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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게 없는 북한 '장마당'... 입이 딱 벌어졌다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29] 라진 장마당, 그리고 외국어중학교
12.10.05 14:57l최종 업데이트 12.10.25 15:05l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라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첫날은 잠을 설쳤는데 어젯밤은 숙면을 취해서 그런지 아침을 맞는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게다가 오늘 일정에는 '장마당' 구경이 들어가 있어 흥분된다. 평양에 있는 장마당들이 훨씬 크고 볼거리도 많다지만, 평양에서는 장마당 구경이 관광객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라진-선봉에서의 장마당 구경이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무척 기대된다.

호텔 로비에 내려가니 문호영 안내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제보다 한층 더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는 걸 보니 틀림없이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는 듯. 문 안내원은 우리를 보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여자 친구인 모양인데 왜 그렇게 빨리 끊어요... 더 얘기 나누지."
"일 없습니다. 어제저녁에 여자친구가 저희 어머니를 뵈러 제집에 갔었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다 들었습니다."


"언제 결혼할 예정이에요?"
"당장에라도 하고 싶은데, 제가 곧 진급 시험을 쳐야 해서..."
"진급시험이라니요?"
"관광 안내원들도 단계별 승진을 위해 치르는 시험이 있는데, 공부가 준비되면 평양에 올라가 시험을 쳐야 돼요. 그리고 시험에 통과하면 한 급 올라가는 겁니다."


'시험과목은 무엇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외국어와 국사, 세계사 등이 있단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평양에 갔을 때 설경이도 시험공부를 한다며 영어로 돼 있는 잡지를 읽고 있었다. 아마 시험 준비를 했나 보다. 설경이는 여행사에 근무한 지 5년이 됐으니 아마 꽤 높은 급수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시험 준비뿐만 아니라 여자친구도 전공할 과를 정하기 위해서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둘 다 그 과정이 끝나면 식을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문호영 안내원의 얼굴은 희망에 부풀어서 그런지 훤한 낯빛을 띠고 있다. 우리는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장마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묻는다.

국가도 신경 쓰지 않았던 장마당, 최근에 커졌다

라진시내 풍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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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생겼나?"
"장마당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니 규모도 아주 작았습니다. 인민들도 '충분히 배급 주는데 뭐가 더 필요하다고 장마당까지 가서 물건을 사느냐'며 장마당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또 국가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 장마당은 저절로 없어질 테니까요.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규모가 커지게 된 겁니다."

"규모가 커졌다면, 동시에 배급이 그만큼 안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요즘은 기업소마다 스스로 해결해야지 예전처럼 국가가 무조건 다 챙겨주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도 이익금의 30%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로 봉급 주고 농산품 등을 구입해 자체 배급하곤 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장마당을 리용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된 지 꽤 됐습니다."
"여기 장마당은 큰가?"
"글쎄요... 어느 정도를 크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저 하루에 이용객이 만 명
정도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여기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 이용객이 1만 명이라면, 1주일에 7만 명이 이용한다는 것과 같다. 1주일에 장을 한 번만 본다고 가정하고, 한 가구당 식구를 네 명이라고 했을 때 라진의 장마당은 28만 명에게 생활필수품을 공급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순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장마당의 대부분은 상인들이 양동이에 물건을 담아 길거리에 쭉 늘어앉아 팔고 있는 곳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빈민굴 같은 모습이었는데 하루에 1만 명을 수용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장마당으로 향했다. 문호영 안내원이 다시 한 번 주의를 준다. 하도 친절하게 이야기하길래 주의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까웠다.

"저... 선생님, 그리고 여사님. 사진은...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찍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카메라를 아예 놓고 갈까요?"
"에이,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가셔도 되는데 사진만은 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안 찍을 테니까."
"아이고, 고맙습니다."


초라해 보이는 골목 시장... 이게 전부가 아니었네

우리를 태운 승합차가 장마당 입구인 듯한 곳에서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는 자동차가 못 들어가게 돼 있단다. 장마당 입구는 내가 인터넷에서 본 것과 아주 흡사했다. 다만 규모가 훨씬 크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또, 물건이 담겨 있는 양동이는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어떻게 저걸 머리에 이고 나왔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 규모의 장마당이 하루에 1만 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 같았다. 나는 문 안내원에게 물었다.

