008년 송년특집> ③ 남북관계
2008년 12월 17일 (수) 22:14:39 박현범 기자 cooldog893@tongilnews.com

늘 그랬듯이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속에서 미국에서는 오바마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북미관계에서는 양국이 우여곡절을 겪다가 10월에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뤄지더니 막판인 12월 6자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으며, 남북관계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아무런 교류 협력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통일뉴스는 <2008년 송년특집>으로 ①국제정세,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 ④한미관계 ⑤북한내부 ⑥민간통일운동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비핵.개방.3000, 김영삼, 통미봉남, 부시, ABC(Anything But Clinton)
6.15 10.4선언, 금강산 관광객 피격, 건강이상설, 5029, 삐라
12.1조치, 식량지원, 북한인권, 한반도 안보리스크......


올해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서의 남북관계 키워드다.

몇 개의 단어를 늘어놓기만 해도 쉽게 확인되듯 10년만의 정권교체 후 남북은 10개월 동안 평행선을 달렸다.

올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정부가 명칭을 확정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은 그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은 물론 남측 내부에서도 강한 비판에 시달렸던 '비핵.개방.3000' 구상에 '상생과 공영'이라는 모자를 씌웠지만, 반발은 여전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을 앞세워 당선됐지만, 남북관계가 엉망인 만큼 한반도 안보리스크 관리도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국내 경제침체 공포 속에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논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YS, ABC정책, 통미봉남...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과 난데없는 '삐라소동'까지 올해 남북관계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2000년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올해의 남북관계를 키워드로 살펴봤다.

키워드 : YS, ABC

   
▲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발표 이전으로 회귀한 듯 하다. 정부 출범 10개월만에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통일뉴스 자료사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YS정부이다.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강경한 선핵폐기론으로 남북관계 단절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에서 '주변인'으로 물러나고 '경수로 계산서'만 떠안았던 김영삼 정부.

북한 전문가들이 점친 이명박 정부 출범에 따른 남북관계 예상 시나리오 순위 1번에 등재됐던 'YS꼴'은 10개월이 지난 지금 현실화 하고 있다는 평이 많다. 'YS꼴'의 시작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3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입에서 시작됐다.

"북핵문제가 계속 타결되지 않고 문제가 남는다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3월 19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간담회)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YS정부의 기조와 궤을 같이 하는 김 장관의 발언에 북한은 곧바로 반응했다. 개성 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남측 당국자 11명을 쫓아내 버린 것. 대선 때부터 정부 출범 때까지 줄곧 관망세를 유지하던 북한이 행동전에 들어간 것이다.

'선핵폐기론' 문제로 인한 남북의 갈등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본격 점화됐다.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핵을 이고 우리가 통일하기가 힘들고 본격적 경제협력하기 힘들다"고 말하자, 북한은 처음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기 시작한 4월 1일 <노동신문>을 통해 "리명박은 핵소동에 더욱더 매달리면서 《핵을 이고 통일로 나갈수 없고 남북관계도 힘들다》는 망발까지 서슴없이 줴치고있다. 이것은 이전 김영삼역도가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떠벌인것을 신통히 방불케 하고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YS정부 때와 같이 '선핵폐기론' 문제로 인한 남북관계 단절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YS꼴'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통미봉남'이다.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만 상대한다'는 통미봉남이란 말을 파생시킨 장본인 YS정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YS정부 때처럼 북한이 '통미봉남' 전략을 현실화 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정부는 이같은 우려를 '공고한 한.미동맹으로 통미봉남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한국이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놓지 않는 이상 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이나 국제 외교무대에 들이밀 카드가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현 정부의 이같은 기조가 내년에도 유지된다면, 한국은 정부의 말처럼 '공고한 한.미동맹'을 위해 '오바마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신세로 전락될 수 있다. 아울러 대북강경책으로 클린턴 행정부와 서걱거렸던 김영삼 정부 시절 '어긋난 한.미관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영삼 정부 못지않게 미국 부시 행정부와도 비견됐다.

1기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모든 정책을 배제했던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을 취했던 것처럼 이명박 정부 역시 참여정부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듯한 ABR(Anything But Roh)식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ABR정책은 6.15, 10.4선언과도 깊이 연계돼 현 남북관계 단절의 근본원인으로 이어진다.

