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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VS 대화’…대북정책, 선택의 기로에 선 박근혜

‘제재’ 무게실은 박근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포기? 주도권 상실 우려도

최명규 기자 acrow@vop.co.kr
입력 2013-02-12 20:54:16l수정 2013-02-13 01:06:15
북한 핵실험 강행 관련 보고 받는 박근혜 당선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인 접견실에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윤병세 인수위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 등 관계자들에게 북한의 3차 핵실험 관련 보고를 받고 있다.ⓒ인수위사진기자단



북한이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정책은 '제재'와 '대화'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박 당선인이 내세웠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임기가 시작되하기도 전에 날선 시험대에 올랐다. 

박 당선인은 지난 대선공약에서 북핵에 대한 '억지력'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남북한 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협의 추진 △6자회담에 새로운 동력 주입 위해 노력 등을 거론하며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를 내세우면서 비핵화 진전을 통한 정치·군사적 신뢰구축과 사회·경제적 교류협력의 상호 보완적인 발전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대화채널 상시 개설 및 정상회담 개최 △정치적 상황과 구분한 인도적 지원도 포함됐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북 로켓 발사와 이에 따른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087호 채택, 이번의 북한 3차 핵실험까지 이어지는 상황에 직면한 박 당선인은 정책 기조를 '대화'보다는 '제재'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박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 분과 김장수 간사로부터 긴급 보고를 받은 뒤 조윤선 대변인을 통해 북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하며 "새 정부는 강력한 억제력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새 정부가 추구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우리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북한이 성의 있고 진지한 자세를 보여야 함께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7일 여야대표와의 3자 회동에서도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의 '대북 특사' 제안에 대해 특별한 언급 없이 듣고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책협의단 단장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이한구 원내대표는 귀국 후 12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관련해 "북한 도발에 대해선 단호히 대응해 나가는 것으로 유화정책만은 아니라는 것에서 미국 측 이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강력한 대응'에 방점을 찍은 것은 지난 4일 박 당선인이 이 원내대표를 만나 주문한 사항이기도 하다. 

이처럼 박 당선인은 대화의 수단은 배제하면서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 포위망을 형성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에 대해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서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 제재, 한반도 문제를 美·中관계 종속변수로 전락시켜…박근혜 정부 역할 중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우리 독립 공간 만드는 것…포기하면 MB 정부 반복"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지금까지 제재 압박을 했을 경우 더 강도 높은 맞대응을 해 왔다"며 "제재나 압박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제재와 압박이 진행되면 북핵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는 미·중 관계의 종속 변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당사자인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주도자가 아닌 이방인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한국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대북 정책은 동맹국 한국의 기조를 존중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화해협력 정책을 펼친다면 미국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히 케리 국무장관과 헤이글 국방장관 내정자가 대화주의자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과 교류협력을 핵심 대북정책 과제로 한다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좀 더 효과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유엔 제재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겠지만, 한편으로는 남북간의 대화를 추진하는 '투트랙'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자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 제재를 강력하게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며 "제재를 강화하면 북은 더욱 핵과 미사일 로켓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위원은 또한 "북한은 (핵 문제를)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중국도 큰 행위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근본적으로 우리가 직접 통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인 북핵 문제를 남북 관계와 연결시키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완전히 포기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핵과는 관계없는 남북간의 독립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인데,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포기하면 5년 후에 박근혜 정부에게 남는 것은 더 강화된 북핵 문제나 미사일·로켓 능력, 그리고 군사충돌 위험 등 악화된 남북관계일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에서 겪었던 상황을 반복할 것이냐 말 것이냐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통합당은 북 핵실험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화'를 주문하고 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박 당선인에게 "북한의 핵 도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 달라. 지금 이 시점이 역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 막힌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대북 특사파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 주기를 거듭 당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