"이 시장을 하루에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용한단 말인가요?"
"네. 어떤 때는 만 명도 더 된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골목에 만 명을 수용한단 말이에요?"

"아, 여기는 그저 입구입니다. 사실은 여기는 시장이 아니고 길거리입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실내와 실외로 구분돼 있는 시장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려면 자릿세를 내야 해서 돈을 내기 싫은 사람들이 이곳 길거리에다가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파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본 이 골목이 시장의 전부였다면 무척 가슴 아픈 일이 될 테니까.

입구서부터 북적북적한 것이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장마당 입구 도로변을 따라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주로 할머니나 아줌마들이다. 그들은 문 안내원의 어머니처럼 집에서 소일거리로 만들었거나 재배한 야채·푸성귀·떡·감자나 고구마 삶은 것·각종 음식·생선류 등을 팔고 있다.

자세히 보니 물건을 팔기만 한다는 것보다는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사람 지나다니는 것을 구경하기도 한다. 그러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부가 지나가니 "하나 먹어보시오"라며 수줍게 떡을 건네기도.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시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문 안내원 어머님은 어디 계세요?"
"그러지 않아도 찾아보면서 걷고 있는데, 오늘은 안 나오신 것 같습니다. 매번 저 자리에 계셨는데 안 보이시는 걸 보니 말입니다."

문 안내원이 어머니가 늘 계시던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도로변을 조금 지나가니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벽지가게·타일가게·장판가게·목공소·철공소 등등. 주로 전문적인 물품을 다루고 있는 상점들이다. 그곳을 지나치니 또 다른 입구가 나온다. 장마당 입구인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마디로 굉장하다. 예전 서울의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 정도의 크기로 보인다. 물론 수준도 예전 한국의 시장들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도 이 정도 시장이 북한에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싶다.

장마당은 실내와 실외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우리는 실내에 먼저 들어갔다. 모든 연령층의 옷가지를 비롯해 운동화·구두·갖가지 액세서리와 전기·전자 상품들, 그리고 화장품과 주방 도구·침구·귀금속·휴대전화 액세서리까지... 없는 게 없다. 입이 떡하고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장마당 안에 있는 제품 대부분은 중국산이다.

화장품 가게가 모여있는 코너를 둘러보며 지나가는데 한 아가씨가 애타게 우리 일행을 부른다.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갔다.

"손님께서는 다른 곳에는 주름이 전혀 없는데 눈가에만 주름이 조금 있네요. 눈가 주름만 없으면 20대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오늘 아주 좋은 '주름 펴는 크림'이 들어왔는데 하나 구입하시라요."

장사 수완이 대단하다. 어떻게 내 약점을 단번에 짚었는지... 아가씨가 권하는 제품이 어떤 건지 보니 미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아이크림이다. 뒤에 중국어가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온 것 같다. 하나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이 화장품은 미국 제품이네요... 저는 미국에서 왔거든요. 그러니 미국제품 말고 조선 화장품을 하나 보여 주시겠어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의 질 좋은 인삼을 넣어 만든 제품"이라며 북한 화장품을 보여준다. 나는 흔쾌히 그 제품을 샀다.

돈은 인민폐로 지불했다. 상인들에게 가격을 물어보면 아예 인민폐 단위로 말해준다. 화폐교환소가 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민폐를 주고받는다. 종종 북한 화폐로 거래하는 사람들도 보이긴 하지만. 그런데, 화장품을 사고 있는 동안에 문 안내원과 남편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장마당에서 산 '붉은 별 모자'

장마당에서 산 '붉은 별 모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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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한 모자집 앞에서 주인아줌마와 한바탕 웃으며 모자를 사고 있다. 문 안내원은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 앞에서 여자친구와 짝으로 달고 다닐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고르고 있다. 내가 옆에 다가간 것도 몰랐던 문 안내원은 판매원에게 여성들의 취향을 물어본다. 고르는 모습이 참 귀엽게 느껴지는 게 영락없이 우리네 젊은이들 같다.