키워드 : 6.15, 10.4, 비핵.개방.3000

북한이 경제협력협의사무소 철수시한으로 통보한 3월 26일 아침 진행된 통일부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기본 남북 간 정신은 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뜬금없이 남북기본합의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통일부가 제출한 업무보고서에는 10.4선언에 담겨 있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나 조선협력단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사업 등이 모두 빠졌고, 대신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나들섬 구상'이 12대 과제 중 하나로 중요하게 다뤄졌다.

이렇게 'ABR정책'에 초록불이 들어오자 남북관계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1달여 동안 이명박 정부를 주시해 온 북한은 정부가 6.15, 10.4선언을 존중하지 않고, 선핵폐기론 기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한다.

4월 1일자 <노동신문>은 '론평원' 명의로 '남조선당국의 반북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명박과 그 패당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떠들면서 '한미관계우선'이니, '북핵문제 완전해결'이니, '실용주의'니 하는 궤변을 내들고 6.15이후 북남사이에 이룩된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으려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리명박 역도'라는 표현까지 쓰며 남측에 분명한 선을 그은 북측은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해서도 "우리의 '핵완전포기'와 '개방'을 북남관계 전제조건으로 내건 극히 황당무계하고 주제넘은 넋두리로서 민족의 이익을 외세에 팔아먹고 대결과 전쟁을 추구하며 북남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반통일선언"으로 규정했다.

   
▲ 정부는 7월 31일 대북정책의 공식명칭을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으로 확정지었지만, '비핵.개방.3000 구상에 모자를 씌웠다' 등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한 비난이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 사진은 정부가 배포한 홍보자료.[통일뉴스 자료사진]

이후 정부는 '6.15, 10.4선언을 부정한 적이 없다'면서 북한에 거듭 대화제의를 요구했지만, 두 선언에 대한 명확한 이행.존중의 의사를 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비정상적인 체제다"(서재진 통일연구원장) 등 정부 안팎에서 '돌출발언'들만 난무해 대화제의의 진의를 의심 받았다.

정부는 7월 31일 대북정책의 공식명칭을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으로 확정하고, 내외의 비판에 직면해 있던 비핵.개방.3000 구상을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수단격으로 위상을 격하시키는 등 '이미지 관리'에 나섰지만, "비핵.개방.3000에 모자를 씌운 것"이라는 말이 정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공공연히 흘러나와 이 구상에 대한 비난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6.15, 10.4선언에 대한 명확한 이행.존중 의사를 펴지 않는 등 ABC정책으로 일관함에 따라 올해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발표 이전으로 되돌아 간 모양새다. 이는 그간 진행돼 온 각급 회담의 횟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그 여파로 남북관계도 얼어붙었던 2001년(8회)을 제외하고,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 각급 회담이 27회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후 두 정부를 거치는 7년 동안 남북간 회담은 매년 20-30회가 진행됐다.

특히 2차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지난해에는 55회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회담 기록을 보이고 있다. 남북간 회담이 가장 많았던 해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어 낸 1992년(88회)이다.

반면, 올해 진행된 남북회담은 총 6회로 이중 5회가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한 2월 25일 이전에 이뤄진 것이고, 이후에 진행된 남북간 회담은 지난 10월 2일 제37차 남북군사실무회담이 유일하다.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부 출범 이후 연간 남북간 회담 횟수 중 최저치다.

키워드 : 금강산관광객, 건강이상설, 삐라, 12.1조치

7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남북 대화를 전격 제의하고 나섰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터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이 사건으로 정부가 잠정 중단시킨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금강산 관광이 역대 최장기간 중단상태에 있고, 한 때 민간단체의 대규모 방북에도 제동이 걸렸었다.

금강산 사건을 두고 남북관계가 공회전을 거듭하는 사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로 남북관계는 또 한 번 요동친다.

