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5271



저는 오래 전부터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오로지 음악에 관한 지식만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북한에 갔습니다. 호기심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과 민족애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생겼습니다. 2011년 10월 이후 지난 4월에 열흘 동안, 그리고 5월에는 3주 동안 나진·선봉을 비롯한 북한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 기자말

 

묘향산 옆에 있는 '국제친선 전람관'은 산을 지붕 삼고 있는 거대한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전람관은 건물 입구만 바깥에서 보일 뿐 몸체는 산속으로 길게, 끝이 안 보이는 터널처럼 늘어져 있다.

 

 국제친선전람관 전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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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전체가 돌과 시멘트로만 지어졌다고 한다. 목재로 보이는 부분들도 모두 돌이나 시멘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 겉에서 보기에는 마치 창문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이 건축물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단다. 대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철문 한 짝의 무게가 수 톤에 달한다고 한다. 힘겹게 열릴 것 같은 문. 하지만 약간 힘만 줬을 뿐인데도 문은 스르르 사뿐히 열린다.

 

땅 속과 땅 밖의 금은보화

 

 국제친선전람관 철문. 철문 하나의 무게가 수 톤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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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들어서니 대리석으로 치장을 한 입구가 보인다. 마치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호텔 로비 같다. 40대로 보이는 해설원이 우리를 맞는다. '국제친선 전람관'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세계 각국의 국가 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과 단체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라고 한다. 선물을 전시해 놓은 방이 200여 개나 되는데, 제대로 다 보려면 몇 개월 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슨 선물을 했을지 궁금해 두 나라 전시관만 보여달라고 했다. 해설원은 많은 선물을 가리키며 '누가 언제 가지고 왔다'며 일일이 설명해 준다. 빌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 김일성 주석과 친했다는 빌리그래함 목사, 박정희, 전두환 등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보낸 선물 등… 너무도 많은, 그리고 의외의 인물들이 귀한 선물들을 보냈다는 사실에 순간 깜작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해설원의 설명을 듣다 보니 선물 하나하나에 애착심과 자부심이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해설원은 상기된 얼굴빛과 목소리로 마치 금방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감격과 흥분에 차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두 나라 전시관만, 그것도 걷는 속도로 지나치며 봤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국제친선관람관 관람을 마치고 해설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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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원의 배웅을 받으며 국제친선전람관을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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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미로 같은 복도를 통과해 어디론가 올라가 보니 전람관의 난간에 있는 넓은 휴게실이 나온다. 묘향산의 내음이 담겨 있는 공기가 빛줄기 속에서 알알이 보석이 돼 반짝인다. 이 아름다운 자연이야말로 땅 밖의 금은보화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해설원은 우리를 귀빈석 테이블로 안내했다. 앞에 펼쳐져 있는, 마치 유화 속 그림 같은 산자락의 가을 경치와 인삼차 향에 취해 도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정신이 몽롱하다. 그저 이 황홀한 자연과 내가 하나 되고 나니 시간도 멈춰버린 것 같다. 그때, 설경이가 일깨워 준다. 지금, 평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되돌아간 평양은 축제 분위기

 

 평양 모란봉 극장 전경. 이곳에 원래 있었던 건물에서 바로 김구 선생님께서 참석하신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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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노동당 창당 기념일. 내가 이곳에 도착한 뒤로 지난 1주일, 이 기간에 북한 주민들은 모두 이날을 고대하고 준비하면서 보낸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던 묘향산에서의 신선놀음은 끝났다. 되돌아간 평양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가는 곳마다 춤과 노래, 그리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한가득 차있다.

 

우리 부부는 우연히 시기를 잘 맞춰 온 덕에 북한 국립교향악단의 특별 축하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특별 축하공연은 '모란봉극장'에서 열렸는데, 리만룡 안내원 말에 의하면 이 공연장은 해방 후 김구 선생님께서 참석하신 '남북연석회의'가 개최됐던 유서깊은 장소라고 한다. 물론 그때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지금은 공연장으로 다시 세워졌단다.

 

'그 시절 남북이 하나가 됐더라면...'이라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지난 일이니 어찌 하겠는가. 아쉬움이 간절한 소망으로 바뀌어 희망의 빛을 갈구할 수밖에...

 

공연 시간이 돼 가니 여기저기서 단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한 여성이 휴대전화로 친구를 독촉한다. 빨리 오라고 말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인데, 여기서는 그 흔한 일도 신기해 보인다.

 

 평양 모란봉 극장 앞. 뒤에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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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모란봉 극장 앞. 뒤에 건설 중인 아파트 건물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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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모란봉 극장 앞 분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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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짓의 북한 국립교향악단 연주 공연은 내게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게 익숙했던 연주회의 프로그램 책자 대신, 화려한 색상의 한복을 차려입은 아나운서가 북한 특유의 억양법으로 새로운  연주곡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올라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곡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제목과 작곡자, 그리고 지휘자의 이름 정도다.

