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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대북지원, 1999년 이전으로 역주행
정부, '개발'에서 '긴급구호'로... 민간단체 '줄세우기'
2010년 01월 04일 (월) 05:22:30 박현범 기자 http://onecorea615.cafe24.com/xe/tongilnews/mailto.html?mail=cooldog893@tongilnews.com
'역량을 갖춘 민간단체에 집중해 북한 취약계층에 순수 인도적 물자를 중점 지원'

정부가 세운 2010년 민간단체들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 방침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4, 5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이유로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긴급 구호성 사업만 지원해 온 정부 방침이 내년에도 계속된다. 특히 '역량을 갖춘 민간단체에 집중 지원'이란 새 조건이 달려 '단체 줄세우기'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통일부가 새해 업무보고를 통해 밝힌 이 방침은 '생산적 인도주의 실현'이란 전략목표 아래 '선택과 집중의 민간단체 지원'이라는 추진과제로 세워졌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3년차를 맞아,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방침에서 지난 두 정부 때와의 차별화를 본격화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 방침이 실제 '생산적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 강조되고 있는 '긴급구호에서 개발구호(지원)로'라는 명제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를 지렛대로 삼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정치적 이해관계와 분리돼야 할 '인도주의 정신'이 희석되고 있다.

◇1999년 이전으로 후퇴 =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일단 민간단체들의 사업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지난 두 정부서 매년 대규모 식량지원이 이뤄짐에 따라 민간단체들은 소규모 식량지원보다는 개발구호(지원) 사업 쪽으로 전환해 왔다. 정부 정책도 민간단체에 개발지원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짜여졌다. 때문에 대북사업을 오래 해 온 굵직한 단체들의 사업은 긴급구호성 지원보다는, 개발사업에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내년도 민간단체 지원 방침을 영유아.임산부.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해 질병예방.긴급구호 물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세움에 따라, 그간 집중해 왔던 개발성 사업들은 모두 손을 놓아야 할 처지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민간단체들이 소규모 지원을 하는 1999년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들 중 정부의 기금 지원 없이 현재의 대북 지원사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곳은 몇 안 된다고 한다.

사업의 대부분이 '개발지원'인 한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우리는 망한다. 손 털 수밖에 없다"며 "이제와서 북쪽에 빵공장, 콩우유 사업 하자고 얘기 못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자체 돈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몇 개 안 된다. 50%를 기금에서 받아야 한다"며 "내년 봄까지 가면 아마 13-14곳 정도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GIVE UP', 포기하는 거다"고 말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들이 모인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에 가입돼 있는 단체는 총 56개이다.

정부의 민간단체 지원은 2000년부터 단체가 모금한 금액에 일정 비율을 정부가 보조하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진행돼 왔는데, 대북지원사업자는 '인도적대북지원사업처리에관한규정'에 따라 연 1회에 한해 대북지원사업에 소요되는 전체 사업비의 50% 범위내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 현행 규정 '유명무실' = 정부가 올해 민간단체들의 반출과 방북에 제동을 걸 때 내세운 명분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개성공단 직원 억류에 따른 "신변안전" 문제였다. 병원에 들어가는 설비들에 대한 반출이 안 되는 것도 "기계를 다룰 인력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해명이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특정사유에 따른 일시적 조치'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를 내년 방침으로 '고착화' 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정해 놓은 규정을 어기는 것이 된다.

김대중 정부 출범 때인 1999년 제정된 '인도적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은 인도적 대북 지원 사업을 △이재민의 구호와 피해복구 지원 사업 △농업개발 지원사업 △보건위생 상태 개선 및 영양결핍 아동.노약자 등 지원사업 △산림복구 및 환경보전 지원사업 △기타 통일부장관이 인정하는 사업 등 다섯 가지로 규정해 놓고 있다.

또한 기금지원사업의 요건과 지원자금의 규모를 정해 놓은 제8조를 보면, △농업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사업 △보건, 의료 관련 사업 △사회복지분야 관련 사업 △북한 인력개발 지원 관련 사업 △북한의 자활.자립을 촉진하는 중장기적 개발지원관련 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기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부는 2007년부터 '개발지원 성격을 가지면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적 지원 필요성이 있는 사업'으로 규정한 정책사업에 대해선 기금을 전액 지원해 오기도 했다.

긴급구호성으로 제한하는 정부의 방침은 종전 개발사업에 '인센티브'를 주며 독려하는 정부 규정과 상치되는 것이다.

이같은 까닭에 '인도적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에 대한 개정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통일부 쪽은 "규정 개정보다 방침을 가지고 지원한다는 것"이라고 당장은 개정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지만, 정부가 정해 놓은 대북 인도적 지원의 개념과 상치되는 현행 방침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 대북지원단체도 눈엣가시? = 현행 '인도적차원의 대북지원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에서 대북지원사업의 요건으로 "남북한 왕래 등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수반하는 사업"을 정해놓은 것이 단적인 예로,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는 지난 정부의 '화해.협력'정책이 반영돼 있다.

대북지원사업자 지정제 도입으로 독자적 창구를 통해 지원사업을 벌인 민간단체들은 대북지원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기반 조성에도 긍정적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중반기에 접어들며 내놓은 민간단체에 대한 인도적 지원 방침대로라면, 단체들은 정부의 기금을 받기 위해 개발사업을 포기하고 긴급구호성 사업에만 줄을 서야 할 형편이다. "천장에서 비가 새는 병원"을 개보수해 주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소규모 쌀 지원보다 효과가 높다고 평가받는 농업기술 이전 사업도 손을 놓아야 한다.

이번 정부 방침은 10년간 진행된 민간단체들의 사업에서의 일부 문제점을 개선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북사업의 판을 뒤바꾸는 '정책적 전환'의 성격이 짙다. 더욱이 정부가 스스로 정해 놓은 규정과도 상치되지만, 두루뭉술한 목표만 있을 뿐 납득할 만한 정책적 설명은 뒤따르지 않고 있다.

"한정된 재원으로 효율적 지원을 위해 중점적으로 지원한다는 것", "역량 있는 단체 위주로 해서 하는 것이 지원도 체계적이고 북한과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 설명'이 고작이다.

정부는 '생산적 인도주의 실현'이라는 전략목표를 내세웠지만, '선택과 집중'에 직면한 민간진영에선 "현 정부는 모든 지원단체들이 지난 10년간의 친북좌파 대북정책의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한다", "지원단체들과 협력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