남측 보수진영은 건강이상설을 계기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했고, 이는 건강이상설과 함께 북한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특히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청와대 등 정부쪽 핵심인사들의 입을 통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이 흘러나와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건강이상설 등으로 북한 당국의 기류가 냉랭해져 있는 터에 일부 보수단체들의 대북전단(삐라) 살포는 '불 위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10월 2일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북한은 "전단 살포행위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사업과 개성관광에 엄중한 후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남측의 '6.15, 10.4선언 불이행'과 '대북 강경책'을 문제시한 북측은 육로통행 엄격 제한.차단, 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내 상근자 감축 등을 담은 '12.1조치'를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10개월만에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금강산.개성관광이 문을 닫았고, 56년 만에 이어진 철길도(문산-봉동간 화물열차)도 다시 끊겼다. 남북간 경협의 상징물인 개성공단도 이 여파로 추동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언제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단 전체를 뒤덮고 있다.

   
▲ 일부 보수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 문제는 여전히 남북관계의 '화약고'다. 지난달 2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자유의 다리 앞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탈북자가족모임 회원들이 북한으로 전단지를 살포하고 있다.[통일뉴스 자료사진]


키워드 : 식량지원, 북한인권

'인도주의적 지원에는 조건을 달지 않겠다'는 현 정부에서 식량지원은 단 한 톨도 진행되지 못했다. 북 식량난에 대해 일각에선 '고난의 행군' 때와 견주고, 세계식량기구(WFP) 등 국제기구는 남측의 조속한 식량지원을 연거푸 주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끝내 식량지원을 하지 않았다.

반면, 정부는 남북관계에서의 가장 민감한 문제 중 하나인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가담해 남북관계를 더욱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유엔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고, 한나라당은 북한인권증진법안 등을 발의했다. 정부의 이같은 기조에 맞춘 일부 보수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살포 문제도 여전히 남북관계에서의 '화약고'이다.

2009 키워드는?

2009년을 내다보는 지금 남북관계의 키워드는 다시 6.15, 10.4선언이다.

'12.1조치'로 강한 대남 압박정책을 취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요구는 한결 같다. 북한은 '12.1조치'를 경고한 11월 12일 전화통지문에서 "역사적인 두 선언에 대한 남조선괴뢰당국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가 최종적으로 확인되였다"며 "지금 이러한 입장과 태도는 선언에 따른 모든 북남합의를 노골적으로 파기하는 엄중한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 당국이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두 선언을 부정한 적이 없다'는 식으로는 공식.비공식 대화채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풀기가 요원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현재의 남북관계 위기는 이 대통령의 결단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그러나 정부의 상황인식은 다르다. 정부는 현 남북관계의 위기를 정부 출범 초창기 겪게 되는 의례적인 '조정기', '성장통'으로 바라보며 '선 북한 변화'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김영삼 정부의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김대중 정부도 1998-1999년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위해 특사교환을 재개하고 필요하다면 김정일 총비서와의 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한다"(1997.12.19,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교환을 제의하며 북한이 원한다면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다"(1998.2.25, 대통령 취임사) 등 거듭 북한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햇볕정책'이 북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쉽게 풀지 못했다.

실제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과 1999년의 남북간 회담 수가 각각 5회와 8회에 머물었던 점은 당시의 남북관계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2000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도쿄(東京)방송과의 회견에서 "남북문제를 풀어가려면 김정일 총비서와의 대화 외에 다른 길이 없으며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대화에 대한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또 그 해 3월, 한반도에서의 냉전 종식과 평화 공존, 남북 대화와 경협을 적극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힌 '베를린 선언'을 통해 드디어 6월 정상회담의 첫 단추를 꿰기 시작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4월 방미기간 중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상주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하거나, 7월 국회 개원연설에서 공식 대화 제의를 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아직도 북한에 '대화의 진정성'을 전달하고 있지 못하다. 이 대통령 자신은 물론 정부 수장들이 북한이 적대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최근 발언만 보더라도 "기다리는 것도 전략",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궁극적 목표", "남북관계 책임은 북한" 등 대화의 진정성은커녕 최소한의 상황관리를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2000년과 지금이 크게 다른 점은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전 정부가 떠넘긴 유산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올해 이명박 정부는 반대로 전 정부가 남긴 유산을 거부해서 불필요한 냉각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조정기'가 아닌 '파탄기'라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접점을 찾기 위한 운신의 폭이 이전 정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만큼, 내년도 남북관계 기상도도 흐리다. 6.15, 10.4선언에 대한 남북간 접점이 형성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해빙기는 당분간 맞이하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