 

우리식의 두툼한 연주회 프로그램 소개 책자 속에는 작곡자나 곡에 대한 해설, 연주가의 프로필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청중이 어느 정도 곡에 대한 이해와 기대를 갖고 공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 북한에서는 만약 청중이 곡을 모른다면, 연주 내내 미지의 음악 세계를 탐험해야 한다. 곡에 대한 해설이 남한보다 세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란봉 극장에서 '통일 심포니'를 상상하다

 

 진행을 맡은 한복 차림의 오캐스트라 연주회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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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곡으로 시작됐다. 그 외에는 북한 작곡가들의 관현악곡들이 연주됐다. 곡의 분위기는 나의 상식으로 표현하자면 '민족주의에 사회주의 사상을 혼합한 북한 고유의 음악풍'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곡의 리듬과 멜로디, 그리고 음악 흐름의 전개 내용은 마치 기승전결로 잘 짜인 글처럼 음악 속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곡의 진행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사상 고취를 시킬 수 있을 흥과 힘이 담겨 있다.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은 최상위 수준이다. 그런데 감정 전달이 모든 곡에서 일률적이다. 사회주의 음악 스타일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두 명의 남성 지휘자와 한 명의 여성 지휘자 모두 훌륭한 연주 매너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 모두 유럽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활동했던 실력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점은 일부 곡들은 여러 작곡가가 함께 만들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예술적 취향과 독특한 창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네 음악가들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내 견해로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추구하는 바가 동일한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아니면 접해볼 수 없는 특별한 음악 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남북 연석회의가 열렸다는 이 극장에서 언젠가 '통일 심포니'를 들을 날을 고대한다.

 

친근한 말 한 마디... "한 잔 하고 가시라요"

 

 평양 모란봉 공원. 주민들이 흥에 겨운 춤판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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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모란봉 공원'에 닿았다. 이 공원을 걷다 보니 또 다른 '서민 음악회'를 만날 수 있었다. 모란봉 공원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벌인 장터의 놀이마당 같다. 공원 안은 북소리, 장구 소리, 노랫소리로 펄펄 끓는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끼리 모여 스테레오를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북소리, 장구 소리에 파묻혀 멀리서는 무슨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사람들은 신바람 나는 가락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에 푹 빠져 즐기고 있었다.

 

몇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를 가나 빠지지 않는 '가무의 세계'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정말이지 '지독하게' 똑같다. DNA 검사를 굳이 해보지 않아도 같은 민족임이 틀림없다.

 

 평양 모란봉 공원. 한 쪽에서는 카드 놀이를 즐기고 있다. 언뜻 보니 놀랍게도 트럼프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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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모란봉 공원의 소풍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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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은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사람들이 무슨 술을 마시는지 궁금하다"며 자꾸 쳐다본다. 그러자 나들이 나온 한 가족 중에 아버지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우리를 향해 오라고 손짓한다. 우리가 머뭇거리니 맥주를 가져와서는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잔을 내민다. 길가는 나그네를 그냥 지나쳐 보내지 않는 우리네 정서가 그대로 묻어 있다.

 

 우리에게 술을 권하는 모란봉 공원의 소풍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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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권하는 북한 주민들의 환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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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설경이가 "이분들은 미국에서 관광오신 재미동포들입네다"라며 우리를 소개했다. 그러자 영어로 " 유 프롬 아메리카? 아이 노우 잉그리쉬"란다. 주위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 남성은 자신이 배운 영어를 가족들 앞에서 한껏 발휘하고자 하는 듯했다. 우리가 영어로 답해주니 아내로 보이는 한 여성이 "영어로 잘도 통합네다!"라며 칭찬한다.

 

나들이 나온 가족이 굽고 있던 오리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준다. 입에 안주를 넣어 주는 행동마저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똑같은지... 즐겁기 앞서 또 눈물이 찔끔한다. 아! 역시나 우리는 한민족이었구나!

 

을밀대, 냉면집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길

 

 보수 공사 중인 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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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사진에 담아 간직한 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걷다 보니 앞에는 공원의 꼭대기, 이곳은 '평양성' 관망대 중 하나인 '을밀대'다. 6세기 고구려 건축물을 육안으로는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일제강점기 때 쓰인 문학 작품들 속에나 가끔 등장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곳을 실제로 접하고 나니 마치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젊은 학생들이 나라 잃은 슬픔 속 울분에 겨워 을밀대 축대 밑을 두 주먹 불끈 쥐고 두들기며 오열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된다. 남쪽에서는 서서히 잊히면서 사람들에게 아마 냉면집 이름 정도로 기억되다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을밀대를 넘어 개선문 광장으로 가는 길에 설경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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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밀대를 넘어 개선문 광장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만룡 안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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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봉 공원을 빠져나왔다. 공원 앞 광장도 예외 없이 음악에 맞춰 춤판이 벌어져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개선 놀이공원'앞에 아이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 서 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입장 행렬에 아이들은 지칠 줄도 모르고 서 있었다. 놀이공원 안에선 연신 비명이 들린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지르는 소리가 틀림없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치 자신이 타고 있기라도 한 듯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초조해 보인다.

 

이날은 북한 전역이 이렇게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북녘 동포들의 삶이 이날만 같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을밀대 넘어 광장에도 춤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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