남편은 붉은 별이 달려 있는 둥근 모자를 기념품으로 샀다. 지난해 평양 거리에서 처음 보고 놀랐던 바로 그 모자. 북한 말투를 흉내 내면서 모자를 써보는 남편의 모습이 우스운지 아주머니들이 소리 내 웃고 있다. 나도 가게에 들러 같은 모자를 샀다. 우리 부부는 외국 여행을 갈 때면 으레 그 나라 고유의 모자를 사곤 했다. 그 모자를 쓰게 되면 현지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낯선 사람에게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은 어느 나라 아주머니들이나 다 같은가 보다. '어디서 왔느냐' '자식은 몇이냐' '자식들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 '부인 나이는 어느 정도인가' '직업은 뭔가' 등등.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남쪽에서 태어난 미국 동포'라고 하니 아주머니들은 "멀리서 오신 귀한 우리 동포"라며 모자 가격을 깎아 주겠단다.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며 극구 사양한 뒤 우리는 그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마음먹고 사진을 찍으려면 얼마든지 찍을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문 안내원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이런 곳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정식으로 당국자들의 허락을 받아 꼭 장마당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바깥으로 나와 실외 장터를 구경하기로 한다. 실외 장마당은 실내보다 더 크다. 각종 곡류를 비롯해 야채·나물·과일·견과류·생선·해산물·육류·향신료 등 갖가지 품목들이 즐비하게 모여있다. 나는 산에서 직접 캐온 나물들을 사고 싶었다. 향긋한 산나물 향기가 실외 장마당을 온통 뒤덮고 있다. 우리는 북한산 잣 두 봉지를 샀다. 하루 동안 이 장마당을 오가는 사람이 1만 명이라고 하니, 라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다녀가지 않겠나 싶다.

평양에는 라진의 장마당보다 예닐곱 배나 더 큰 시장이 여러 개 있다고 한다. 장마당 경제가 북한 전역에 퍼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중국이 장마당의 공급자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대신 북한은 외화 확보를 위해 광물자원이나 수산물 등 1차 산업 품목들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 같다. 남편은 "북한이 경제봉쇄로 인해 국제시장에 진출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중국이 철광석 등의 천연자원을 헐값에 사고 있는 게 아닐까"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두 눈으로 살펴본 북한 장마당,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북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나진에 있는 외국어 중학교.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 영어가 적혀 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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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장마당에서 산 '모택동 모자'를 쓰고 다음 행선지인 외국어 중학교에 가기 위해 시장에서 걸어나왔다. 우리가 모자를 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우리를 쳐다보며 웃는다. 그때마다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북한 동포들도 손을 흔들어 인사에 답한다. 이것이 북한동포들과 우리가 나눈 '간접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우리가 닿은 외국어 중학교는 우리나라의 외국어 고등학교와 같은 곳이다. 이곳 라진-선봉이 국제무역특구인 만큼 지역의 특성을 살려 외국어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단다. 학교에 도착하니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받고 있었다. 언뜻 보니 학생들이 태권도 혹은 태권도 동작을 응용한 체조를 하고 있는 듯. 외국어 중학교에는 두 명의 덴마크인 부부, 두 명의 미국인 부부, 그리고 시애틀에서 왔다는 40대 재미동포 여성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영어반 수업 참관을 위해 기다렸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이 오시더니 우리에게 정중하게 말을 건넨다.

나진에 있는 외국어 중학교 영어반 교실. 녹음기, 헤드폰 등이 준비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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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발걸음을 해주셨는데, 오신 김에 우리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외국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가 드물다 보니, 오늘 학생들이 여러분들과 영어회화 실습을 해보기를 희망합니다. 함께 수업에 동참해주시면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며 곧바로 교실로 향한다.

교실 안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우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학생들에게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한 뒤, 조를 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점들을 우리에게 물어보면 우리가 대답해주고, 또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또는 듣고 싶은 것을 질문하면 그들이 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나진에 있는 외국어 중학교 영어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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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아직 많이 모자라 보였지만, 나름대로 또박또박 표현하는 모습에서 어린 학생들의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목표와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 이곳이 북한이라는 것을 또 망각하게 되기도. 이 아이들이 성인이 돼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때를 생각해본다. 분명 희망찬 미래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영어 노래를 불러줬는데, 놀랍게도 "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Indians..."라고 시작하는 미국 노래를 불렀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도 어렸을 적 영어 시간에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를 배웠단다"라고 말해줬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지난 4월 평양에서 불렀던 북한 노래 한 곡을 영어로 번역해 불러줬다. 이를 듣고 있던 선생님 한 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연필과 종이를 건넨다. 영어로 된 노랫말을 적어달란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북한에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다니... 예상치 못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언젠가 시간을 내 북한 학생들을 가르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평양이나 이곳의 음악학교를 알아봐야겠다. 북한의 농작물 개량을 위해 북한에 살다시피 하시는 '목화 할머니' 김필주 박사님께 여쭤봐야겠다. 그런데, 눈물이 나 수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무시무시한 배' 만경봉호

재일동포 북송선이었다는 만경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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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벗어나 라진항 부둣가로 향한다. 남편은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 한 척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배에는 '만경봉호'라고 적혀 있다. 남편에게 물었다.

"저 배를 아세요?"
"그럼! 학교에서 무시무시한 배라고 배웠지."
"무시무시한 배라니요?"
"저 배가 북한과 일본의 니이카타항을 오가며 재일동포들을 강제 북송했다고 배웠어. 근데 저 배가 아직도 있네."

"강제 북송이라니요?"
"글쎄... 나도 잘은 몰라. 일본서 차별받고 살던 동포들이 저 배를 타고 북한으로 귀국했다지?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이 북한이 강제로 재일동포들을 싣고 북송했다는 거야."

"아니, 일본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강제로 배에 실을 수가 있어요?"
"나도 몰라. 나중에 얘기해."


남편이 운전기사 '사슴'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니, 저 배가 어떻게 나진항에 정박해 있어요?"
"아, 네. 저 배가 중국 관광객을 싣고 금강산을 가기 때문에 여기 있습니다."

남편은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사진을 연식 찍는다. 아마 어려서 들은 것이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대형스크린 켜지자 아이들이 모이고...

호텔 앞 공터. 텔레비전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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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앞 공터에서 아이들이 정면에 설치된 텔레비전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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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니 호텔 정면에 붙어있는 스크린에서 텔레비전이 방영된다. 호텔 앞 공터를 오가는 사람들이 이를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커피숍에서 내일로 예정된, 내 사촌 여동생 부부와 조카들이 살고 있는 '신해리' 농장 방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공식적으로는 '북한생활 체험학습'이다. 문 안내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내게 말을 건다.

"아니 '체험학습'인지 뭔지 하는 로동을 왜 일부러 하려고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리해가 안됩니다."
"그것은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해 봄으로써 삶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려는 의도지."

"로동은 필요에 의해 하는 게지 인생을 리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로력 동원'에 나가면 간단할 것을..."
"우리한테는 그런 기회가 없잖아."
"아니, 그냥 해본 말입니다. 그런데 내일 가시면 로동일을 하셔야 되는 것은 알고 계시죠? 쟁기로 밭도 갈고, 염소젖도 짜야 되고..."
"응. 알고 있어."
"아, 난 정말 리해가 안되네요.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면 재미있게 얘기하며 노는 거지, 로동을 왜... 참 리해를 할 수 없네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중국팀 안내원이 종이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신이 나서 들어와 우리 옆에 앉는다. 문 안내원이 '종이 가방 안에 든 게 뭐냐'고 묻자 중국팀 안내원이 기분 좋게 대답한다.

"내일 아침 행사 때 딸아이가 입을 건데,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했어. 청진에 출장 가는 사람에게 부탁했지. 그곳에 있는 전문 옷집에 주문한 거야. 조금 있다가 애 엄마가 가지러 올 거야."
"어디 좀 꺼내 보기요."

중국팀 안내원이 딸에게 행사 때 입히기 위해 특별히 청진에서 맞춰 왔다는 여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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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팀 안내원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종이 가방 안에서 그야말로 깜찍하고 앙증맞은 여자 군복을 꺼낸다. 사랑스러운 딸이 입을 생각을 하는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중국팀 안내원은 딸아이의 피아노 솜씨를 자랑하려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아이, 피아노 신동이다. 방 조카의 딸은 무용, 이 중국팀 안내원의 딸은 피아노의 신동... 내 주위에는 왜 이리도 신동들이 많은지. 아빠들이 자랑할만하다. 자식을 생각하며 흐뭇해하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깊고 은은한 사랑이 느껴진다.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덩달아 내 마음도 행복해진다.

오늘 밤에는 전기장판을 틀지 않아도 포근한 마음에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드디어 내일, 그토록 보고 싶은 사촌 동생네 가족을 만나러 신해리에 간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